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98화 (19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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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2)

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2)

2월 22일.

아침 해가 떠오르자, 처참한 모습의 거리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그리고 세바스토폴.

도시마다 몇 개의 차원문을 중심으로 피 웅덩이가 펼쳐져 있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거의 밤새도록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격으로 부서진 건물도 많았다.

주택가의 차원문 근처에서는 민간인 사상자들도 다수 발생했다.

집 안에 있다가 유탄을 맞은 불운한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어딘가로 몸을 피하려다 총격에 휘말린 사람들이다.

그렇게 죽고 다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뉴스는 말해주지 않았다.

‘다수의 사상자’.

그 표현을 넘지 못했다.

뉴스 매체들도 피해 규모를 모르기 때문이다.

총격전을 벌인 당사자들도 민간인 피해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유럽연합군은 민간인 사상자, 소위 ‘컬래트럴 대미지’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적지에서 싸우는 부대가 현지 민간인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굳이 알아낼 필요도 없지 않은가.

러시아 쪽에서도 민간인 피해 규모는 파악하지 못했다.

군인과 경찰력이 투입되어 수백 명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것을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과 인력이 부족했다.

민간인 피해 집계는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총구들이 불꽃을 튀길 때는 피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기자들이 밖으로 나왔다.

살던 도시 한복판에서 그들은 갑자기 종군기자가 되었다.

대낮에 총격전이 재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총격전보다는 덜 공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몇몇은 스스로의 공명심에, 몇몇은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취재에 나섰다.

처참한 광경을 보여주고, 전문가 의견 조금 더하고, 시민들 인터뷰 집어 넣고···

처참한 광경은 얼마든지 있었다.

자료화면과 동영상이 넘치게 확보되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과 시민들 인터뷰는 그렇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예측이나 설명을 내놓지 않으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는 ‘자칭 전문가’들은 넘쳐났지만, 그들의 주장을 방송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시민들 인터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근거 없이, 감정에 휘둘려 막말을 뱉어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당연히 걸러서 방송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부 군소 방송국은 자극적인 내용의 인터뷰도 가감 없이 공개했다.

아니, 교묘한 편집으로 민족 간 갈등을 부추기려는 언론도 있었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사설 보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도 난 분위기였다.

“우크라이나 마피아의 보복전이다!”

“유럽··· 독일이나 폴란드가 쳐들어온 것이 틀림없소!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러시아가 침략당했다! 미국이 아니면 누가 배후에 있단 말이냐!”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러시아를 지도에서 없애려고 공모한 것이다!”

유럽시간으로 아침부터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아직 아침을 기다리던 미국의 방송사들도 어느 정도는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ABC 보도국에서는 새벽부터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러시아 상황, 뉴스 좀 늘려야겠는데? CNN은 어때?”

“CNN은 물론 이미 방송 들어갔지. 하지만 미국 관련 얘기는 없어.”

“지금 이 상황에 미국 관련 이야기를 하면 미친 거지. 뭐, 핵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MSNBC는 어때?”

“거기도 아직은 그냥 팩트 중심으로 보도하는 중이야.”

“폭스 뉴스는? 그 미친놈들이 제일 걱정이군.”

“아직까지는 별 얘기 없어. 오히려 다른 곳보다 러시아 뉴스 분량이 작아. 내전 얘기가 더 흥미진진하니까 그런 거겠지.”

“왜 이놈의 내전은 끝나지를 않는 거야? 지난 12월부터 서부 전선이 승기를 잡았다고 보도했는데, 아직도 끝나지를 않잖아.”

“게릴라전이 원래 그렇지, 뭐.”

“미국 내에서 게릴라전이라니.”

“누가 아니래.”

“백악관은?”

“아직 대변인 논평 예정은 없어. 요즘 백악관은 그런 쪽 논평을 자제하는 분위기잖아.”

“자제하는 분위기 정도가 아니지. 아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묻기만 하면 노코멘트라니.”

“그쪽도 힘들겠지.”

