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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5: 재기드 얼라이언스 (1)
Episode 55: 재기드 얼라이언스 (1)
휴스턴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시내까지 진입하려 하니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넓은 공원이 펼쳐진 곳에서 그들은 차에서 내렸다.
고속도로 위에서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정차하는 그들을 향해, 분노의 경적 소리가 쏟아졌다.
추이, 개리, 그리고 이준기.
차례로 차에서 내린 그들은 갓길에서 난간을 붙잡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휙휙 지나가면서, 차들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빵빵거렸다.
“에이···”
개리가 말했다.
“난간이 낮잖아? 이게 좀 높았으면 저놈들이 우리한테 빵빵거리지 못했을 텐데.”
입체교차로 같은 곳이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고속도로가 좀 높은 지대였다면, 그들이 뛰어내리는 걸 보고 다들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구원자라는 것을.
그러나 이곳 난간 높이는 겨우 1미터가 될까 말까 했다.
“고공 점프를 하고 싶은 거야? 오늘 저녁부터는 액션의 밤이니까 기대하라고.”
“아, 아닙니다, 보스. 그냥 혼잣말이었는데···”
“우리 삶에 액션은 이미 충분히 있지 않아? 난간이 높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하라고.”
“알겠습니다, 보스.”
다소 황량하게까지 느껴지는 녹지를 그들은 빠른 속도로 걸었다.
멕시코 국경을 향해 어젯밤부터 후퇴하는 킬러포니아 길드원들.
그들 중 일부를 여기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걸으면서 추이가 말했다.
“휴스턴 상황에 대해서는 도밍고가 브리핑을 드릴 겁니다. 만나기로 한 장소가 조금 먼데, 가까운 쪽으로 다시 조정할까요?”
“아냐, 우리가 차에서 미리 내린 거니까. 원래 약속했던 장소로 가자.”
“알겠습니다, 보스.”
“게릴라 전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 중인 거지? 바로 어제까지 동맹이었으니까, 동부 연합의 전투 방식은 대강 알겠지?”
“거점 제압 방식입니다. 차원문과 경찰서를 중심으로 테러를 가한다고 들었습니다.”
“차원문이라면 대략 어떤 식인지 알만 한데, 경찰서?”
“텍사스주에서는 차원문 관할을 경찰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서가 타깃이 되는 거죠.”
“그래서, 서부 전선이 차원문에 접근하면, 그걸 도와준 경찰들을 공격한다는 거야?”
“네, 그런 식이라고 들었습니다. 동맹이라고는 해도, 동부 연합과 우리는 분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보스.”
“분업?”
“우리, 킬러포니아는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는 역할을 맡았거든요. 여론 악화를 노리는 겁니다. 뉴욕이나 보스턴처럼 동부 연합의 지배가 확실한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처럼 주인이 자주 바뀌는 곳에서는 결국 테러가 작전의 주가 됩니다. 적에게 협력하는 민간인들에 대해 공포를 심어주는 거죠.”
“그건, 드레 럭러스터의 작전인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드레 럭러스터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현명한 전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
“네··· 그렇습니다.”
“결국은 패배한다는 가정을 밑바닥에 깐 전략이야.”
“듣고 보니 그렇군요.”
공원을 가로지른 그들은 시가지로 진입했다.
“오늘 저녁, 서부 전선의 차원문 공략 말야. 왜 저녁 시간에 들어가는 거지?”
“서부 전선의 발표에 따르면,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해가 지고 나서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적으니까, 차원문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져도 민간인 피해가 적다는 거죠.”
“최근에 나타난 경향이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도 차원문 공격대는 낮 시간에 진입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9시 30분이었지?”
“네.”
“동물원?”
“네. 차원문은 동물원 안에 있습니다. 동물원은 폐쇄되어 있고요.”
“차원문을 경찰에서 관할한다고 하니, 경찰에서도 누군가 참석할까?”
“도밍고의 말에 따르면, 아마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지난달에, 차원문 공격대 출정식에 입회했던 경찰 10여 명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동부 연합 구원자들이 경찰만 골라서 죽이고 도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경찰에서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도밍고가 말했습니다.”
“지독하군. 그래도 기자들은 오겠지?”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밍고가 그러더군요. 돈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건, 미국 기자들이라고.”
