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81화 (18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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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5: 극동에 부는 마파람 (5)

Episode 45: 극동에 부는 마파람 (5)

당해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야스다 겐지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상황을 파악했다.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

‘회오리.’

날려 올라오는 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빨랐다.

이 정도라면 테마파크 놀이기구를 대신해도 좋을 정도다.

짜릿하다.

‘내려갈 때도 가슴이 철렁하겠군.’

살초를 쓰지 않은 것만 봐도, 아마 저 여자는 정말 그 NGO 소속인가보다.

국경이 없다는, 뭐 그런 이름의 단체.

“이봐, 여자!”

일본어로 소리 지르자, 상대방이 영어로 대답했다.

“입 닫아.”

목소리가 제법 위압적이다.

일본어를 모르는 모양이니,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다.

일본 협회 내에서는 한국통으로 손꼽히는 야스다 겐지.

머릿속으로 한국인 구원자 명단을 떠올리며 여자의 정체를 추측하려고 했다.

‘길수연, 김나리는 내가 잘 알지. 신다은은 난쟁이 똥자루니 저런 실루엣이 안 나올 거고. 김새로미나 한소미인가? 아니, 그들도 내가 얼굴은 아는데···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다. 아니, 혹시 중국 쪽인가?’

야스다를 공중에 띄워놓고, 여자는 잠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간호사 중 한 명이 트리아지라도 하는지 매직펜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따위 놈들, 겹쳐서 쌓으면 승합차 두 대로 충분하다. 저렇게 조심스럽게 다루려면 앰뷸런스가 도대체 몇 대가 필요할까?’

스킬 ‘회오리’의 지속 시간은 얼마나 되지?

사람을 공중에 띄워놓고 신경도 쓰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상대방의 모습은 쿨내가 쩔었다.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야스다는 한국말로 외쳤다.

“한국인이신가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묵묵부답.

“저는 야스다라고 합니다. 야스다 겐지.”

한국인이 아닌가?

하지만 처음에 한국말이 들렸을 때 살짝 동요한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말을 들을지 몰랐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위장할 수 없는 반응.

한국인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야스다는 다시 외쳤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네요! 제가 공격하려고 한 게 아녜요!”

여자는 시계를 보았다.

회오리 지속 시간을 체크하는 것이 틀림없다.

‘내려가자마자, 본때를 보여주마.’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야스다는 말빨로 상대방의 경계를 풀려고 다시 외쳤다.

“제가 인상이 좀 더러워서 공격하는 걸로 보였나 봅니다! 저 착한 사람이에요!”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자유 낙하에 가까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 이거 정말 괜찮은가? 회오리가 대미지를 주는 기술은 아닌데?’

너무 빠른 속도로 낙하하자, 야스다의 머릿속을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곧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그는 사뿐하게 착지했다.

아주 사뿐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행기 착륙 정도의 덜컹거림이다.

‘산 채로 태워주마. 화염구보다 더 빠른 스킬을 보여주지.’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능숙하게 균형을 잡고, 야스다는 정신 집중을 하면서 외쳤다.

“신성 불꽃!”

그러나 상대방이 더 빨랐다.

야스다가 착륙하기 전부터 그녀는 시전을 시작했던 것이다.

퍼퍼퍼퍽!

얼음 조각들이 야스다를 둘러싸고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신나게 두드려 맞다 보니, 스킬 시전을 위한 정신 집중은커녕,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야스다의 주변을 빙글 돌던 빛의 책들과 불의 책들이 스르르 사라졌다.

아직 추운 겨울이고, 심지어 시베리아 끝자락에 위치한 연해주다.

춤추는 얼음 조각들은 야스다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그의 몸을 얼어붙게 했다.

양팔을 앞으로 내민 채로, NGO 여전사는 차분하게 채널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야스다는 자기도 모르게 울부짖었다.

“으아아아! 제발 살려줘!”

길게만 느껴지던 5초가 지나고, 만신창이가 된 야스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주··· 죽이고 말 테다.”

