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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4: 전쟁의 신 (1)
Episode 54: 전쟁의 신 (1)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테스카틀리포카’다. 줄여서, 옵-테스(Op-Tez).”
“응. 알았어.”
“작전명이 왜 그러냐고 안 묻네?”
“무··· 물어야 하나? 왜 그런 거야?”
“태스카틀리포카가 전쟁의 신이라며?”
“그··· 그래. 뭐 여러 가지 다 하는 신이기는 한데, 전쟁의 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그럼 됐구만. 그 이름을 쓰니까 간지나지 않아?”
“가··· 간지?”
“별생각 없이 지은 것이기는 한데, 멋진 작전명이라면 더 좋잖아. 작전명이 있으면 대화하기도 편하고.”
“그··· 그게··· 테스카틀리포카는 전쟁의 신이기도 하지만, 우리 라이벌 길드 이름이잖아.”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냐?”
“헷갈리게 하려고?”
“작전명 같은 거, 사실 아무런 의미 없어. 대화하는 데 편한 거, 그게 사실 유일한 역할이지. ‘캘리포니아 침공 작전’ 내지 ‘조슈아 테일러 암살 작전’보다는 낫잖아?”
지금 뭘 의논하고 있었는지 문득 깨닫고 추이는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 그렇지.”
“작전명은 새 나가게 되어 있어. 이 이름을 들으면 생각나는 건 두 가지겠지. 멕시코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그리고 같은 이름의 길드. 멕시코 갱들이 벌이는 작전이 전쟁과 관련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 작전이 저쪽 길드의 것이라고 생각해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누가 작전명에 자기 길드 이름을 넣겠어?”
“그렇지··· 오퍼레이션 테스카틀리포카라고 하니까 마치··· 저쪽 길드를 공격하겠다는 작전으로 들리는군.”
“왜, 싫어?”
“시··· 싫은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저쪽 길드를 건드려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아서.”
“저쪽 길드와 너희 길드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이벌이라고만 얘기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지 파악하기 어려운데.”
“라이벌이라는 말이 그래도 가장 맞지 않을까. 보통은 대립하지만, 가끔은 협력도 해.”
“협력?”
“예전에, 라이벌 길드를 합동 작전으로 밀어버린 적이 있다.”
“그건 언제 얘기야?”
“1년 정도 됐을 거야. 그 이후로 멕시코는 2강 체제지.”
“그 길드는 너희들보다 더 강했던 거냐?”
“그래. 보스가 죽고, 길드가 해체되면서 멤버들은 흡수되었지. 우리 길드와 테스카틀리포카, 반반 정도로.”
“그래? 그렇다면 너희 길드도 너무 강해지는 건 부담으로 느끼겠군?”
“보스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양강 구도를 유지하려는 거야.”
“보스 생각은 어떤데?”
“아론은··· 테스카틀리포카를 부수고 단일 최강의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내가 반대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야.”
“추이··· 조직 내에서 파워가 대단하군?”
“보스의 오른팔이다. 서열 2위이기도 하고.”
“네가 보스보다 구원자 레벨이 더 높다고 들었는데?”
“겨우 하나 높은 것뿐이다. 언제라도 뒤집어질 수 있는 차이지.”
“훌륭한 사고방식이군. 다들 너처럼 유연하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레벨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준기는 레벨에 집착해서 그릇된 판단을 하는 수많은 구원자들을 생각했다.
평생 지켜왔던 1위 자리를 빼앗기고 이상덕에게 원한을 품었던 한상태, 같은 길드 힐러인 김나리를 질시했던 김범규.
이준기는 화제를 살짝 바꾸었다.
“라이벌 길드 테스카틀리포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공개된 정보 외에 뭘 알고 있냐는 질문이겠지?”
“물론이지.”
“거의 없다고 대답해야겠군.”
“거의 없다고? 정말이냐?”
“협력하는 입장인데 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라이벌 길드라면 첩보 활동을 하고 있을 거 아냐?”
“첩보? 신사협정으로 그런 건 서로 하지 않기로 했다.”
“신사협정? 하하하, 추이! 그걸 정말 지키는 거야? 너희들, 마피아잖아?”
“그··· 그래도, 보스들끼리 합의한 건데.”
“내 생각이지만, 저쪽 길드는 너희 길드에 첩자를 득시글거리게 심어놨을 거다. 그리고 아마, 너희 길드도 마찬가지일걸.”
“내··· 내가 모르게 첩자를 심어놨다고?”
“네가 그렇게 신사협정 같은 걸 믿고 있으니, 너를 보고선에서 제외했겠지. 너희 길드가 운영하는 첩보망은 아마 보스가 직접 관리하고 있겠지?”
