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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3)
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3)
어지럽다.
머리가 공중에 붕 뜬 상태다.
침대를 나와 바닥에 발을 디딜 때, 바닥의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져 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제 뭘 했더라?”
창 쪽으로 발을 옮기며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곧바로 들려오는 루스(Luce)의 목소리.
“어제는 샌버나디노(San Bernadino)의 차원문을 정리하셨죠.”
“아아, 그랬지.”
루스가 대답해 줄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조슈아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동쪽으로 크게 난 창에는 햇살이 가득 차 있다.
일어날 시간을 햇빛으로 체크하려고, 커튼은 흰색의 얇은 것을 달았다.
흰 커튼을 뚫고 터질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잠깐 바라보다가, 조슈아는 혼잣말처럼 다시 묻는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차원문을 정리한 것인데, 난 또 왜 어지럽지?”
“체질 때문이겠죠. 건강 지표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래. 그런 대답을 할 거라는 거, 다 알면서 나는 또 왜 물어봤을까.”
“오늘도 컨디션 좋아 보입니다, 조슈아 님.”
“넌 어때? 컨디션 말야.”
“전 언제나 좋습니다.”
조슈아는 루스를 쳐다보았다.
짧은 은발 곱슬머리를 배경으로 짙은 녹색 눈동자가 빛을 발하는 듯하다.
셔츠와 짧은 핫팬츠 차림이다.
착 가라앉은 사무적인 말투와는 달리, 꽤 도발적인 옷차림이다.
처음 만났을 때 스물다섯이라고 했으니, 이제는 스물일곱이나 스물여덟.
그러나 누가 봐도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 외모다.
밖에서 본 적은 없지만, 저 옷차림에 선글라스만 쓰고 외출한다고 한다.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조슈아는 바지를 입고, 맨몸의 상반신에 셔츠를 걸쳤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가락빗으로 대충 빗어넘겼다.
이런 모습, 파파라치가 포착하기라도 하면 대박이 날 것이다.
그러나 철통같은 보안으로 무장한 건물이니 그럴 일은 없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더라도, 카메라를 빼앗아 버리면 그만이다.
“전황은?”
“그대로입니다. 동부 연합 잔당이 아직 곳곳에 숨어 있어요. 아직 한 달은 더 진행될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계속 쉬고만 있어도 괜찮을까? 나도 일단 서부 전선 멤버잖아. 우리 길드가 서부 전선 소속이니까.”
“전력이 모자라서 전쟁이 길어지는 게 아닙니다. 굳이 조슈아 님까지 끼어드실 필요가 없는 일이에요. 잔챙이들끼리의 싸움입니다.”
“길드에서 자꾸 성화라서. 오늘도 전화가 올걸?”
“싫다고 하세요. 내전같이 한심한 일이 아니더라도, 구원자가 할 일은 많습니다.”
말이 씨가 됐는지, 조슈아의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는 길드 마스터, 키건 하워즈(Kegan Howards)다.
조슈아는 화면을 터치하고 스피커 폰을 켰다.
“안녕, 조슈아.”
“길마님, 아직 일곱 시도 안 됐는데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때쯤이면 일어나 있는 거, 다 아는데 뭘 그래. 컨디션은 어때?”
“저는 좋아요. 아니, 머리가 좀 어지럽기는 합니다만···”
“머리 어지러운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컨디션 좋다는 얘기지?”
“네.”
그렇게 대답하면서, 조슈아는 생각했다.
머리가 어지러운 게 언제부터였더라?
작년 여름 늦게부터던가.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확실하다.
“컨디션도 좋고··· 조슈아, 어때? 오늘은 결단을 내릴 기분이 되는 거야?”
“내전 얘기라면, 제 대답은 마찬가지입니다.”
“내전이라니, 나쁜 놈들을 몰아내는 거다. 차원문 정리와 뭐가 달라?”
“다르죠. 상대해야 하는 게 인간인데.”
“차원문 안에서도 구원자를 죽일 일은 쌔고 쌨어. 그 핑계는 식상하다고 내가 말 안 했었나?”
“관심 없습니다. 아니, 싫어요. 내전에는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상대방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이런 말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전이 레벨업에는 더 좋은 거 몰라? 몬스터보다 경험치가 훨씬 더 많이 들어온다고. 게다가 우리가 완전히 승기를 잡은 전쟁이다. 위험한 일이라고는 전혀 없어. 이러다가 내전이 끝나버리기라도 하면, 조슈아 인기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단 말야. 내전의 마지막은 조슈아 테일러가 장식해야지. 대중이 원하는 게 바로 그거란 말이야.”
“관심 없습니다.”
“내전에 참가하면, 헬렌 카자크의 레벨을 뛰어넘는 것도 금방이야. 가서 동부 연합 잔당 몇 명 정도만 처리하면···”
“전화 끊을까요?”
