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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5: 극동에 부는 마파람 (1)
Episode 45: 극동에 부는 마파람 (1)
잠시 후, 리무진 네 대에 나눠 탄 한일 연합군은 지도상의 그 위치를 향해 갔다.
시내에서 북동쪽 방향, 블라디보스토크시 경계에 위치한 대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문 앞으로 차가 다가서자, 검은 양복의 떡대 두 명이 앞을 막아섰다.
영화에 나오는 경호원들처럼 귀에는 이어폰을 줄줄이 달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차 창문을 열고, 하시바가 대답했다.
“나? 여기 주인이다.”
“주인님은 안에 계십다. 네놈은 누구냐?”
“문 열어.”
“뭐야? 이 원숭이 놈이 귀가 먹었나.”
그렇게 말하면서 떡대는 품속의 머신건을 슬쩍 보여주었다.
하시바는 그 뒤에 선 경호원에게 물었다.
“당신도 이런 무시무시한 총을 가지고 있소?”
“흐흐흐. 당연하지. 썩 꺼져라.”
뒤에 서 있던 경호원도 재킷 안 멜빵에 걸린 머신건을 슬쩍 내보였다.
“무기는 그게 다요?”
“뭐가 어째?”
하시바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섰다.
앞에 선 떡대가 인상을 쓰면서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게 다 일어선 거냐? 이 조막만 한 놈이··· 죽고 싶나?”
하시바의 손짓에, 머신건 두 개가 그의 손으로 빨려들듯이 날아들어 왔다.
멜빵에 걸려 있던 두 번째 총은 주인을 질질 끌면서 날아왔다.
누가 멜빵을 잡아끌기라도 하는 것처럼, 경호원은 넘어질 듯 종종걸음을 치면서 걸어왔다.
“넌 왜 왔어?”
하시바는 총을 손으로 낚아채며 두 번째 경호원의 다리를 걷어찼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경호원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그는 어떻게든 멜빵을 벗어 던졌다.
“너!”
하시바가 소리 지르자, 첫 번째 경호원이 부들부들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날 모욕했으면 적어도 팔 하나는 부러져야 한다.”
경호원은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시바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으아아악!”
달려 나가던 경호원이 오른팔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우두두둑!
“끄아아아!”
리무진을 구겨버리는 하시바의 텔레키네시스.
사람의 팔뼈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
평화로운 저택에 들이닥친 불량배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시작 장면이 현실에 펼쳐졌다.
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온 악당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나서 집주인을 포박했다.
“뭐··· 뭐냐, 너희들은? 내가 누군지는 알고 이러는 거냐?”
“네놈이 뭔데?”
“난 퇴역 장성이다! 죽으려고 환장했냐? 난 군과 경찰은 물론 마피아와도 손이 닿아 있다!”
“마피아? 그거 잘 됐군. 이게 웬 보너스란 말인가. 난 그냥 집이 좋아 보여 고른 것뿐인데.”
“전부 다 총알에 벌집이 되고 싶지 않으면 꺼지란 말이다! 지금까지의 행패는 눈 감아 줄 수도 있어!”
“총알? 이 할아버지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하시바는 뒤를 돌아 한국 팀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하는 표정으로 셋은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최 선생!”
“네, 넵!”
“하루 종일 나만 일을 해서야 쓰겠소? 이 할아버지는 최 선생이 좀 혼내주시오.”
“네?”
“화염구 괜찮을까? 더 멋진 스킬이 있다면 더 좋고 말이오.”
“저··· 저 사람을 죽이라고요?”
“정당방위인데? 이 사람이 우릴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 못 들었소?”
“그··· 그래도···”
“아차차, 그렇지. 말 잘했소, 최 선생. 죽이지는 말고, 살짝 구워만 주시오. 마피아와 연락이 된다니 정보는 좀 캐내야지.”
최현은 양옆에 선 장대한과 유지호를 한 번씩 쳐다보고 나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에 나섰다.
