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224화 (22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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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2: 캘리포니아 (6)

Episode 52: 캘리포니아 (6)

“캘리포니아에는 절대 다시 오지 않겠어. 지금 우리를 놔준다면.”

추이 이아고닉은 이준기에게 다시 다짐했다.

캘리포니아 땅을 다시 딛지 말라고 경고하기는 했지만, 이준기가 의도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무고한 사람이 다치는 걸 막기 위해서 멕시코 갱들을 막아선 것뿐이다.

어젯밤에 포로로 잡은 디에고 라몬의 경우도, 지금 이 시점의 추이 이아고닉의 경우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악을 저지하려고 한 것뿐이다.

거시적 차원에서 멕시코 갱들은 이준기의 적이 아니다.

멕시코 갱을 막는 것이 조슈아의 일이라면, 멕시코에서 건너온 이 악당들은 이준기에게는 적의 적, 즉 같은 편이다.

이준기는 추이의 속을 떠보기로 했다.

“그렇게는 말해도, 다시 오겠지?”

“아··· 아냐! 캘리포니아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 약속한다.”

이런, 겁을 너무 줬나.

추이 이아고닉은 이준기에게 감히 속마음을 말하지 못했다.

‘이놈은 보스에게 말하겠지. 캘리포니아에는 조슈아 테일러 말고도 웬 무시무시한 동양인 놈이 있더라고. 그렇게 되면 멕시코 갱들의 미국 내전 개입 수준은 높아진다. 지금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면 역시 조슈아 테일러를 유도해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언론은 여전히 그렇게 말한다.

진흙탕 싸움뿐인 내전에, 고고한 조슈아 테일러는 가담하지 않고 있다고.

과연 그럴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는 이미 내전에 개입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준기는 확신했다.

디에고 라몬, 그리고 추이 이아고닉은 충분히 겁을 먹었다.

미국 내전 개입을 그만둘 수는 없다. 많은 돈과 이권이 걸린 계약이니까.

서부 전선의 본진인 캘리포니아를 방치한 채로 서부 전선에 타격을 가할 수도 없다.

따라서, 알타 캘리포니아의 선택은 결국 하나뿐이다.

더 많은 병력을 캘리포니아에 투입하는 것.

비밀리에 행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예상보다 더 큰 규모로 쳐들어오는 멕시코 갱들을 막으려면, 조슈아 테일러는 결국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걸 유도하기 위해서, 이준기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추이 이아고닉의 마음속에 더 큰 공포심을 심는 것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병력과 함께가 아니라면, 캘리포니아 국경을 넘을 생각을 감히 하지도 못할 만큼.

“이곳에 다시 나타난다면, 또 나를 보게 될 거야. 생각 잘해라.”

“야··· 약속한다. 지금 놔준다면, 다시는··· 다시는 캘리포니아 땅을 밟지 않겠다.”

“좋아, 믿어주지.”

“고··· 고맙다. 그럼··· 놔주는 건가?”

“그래, 잘 가라.”

그 말과 함께 이준기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 쪽으로 가는지 보려고 눈을 부릅떴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멸이나 귀검 스킬을 쓴 모양이다.

‘많은, 아주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저런 녀석이 서부 전선에 있을 줄이야.’

추이 이아고닉은 혀로 입술을 훔쳤다.

왠지 쓴맛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주변의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알아서 도망쳐라! 잡히는 녀석은 용서하지 않겠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부하들 사이에 잠깐 동안 웅성거림이 일었다.

한 명을 시작으로, 부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킬러포니아!”

“비바, 킬러포니아!”

당황한 경찰이 확성기에 대고 소리 질렀다.

“무슨 짓이냐? 손을 들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추이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 집어던졌다.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재빠른 연속 동작이었다.

자신들을 향해 뭔가를 집어 던지는 것을 보고, 경찰 둘은 화들짝 놀라 자세를 낮추어 열린 차 문 뒤로 숨었다.

추이가 던진 검은 쉭 소리를 내며 날아와 경찰차 앞 유리에 정확히 박혔다.