“뭐,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직무유기 아냐? 백악관이 언제부터 경제 전담부처가 된 거야?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쟁점은 모조리 비껴가려고 하니.”

“그래서 말야, 스티브, 아니 편집장님. 내일 정도까지 준비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하나 있어. 프라임 타임 뉴스 시간에 내보내려고 하는데 어때?”

편집장 스티브는 상대방이 내민 아이패드 화면을 쳐다보았다.

“조슈아 테일러 특집? 이렇게 식상한 아이템으로 뭘 하려고?”

“제목만 보지 말고, 그 밑에 써 놓은 걸 좀 보라고. 이번 취재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야. 고등학교 시절 조슈아 테일러의 동급생이라는 사람을 찾아냈다고! 내가 말이지!”

“그래?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특종이군! 러시아 뉴스고 내전 뉴스고 다 덮어버릴 수도 있겠어!”

“오후에 만나기로 했어.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까지 가야 한다고.”

“그래, 그래. 어서 서둘러. 이런 아이템이 있었으면 진작 얘기를 하지.”

“제삼자한테 제보를 받은 거라서 말야. 당사자가 인터뷰를 꺼리는 것 같아서 설득하느라 힘들었지.”

“그래, 알겠어. 배경 설명은 나중에 해도 좋으니, 당장 캘리포니아로 날아갈 준비를 하라고. 목적지는 샌디에이고?”

“달리 어디겠어. 조슈아 테일러의 성지, 라호야(La Jolla)로 가는 거지.”

“하하하! 이거 정말 대박이군. 수고했어, 아니, 수고하라고. 로저, 정말 잘했어!”

*****

ABC 보도국 소속 기자, 로저 라바이는 좌석 벨트 불이 꺼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짐은 들고 탄 가방 하나뿐이다.

좌석 벨트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다가 동시에 일어선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지만, 로저는 ‘실례합니다’를 연발하며 사람들 사이로 맨 앞까지 걸어갔다.

물론, 비즈니스 좌석 쪽 통로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기자인데···”

“기자 분이시면 질서를 더 지키셔야죠?”

비행기가 조금 연착하는 바람에 벌써 12시다.

3시 약속이기는 하지만, 미리 도착하면 이것저것 배경 조사도 할 수 있고, 인터뷰 준비도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다.

약속은 잡지 않았지만, 조슈아 테일러의 출신 고등학교에 들러 자료를 보충할 수도 있다.

허겁지겁 공항을 빠져나온 로저 라바이는 렌터카부터 빌렸다.

비싸도 상관없으니 지금 당장 끌고 나갈 수 있는 걸 달라고 하자, 렌터카 직원이 슬쩍 미소를 흘렸다.

서두른 결과, 로저는 늦겨울에 컨버터블을 타고 도로로 나왔다.

다행히도, 샌디에이고의 2월은 포근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면서, 내비게이션은 시내 도로를 타고 라호야로 들어갈 것을 주문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제네시 애버뉴(Genesee Avenue)를 타고, 로저는 가볍게 굴곡이 지어 있는 샌디에이고의 지형을 가로질렀다.

‘점심은 먹어야지. 새벽부터 깨어 있어서 배고파 죽겠구만.’

제네시 애버뉴와 만나는 큰길, 발보아 애버뉴(Balboa Avenue)가 나타나자 큼지막한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량 통행이 잦은 교차로라서, 식료품 가게나 식당은 얼마든지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제네시 애버뉴를 계속 타고 가야 한다.

그래서 넋 놓고 있다가 식당들 간판을 지나치면서 핸들을 확 꺾었다.

‘제일 큰 교차로라면서 홈디포(Home Depot)도 있고 타깃(Target)도 있군. 어린 시절에 타깃에서 포켓몬 카드 사 모으던 생각이 나네. 하하.’

휙 가볍게 둘러보고, 로저는 ‘버거 잭(Burger Jack)’으로 들어갔다.

일이 중요하지 먹는 게 중요한가.

어차피 연료 보충이다.

햄버거 세트를 받아 들고, 로저는 테이블 위에 패드를 꺼내 놓았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정리했던 메모다.

