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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5: 극동에 부는 마파람 (3)
Episode 45: 극동에 부는 마파람 (3)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벌어지는 마피아와 야쿠자 사이의 항쟁.
하시바 세이이치로가 이끄는 한일 연합군의 침공에, 마리아 보로닌의 극동 마피아가 맞서는 형국이다.
제삼의 세력이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아직 양측은 깨닫지 못했다.
하시바의 한일 연합군은 이제 고레벨 구원자만 20명이 넘는 규모였다.
구라모토 신스케 일본 협회장의 요청에, 한상태는 랭킹 20위권의 세 명을 더 파견했다.
진태형, 고운아, 그리고 설국헌.
55세의 전직 교수, 설국헌.
이 정도로 나이가 지긋한 고레벨 구원자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게다가 퇴마문 길드 시절부터 함께한, 말하자면 한상태 파벌의 순혈 멤버다.
레벨도 높고 배경도 좋다 보니 사실상 한국 팀 후발대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창수는 그들보다도 이틀 늦게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왔다.
후발대에 탱커가 없다는 지적에, 한상태가 차출한 것이다.
아직은 30위권 밖이지만, 빠른 속도로 렙업 중인 김창수.
그렇게 설명했더니 구라모토 신스케도 납득했다고 한다.
한일 연합군에 맞서는 마리아 보로닌의 극동 마피아는 수적으로 크게 열세에 있었다.
30레벨대 구원자가 겨우 세 명, 게다가 마리아 보로닌 본인이 겨우 35레벨이다.
44레벨의 하시바는 물론 40레벨의 최현에도 크게 밀린다.
30레벨대의 제1차 일본군을 힘겹게 물리쳤더니, 상대의 질과 양이 현격히 달라졌다
원래도 기습과 치고 빠지기를 기본 전술로 채택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정면 대결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치고 빠지기 전술에 반드시 필요한 차원문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것도 퇴각 페널티가 적은 저등급 차원문을 중심으로.
한일 연합군의 작전은 확실히 극동 마피아를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전황이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일 연합군 내부 사정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 역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마리아 보로닌은 정말 신출귀몰한 여자라고,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도 당했다는 겁니까? 해안가 차원문이죠?”
“구로다 상이 전사했소.”
“또 마리아 보로닌이에요?”
“딱 한 놈, 살아남은 야쿠자 녀석이 그렇게 증언했소. 늘씬한 러시아 미녀라고 말이지.”
“정말 한번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군요. 게릴라 전에 이렇게 능할 줄이야.”
“구원자는 몇 놈 안 된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강한 전력인가 봅니다. 피해가 누적되고 있소. 이래서야 구라모토 회장 볼 면목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최현의 물음에, 하시바가 몸을 기울여 오며 대답했다.
어차피 야스다의 통역으로 이야기하는 중이다.
속삭여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이건 비밀 얘기인데’라는 식의 제스처를 통역 대화에 굳이 끼워 넣어야 하는가.
그러나 하시바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다.
최현 자신은 지금 하시바의 부하일 뿐이다.
공포에 짓눌려 스스로 굴복한 상황이다.
“한 방에 끝낼, 그런 자리를 준비하고 있소.”
“한 방에요?”
“이제 저등급 차원문은 북쪽 주택가에 위치한 그것 하나뿐이오. 다음번에 우리가 어느 차원문을 정리하느냐··· 그건 피차 뻔히 아는 공개정보가 돼버린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거길 친다는 정보를 흘리면, 그쪽도 오지 않을 수 없을 거요.”
“한일 연합군 전부가 집결하는 겁니까?”
“우리가 전부 거기에 몰려가면 마리아 보로닌··· 그 여자가 아무리 겁이 없어도 그렇지, 죽을 걸 알고 오지는 않을 거잖소? 누군가 미끼가 돼야 하는 거요.”
“미끼··· 라고요?”
“오늘 최현 대장, 당신만 부른 것은 그 문제를 협의하려고 한 거지.”
“감사···합니다.”
“한상태 협회장으로 정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동안 어지러웠던 한국 구원자 계의 정치 싸움에 대해서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소.”
“그러시겠죠. 광화문에서··· 중재···를 하신 것도 하시바 님이시니까요.”
“일본 역사는 조금 아시오?”
“네? 잘은 모릅니다만··· 전국 시대 정도? 그것도 조금뿐이지만요.”
“전국 시대를 알고 있다면 얘기하기 편하지. 세키가하라 전투, 아시겠군?”
“네. 대략적으로는.”
