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76화 (17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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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4: 가지 않은 길 (8)

Episode 44: 가지 않은 길 (8)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최현은 다시 하시바에게 물었다.

“하시바 상. 그러니까··· 지금 누군가가 달리는 차를 들어서 공중에 띄웠다가 땅바닥에 내려놨다고요? 폭탄이 터진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러니까··· 장난을 치려고 말입니까?”

“글쎄. 그냥 장난은 아니겠죠. 겁이라도 주려고 그런 거라면, 지금 최 선생 얼굴을 보니 성공한 것 같습니다만.”

하시바의 부하 중 하나가 양손에 물건을 쥐고 뛰어왔다.

“하시바 님! 여기 좀 보십시오.”

“그게 뭔가?”

“발연통··· 그리고 소형 스피커입니다.”

“으하하하! 정말이었다니. 그러니까 발연통으로 연기를 좀 내고, 스피커로 폭발 소리를 재생하면서 차를 들었다 놨다 이거잖아?”

최현은 물론 옆에서 듣고 있던 장대한과 유지호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웃을 일입니까, 이게? 그런 괴물과 싸워야 한다는 거잖아요?”

“러시아 마피아에 이 정도 실력자가 있었다고요? 그걸 전혀 몰랐습니까?”

하시바가 인상을 구기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장대한도 유지호도 순간 표정이 굳었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나오는 걸까.

얼어붙은 표정의 한국 팀을 향해 하시바는 인상을 쓴 채 말했다.

“자, 잘 보시오.”

하시바는 손을 뒤로 뻗어 1호 차 리무진을 향했다.

하시바가 인상을 쓰면서 손바닥을 우그러뜨리자, 리무진의 차체가 구겨졌다.

“헉!”

“하··· 하시바 상!”

한국인 구원자들의 놀라는 표정을 감상하면서, 하시바는 여전히 인상을 쓴 채 말했다.

“호들갑 좀 작작 떠시오.”

“네··· 네! 하시바 상!”

*****

그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 카페.

자동차가 구겨지는 것을 보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오호라? 대장, 저거 봤어?”

“그럼. 지금 너랑 함께 보고 있잖아, 세르게이.”

“세상은 넓다더니, 저건 또 웬 괴물이냐.”

“흠··· 잘 보고 있어.”

“뭐··· 뭘?”

세르게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준기는 커피잔을 들었다.

오른손으로는 커피잔을 들고 홀짝이면서 창문 쪽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리고 하시바가 했던 것처럼 손아귀를 웅크렸다.

콰직!

하시바 구겨뜨렸던 자동차가 훨씬 심하게 찌그러졌다.

조금 전과는 달리, 2층 카페 안까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동차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귀를 막으며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세르게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아··· 하하하.”

“이 정도 연출이면 괜찮은 건가?”

“그··· 그럼.”

“이건 단순히 힘만 주면 된다. 총알이나 차를 움직이는 것보다 정신집중이 훨씬 쉽지. 칭퉁 야우보다 훨씬 약한 수준이라고.”

‘제법 인상적인 데뷔군, 하시바 세이이치로.’

이준기는 그 얼굴을 기억해냈다.

러시아를 침략하는 선봉장으로 그가 선택된 것이다.

지난번에 한국을 침략하는 선봉장으로 그가 왔던 것처럼.

‘하시바라면, 어둠, 바람, 마나. 지금 내 빌드와 거의 같겠군. 게다가 귀검의 소유자.’

야마토 연합의 한국 침략 당시 선봉에 섰던 두 사람.

‘네네키리마루’의 야마시타 시게루가 장비 스타일의 용장이었다면, 하시바 세이이치로는 지장.

정확하게 이미지가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임진왜란 당시 선봉에 섰던 두 사람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야마시타 쪽이 가토 기요마사 느낌이라면, 하시바 쪽은 고니시 유키나가 느낌.

이야기를 꾸며내기 좋아하는 기자들이 자주 썼던 비유다.

물론, 하시바는 고니시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비유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이름이나 외모나, 빼다 박았으니까.

‘하지만, 하시바. 네 운명이 한국 침략 당시와 달라질 것이 있을까?’

바실리사의 목소리가 그를 회상에서 현실로 데려왔다.