운전석에 사람이 있었다면 관통했을 것이다.

열려 있는 두 개의 차 문 뒤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숨은 채, 두 명의 경찰은 유리창을 뚫고 차 안으로 들어온 칼날, 그리고 열린 문으로 인해 생긴 통로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았다.

식은땀이 이마를 가로지르고,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차 문 뒤에 숨어 일어나지도 못하는 경찰들을 향해 추이가 경쾌하게 외쳤다.

모처럼 자신감을 찾은 목소리였다.

“하스타 라 비스타(Hasta la vista)!”

왱왱거리는 소리를 내며 경찰차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갱들은 쩔뚝거리며 멀어져갔다.

*****

“디에고?”

숙소로 돌아온 이준기는 눈을 의심했다.

싸구려 모텔 로비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디에고가 이준기의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대장!”

이준기를 부르는 디에고의 목소리에는 공포나 경외심 외에 반가움도 분명히 드러났다.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

어이가 없어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 얼굴로, 이준기는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왜 도망가지 않았어?”

“도··· 도망이라니?”

“아까 내가, 널 놔두고 추이 이아고닉을 쫓아갔잖아. 도망가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당연한 사실을 부연설명까지 하는 이준기를 향해 디에고가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그래야 했던 거야?”

“휴우··· 너는 정말 답이 없는 녀석이구나. 오늘도 소파에서 자겠다는 거야?”

“그··· 그래. 난 소파도 편해.”

“그 얘기가 아니잖아.”

“그···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명령만 내려줘. 시키는 대로 할 테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예상 밖인 디에고의 행동에 이준기는 머리가 살짝 아파졌다.

그 좁은 방에서 또 둘이 지내야 한다고?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이준기는 말했다.

“일단, 방으로 올라가자.”

더러운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답답한 모텔방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준기는 생각을 바꾸었다.

“뭐라도 마실래?”

둘은 근처의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생수를 집어든 이준기가 계산대 근처에서 기다렸으나, 디에고는 음료수 진열대를 여전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해?”

“미··· 미국에 왔으니까, 뭔가 색다른 걸 마셔볼까 해서··· 너무 종류가 많아서 고르기 어렵네.”

“하아··· 천천히 골라.”

이준기는 결국 가볍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부드러운 어조가 먹혔는지, 디에고는 정말로 몇 분이나 걸려서 음료수를 골랐다.

결국 들고 온 것은 녹차와 과일즙을 섞었다는 ****티였다.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마신다면 화장실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물건 값을 치르고, 둘은 바깥으로 나왔다.

모텔 근처라서 그런지, 별로 볼 것은 없는 동네였다.

그래도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밤바다 파도 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는 듯했다.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러시아에서, 특히 연해주에서 느꼈던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이국의 하늘은 높았다.

별이 많이 보이는 것은 언제 보아도 신기했다.

‘결국, 대기 오염 때문이라는 거잖아.’

금방 비워버린 생수병을 쓰레기통에 던지면서, 이준기는 가볍게 물었다.

“디에고··· 조직으로 돌아가면 죽기라도 하는 거야?”

“그··· 글쎄?”

대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은 건 의외였다.

도망자는 죽여버린다는 식의 막 나가는 조직은 아닌 모양이다.

목숨의 위협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도망가지 않은 것인가.

이준기는 여전히 잡담하는 투로 물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대답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왜 도망치지 않은 거지?”

“도··· 도망치면··· 대장이 쫓아올까 봐 그랬어.”

이번에는 대답이 쉽게 나왔다.

간단한 불균형 얘기였다.

조직은 보복할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준기는 분명히 보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살인자가 분명한 디에고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다.

겁을 줘서 보스에게 일러바치도록 하는 게 디에고라는 포로의 주 용도였다.

부차적인 용도는 정보를 조금 확보하는 것.

그것도 충분히 했다.

겁을 너무 준 모양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추이 이아고닉에게는 몇 가지 스킬을 보여주었지만, 디에고 라몬에게는 스킬도 쓰지 않았다.

그저 팔을 잡고 위협했을 뿐이다.

