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239화 (239/248)

────────────────────────────────────

Episode 55: 재기드 얼라이언스 (3)

Episode 55: 재기드 얼라이언스 (3)

“헉!”

많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공중에 뜬 상태로, 커다란 바위가 갈라졌다.

퍼포먼스를 위해 올렸던 손을 내리고, 이준기는 공격대장 피트를 향해 말했다.

“잘 보이십니까?”

“혀··· 협박하는 겁니까!”

“그냥 보여드리는 겁니다. 잘 보세요.”

“잘 보지 않아도 잘 보입니다! 지금 힘자랑을 하고 있잖소!”

“글쎄, 그런가요? 잘 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이준기는 고개를 젖혀 머리 위의 바위를 쳐다보았다.

달걀 모양의 바위는 가운데가 잘려 대략 2등분의 두 덩어리가 되었다.

이준기는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준기의 손가락 끝을 따라 모여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채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두··· 두 개가 아니에요! 자··· 작은 조각들도 공중에 떠 있어요!”

이준기는 손을 내리고 흐뭇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잘 보셨습니다. 조그마한 돌조각까지, 저는 지금 모두 일곱 개의 물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굳이 설명을 드리자면, 바위를 두 쪽으로 쪼개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운 컨트롤입니다.”

“그··· 그래서, 그 바위 조각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광대 짓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돌아가실 생각이 좀 드십니까?”

피트는 이준기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의사 결정은 이미 끝났다.

하지만 공격대장의 체면이 있다.

다들 이준기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바위 조각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가운데, 채드만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샘이 촬영 중인 이 화면이 방송에 나가면 체면이야 깎이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피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이준기를 향해 외쳤다.

“아··· 알겠습니다! 철수하겠소!”

“그리고, 지도부에 저의 제안을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 물론입니다.”

“촬영은 그만두세요. 저는 이미 얼굴이 많이 팔려서 괜찮지만, 저분들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샘은 정말로 촬영을 그만둬야 하는지, 로스를 쳐다보았다.

놀라움과 공포가 섞인 얼굴로 로스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렇게 둘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카메라에서 메모리 스틱이 빠져나와 두 조각으로 부러졌다.

샘과 로스는 즉각 이준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몰래 찍으신 분 없죠?”

샘과 로스는 허둥대면서 카메라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원형 건물 뒤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

건물 뒤에서 섬광이 한 차례 번쩍이고, 쨍그랑 소리와 함께 길바닥으로 한 사람이 넘어지는 게 보였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말채찍의 금속제 손잡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말채찍의 끝자락은 건물 뒤쪽의 무언가에 걸려 공중에 떠 있었다.

“네놈은 뭐냐!”

바닥에 쓰러진 채 뒤로 움직이면서, 그는 건물 뒤쪽의 상대방을 향해 외쳤다.

웅···!

건물 뒤편에서 추이가 빛의 방패를 든 채 나타났다.

남자의 채찍은 끈끈이에 걸린 듯, 빛의 방패에 걸려 있었다.

멀리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전투에 넋을 잃고 구경 중인 사람들을 향해 이준기가 외쳤다.

“동부 연합입니다! 다들 방패 뒤로 몸을 숨기세요!”

사람들은 몇 안 되는 경찰 방패 뒤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남쪽의 새장(Birdhouse) 건물 뒤편에서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건물 뒤편에서부터 사람이 나타났다.

개리 헌팅턴이 권총을 뽑아 든 채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꼬··· 꼼짝 마라!”

여러 명의 상대를 향해 권총을 차례로 겨누며 위협하는 개리 헌팅턴.

총성과 함께 그의 손아귀에서 권총이 떨어져 나갔다.

개리는 비명을 지르며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쥐었다.

“으악!”

건물 뒤편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걸어 나와 개리를 향해 움직였다.

맨 뒤로 걸어 나온 여자는 권총의 총구를 하늘로 향해 들고 연기를 불어 날리는 시늉을 했다.

“백발백중이지.”

그러나 승리의 포즈도 잠시뿐.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온 권총이 밤하늘을 빨랫줄처럼 날아갔다.

“뭐, 뭐야!”

분노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시야는 날아가는 권총을 쫓았다.

날아간 권총은 공중에 뜬 바윗덩어리들과 합류했다.

커다란 바윗덩어리 두 조각, 그리고 그녀의 권총을 비롯한 몇 개의 무기가 공중에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뿔테 안경과 마스크를 쓴 동양인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네··· 네놈은 뭐냐! 감히 우리를 방해하다니!”