“준기 씨 텔레키네시스는 도대체 끝이 어디예요?”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오늘은 차원문 들어갈 일이 없어서 스킬 책을 좀 낭비해 봤어요.”

“흐음, 저는 좋아요. 준기 씨는 우리 편이니까. 그래서, 다음 작전은 뭐예요?”

“지난 일주일 정도,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뒷골목을 거의 훑다시피 했죠.”

“그랬죠. 세르게이의 대활약 덕분에요.”

세르게이가 반쯤 어이없다는 느낌으로 웃었다.

“야쿠자 쪽 깡패들은 대략적이나마 자기 윗선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피아 쪽은 그렇지 않았죠. 그게 극동 마피아의 원래 스타일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겁니다. 내 추측이 맞아, 세르게이?”

“원래 깡패 조직이라는 게 그렇잖아. 졸개들이 대장 얼굴 볼 일 없지. 하지만 대장 이름도 모르는 경우는 이상하잖아. 마리아가 극동 마피아 대장이 되면서 조직 문화가 조금 달라졌다고 봐야겠지.”

“마리아 보로닌, 그녀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이 비상시국이라서 그런 부분도 있을 겁니다. 외세가 쳐들어오는데, 깡패가 잡혀가서 본부 위치를 다 불어버리면 곤란하니까요. 그런 걱정을 저쪽은 할 필요가 없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바실리사가 대답했다.

“그렇죠. 야쿠자 졸개가 자기 두목의 위치를 분다고 해서, 러시아 마피아가 일본까지 쳐들어가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러시아 여권으로는 일본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으니까.”

“맞아요. 그래서 야쿠자 쪽 정보는 많이 모았지만 마피아 쪽 정보는 별로 얻지를 못한 거죠.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전혀 페널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린, 극동 마피아에 대한 정보라면 이미 넘치게 가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내부자 정보죠.”

세르게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전직 극동 마피아는 나뿐이잖아. 또 소외감 느끼네. 농담이고, 마리아 보로닌이 현재 극동 마피아 보스라는 것도 알고, 그녀에 대한 기본적인 신상 정보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아. 하지만 그녀의 위치도 모르고, 다른 어떤 사람들이 극동 마피아 지휘부를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건 저쪽, 그러니까 야쿠자 쪽도 마찬가지다. 결국 러시아, 일본 양국 깡패끼리의 항쟁은 뒷골목 현장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어. 골목골목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거지. 변수가 하나 있다면.”

“차원문.”

“그렇지. 정확하게 봤어, 세르게이. 차원문 확보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것이지. 현재 상황을 생각해 봐. 아무래도 야쿠자 쪽이 유리하다. 일단 병력이 많아. 일반 깡패 레벨로 내려가면 본진에서 싸우는 마피아 쪽이 유리해 보이지만, 그게 아냐. 졸개들은 언제라도 배신한다. 얼마 전에 스가 노리나가가 그랬듯이.”

“그게 깡패라며? 강약약강.”

“하하, 그렇지. 결국 병력은 구원자 중심으로 카운트해야 한다. 극동 마피아에 30레벨 넘는 구원자가 지금 몇이나 될까? 일본 쪽은 그냥 척 봐도 열 명이 넘어. 그러니까 야쿠자 쪽이 병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야쿠자 쪽은 차원문을 닫으려 할 거야. 차원문을 유지하려고 하는 극동 마피아와는 반대지.”

“과연.”

“더구나 차원문을 닫겠다고 하면 경찰이나 지역주민의 도움을 받기도 쉽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러시아 공권력이지만, 조금 전에 봤듯이 경찰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니까. 게다가 경찰은 차원문 근처에서 얼쩡거려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러시아 경찰 입장에서는 마피아나 야쿠자나 그게 그거야. 사업 파트너로 별 차별성이 없지.”

“대장, 내가 그 말에 토를 달겠다는 건 아니지만, 러시아 경찰한테 마피아와 야쿠자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말은 수긍할 수 없는데. 러시아란 말야. 외세를 아주 싫어한다고, 우리는.”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난 그것도 고려했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인물이 러시아 경찰의 윗선에서 개입할 경우라면 네 말이 맞을 거야.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야쿠자와 마피아는 무차별한 대체재일 뿐이다. 그게 내 생각이야. 현재 러시아 경찰은 깡패와 같아. 강약약강은 물론이고 본능에 충실하지. 상납금만 두둑이 받으면 그만이야.”