“아··· 아론이?”
“보스를 잘 아나?”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아론은 나한테 친형 같은 존재야.”
아무한테나 ‘형제’라고 말하는 남미 녀석들이지만, 아론을 친형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추이의 말투에는 뭔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이런 시절에 형제처럼 느끼는 신뢰 관계라니, 악당들이지만 기특하다.
이준기는 저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믿어.”
“응?”
“앞으로도 그냥 보스가 하는 대로 믿고 가라고. 복잡한 세상살이, 고민할 거리는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여야지.”
“그··· 그래.”
“그래서, 너희 보스는 언제 도착하는 거지?”
“11시에 공항에 도착하신다. 그때, 곧바로 모셔올게.”
“그다음 일정은?”
“다음 일정이라니? 어두워지면, 국경을 넘기로 한 거잖아?”
“그전에는 다른 할 일 없고?”
“다른 할 일이라면?”
“티화나에 열려 있는 차원문이 하나도 없지는 않겠지?”
“오후에 차원문 정리를 하겠다고?”
“네 실력을 보고 싶다.”
추이는 회상했다.
이틀 전 밤에 이준기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대결을.
“내 시··· 실력이래 봤자···”
“조슈아 테일러와 싸우게 되는 것이 차원문 안이 될지, 밖이 될지 모른다. 차원문 안에서는 어떤지, 그걸 보고 싶은 거야.”
“그래도··· 차원문 정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B 등급 정도로 하나 있으면 딱 좋은데. 오후에 서너 시간 잡아서, 너와 나 함께 들어가 보자고.”
“두··· 둘이 들어간다고?”
“시간 걸릴까 걱정되면, 아론도 같이 가자.”
*****
구원자 길드이자 범죄 조직 킬러포니아의 보스, 아론 페르난데스(Aaron Fernandez)는 말끔한 미남이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닮은 꼴이라고 하면 너무 과한 칭찬일까.
아무튼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머리에 포마드까지 바른 그는 모델이라고 해도 될 외모의 소유자였다.
동네 노점상에서 추러스 파는 총각 느낌의 추이와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회의실로 들어온 그는 부하가 끌어내 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바로 정면에 앉은 이준기의 존재를 눈치채기는 했지만, 아론은 애써 이준기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추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추이? 네가 사정하니까 일단 오기는 했지만··· 내가 저거랑 왜 만나야 하는 거지?”
너무 도발적인 표현에, 추이가 허둥대며 아론에게 대꾸했다.
“보··· 보스! 제가 보내드린 보고서, 읽지 않으셨습니까?”
“보스는 무슨··· 왜 갑자기 형식을 차리고 그래, 우리 사이에.”
“아··· 아론! 이준기는 현재 한국 최강이고···”
“그래··· 레벨이 엄청 높다면서? 그런데 그건 어떻게 믿나?”
“시··· 실력은 내가 보증한다!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하게 봤어!”
“그래 봐야 한 명이야. 저런 거 하나 더 있다고 갑자기 캘리포니아가 우리 땅이라도 되나?”
“이봐, 아론!”
아론은 갑자기 가렵다는 듯 볼을 살짝 긁고는 볼을 긁은 손가락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이거. 손톱이 많이 상했네. 이봐, 추이. 여기 좋은 네일숍 알고 있냐?”
“아··· 아론!”
“점심 먹고 네일숍부터 들러야겠어. 이거, 이대로 놔두면 갈라진다?”
“아론!”
“나 귀 안 먹었어. 왜 자꾸 소리를 쳐?”
“이준기는 우리 손님이야!”
“뭐, 손님? 너 미쳤냐, 추이?”
“이준기는··· 우리를 도우러 왔어. 그리고··· 강해!”
“강해? 난 그런 말을 들으면 일단 총알부터 먹여주고 싶어지더라고.”
아론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손안에서 요란하게 돌렸다.
몇 바퀴를 돌리고 나서 그는 책상 위에 총을 쾅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준기에게 밀었다.
“이준기라고 했나? 이거, 선물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스톨. 콜트 싱글 액션 아미. 그야말로 클래식이지. 가져라.”
책상 위의 총을 한번 흘끗 보고 나서, 이준기는 아론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뭔가를 바라는 건가?”
아론은 한쪽 눈썹을 살짝 들면서 썩소를 지었다.
“너··· 총알을 멈춘다면서?”
“그걸 보여달라는 거야?”
“그래. 할 자신이 없나?”