“하··· 하지만 할아버지인데··· 화염구 맞고 쇼크라도 일으켜 죽으면 어떡하죠?”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정보는 다른 데서 캐는 수밖에. 정보보다는 재미가 중요하니까, 일단 좀 구워주시오.”
듣고 있던 집주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다··· 당신들, 구원자들이로군! 저··· 정말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자··· 잠깐··· 협상합시다!”
하시바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면서 대답했다.
“협상? 이 할아버지 재미있군. 날··· 아니 우릴 죄다 쏴 죽이겠다고 한 거 아니었소?”
“아, 아니오. 말실수했소. 용서하시오. 뭐든 궁금한 건 내가 다 대답해주겠소!”
“그래? 구미가 조금 당기기는 하지만··· 난, 나한테 못되게 구는 놈들은 절대 용서 안 하는데?”
“제발, 제발 살려주시오! 마피아 정보가 필요하다고 했잖소!”
“마리아 보로닌. 알고 있나?”
“그··· 그게 누구요?”
“이곳 마피아와 연락이 된다면서?”
“내··· 내가 아는 건 이··· 일리야 샤스코비치라는 마피아 보스요!”
“일리야 샤스코비치?”
잠깐 생각하고 나서 하시바는 말을 이었다.
“그딴 조무래기 정보라면 필요 없다.”
“샤스코비치는 극동 마피아의 넘버 투였소!”
“그게 몇 년 전 이야긴가? 지금은 어느 아파트에서 관리비나 삥땅 치고 있겠지.”
“다··· 다른 마피아도 알고 있소!”
“이름을 대봐.”
“그··· 그게 갑자기 생각하려고 하니까···”
“이것 참··· 짜증 나는군. 어디서 거짓말이야?”
“제··· 제발! 이 늙은이가 죽을죄를 지었소!”
“후후후. 난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
“고맙소! 고맙소!”
손이 뒤로 묶인 채로, 집주인은 하시바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집안은 엉망이었다.
닥치는 대로 부수고 들어오다 보니, 비싸 보이는 석재 조각이 바닥에 굴러다녔다.
하시바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서 조그마한 석재 조각을 주워들었다.
그걸 들고 집주인을 마주하고 서는 하시바.
뭔가를 느꼈는지, 집주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 뭐요! 살려주겠다고 했잖소? 제··· 제발!”
“살려주겠다고 했다고? 내가?”
“마··· 마음이 약해서 타··· 탈이라고···”
“약한 마음, 다시 고쳐먹었지. 독하게 말야.”
그렇게 말하고 하시바는 돌조각을 들고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아··· 안돼! 제발, 살려주시오!”
투구 동작을 끝낸 하시바에게서 돌조각이 쌩하고 날아갔다.
집주인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돌조각에 뚫린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최현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
그날 저녁, 하시바의 부하 야스다는 배신자 스가 노리나가를 잡아 저택으로 끌고 왔다.
마침 하시바는 스가 노리나가의 보스, 후지사와 신조와 국제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말귀를 좀 알아듣는군, 후지사와. 때마침 네놈의 그 덜떨어진 부하, 스가 녀석이 내 앞에 잡혀 왔구만. 영상 통화로 현장을 좀 보여주지. 전화 끊지 말고 잘 보라고. 감히 내 전화를 끊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건 잘 알고 있겠지?”
하시바가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리자, 겁에 질린 상대방의 목소리가 저택의 큰 방을 울렸다.
“하··· 하시바 님! 제발 자비를···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자비는 얼어 죽을. 난 대가족이 참 좋아. 한두 명쯤 죽여도 여전히 인질이 남아 있거든. 네놈의 마누라 정도 죽여도, 아직 아들이 셋이나 있으니 말야! 크하하하!”
“아··· 안돼! 제··· 제발 살려주시오!”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고 뭐가 어째? 내가··· 바로 이 내가 죽을 뻔했단 말이다! 차량 폭탄 테러였어! 그리고 그걸 한 놈이 바로 네 부하란 말이다!”