“휴우··· 좋아. 오늘은 이만하지. 하지만 내가 이러는 게 그냥 나만 좋자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조슈아에게 팬이야 차고 넘치는 존재지만, 나도 조슈아 테일러의 팬 중 하나라는 걸 잊지 말라고. 세계 최고 레벨도 멀지 않았는데 너무 쉬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란 말이야.”
“알겠어요. 하지만 제 대답은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하려고?”
“루스가 알아서 해줄 거예요.”
“하긴 그렇겠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나한테 전화해도 되고, 리암한테 얘기해도 되고.”
“네, 네, 마스터.”
“그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고. 아차··· 이 얘기를 빠뜨릴 뻔했네.”
“뭡니까?”
“ABC 기자 녀석이 네 뒤를 캐고 있어. 고등학교 동창을 어떻게 섭외했다는 것 같은데. 오늘 오후에 당장 인터뷰를 잡았다는 정보야. 길드 차원에서 해결해 줄까? 리암한테 맡기면 깔끔하게 해결해 줄 거야.”
“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뭐야, 또 루스한테 맡기려고? 연약해 보이는 여자애한테 너무하는 거 아냐?”
“연약하지 않고요, 제가 맡기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루스가 유능한 건 알겠지만, 길드 자원도 좀 활용하라고. 기자 겁주는 것 정도는, 리암한테 일도 아니라고. 오히려 좋아할걸?”
“개인적인 일입니다. 길드 차원에서 도움 주실 필요 없어요.”
“그래, 알겠어. 잘 지내라.”
조슈아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길마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 시간 1분 40초.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던 조슈아가 고래를 들어 루스를 바라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루스가 말했다.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
ABC 정치국 기자, 로저 라바이는 시계를 다시 살폈다.
만나기로 했던 3시는 한참 전에 지났고, 이제 4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하긴, 전화하지 말라고 말하기는 했지. 전화해도 받지 않을 거라고.’
인터뷰 대상자, 오스카 마샬(Oscar Marshall).
그는 도대체 뭘 두려워하는 것일까?
제삼자의 소개로 접근한 것인데, 그 사람은 한사코 연락하지 말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인터뷰 대가로 2,000달러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당연히 경비 처리가 되지 않는 돈이다.
로저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출하게 될 돈이지만, 특종을 생각하면 싼 편이다.
‘명문고를 나온 사람인데, 겨우 2,000달러에 움직이다니, 돈이 쪼들리는 모양이군.’
로저는 인터뷰 대상을 소개해준 제보자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저는 뭐 달리 원하는 건 없습니다. 프로그램 크레딧에 제 이름 한 줄만 넣어주시면 감사하죠. 스페셜 쌩쓰 투 론 트럼펫(Special Thanks to Ron Trumpette). 이렇게 말입니다.”
“그건 당연히 해드립니다. 그런데 트럼펫 씨는 조슈아를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거죠?”
“전 그냥 그 녀석, 오스카와 아는 사이일 뿐이에요. 제가 게네들 다닌 그런 명문고를 어떻게 가요?”
“그분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십니까?”
“비즈니스 관계라고만 해두죠.”
“알겠습니다. 오스카··· 그러니까 마샬 씨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
“글쎄요. 그건 직접 물어보는 게 낫지 않습니까?”
“트럼펫 씨는요? 하시는 일이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 직업도 마찬가지로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공익 제보자라고나 할까···”
“공익 제보자라뇨?”
“조슈아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공익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공익 제보자라고 하면 보통은···”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아니, 제가 뭘 알아야 가치 판단을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냥 오스카를 아는 사람일 뿐이에요. 조슈아는 언론 기사에서 봤을 뿐이라고요.”
“그렇군요. 제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스카 그 녀석이 왜 그런지 몰라도 조슈아 테일러 얘기를 안 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인터뷰를 거절할 수도 있다고요. 그러니까 뭔가 미끼를 던져야 할지도 몰라요.”
“미끼···라고요?”
“뭐, 별건 아니고, 돈이라도 주면 될 겁니다.”
“돈으로 된다고요?”
“그 녀석, 돈이 아주 쪼들리거든요.”
“명문고를 나왔는데, 경제적으로 힘든 모양이군요.”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하니 그렇죠. 지금도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중일 겁니다. 그래서 전화를 잘 안 받으려고 할 거예요.”
“돈이라면,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요?”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생활비도 쪼들린다고 들었으니 적당히 집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로저는 다시 시계를 보았다.
이제 막 4시가 지났다.
‘좋아. 1시간 기다리는 것 정도는 예사지. 그러나 언제까지 기다릴지 정하기는 해야 한다. 5시까지만 기다려보자.’
지나가던 웨이트리스가 웃으며 로저에게 물었다.