“총알 멈추는 걸 보여달라면서, 왜 나한테 총을 주는 거지?”
“총도 없는 사람한테 총 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것뿐이야. 난 이게 있으니까.”
뒤에 기립한 부하가 아론에게 기관총을 넘겨주었다.
루거 MP9.
세르게이라면 당장 이 무기의 장단점에 대해서 읊었겠지만, 이준기는 무식하게 생긴 그 기관총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기관총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
“뜨악한 표정은 짓지 말고. 이것도 명목상으로는 권총이야. 기관 권총이지만.”
“좋아하는 건 이거라며? 콜트 싱글 액션 아미.”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상황에 맞는 무기를 골라야지. 이건 분당 1,500발을 쏴 갈길 수 있게 개조한 총이다. 너같이 건방진 놈한테 잘 어울리지.”
“그래서? 그걸 지금 나한테 갈기겠다?”
“겁나냐?”
보다 못한 추이가 앞으로 나섰다.
“이봐, 아론! 이건 아냐. 이준기의 실력은 내가 보증한다.”
“닥쳐라, 추이. 네놈이 사정사정해서 아침 비행기로 여기까지 날아왔어. 난 저놈의 시체를 보든지, 아니면 믿지 못할 묘기를 보든지 해야겠다.”
“아론!”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추이를 쳐다보는 이준기.
추이가 갑자기 땀을 비 오듯 흘린다.
거칠어진 추이의 숨소리를 듣고, 아론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
“어··· 어쭈? 뭐야, 추이. 너 지금 땀 흘리는 거야?”
“아··· 아론!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만둬!”
“추이,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난 조직의 보스다.”
“그래서?”
“보스 체면이라는 게 있는 거다. 가오가 무너지면 죽는 거나 다름없어. 그런데 지금, 내 오른팔이라는 추이 네놈이 내 체면을 있는 대로 깎아 먹고 있잖아!”
“아론! 상황을 잘못 판단하는 것은 너다!”
이준기의 목소리에, 둘은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뭘 보여 달라는 거지? 왜 깡패들은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냐?”
추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답했다.
“이··· 이준기! 미··· 미안하다! 보스와 의견 조절이 잘 안 돼서··· 용서해줘!”
이준기는 아론을 쳐다보며 물었다.
“추이 이아고닉. 네 오른팔이라면서? 저걸 보고도 넌 느낌이 안 오냐?”
“말했잖아. 날··· 내가 겁을 먹게 해봐라.”
“후회할 텐데?”
“너처럼 겁대가리 없는 놈은 처음··· 아니, 드레 럭러스터라는 미국놈 이후로 처음이다.”
이준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끝이야? 아니면 앞으로도 내가 이런 쇼를 또 누군가한테 보여줘야 하는 건가?”
아론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로 그에게 대답했다.
“내가 끝이다. 멕시코에 나 이상의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내 묘기를 보는 건 값이 좀 비싸.”
“상관없어.”
“게다가 조건도 좀 필요하지.”
“조건?”
“넌 사람을 얼마나 죽여봤나?”
“하하하! 그게 조건이냐? 글쎄, 얼마나 죽였을까? 도대체 셀 수도 없을 텐데···”
“많이 죽였다는 거지?”
“그럼, 그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주 많이 죽였지. 내 전공 분야가 인신매매거든. 기본 패키지에 살인이 포함되지.”
“좋아. 합격이다.”
“그래?”
“쏴 봐.”
“사양하지 않지.”
아론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자기 앞에 놓인 MP9을 들었다.
여유롭게 총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아론은 이준기에게 물었다.
“넌? 너도 그 총 들어.”
“사양하지.”
“그래? 무기도 들지 않은, 동양에서 온 촌뜨기를 죽였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정말 배포 하나는 봐줄 만하군.”
허겁지겁 다가온 추이가 아론의 MP9을 틀어쥐었다.
“제··· 제발! 아론!”
“비켜라, 추이. 난 네 보스다.”
“아론!”
“죽고 싶냐?”
아론이 추이의 턱밑에 총구를 겨누었다.
총구를 가지고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추이는 손을 떼고 아론에게서 물러섰다.
그리고 이준기를 향해 외쳤다.
“이준기! 보스를··· 용서해줄 생각은 없나?”
“용서?”
“그··· 그래! 아량을 보여줘!”
“난 추이, 너도 용서한 적 없다. 잠시 손을 잡았을 뿐이야. 착각하지 마라. 너도 아론도, 죗값은 치러야 해.”
“뭐?”
총의 셋업을 마친 아론이 뇌까렸다.
“미친놈!”
이준기를 향해 수많은 총알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