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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4)
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4)
오스카 마샬은 임시로 묵고 있는 모텔을 나와 팬케이크 가게로 향했다.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걸러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인터뷰 장소로 팬케이크 가게를 고른 이유도 그것이다.
인터뷰를 핑계로 이것저것 좀 많이 먹고 싶었다.
‘고작 팬케이크 가게에 가는 게 두근거리다니. 오스카 마샬··· 인생 정말 구겨졌구나.’
남 부러울 것이 전혀 없는 삶이었다.
어느 날 차원문에서 나온 몬스터가 집을 덮치기 전까지는.
그를 제외한 가족 전원이 몰살당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오스카의 삶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 됐다고, 속으로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부모님과 동생의 사망 보험금으로 오스카는 막대한 돈을 한순간에 거머쥐었다.
대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오스카는 휴학계를 냈다.
명문고 출신의 명문대 학생, 집 차고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대박.
이런 헤드라인을 꿈꾸며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손대는 사업마다 크게 망했다.
단순히 투자금을 날리는 수준이 아니라, 수습에 돈을 더 쏟아부어야 하는 사태가 매번 발생했다.
제조물 책임 보상도 있었고, 소송 협박을 무마해야 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손을 댔던, 개인 주택 수영장 청소 서비스가 망하면서 그는 숨어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자기 사업에 투자했다고 주장하는 마피아에게 돈을 물어주고 나니, 수중에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오스카는 정문을 피해 뒷길로 나오려고 했지만, 마침 근처에서 청소를 하던 매니저에게 딱 걸렸다.
“이봐, 저스틴! 어디 가는 거야? 숙박비 밀린 거 알지?”
“아··· 맥스 아저씨. 오늘 돈 생깁니다. 그거 받으러 가는 거예요. 저녁때 돌아오면 드릴게요.”
“정말이지?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냐. 나도 그냥 모텔 직원이라고. 오늘도 숙박비를 정산하지 못한다면 쫓아낼 수밖에 없어.”
“오늘 저녁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돈 받으러 가는 거예요. 한두 시간이면 될 거예요.”
본명을 쓸 수는 없으니, 가명을 만들어 숙박계에 서명했다.
좋아하는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애덤 르빈의 이름을 조합해서, 저스틴 르빈(Justin Levine)이라고 적었다.
매니저가 수상하게 생각할까 잠깐 걱정했지만,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렇게 지낸 지 벌써 몇 달째다.
숙박비가 더 싼 북쪽이나 동쪽으로 이동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만두었다.
일단 차를 빌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몇이라도 있는 이곳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아는 사람에게 문자가 왔다.
사실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예전에 맞춤형 기저귀 배달 사업을 할 때 만났던 사이라고 했다.
“무··· 문자 하신 분?”
“어이, 오스카. 잘 지내?”
“에··· 론이라고 하셨죠?”
“어? 날 잊은 거야? 이 론 트럼펫을?”
“아, 아닙니다. 트럼펫 씨. 그럴 리가요.”
“그럼 그렇지. 나처럼 개성이 강한 사람을 잊을 리가··· 그건 그렇고, 라호야에서 고등학교 나온 것 맞지?”
“네. XXX 고등학교 나왔죠.”
“그래, 거기. 오스카랑 조슈아 테일러랑 동기생인 거잖아.”
“조슈아 테일러요? 네··· 그렇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방송국 PD가 있는데 한번 만나볼래? 조슈아 테일러의 학창 시절에 대해 인터뷰하는 거야.”
“제··· 제가 지금 사정이 좀 안 좋아서.”
“소식은 들었어. 화장실 청소 사업이 망했다면서?”
“수··· 수영장 청소 사업입니다.”
“뭐, 어쨌든. 돈이 필요한 거 아냐? 인터뷰에 응해주면, 아마 돈을 좀 벌 수 있을 거야.”
“그··· 그래요? 얼마나요?”
“글쎄··· 조슈아 테일러에 관한 거라면, 아마 달라는 대로 주지 않을까?”
“저··· 정말입니까?”
“당연한 거 아냐. 조슈아 테일러에 관한 특종이라면, 그야말로 채널 고정이지. 아마 슈퍼볼 중계보다 더 나오지 않을까?”
“그··· 그럴까요?”
“내가 전화번호를 줄 테니, 한번 연락해 보라고.”
론 트럼펫이 준 번호로 전화를 건 것이 어제 오후.
2천 달러를 달라고 하자, 기자는 곧장 그러겠다고 했다.
‘더 달라고 할걸.’