구원자로 각성하기 전의 조슈아 테일러를 안다는 사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 학창 시절의 조슈아 테일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교우 관계는 어땠습니까.

-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겠죠.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질문들이니까, 뻔한 것들이다.

로저는 손가락을 튕겨 긴 목록의 아래쪽으로 화면을 내렸다.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은 이쪽이다.

다만, 상황을 봐가면서 질문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는 질문에 인터뷰 상대방이 당황할 수 있으니까.

- 고등학교 시절 조슈아 테일러는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조슈아 테일러가 다른 지역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들어보셨습니까. 왜 그런 소문이 났다고 생각하십니까.

- 조슈아 테일러가 학교 폭력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 방과 후에 조슈아 테일러를 학교에서 목격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귀하는 방과 후에 조슈아 테일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보신 적이 있다면, 그는 어디에서 뭘하고 있었습니까.

- 귀하는 왜 인터뷰를 거부하려고 하셨습니까.

‘맨 마지막 질문, 빼야 하나. 사실은 이게 제일 중요한데.’

조슈아 테일러.

그 어떤 영화배우도, 가수도 지금 그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대통령에 출마해도 당선될 것이라는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신비한 구석이 너무 많다.

신비하다 못해 수상할 정도다.

‘뉴스에서 그런 표현을 썼다가는 그날로 방송국 문 닫아야 하겠지만 말이지.’

조슈아 테일러라고 구글 창에 쓰면, 검색 제안 어구로 별 희한한 문구가 다 뜬다.

걸 프렌드, 나이, 부모, 졸업 사진··· 뭐 그런 것들은 셀럽 이름을 썼을 때 대개 나오는 것들이지만.

장난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검색 제안도 많다.

비현실적인 그의 외모 때문이겠지.

- 조슈아 테일러 여성(female).

- 조슈아 테일러 트랜스젠더(transgender).

- 조슈아 테일러 성형수술(plastic surgery).

‘누가 이런 걸 검색했다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어들도 뜬다.

- 조슈아 테일러 암살(assassination).

- 조슈아 테일러 첩보(espionage).

- 조슈아 테일러 러시아 스파이(Russian spy).

- 조슈아 테일러 연쇄살인마(serial killer).

- 조슈아 테일러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

- 조슈아 테일러 조디악 킬러(Zodiac Killer).

‘조디악 킬러라니, 조슈아 나이가 얼마나 된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

차원문을 닫고 나오는 걸 현장에서 붙잡아서 인터뷰를 하려고 해도 어떻게든 빠져나간다.

부끄러워하는 소년의 미소와 함께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누가 그걸 이기겠는가.

- 조슈아 테일러. 자수성가 후 사회복지 사업에 매진했던 앤드루 테일러(Andrew Taylor)의 외아들. 명문고를 나와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구원자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대학교를 중퇴. 꽃 같은 외모에 겸손한 성격, 부드러운 목소리, 명석한 두뇌, 풍부한 교양...

‘이건 뭐··· 사기캐구만. 그런데 뭔가 이상해. 이 정도로 완벽하면 오히려 수상하게 보이는 건 당연한 거지. 아니면 그냥 질시인가? 내가 그 정도로 속이 좁은 놈이었던가?’

로저는 감자튀김 봉지를 집어 입안에 넣고 털었다.

생각에 너무 집중했는지, 이미 식어 빠진 감자튀김은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났다.

플라스틱 쟁반을 비우고 햄버거 가게를 나오면서, 로저는 하늘을 잠시 쳐다보았다.

‘이런 곳에서 자랐다면, 조슈아 테일러가 천사 같은 성격인 것도 이해가 되는군.’

높고 푸르른 하늘이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2월 하순, 샌디에이고의 하늘.

시야에 가득 찬 푸른 하늘의 가장자리에는 높다랗게 자란 열대 나무의 끝자락이 걸쳐 있다.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지만, 긴팔 셔츠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이 따뜻하다.

오픈 카를 빌리기를 잘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바닷가라도 잠깐 들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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