“휴스턴 경찰은 단 한 곳, 휴스턴 경찰서에 소속되어 있지만, 기자들은 수십 수백 개의 다양한 언론사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휴스턴 경찰서장의 한마디면 경찰들은 차원문 공격대 출정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수백 개의 언론사 간부들 중 누군가는 기자들에게 그렇게 얘기하겠지. 죽더라도 현장에 가서 죽으라고. 볼펜이나 마우스를 집어 던지면서 말야.”
“하하··· 죄송합니다, 보스.”
이준기는 고개를 돌려 추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죄송해?”
“우··· 웃어서.”
“웃으면 좋은 거지 그게 뭐가 죄송해? 아론한테는 안 그랬을 거 아냐? 친형 같은 존재라며?”
“전에는··· 네 그렇지 않았죠. 아론과 저 사이에는 힘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았으니까요.”
“너무 약육강식 논리 아냐? 구원자가 아니라 마피아의 사고방식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범죄 조직에 오래 있다 보니 그런 사고방식에 물들어버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에 오래 있었다는 얘기야?”
“제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보스?”
“물론이지. 팀원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을수록 좋지.”
“팀원···이라고요?”
“응? 설마 내 뒤통수를 치려고 생각하기라도 했던 거야?”
“아···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우리가 팀원이 아니면 뭘까?”
“티··· 팀원이군요!”
“그래, 추이. 조직에 얼마나 있었는지, 그 얘기를 해봐. 오늘 저녁 작전은 간단하니까, 걸으면서 그 이야기나 하자고.”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그들은 쳐다보는 행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지도 않았다.
구원자라는 존재에 많이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두려움에 모른 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구원자임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러시아에서 본 것과 비교하면 양반이었지만, 휴스턴은 내전 중인 도시의 느낌을 확실히 주었다.
이따금 불에 그을리고 파괴된 건물이 보였다.
평화롭기만 한 샌디에이고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추이가 입을 열었다.
“저는··· 캐나다에서 유학했습니다. 학위를 따고 멕시코에 돌아와서 대기업에 입사했죠. 뒷배경에 범죄 조직이 있다는 풍문이 있는 회사이기는 했습니다만, 워낙 좋은 조건이라 오퍼를 받자마자 곧바로 오케이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범죄 조직이었다?”
“네. 소위 말하는 프런트 회사 같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가 범죄 조직이고 어디부터가 합법적인 조직인지 경계도 불분명한 회사더군요.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는데, 상사의 상사가 가끔 상사의 뺨을 때리더군요.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중에는 그냥 무덤덤해지더군요. 저 인간이 오늘도 왔네.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상사의 상사라는 그 사람은 마피아?”
“어디까지가 마피아고 어디부터가 합법 조직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조직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도 상사도 마피아 조직에서 일하는 셈이었으니 전부 다 마피아라고 해도 되겠죠. 하지만 그 사람은 정말 마피아였습니다. 온몸에 문신이 있고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오는 성격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마케팅 부서장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게 언제 이야기야?”
“제가 입사한 것이 2015년입니다.”
“회사 생활을 꽤 오래 했군.”
“다들 그 얘기를 들으면 놀라더군요. 하지만 제가 뭐 어쩌겠습니까? 멕시코 시티 빈민가 출신입니다. 어머님이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저를 대학에 보내시지 않으셨다면, 훨씬 더 형편없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회사에서 오퍼가 왔을 때 곧바로 승낙을 한 것도, 하루라도 빨리 어머님이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해서 그랬습니다.”
“효자군.”
“아뇨··· 그렇지도 않습니다. 얼마 더 사시지도 못하셨어요. 지병이 있으셔서.”
“안 됐군.”
“그러다가··· 2019년에 구원자로 각성했죠. 회사에서는 저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워낙 큰 범죄 조직이라 회사 내에 저 말고도 구원자로 각성한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구원자들을 모아 특수 부대 같은 걸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갑자기 군사 훈련을 받았죠. 군대는 다녀왔지만, 회사에서 받은 군사 훈련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멕시코도 군대는 의무인 거야?”
“네.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도 징병제 국가지.”
“그렇군요.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멕시코에서 군대에 갔다고 해서 로켓포 같은 걸 잡을 일은 없거든요.”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야. 소총 정도 잡아보는 거지.”