사업이 망하고 도망자가 된 뒤로, 금전 감각이 이상해졌다.
예전 같았다면 2만, 아니 200만 달러라도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업이 망하고 간이 작아졌는지, 상대방이 거절할까 두려워 겨우 2천 달러를 달라고 한 것이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오스카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인적이 드문 뒷길을 걸었다.
조금 돌아서 가는 길이라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어차피 시간을 아껴서 할 일도 없다.
늘 다니던 길이라서 익숙해서 그런지, 바깥을 걷고 있는데도 마음이 편해졌다.
문밖에만 나오면 콩알만 해진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그나마 뒷골목이라 다행이다.
그렇게 햇빛을 피해 뒷골목을 한참 걷고 있는데,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스카.”
본명이 불리는 것을 듣자, 오스카는 곧바로 두려운 생각에 휩싸였다.
모르는 목소리니까 빚쟁이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빚쟁이가 흥신소 직원을 고용했을지 누가 아는가.
그러나 오스카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돌아보았다.
낭랑한 여자 목소리에 이끌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젊은, 아니 어린 여자였다.
고등학생 정도 되려나.
은발 곱슬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의 짙은 녹색 눈은 그의 어머니를 연상시켰다.
아무리 샌디에이고지만, 늦겨울에 핫팬츠와 셔츠 차림이다.
추워 보인다기보다는 아슬아슬해 보였다.
여자는 입을 열고 불어로 말했다.
“어딜 가는 거예요? 설마 두 블록쯤 떨어진 그 팬케이크 가게에 가는 건 아니죠?”
그가 불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불어로 말했을까.
어머니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와 가까운 사람들도 거의 모르는 사실인데.
오스카는 그 낭랑한 목소리에 이끌리듯, 서둘러 대답했다.
“맞아요. 어떻게 아시는 거죠?”
그녀의 꿈 꾸는 듯한 눈동자를 마주 보자, 오스카는 당장 잠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다시금,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노래하듯 그에게 말했다.
“빚쟁이들의 함정일 게 뻔하잖아요.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
2월 25일 금요일.
한상태는 전용기를 타고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두 명의 구원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릴리언트 길드의 3인자이자, 한일 연합군 한국 측 리드, 최현.
그리고 쿠사나기 린이라는 일본 여자다.
연해주에서 살아 돌아온 몇 안 되는 일본인 구원자 중 하나라고 한다.
“쿠사나기 씨, 안녕하세요. 한상태라고 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최현 딜러님.”
“이쪽으로 가시죠. 구라모토 회장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라모토 회장이 여기에 왔다고요? 공항에?”
“네. 그만큼 급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쿠사나기 린의 안내를 따라, 한상태는 공항 한구석에 마련된 구라모토의 특실로 안내되었다.
한 달쯤 전에, 허겁지겁 일본으로 도망쳐 온 이상덕이 걸었던 그 길을 한상태가 걸었다.
막힌 골목의 끝에 위치한 작은 방.
구라모토 신스케 정도 되는 거물이 사용하는 방 치고는 너무 작았지만, 보안은 확실해 보였다.
“이런 방이 있군요?”
“공항 측의 배려입니다. 구원자들의 일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일이니까요.”
“이런 비밀 공간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한상태 회장님이 처음입니다. 이곳에 들어오시는 한국 사람은.”
“하하하.”
문을 열자, 구라모토 신스케가 두 명의 부하와 함께 일행을 맞았다.
테이블 주위에 여섯 명이 앉자, 작은 방이 꽉 찼다.
그 좁은 방에, 공항 직원이 들어와서 마실 거리와 간식을 서빙하고 나갔다.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그 직원들의 외모는 해당 항공사의 최상급 수준으로 보였다.
직원들이 나가자 한상태가 구라모토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스튜어디스?”
“전일본공수(ANA) 소속 직원들입니다. 전일본공수는 우리 협회와 업무 제휴를 하고 있죠.”
“그거 좋군요. 저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는데요.”
“한상태 회장은 전용기가 있는데 그러실 필요가 있습니까?”
“구라모토 회장도 전용기가 있는데 이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군요.”
대화를 들으며 최현은 생각했다.
이상덕도 회장 전용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독 후보로 나와 협회장에 당선되었다고 협회 자금을 마치 자기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한상태.
김범규 회장이 크게 실수한 것이다.
브릴리언트 길드의 협조가 없었다면 한상태의 협회 장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김범규는 한상태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명목상으로만 2인자 취급일 뿐, 실권은 거의 없는 존재.