그녀에게 대꾸하는 대신, 이준기는 원형 건물 뒤편에서 걸어 나온 추이에게 외쳤다.

“추이!”

“네, 보스!”

“그놈들을 끌고 이쪽으로 와라.”

이준기는 바위를 머리 위에 띄운 채 개리를 쏜 여자를 향해 걸어갔다.

여자는 휘둥그레 눈을 뜨고 조금씩 뒤로 후퇴했다.

“나··· 난, ‘산타마리아’ 길드의 넘버 쓰리, 빅토리아 라슨(Victoria Larsen)이다! 넌 뭐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이준기는 여자에게 다가섰다.

“길드라고? 지금은 범죄 집단이나 다름없지 않나? 태연하게 이름과 소속을 밝히다니 배포가 제법이군.”

“버··· 범죄 집단이라니!”

“민간인들 죽이려고 왔잖아?”

“게··· 게릴라 전이다!”

“네 양심에 물어봐라. 이것이 정말 전쟁인지.”

*****

- 차원문 고유번호 15391. 랭크 C. ‘유리 동물원(Glass Menagerie)’.

- 차원문 소멸 조건: 유니콘의 뿔 확보.

- 차원문 소멸 보상: 레어 아이템 1개 이상.

- 퇴각 페널티: 1레벨 강등.

“생각보다 쉽겠군.”

이준기의 말에 빅토리아 라슨이 대꾸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추이가 허리춤에서 검을 빼려는 시늉을 하며 빅토리아에게 말했다.

“보스에게 무례하게 굴면 가만두지 않겠다!”

“보스? 저 동양놈이 너희들 보스였군? 킬러포니아도 갈 데까지 갔구나.”

“어허, 이 여자가!”

허리춤에서 정말로 검을 빼 들려고 하는 추이를 이준기가 제지했다.

“아냐, 추이. 급조된 공격대니까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지. 대답해 주겠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

추이가 칼을 빼 들고 덤비면 맞대응하려고 잔뜩 긴장하고 있던 빅토리아 라슨.

이준기의 말에 순순히 물러서는 추이를 보면서 그녀도 뒤로 한 걸음 움직였다.

긴장이 풀렸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반 옥타브는 내려가 있었다.

“일단,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묻고 싶다.”

던전에 진입하고 나서, 이준기는 고글 ‘슈퍼바이저(Super-visor)’를 써서 눈을 가렸다.

바깥에서는 뿔테 안경과 마스크에 가려 얼굴이 잘 안 보였지만, 이제는 입 표정이 잘 드러난다.

이준기는 빙긋 웃으며 빅토리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차원문 공략이지.”

“그걸 왜 우리가 해야 하는 거냐고!”

“왜냐니, 여기는 너희 길드 산타마리아의 영역이잖아? 너희들이 하는 게 당연하지.”

“전쟁 중이다. 지금 우선순위는 차원문 봉쇄가 아니란 말이다!”

“전쟁은 나중에 하고, 오늘은 일단 이곳을 닫자.”

“넌··· 도대체 누군데?”

“내가 누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알려주지. 우리는 멕시코의 최대 길드, 킬러포니아의 미국 원정대다.”

“킬러포니아라면, 우리 동부 연합의 동맹이잖아?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어제부로 동맹을 깨졌다. 설마 그걸 모르는 거야?”

“동맹을 깨자마자 적대행위를 하는 거냐?”

“이게 왜 적대행위지? 함께 던전을 깨자는 건데.”

“우··· 우리가 순순히 너의 명령을 들을 것 같으냐!”

이준기와 동료들에 의해 차원문 안으로 끌려 들어왔으면서도, 빅토리아는 당당했다.

머릿수가 더 많아서 그러는 건가.

추이는 빅토리아의 무모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준기의 텔레키네시스를 보았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겁 없이 행동할 수 있지?

“여기 던전은 간단해. 유리로 된 동물들과 싸우다 보면, 유니콘이 나타난다. 그게 보스지.”

딴청 하며 대답하는 이준기에게, 빅토리아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우리가 숫자가 더 많아! 네 명령을 들을 것 같으냐!”

이준기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으며 빅토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던전에까지 들어왔는데, 몬스터가 아니라 나와 싸우겠다고?”

“네··· 네가 우리의 적이라면··· 싸우다 죽을 뿐이다!”

“난 너희들의 적이 아냐.”

“그럼 왜 우리에게 적대행위를 하는 거지?”

“적대행위라니,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잘 들어라. 내가 제안하는 건 간단해. 이 지리멸렬한 내전을 끝내자는 거다. 동부 연합, 서부 전선··· 어느 날 한자리에 모여서 단판에 승부를 가리자. 준비물은 입장 인원 제한이 없는 차원문 하나뿐이다. 얼마나 간단해?”