“그렇죠? 저도 군대에서는 소총이나 쏴봤는데, 회사에서 시키는 군사 훈련에서는 별 무기를 다 잡아봤죠. 그게 나중에는 다 도움이 되더군요. 본격적으로 갱 조직을 운영하게 되니까··· 아, 쓸데없는 얘기를 하다니, 죄송합니다.”
“그건 됐고, 다니던 그 회사가 킬러포니아는 아니지? 길드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거야?”
“길드는··· 우선 아론 얘기부터 해야겠군요.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론은 원래 이종격투기 선수였습니다.”
디에고에게 들은 얘기였지만, 이준기는 잠자코 들었다.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팬덤은 있었어요. 제가 아론의 팬들 중 하나였죠. 회사 스트레스를 풀려고 이런저런 스포츠 관람을 즐기게 됐는데, 아론의 파이팅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팬이 됐죠. 팬이 많지 않은 선수라서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좋았고요.”
“특이한 인연이군.”
“아론도 그때 저를 눈여겨본 건지, 나중에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그 상사의 상사 있잖습니까? 마케팅 부서장 하던 깡패놈이요. 구원자로 각성한 다음, 그놈을 언제 손봐주려고 트집 잡을 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기회가 쉽게 오지 않더라고요. 부서가 갈려서 아예 마주칠 일이 없어졌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마음을 먹고 놈을 미행했습니다. 간만에 회사에 나왔길래, 오후 4시쯤 집에 들어가는 걸 그냥 무턱대고 쫓아갔어요.”
“오후 4시?”
“그놈은 깡패니까, 출퇴근도 제멋대로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마찬가지 입장이 됐죠. 구원자가 되어 특별작전팀에 편입되었으니까, 퇴근 정도야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출근한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회사를 나가는 걸 쫓아갔습니다.”
“···”
“오래 쫓아갈 필요도 없었어요. 멕시코 시티 북부 빈민가에서였죠. 놈은 노점상 한 사람을 갑자기 때리기 시작했어요. 이때다 싶어 저는 앞으로 나섰습니다. 무슨 짓이냐고 소리 질렀죠.”
“그랬더니?”
“누가 감히··· 라는 표정으로 돌아본 그놈은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나를 곧장 알아보지는 못하더군요. 그리고 나서는 황망하게 고개를 굽히면서 인사를 했죠. 구원자님이시죠? 뭐 이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굽실거리더군요. 그래서 뒤통수를 세게 갈겼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골목길로 끌고 왔죠. 왜 그러시냐고, 처음에는 시비조로 묻다가 나중에는 울먹이더군요. 그때 저는 10레벨도 안 되는 저레벨이었는데, 구원자라고 하니 꽤나 겁을 먹었나 봅니다.”
“···”
“원래 저는 그냥 몇 대 때려줄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놈이 갑자기 총을 꺼내 들었어요. 그걸 내 턱밑에 대고, 죽고 싶냐··· 까불지 마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소리는 벌벌 떨고 있었지만, 방아쇠를 당길 의지는 충분히 있어 보였어요. 위기 상황이었죠.”
“그때, 아론을 만났다?”
“네, 그렇습니다. 어디에선가 기합 소리가 나고, 사람이 날아와서 놈에게 발차기를 날렸어요. 놈이 쓰러지자, 그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서 저에게 줬습니다. 아론이었어요. 아론도 저를 곧장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죠. 소중한 팬이셨군요? 이놈, 죽여드릴까요?”
“···”
“아론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놈을 반쯤 죽도록 팼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총을 쏘라고 했죠. 원래 저는 그냥 조금 혼줄만 내주려고 한 거였어요. 총을 쏘다니,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아론은 코웃음을 치더니,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화염구로··· 놈을 산 채로 태워버렸습니다. 아론은 제가 구원자인지도 몰랐나 봐요. 나중에 알고 놀라더군요. 구원자인데 왜 그런 깡패놈한테 협박이나 당하고 있었냐고. 그렇게 저를 비웃었죠.”
“그리고 둘이 길드를 만든 거야?”
“길드를 만든 것은 몇 달 뒤였습니다. 아론은 경찰 소속으로 20레벨까지 단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어요. 그게 다, 나중에 필요한 인맥을 만들려고 그렇게 한 거였죠.”
“대단히 주도면밀한 놈이었군.”
“결국 멍청한 놈이라는 게 밝혀졌잖습니까? 감히 보스에게 대들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