그래서 길드 서열 3위이자 딜러진 탑랭커인 자기가 일본에 차출되어 나와 있는 것 아닌가.
마치 다도를 가르쳐주겠다는 듯이, 구라모토는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한 모금을 삼켰다.
조신한 자세로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그는 입을 열었다.
“한상태 회장, 뉴스는 좀 보셨습니까?”
“어떤 뉴스 말씀하시는 건지?”
“뭐든지요. 한상태 회장에게 중요한 뉴스는 어떤 것들입니까?”
“물론, 한일 연합군이 러시아에서 벌이는 공익사업이죠.”
“그래서, 어떤 뉴스를 보셨습니까?”
“그··· 그건··· 우리 쪽 희생이 크긴 하더군요.”
“그래요? 한국 쪽은 별 희생이 없지 않습니까?”
한상태는 말문이 막혔다.
구라모토가 말을 이었다.
“유지호···라고 했던가요? 그 강간범 나부랭이가 러시아 유치장에 갇힌 것 외에 무슨 피해가 있습니까?”
“그··· 그게 말입니다···”
“최현 대장님도 여기 정정히 살아 계시군요. 하시바는 죽어서 돌아왔는데 말입니다. 아니지··· 아직 시신이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군요. 러시아 경찰 측 조사를 받는 중이라서.”
“죄···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것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리아 보로닌, 그 여자는 우리 일본에 대단한 악감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그러게 말입니다. 왜 일본인 구원자 분들만···”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우리도 조사를 해봤어요. 하지만 도대체 힌트가 안 나오네요. 그 여자가 일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뭔지.”
한상태는 기지를 발휘해서 대답을 짜냈다.
“그··· 그게 아마··· 야쿠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전쟁을 야쿠자 대 마피아로 생각하다 보니까, 일본을 주적으로 인식하는 거죠. 한국은 조력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이봐요, 한 회장. 그게 말이 됩니까?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이 침략자입니다. 그런데 40레벨이나 되시는 최현 대장은 위협이 안 돼서 살아 있고, 우리 쪽은 20레벨 나부랭이들도 꼭 죽여야 할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그렇게 판단했다는 겁니까?”
“그··· 그런가요.”
“우리 쪽은 거의 전멸이에요. 살아남은 건 여기 쿠사나기, 그리고 연해주에 남아 있는 쿠로사와가 전부입니다. 저레벨 녀석들 십여 명이 살아남은 것 같지만, 그건 논외죠. 그 녀석들은 심부름이나 하러 간 거니까요.”
“네, 네.”
“그런데, 한국 쪽은 아까 말한 그 강간범 외에는 전부 무사하군요?”
“김창수 구원자가 죽었습니다만.”
“아, 김창수. 그 사람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 사람 레벨이···?”
“29였습니다만.”
“그렇다면 김창수 그 사람은 우리 쪽 심부름꾼들과 별 차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구라모토에게 반박할 이유를 한상태는 찾지 못했다.
김창수를 보낸 것은 한상태가 유도한 것이다.
이상덕 잔당을 조금씩 정리하려던 계획.
그걸 구라모토가 안다면 더 화를 낼 것이다.
이 전쟁에서 한상태는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었고, 구라모토는 그 반대의 결과를 얻은 셈이니까.
구라모토는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며 말투를 짐짓 친근하게 바꾸었다.
“한상태 회장.”
전형적인 강온양면 작전이지만, 한상태는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네.”
“저는, 과거의 일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미래가 더 중요하죠.”
“동감합니다.”
“미래의 일을 얘기 드리려고, 여기까지 오시게 한 겁니다.”
“네. 말씀해 주십시오.”
“뉴스에 우리 일한 연합군의 러시아 원정은 그다지 크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 회장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럽 쪽 전쟁 때문이겠죠.”
“맞아요. 유럽 쪽 러시아 전선에서는 하루에도 백 명 단위로 구원자들이 죽어 나갑니다. 그것에 비해보면, 우리 쪽, 그러니까 동부 전선은 초라하죠. 지금까지 죽은 구원자 수를 다 더해도 50명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 50명이 거의 전부 일본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
“아차, 미래 이야기하기로 했죠. 내 계획은 이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구라모토는 A4 용지 단 한 장으로 된 문서를 한상태 앞에 꺼내놓았다.
“이건?”
“명단입니다.”
한상태는 문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맨 윗줄에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제··· 제가 직접 가라는 겁니까?”
“제3차 원정대 총사령관은, 한 회장이 직접 담당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