“도쿠가와가··· 토요토미 히데요리 그 애송이가 무서워서 죽였겠소?”
“네?”
“천하인 히데요시의 아들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히데요리한테 볼 게 뭐가 있소? 백번 양보해서, 히데요리를 그냥 살려뒀다 해도 도쿠가와가 천하를 집어삼키는 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거요. 그래도 도쿠가와는 히데요리를 죽였지. 왜 그랬겠소?”
“그··· 글쎄요···”
“그건 그저, 화근을 제거한 거지. 불씨 말요. 그건 언제라도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거거든.”
“네···”
“탱커가 아무리 모자라도, 29레벨짜리를 내가 필요해서 불렀겠소?”
“아···”
최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저택을 점령하고 학살극을 벌였던 그 날 밤, 장대한, 유지호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하지만 이건 한국 문제다.
한상태의 동의 없이, 하시바가 독단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난 브릴리언트 소속이니까 괜찮겠지? 한상태의 길드, 프라이드의 2중대잖아.’
*****
2월 18일 금요일, 오후 2시.
이준기 일행은 블라디보스토크 북부 주택가를 걷고 있었다.
시내에 존재하는 차원문 위치는 전부 파악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보아, 오늘 한일 연합군이 목표로 하는 차원문이 어느 것인지는 뻔했다.
무조건 레벨 강등이라는 페널티가 붙지 않은 차원문은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에 하나뿐이다.
하루 쉬고 하루 진행하는 차원문 공략 패턴도 여전하다.
오늘 그곳에 야쿠자들이 모일 것은 명약관화.
길거리 깡패들이 그렇게 뻔한 얘기를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수상했다.
현장이 가까워지자, 거리에 갑자기 불량배들이 많아졌다.
세르게이가 논평했다.
“이건 뭐 광고하는 꼴이네. 오늘의 깡패 1번지는 여기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우리 일은 쉬워지지.”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오늘 여기에 저들이 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길거리 불량배들이 이 일에 대해 너무 떠들고 있다는 생각 들지 않아?”
“그 얘기는 아침에도 했었지.”
“그래. 아침에 말했듯이 이건 함정이다.”
“하지만 우린 그 함정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거지.”
“그래. 지금까지 그랬듯이.”
“대장이 결정해서 잘못된 적은 없으니까.”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이번 작전은 운이 많이 따라주고 있어. 마리아 보로닌의 극동 마피아는 세 명이다. 우리도 세 명이지. 게다가 바실리사··· 머리 모양도 바꿨잖아.”
바실리사가 대꾸했다.
“머리 모양만 바꾸어도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마트면 염색까지 할 뻔했네요. 마리아와 머리 색이 같아서 다행이지.”
“그래도 바실리사 덕분에 우리 일이 쉬워졌잖아요.”
“나이만 조금 차이가 나고 키도 외모도 비슷하다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마피아 코스프레가 기분 나쁘겠지만, 조금만 더 부탁합니다. 엘리셰프 씨.”
“엑. 기분 이상해요. 그렇게 부르지 마요.”
살짝 웃어 보이고 나서, 이준기는 말을 이었다.
“차원문 주변에 이렇게 많은 수의 불량배들을 깔아놓은 것만 봐도, 그동안 우리 전략이 유효했다는 걸 말해주는 거죠. 아무리 일반인 깡패들이지만, 겨우 세 명을 상대로 이렇게나 많이···”
“지금까지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네.”
대답을 듣자, 바실리사는 더플백을 어깨에 들쳐메며 말했다.
“그럼, 조금 후에 봐요.”
“그래요, 바실리사.”
“세르게이도.”
세르게이 역시 가방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나도 준비 끝났어.”
*****
거들먹거리는 폼으로 차원문 근처의 거리를 가득 메운 마피아 조무래기들.
으스대는 표정은 왠지 어색해 보인다.
총알 밥으로 던져진 자신들의 신세를 잘 아는 그들이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깡패답게 어슬렁거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한단 말인가.
적어도 반은 죽을 거라는 말이 그들 사이에 이미 돌고 있었다.
“바··· 반만? 그 말은··· 반은 살 수 있다는 거야?”
“머리 같은 데는 안 맞힌다는데? 보통은 다리에 쏜다고···”
“다리에 쏜다고? 그럼 왜 반씩이나 죽어야 해?”
“과다출혈로 죽는다는데··· 일본놈들이 총 맞은 애들을 그냥 갖다 버린대.”