“디에고··· 넌 왜 나를 무서워하지? 난 너에게 아무런 스킬도 쓰지 않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구원자라는 증거도 없잖아.”

“그··· 그런 속도로 뛰는 보통 사람이 어디 있어.”

“하긴 그렇군. 그래도 그렇지··· 뛰는 속도 빼고, 네가 나한테서 본 게 뭐가 있어?”

“나··· 나는 알 수 있어. 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장한테서 느껴지는 게 있어.”

“그게 뭔데?”

“피··· 피 냄새라고 해야 하나? 아··· 아냐, 냄새가 아니고 그냥 온몸으로 느껴지는 건데··· 아무튼 뭔가 무서운 기운이 느껴져.”

기운이 느껴진다고?

우울한 성격 아니냐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도,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이준기가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있자, 초조해진 디에고가 말을 이었다.

“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내 말은··· 대장한테는 뭔가 오라가 느껴져서···”

“그리고, 왜 날 자꾸 대장이라고 부르는 거지?”

“나···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말이 나와.”

“나한테 느껴진다는 무서운 기운과 관련이 있는 거야?”

“그··· 그런가? 자···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걸지도···”

“나한테 느껴진다는 그거!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이준기는 ‘이르헬의 눈’으로 상대방을 슬쩍 보았다.

이미 어제 확인한 대로, 37레벨의 별 볼 일 없는 구원자인 디에고 라몬.

성흔은 없다.

성흔으로 표시되지는 않지만 뭔가 특별한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대··· 대장을 보면··· 이런 말 해도 괜찮은 건가··· 화내지 않을 거지?”

“그래. 화내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줘. 나한테 도대체 뭐가 느껴진다는 거야?”

“대··· 대장은 마치···!”

말을 쉽게 잇지 못하는 디에고.

이준기는 채근하지 않고 기다렸다.

“대··· 대장은··· 어쩌면 뭔가 다른 존재가 아닌가 하고 느껴져··· 외··· 외계인이나··· 아니면···”

솔직하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듣고 싶다.

이준기는 더듬거리는 디에고의 다음 단어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하늘이 보낸 메신저! 신의 군대! 구··· 구원자 같은 게 아니라 더 멀리서 온 존재···”

“훗.”

이준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디에고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기가 쇠한 것 같으니 한약이나 한 첩 지어먹으라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

죄를 많이 지은 상태에서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니 갑자기 신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디에고··· 보아하니 교회 다니는 거 같은데··· 고해성사라는 거 해보는 게 어때?”

“고해성사?”

“네가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그런 것 같다. 말하자면, 천벌이 두려운 거지.”

“아··· 그··· 그런가? 하지만···”

“갱이 된 다음에는 죄를 많이 지었겠지? 사람도 많이 죽였을 것이고··· 그런데 너보다 센 적을 갑자기 만난 거야. 그래서 갑자기 죗값을 받을까 두려워진 거지. 넌 원래 신을 믿던 사람이니까, 그게 그런 식으로 보이는 거 아닐까?”

“하··· 하지만!”

뜻밖에 강한 어조로 반박하는 디에고를 이준기는 돌아보았다.

디에고는 이준기를 가리키며 멍한 어조로 말했다.

“그··· 그건 뭐야? 대장 옆에 어른거리는···”

이젠 귀신까지 보는 건가.

어이가 없어 웃으려는 순간, 이준기는 기척을 느꼈다.

뭣이 됐든, 이렇게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이준기의 입에 침이 고였다.

그걸 삼켜 목으로 넘기는 것이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치캉!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시장에서 싼값에 사서 잘 쓰던 발리송.

그 발리송의 칼날이 부러져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준기의 손에 들린 발리송의 손잡이에는, 2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칼날의 밑동만이 남아 있었다.

디에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밀가루 포대가 쓰러지듯 가볍게 털썩 소리가 났을 뿐이다.

주변의 가로등이 모두 꺼졌다.

어둠 속에서 멈춰서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이 가볍다.

전방 10미터 정도의 거리.

“시스템 버그, 제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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