바실리사가 의자에서 뒤로 기대며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정말 고려할 요소가 많군요. 그걸 다 생각하는 준기 씨도 참··· 그래서, 결론은 뭐죠?”

“지금 저 아래 모여 있는 야쿠자는 스가 노리나가를 믿지 않을 겁니다. 스가가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가지도 않겠죠. 부하 한두 명을 보내서 정탐은 하겠지만요. 만에 하나, 스가가 식당에 나타나면 납치하기 위해서요.”

“그렇겠군요.”

“우리가 유일하게 살려 놓은 야쿠자 조직, 스가. 그게 없다면 일본 측은 결국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훑듯이 전투를 해야 할 거예요. 마피아 대 야쿠자의 대결은 이제 그렇게 흘러갈 겁니다. 예전에 게릴라 전투에서 많이 나오던 전개죠.”

“무슨 얘기죠?”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그런 일이 많았죠. 낮에는 한국군이나 미군이 마을에 쳐들어옵니다. 그러면 마을 주민들은 그쪽을 환영해야 하죠. 그런데 마을에 군부대를 설치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밤에는 북한군이나 베트남군이 마을로 와요. 그러면 또 마을 사람들은 그쪽을 환영해야죠. 죽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 러시아 깡패들이 그 마을 주민들처럼 행동해야 하는 거군요?”

“네. 얻어터질 때마다 편을 바꿔야 하죠.”

“하아··· 나쁜 놈들이지만 참 힘들게 살겠네요.”

“하지만 그런 점이 우리에게는 유리한 겁니다.”

“네?”

“야쿠자나 마피아나, 우리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건 마찬가지죠. 우리가 하부조직을 흔들어 놓을 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겠죠. 말하자면, 우리는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거죠.”

“아하!”

“우리 목적이 뭘까요? 야쿠자나 마피아나 모두 사회를 좀먹는 악입니다. 양쪽이 최대한 소모전을 벌이게 유도한 다음, 우리는 양쪽 모두를 퇴치할 겁니다.”

“멋져요, 준기 씨! 제가 괜히 준기 씨 팬인 게 아니라고요.”

*****

분명히 정신집중을 풀었는데 자동차가 한 번 더 찌그러졌다.

하시바는 거둬들인 손바닥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잡념이 들어가 있었나. 정신집중이 조금 늦게 풀렸나 보군.’

분명히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경꾼들은 그것을 하시바의 연속 동작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구원자가 근처에 있다고 넘겨짚을 겨를이 없었다.

하시바를 향한 찬사가 이어졌다.

“하시바 상,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대단한 분과 함께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콩트를 끝낸 하시바와 연합군은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하시바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스가 녀석이 배신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야스다!”

“네!”

“너는 나 대신 식당으로 간다. 스가 녀석이 예약해 놨다는 그 식당 말야.”

“네?”

“가서, 스가 녀석을 잡아 와. 놈이 거기에 나타날 가능성이 0은 아니니까.”

“그렇긴 하겠군요.”

“스가 녀석이 안 나타나면, 식당 주인에게 정보를 캐서라도 잡아 와.”

“식당 예약을 그놈이 안 했을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라도 잡아 와. 24시간을 주겠다.”

아주 잠깐 머뭇거리는 야스다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침을 삼키면서 그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잡아가죠? 스가 녀석이 배신한 이상, 그쪽 아지트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 아지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시바는 휴대폰의 지도 앱을 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가 펼쳐지자, 그는 잠시 동안 손가락을 놀리면서 지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시내 외곽의 고급 주택가 쪽을 확대해서 살펴보던 그가 마침내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나는 여기, 바로 이곳에 있겠다. 그러니까 스가 녀석을 잡게 되면 여기로 끌고 와.”

“네에? 여기가 어딥니까?”

“우리 아지트다.”

“여기, 아시는 곳입니까? 무슨 건물인데요?”

“몰라.”

“네?”

“가봐야 알겠지. 하지만 지도상에서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군. 마당도 넓고, 우리가 당분간 지내기에는 딱일 것 같다.”

하시바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위치에는 넓은 마당이 포함된 저택이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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