기어이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야스다는 땅을 짚고 일어섰다.

여전사가 그를 향해 발을 내디디며 손을 뻗었다.

“공성타!”

충차 같은 것에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간신히 일어섰던 야스다가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오른쪽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것 같다.

야스다는 무서운 예감에 휩싸여 괴물같이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고통에 눈이 감기는 야스다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경찰이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정신까지 혼미해진 그에게 테이저건을 겨누고 있었다.

“이런 썅!”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야스다는 의식의 끈을 놓았다.

*****

“문아린 구원자님! 역시 듣던 대로 굉장하시군요!”

경찰과 함께 도착한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이름은 레온 소바킨(Leon Sobakin).

러시아에는 정말 희귀한, ‘국경 없는 구원자회’ 소속 구원자다.

얼음 회오리에 이은 공성타로 적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그는 경찰차로 도착하면서 생생하게 지켜봤다.

회오리에서 내려와서 야스다 겐지가 문아린의 공격을 받은 것은 전부 해서 10초 남짓이다.

폭발적인 공격이 뭔지 보여주는, 화끈한 장면이었다.

두 명의 경찰이, 테이저건을 맞고 의식을 잃은 야스다 겐지를 경찰 차량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경찰차로 들어가는 야스다 겐지를 바라보며 문아린이 대답했다.

“저 사람, 경찰에서 처리할 수 있나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스크바로 이송 시켜 버리려고요. 거기에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경찰서가 있어요. 거기에서 미결수로 한 1년 묵혀드리겠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지금 러시아에서는 별 희한한 게 다 가능하죠. 물론, 가능하지 않은 것도 많지만.”

“이송하는 동안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깨어날 때마다 테이저건을 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제가 직접 데리고 모스크바까지 다녀올게요.”

“정말 그렇게 좀 해주시겠어요? 구급차를 공격하려고 한 극악무도한 자입니다. 꼭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어요. 아니, 법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심판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문아린 구원자님 부탁이라면, 제가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문아린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레온도 황망하게 맞절을 했다.

맹수와 같은 기세로 적을 집어삼킬 것 같더니, 어느새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반전 매력으로 똘똘 뭉친 여자라고, 레온은 생각했다.

경찰 한 명이 다가와 레온과 문아린에게 보고했다.

“여권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런 게 있네요.”

경찰은 야스다 겐지의 지갑에서 수거한 운전면허증을 내보였다.

-安田賢司

알파벳이라고는 한 글자도 없이 전부 한자 아니면 숫자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서기를 쓰지 않고 괴상한 연호가 쓰인 탓에 생년월일이나 발행 일자조차 알기 어려웠다.

“경찰서에 도착하면 일단 신원을 파악하겠습니다.”

경찰이 그렇게 말하자, 문아린이 반대했다.

“그렇게 했다간 놓쳐버릴 것 같아요. 일단 레온 님이 얘기한 모스크바 경찰서로 옮기는 걸 최우선으로 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레온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알겠어요, 문아린 님. 제가 책임지고 오늘 밤 비행기로 모스크바 경찰서로 옮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병원에 도착한 문아린은 드레싱을 도우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총상 환자가 이렇게 무더기로 생기면 그게 감당이 되나요?”

“저희 병원도 비상이랍니다. 마피아 항쟁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요즘처럼 심했던 적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정말 거리에 피의 강이 흐르는 것 같다니까요.”

“마피아들 사이의 항쟁, 맞나요?”

“일개 간호사인 제가 뭘 알겠어요. 하지만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요.”

“뉴스에는 그런 얘기 없던데요.”

“러시아 언론이야··· 마피아 대변인 된 지 오래됐죠.”

“하긴, 이 사람들··· 문신을 이렇게나 열심히 새긴 걸 보면···”

“스테레오타입으로 단정 짓는 건 좀 그렇지만, 거의 맞겠죠.”

드레싱을 받던 환자가 힘겹게 입을 열어 말했다.

자신이 스페츠나츠 출신이라고 말하던 바로 그 조직원이다.