“스··· 스가··· 그 녀석과 통화를 좀 하게 해주십시오, 하시바 님!”
“닥치고 구경이나 해.”
전화를 테이블 위에 세워놓고, 하시바는 고개를 돌려 야스다와 스가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야스다가 스가를 끌고 다가왔다.
“스가 노리나가라고 했나?”
“네... 네! 하시바 님.”
“네가 날 죽이려고 리무진에 폭탄을 달았단 말이지?”
“아··· 아닙니다! 그건 그냥 장난이었습니다! 진짜 폭탄이 아니에요! 발연통 연기에 폭탄 소리만 나게 한다고 해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 너였다면 그런 장난이 재미있었을까?”
“혀··· 협박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지. 널 협박한 놈들은 러시아 놈들?”
“네··· 네! 백인 남자, 백인 여자, 그리고 동양인 남자. 이렇게 셋이었습니다!”
“호오? 그건 쓸모가 좀 되는 정보인걸?”
“가··· 감사합니다!”
“백인 여자라면··· 혹시 마리아라는 이름이었나? 마리나 보로닌?”
“자···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들끼리는 러시아어로 말해서.”
“그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사무실에 너 혼자 있었어? 러시아 부하 놈들 있었을 거 아냐!”
“그··· 그게··· 러시아 놈들은 전부 그놈들이 데려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네 사무실에 너 혼자라는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너 혼자냐고!”
“네, 넷!”
“하아··· 이렇게 되면 넌 쓸모가 하나도 없는데.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는걸?”
스가가 울부짖는 목소리로 외쳤다.
“사··· 살려주십시오! 아! 생각났습니다, 하시바 님!”
“생각이 났다고? 뭐가?”
“러시아어로 말하기는 했지만··· 사람 이름이 나왔어요. 이름이 두 개 기억납니다. 그중 하나가 마리아 보로닌이었어요!”
“그으래? 지금 막 지어내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지?”
“하··· 하시바 님을 상대로 거짓말이라뇨!”
“흐음. 하긴 그렇지.”
“그리고··· 또 하나는 세르게이 로스코비치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백인 남자 이름이요! 부하놈들 중 하나가 그 백인 남자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어요! 세르게이 로스코비치라고.”
“세르게이 로스코비츠겠지. 비치가 아니고 비츠.”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러시아 이름을 잘 몰라서.”
“또 생각나는 건 없고?”
“죄···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그럴 거 없어. 이름 두 개만 해도 정말 큰 수확이다. 세르게이 로스코비츠라면 원래 사할린을 담당하던 극동 마피아 간부다. 실종되었다더니, 마리아 보로닌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선에 파견되어 있었나 보군. 정말 훌륭한 정보다. 아주 잘했어.”
“감사합니다, 하시바 님!”
“그런데··· 더 생각나는 건 없다고? 확실해?”
“아··· 네··· 더 이상은···”
하시바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현을 향해 걸어갔다.
속삭임을 가장한, 그러나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듣기에 충분하게 큰 목소리로, 하시바는 말했다.
“최 선생, 부탁합니다.”
“네?”
“저런 졸개 놈까지 내가 일일이 다 죽여야겠소? 스가 저 자식은 최 선생이 죽이시오.”
“네? 하지만 방금 용서해 주겠다고 하신 것 아닙니까?”
“네? 무슨 얘깁니까? 내가 언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아···”
“정보가 더 없답니다. 게다가 배신자예요. 무려, 이 날 죽이려고 했다고요. 태워버려요, 저딴 놈.”
“하··· 하시바 상.”
하시바는 눈을 부라렸다.
“이봐요, 최 선생. 당신이 일한 연합군 한국 측 대가리인 것은 맞소. 하지만 일한 연합군 전체의 대가리는 바로 나요. 알아듣겠소?”
“아··· 네! 물론입니다.”
“명령대로 하시오.”
“네, 넷! 하시바 상.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가 노리나가를 향해 움직였다.