“뭐? 이 짐승 같은 놈들···”
소집 명령을 받고 모여서 그렇게 수군거리던 것이 오늘 아침이다.
아침 9시경부터 이곳에 와서 벌써 다섯 시간째 그저 어슬렁거리고만 있다.
처음에는 길을 지나는 행인들에게 시비라도 걸면서 시간을 죽일 수 있었지만, 이젠 행인도 없다.
이렇게 깡패가 가득 깔린 길을 누가 다니겠는가.
차원문 바로 옆에는 방탄 차량 몇 대가 세워져 있다.
구원자들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몰려온 침략자들.
길거리 깡패들을 미끼로 낚싯대를 늘어뜨리고 여유롭게 기다리는 중이다.
적이 나타나면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서 유인한다고 한다.
불량배 둘이 방탄 차량을 고까운 눈으로 훔쳐보면서 잡담했다.
“제길, 던전 안에서 다 죽어버려라.”
“저놈들 들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러시아어 모른다며?”
“여기 러시아 깡패들이 듣고 일러바치겠지. 아직도 그걸 몰라?”
“일러바치라고 그래. 어차피 우리는 죽을 거라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그래도 반 정도 살 확률에 거는 게 낫지. 지금 시범 케이스로 맞아 죽는 것보다는.”
“맞아 죽는다고?”
“넌 얘기를 못 들은 거야?”
“떠돌아다니는 그 얘기가 사실이라고?”
“그렇다는데.”
“대낮에 부잣집에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다 때려죽이고 집을 빼앗았다는 게 사실이란 말야?”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그렇겠지.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일본놈들 총대장이 무슨··· 원숭이같이 생긴 놈이라며?”
“말조심하는 게 좋아. 그 작자, 원숭이라는 단어는 세계 각국 언어로 죄다 알고 있을 거라고 하더군.”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구만.”
“그런데 그놈이 아주 잔인한 놈이라고 하잖아. 다들 무서워서 벌벌 떤다고··· 구원자들도 말야.”
“그래?”
“그러니까, 고어 영화 찍고 싶지 않으면 굽신거려야 한다고··· 그렇게 들었어.”
“캬악~ 퉷!”
불량배가 가래침을 뱉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불량배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기웃거렸지만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방탄 차량 쪽도 훔쳐보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눈에 띄는 행동은 제발··· 자제 좀 해!”
“깡패가 가래침을 뱉는 게 뭐 어때서? 위협적으로 어슬렁거리고 있으라면서?”
“휴우··· 긴장 상태로 벌써 몇 시간째냐. 정말 초조하네. 껌 있어? 난 다 떨어져서.”
“제기랄 껌이 어디 있어. 담배라면 몰라도. 초조한 데는 담배가 직방이지. 그런데 담배는 왜 못 피우게 하는 거야?”
“담배 연기 싫어한다는군. 두목이 말야.”
“아까 말하던 그놈?”
“그래.”
“가지가지 한다. 정말 구원자만 아니었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군.”
“어쩌겠어. 억울하면 구원자로 각성하게 해달라고 기도라도 해보든가.”
“쳐들어오는 게 마리아 보로닌이라는 이름의 극동 마피아라고?”
“그래, 극동 마피아.”
“우리가 극동 마피아 소속이잖아?”
“보스가 바뀌었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원래 보스는 남자였다는데, 이름이 블라디미르?”
“그런데 마리아 보로닌이라는 여자가 보스가 됐다는 거잖아.”
“전 보스가 죽었다니까. 차원문 안에서.”
“보스가 죽은 게 아쉬울 줄은 미처 몰랐네. 보스만 안 죽었어도 일본놈들이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오지는 않았을 거라며?”
“극동 마피아에 구원자가 거의 안 남았다고 하니까.”
“전 보스는 도대체 왜 죽은 거야? 차원문 난이도 좀 보고 들어갈 것이지.”
“구원자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
“마리아 보로닌··· 그 여자 일당이 죽으면 우린 편해지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야쿠자 소속이 되니까 기분은 더럽겠지만. 일본놈들이 간부 자리로 들어올 거 아냐.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잘 견뎌보자.”
“그래, 그러자구.”
“힘내서, 조금만 더···”
탕!
커다란 총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침을 뱉으려던 불량배가 얼어붙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눈앞의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끄아아악!”
다리를 붙잡고 바닥을 뒹굴며 그는 비명을 내질렀다.
흘러나온 피가 벌써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탕!
또 한 발의 총성.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지만, 거리를 메운 불량배의 반수는 이미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