“커피, 더 드릴까요?”
“네, 부탁할게요. 감사합니다.”
*****
5시 30분.
로저는 짐을 챙겨서 팬케이크 가게를 나왔다.
속주머니의 돈 봉투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하다.
20달러 지폐 100장이다.
20달러짜리로 달라고 하는 걸 보면, 생활비로 쓰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돈에 쪼들리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로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오픈카에 올랐다.
생각을 좀 정리하려고 했지만, 얻어낸 정보가 너무 없었다.
학교 측에서는 정보 제공을 거부했다.
조슈아 테일러가 정보 비공개를 명시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정보도 안 됩니까?”
“일반적인 정보는 거기에 드린 것이 다입니다.”
“이건 세상에 다 알려진 정보뿐이잖습니까? 성별, 나이, 입학 연도, 졸업 연도 이런 걸 여쭤보는 게 아니라는 것, 아시잖습니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법을 어길 수야 없죠.”
한 SNS 서비스의 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법이 제정된 것이 2019년이다.
묘하게도 조슈아 테일러가 각성하기 직전이다.
그런 연유로, 조슈아 테일러는 아직도 비밀에 싸인 존재다.
세계구 급의 셀럽인데도 말이다.
테일러 가의 저택이 라호야에 있지만, 조슈아가 거기에 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라호야 인근에서 무작위 인터뷰를 시도해 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주민들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조슈아 테일러요! 그럼 아주 잘 알죠!”
“조금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무슨 얘기를 해드릴까요?”
“아시는 걸 뭐든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키는 190센티미터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죠. 눈은 바다처럼 파란색이고···”
“아니, 아니··· 죄송합니다만, 누구라도 아는 그런 사실 말고···”
“네? 그럼 어떤?”
“조슈아 테일러는 이곳 출신이니까요, 직접 보신 적이 있다든가, 아니면 들은 얘기라도.”
“아유, 샌디에이고가 얼마나 넓은데 조슈아를 직접 봐요?”
“샌디에이고가 아니고, 라호야, 이 지역 주민이시잖습니까.”
“글쎄, 모르겠어요. 조슈아가 라호야 출신이라니까 좋기는 하지만, 직접 본 적은 없죠. 게다가 지금은 여기에 안 살잖아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런 식이었다.
하긴, 주민 인터뷰로 알아낼 정도의 정보라면 이미 세상에 알려진 수준의 정보일 것이다.
오스카 마샬과의 인터뷰가 특종인 이유가 달리 뭐겠는가.
각성하기 전의 조슈아 테일러를 직접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까지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게이트에서 로저는 전화를 걸었다.
편집장 스티브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오, 로저! 전화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지.”
“스티브···”
“어땠어? 당장 광고 내보낼까?”
“스티브, 미안하게 됐어. 인터뷰이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어.”
“뭐? 얼마나 기다렸는데?”
“2시간 반을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어. 전화도 되지 않고.”
“그럴 수가.”
“아직 그 어떤 방송국도 조슈아 테일러 특집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잖아.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네.”
“이건 너무 수상하잖아? 누가 방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방해한다면··· 조슈아 테일러가?”
“그럼 또 누가 있겠어? 부친 앤드루 테일러는 이미 사망했고, 모친 앤 테일러도 중증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 있는데. 학창 시절이 드러나는 게 싫은 사람이 조슈아 테일러 본인 아니라면 누가 있겠냐고?”
“학창 시절에 역시 뭔가가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뭐겠어? 지금까지 조슈아 테일러의 과거사에 대해 취재하려고 한 방송국이 어디 한두 군데겠냐고. 이건 너무 수상해.”
“아무래도 그런가···”
“이봐, 로저. 돌아오지 말고, 거기서 며칠 더 묵으면서 취재를 좀 더 해봐. 이건 특종 냄새가 나. 조슈아 테일러에게는 뭔가 대단히 구린 구석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하지만, 스티브.”
“왜?”
“조슈아 테일러의 구린 구석에 관한 방송이 과연 먹힐까?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게 분명한데. 항의 메일 정도가 아닐 거야. 방송국 앞에서 시위도 벌어질걸.”
“이봐, 로저! 기자의 본분을 생각해! 공익을 위해서라도 이건 알아내야 하는 일이야.”
“정말 그럴까? 조슈아 테일러는 차원문을 닫고 있어. 미국 대통령보다도, 미국 군대 전체보다도 더 큰 공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그래서? 좋은 일을 하면, 놈이 렉스 루터 정도 되는 악당이라도 괜찮다는 거야?”
“글쎄. 그건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조슈아 테일러는 지금 미국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좋아, 로저. 이렇게 하지. 일단 취재를 좀 해봐. 뭐가 나오는지 보고 나서, 방송으로 내보낼지 생각해 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