“그···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아?”

“민간인에 피해를 끼칠 일도 없고, 숨어서 싸우느라 고생할 일도 더는 없다. 좋은 제안 아냐?”

“서부 전선이 그런 제안에 응할 리가 없잖아.”

“아니, 응할 거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지?”

“내가 조건을 걸었거든. 이 제안에 응하지 않을 경우, 나와 우리 길드가 동부 연합에 가담해서 싸울 거라고 말이지.”

“키··· 킬러포니아라면 원래 우리 동맹이었어. 지금까지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그걸 서부 전선이 위협으로 받아들일까?”

추이가 끼어들었다.

“지금까지는 보스가 직접 개입하지 않으셨다. 이번에는 보스가 직접 나서겠다고 하시는 거다.”

이준기가 대꾸했다.

“그리고 추이, 너도 아직까지는 직접 개입한 적이 없지.”

“그렇습니다. 보스.”

“알겠어, 빅토리아? 우리 둘만 가담해도 전황이 많이 바뀔 거다. 그러니까 서부 전선은 제안에 응할 거야.”

빅토리아가 말했다.

“네··· 네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네가··· 조슈아 테일러라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냐?”

“나도 바로 그게 궁금하다. 그래서 사실은, 서부 전선이 내 제안을 거부해도 상관없어. 그렇게 되면 나는 원하던 싸움을 하게 되겠지.”

“조··· 조슈아 테일러와 싸우겠다고?”

“뭘 그렇게 놀라지? 너희들은 이미 조슈아 테일러와 싸우고 있잖아?”

“그가 서부 전선 소속 구원자인 것은 맞지만, 조슈아 테일러는 아직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그래서 너희들의 싸움이 어려운 것이지. 조슈아 테일러를 끌어내지도 못하고 이렇게 지고 있으니까.”

“뭐··· 뭐라고?”

“괜히 열 내지 말고, 던전 공략이나 하자고. 궁금한 건 다 해결됐나?”

“정말 던전 공략에 집중할 거야? 도중에 우리를 뒤에서 기습한다든가 하는 건 아니겠지?”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 너희들 정도는 지금 당장 제압할 수 있어. 나 혼자 말이지.”

“뭐··· 뭐야?”

얼굴을 붉히는 빅토리아를 보고, 추이가 끼어들었다.

“이 여자, 너무 불손합니다. 이 여자 정도 죽여도 던전 공략에는 아무 어려움도 없으니 죽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바이저로 눈을 가린 이준기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그럴까?”

그러자 빅토리아가 갑자기 외쳤다.

“아··· 아냐! 일단 네 말대로··· 네 명령대로 하겠다. 사··· 살려줘.”

이준기가 대꾸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쓸데없이 사람 죽여봐야, 경험치도 얼마 안 되니까.”

“자··· 작전은?”

“작전 같은 건 없어. 다만, 관전 포인트는 있지.”

“관전··· 포인트라니?”

“난 이제부터 구경만 하겠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이건 겨우 C 등급 던전이야. 지금 너희들 레벨로는 적을 죽여봐야 경험치가 들어오지도 않아. 최종 보스 유니콘을 제외하면 말이지.”

“내··· 내가 몇 레벨인지 알고!”

“빅토리아 라슨. 46레벨. 스킬 트리는 불, 바람, 마나. 텔레키네시스도 익힌 네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사실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 뭐야 그게? 나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자신도 놀랐겠지만, 추이는 빅토리아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보스에게 까불지 마라.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분이다.”

이준기가 말했다.

“자, 자··· 이제 슬슬 출발해 볼까? 이곳 포맷은 간단해. 거대한 유리 건물이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 조각상들이 공격해 온다. 적을 물리치고 건물 중앙까지 진출하면 유니콘이 나타난다. 그걸 쓰러뜨리면 돼.”

“알겠습니다, 보스.”

“문은 사방에 뚫려 있다. 하지만 동문과 남문, 두 개만 사용하겠다. 동문으로는 빅토리아와 산타마리아 길드 팀이, 남문으로는 추이와 킬러포니아 길드 팀이 진입한다. 어느 쪽 문으로 들어가든 중앙까지의 거리는 같아. 먼저 건물 중앙에 도달해서 유니콘을 소환하는 팀이 이기는 걸로 하겠다.”

“소환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유니콘을 소환하면, 내가 원거리에 유니콘의 뿔을 부러뜨리면 되니까. 굳이 죽일 필요도 없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