“가···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물었다.

“정신이 드세요?”

“네···”

“의사 말이, 일단 총상은 봉합했지만,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자업··· 자득이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 일본 야쿠자들이···”

“네?”

간호사는 놀라서 문아린을 돌아보았다.

문아린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러시아 마피아가, 일본 마피아와 싸우고 있다는 말을 하시는 거예요?”

“러시아 마피아는··· 일본 야쿠자의··· 개가 됐어요. 싸움에 졌으니···”

“경찰은 도대체 뭘 하는 거죠?”

“경찰이··· 뭘 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어쩌지 못했던 경찰인데··· 일본 야쿠자까지···”

문아린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까 그 일본 구원자에 대해서 물어봐 주실 수 있어요? 누구이고, 거기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물론입니다, 구원자님. 구원자님 아니었다면 이 사람들, 전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예요.”

간호사가 문아린의 질문을 통역하자, 환자가 대답했다.

“이름··· 같은 건 모릅니다. 야쿠자 간부···일 거예요. 소··· 소문이지만··· 총 맞고도 죽지 않은 마피아를 어딘가에··· 가져다 버리려고··· 대기하는 중이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게 악랄한 사람이, 조직이 있다니.

경악한 표정으로 간호사는 문아린에게 들은 말을 통역했다.

문아린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그런 종류의 악이 존재한다니.

형용하기 힘든 분노가 가슴속에서 타올랐다.

동시에 묘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명감이랄까··· 존재 이유에 관한 강렬한 대답이 그녀의 혀끝까지 올라왔다.

‘내가··· 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

‘아린아···’

옥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준기는 문아린을 알아보았다.

도대체 왜 러시아에, 그것도 블라디보스토크에 와 있는 건지는 몰라도, 문아린이 맞다.

SSF, 그러니까 ‘국경 없는 구원자회’ 마크를 단 구급차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거기에 정말로 구원자가 탑승하고 있을 줄은, 게다가 그것이 자신이 아는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SSF 소속이 되었구나. 아린이 답다.’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격화되면서, SSF의 활동은 MSF, 즉 ‘국경 없는 의사회’의 활동과 비슷해졌다.

원래는 버려진 차원문 정리가 주 업무였지만, 전쟁이 단체의 성격을 바꾼 것이다.

부상자 구조, 구급차 호위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적극적인 방어에까지 나서게 된다.

조금 전에 문아린이 보여준 것처럼.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는 다른 건물에 있다.

건물 옥상 위를 옮겨 다니며, 그들은 저글링 떼처럼 근처에 깔려 있는 마피아 조무래기들을 저격했다.

다리를 쏴서 무력화하는 것이 목표.

한 위치에서 한두 발만 쏘고 움직이니 반격당할 가능성은 낮다.

그래도 이준기는 텔레키네시스를 이용해서 탄도를 조작했다.

건물 중간층이나, 심지어 허공에서 날아드는 것으로 보이는 총알.

어디에 응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피아들은 허둥대다가 병원에 실려 갔다.

옥상에서 내려온 이준기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중간에 몇 차례 사람들이 타고 내렸지만, 그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빌딩 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행색.

정장과 코트 차림이다.

“변장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세르게이가 권한 옷들이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중저가 브랜드 정장 아울렛에 다녀온 것이다.

이준기와 함께 세르게이도 옷을 샀다.

옷매무새를 봐주면서 바실리사가 말했다.

“세르게이도 그렇게 차려입으니까 불량기가 하나도 없네? 준기 씨도 잘 어울려요.”

“정장은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네요.”

“옷 자체가 불편하다기보다는, 정장을 입으면 마음가짐이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렇겠죠?”

정장은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준기는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굳이 변장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극동 마피아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고, 일본 협회는 그가 죽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옷을 바꿔 입는 정도로 적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코트 깃을 여미며 사무실 빌딩을 나서는 이준기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정장 광고라도 찍는 느낌이다.

건너편 빌딩에서 내려오는 세르게이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이준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원문이 위치한 골목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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