하시바가 영상통화의 상대방을 향해 소리 질렀다.
“잘 봐두시오, 후지사와 상. 우리 최 선생이 당신의 쓸모없는 부하를 처형하는 모습을. 그리고 잊지 마시오.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다가는··· 당신 그날로 홀아비 되는 거야. 알았어?”
*****
방이 열 개도 넘는 저택이었다.
하시바는 물론이고 최현도 개인실을 배정받았다.
최현은 2인실에서 함께 묵는 장대한과 유지호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였다.
“휴우우···”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현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유지호가 물었다.
“우리 총대장 말입니다. 한국말도 알아들을까요?”
“한국말은 모른다고 들었지만, 그게 사실인지 누가 알까요?”
“하긴··· 그 정도는 숨기고도 남을 위인이긴 하죠.”
“말조심합시다. 이곳··· 생각보다 더 지옥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항도 못 하는 사람을 죽이다니··· 생각보다도 기분이 훨씬 더럽군요.”
스가 노리나가를 태워 죽인 이후로, 최현은 자기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반인을 죽인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백정 짓에 가담하게 될 줄이야.
저택 대문을 지키던 경호원부터 시작해서, 하시바와 그의 부하들은 열 명 가까운 사람을 죽였다.
그 시체들은 지금 저택 냉동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가 죽인 스가 노리나가도 그곳에 함께 있다.
장대한이나 유지호는 몰라도, 최현 자신은 저 살인귀들과 다를 것이 없다.
장대한이 물었다.
“언제 끝나게 되는 거죠? 우리 일은···”
“연해주를 전부 일본 야쿠자의 나와바리로 만들 때까지겠죠.”
“그때까지··· 이런 일들이 계속된다는 겁니까?”
“어쩌겠소?”
“도대체 한상태 협회장은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지금 우리나라 구원자들은 전부 일본 협회 소속이나 다름없소! 그것도 2등 회원이지.”
“쉿!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맙시다.”
유지호가 말했다.
“광화문··· 그 이전에도 한일 연합 공격대라는 게 있었잖습니까?”
“그랬죠. 오사카에서 한 번, 그리고 우리나라 광주에서 한 번.”
“오사카에서는 멤버가 어떻게 됐었죠?”
“이준기, 김나리, 그리고 또 누구였더라?”
장대한이 대답했다.
“전용택, 고성하, 이도협이었을 겁니다.”
“맞아요. 그렇다면 그 멤버 중에 지금 살아있는 건 김나리뿐이군요.”
“광주 연합 공격대는 이준기 한 명뿐이었고요.”
“게다가 일본인 구원자는 살아나오지 못했지.”
“그러고 보니··· 연합 공격대 귀환율이 대단히 좋지 않군요.”
“그나마 이번 광화문 공격대가 제일 양호하죠.”
“그런데 광화문에서 죽은 건, 거의 구원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잖습니까? 몬스터에게 죽은 건 일본인 한 명뿐이었어요.”
“다른 연합 공격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게··· 의심할 만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가 여기 죽으러 왔다는 거요!”
유지호가 두 사람을 말렸다.
“진정하세요. 이건 연합 공격대가 아닙니다. 차원문 정리하러 온 게 아니잖아요.”
“하긴 그렇군요. 명칭도 공격대가 아니고 연합군이고.”
“마피아 수탈에 고통받는 러시아 국민들을 도우러 왔다는 구실도 있고요.”
“그깟 구실··· 구실일 뿐이죠! 러시아 정부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마음대로 들어와서 마피아를 때려잡는다고 해서, 그게 좋은 일로 둔갑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최··· 최현 구원자님. 진정하시죠. 오늘 너무 끔찍한 일이 많아서··· 좀 쉬셔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진 것 같습니다. 조금 쉬어야겠어요.”
장대한과 유지호가 나갔다.
혼자 쓰기에는 너무 큰 방을 바라보며 최현이 혼잣말을 했다.
“휴우우··· 내일은 또 무슨 일을 겪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