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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4: 가지 않은 길 (7)
Episode 44: 가지 않은 길 (7)
“하시바! 하시바 상은!”
차에서 내려 길가의 건물로 피한 최현은 주변에 외쳤다.
“선두에 가던 리무진, 하시바 상이 탔던 차 아닌가?”
최현은 진땀을 흘렸다.
사지로 왔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하기는 했지만, 시작부터 이럴 줄이야.
너무 위험한 곳이다.
야쿠자 쪽에서 준비한 리무진이다.
어떻게 폭발물을 설치했을까?
설마··· 배신이란 말인가?
‘깡패 새끼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게 아니었어. 이게 뭐냐.’
장대한과 유지호 역시 동요하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최현의 옆자리까지 와서 웅크리고 있다.
“테··· 테럽니까?”
“극동 마피아?”
욕이 혀끝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다.
그런나 최현은 참았다.
사정이 어떻게 됐든, 지금 최현은 한일 연합군 한국 측 사령관이다.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를 진정시키면서, 최현은 말했다.
“하시바를 찾아야 해요. 첫 번째 차에 탄 것이 맞죠?”
“네. 분명히 그렇게 봤습니다만.”
웅성거리는 것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선두 차량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뒤따르던 차량들은 차례차례 급정거를 했다.
곧이어 차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들 가장 가까운 길가의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카페, 식당, 편의점···
폭발해서 날아간 첫 번째 리무진을 제외하면, 남은 차량은 모두 다섯 대.
17명이 여섯 대의 차로 이동했으니, 차 한 대당 평균 세 명꼴이다.
일본인들은 모두 총을 들고 거리 쪽을 두리번거렸다.
최현과 같은 건물로 피신한 일본인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고 나서야, 최현도 품속의 권총을 생각해냈다.
‘저들은 야쿠자라서 총이 익숙한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지···’
최현이 먼저, 그리고 장대한과 유지호가 그를 따라 총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일본인들이 하는 대로, 그들도 거리 쪽을 훑듯이 쳐다보았다.
폭발 광경을 보고 모여든 구경꾼들을 제외하면, 수상한 모습은 없다.
폭탄이 터지는 것을 신호로 기습.
그것이 일반적인 시나리오일 테지만, 적어도 현재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유지호가 물었다.
“포··· 폭탄만으로 끝나는 건가요?”
“글쎄요. 기습 공격 같은 걸 하려 했다면, 이미 했어야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부 다 건물로 들어와 숨었는데, 밖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잖아요?”
“그··· 그럼··· 하시바 상 하나만 죽는 걸로? 아니, 그 차에 다른 사람도 탔던가?”
*****
“커피 맛 좋군.”
이준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창밖을 쳐다보았다.
2층의 카페.
거리가 잘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휴대폰 화면은 이미 꺼졌다.
버튼을 누른지도 2분은 지났으니까, 당연하다.
“이걸로 된 거야?”
세르게이의 물음에, 이준기가 대답했다.
“깡패들 사이의 신뢰라는 거, 덧없는 것이지.”
“그래서 이걸로 괜찮다고? 아무도 안 죽였잖아?”
“여기에서 구원자 한둘을 죽이는 것보다는, 적들 사이에 불신의 씨앗을 심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지.”
“흠··· 스가··· 라고 했던가? 그 일본놈은 이제 죽겠군. 굳이 우리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말야.”
“그래. 그건 부가적인 효과지.”
“당사자한테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렇게 표현하다니··· 세르게이도 꽤 독설가인데?”
“대장과 함께 지내다 보니 말투가 비슷해졌나?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고.”
맞은 편의 바실리사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시 봐도 준기 씨 텔레키네시스는 정말 멋져요. 그 스킬 하나만으로도 준기 씨는 1인분 하는 것 같다니까요?”
“분명히 과찬이기는 한데, 바실리사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 좋은데요?”
“그게 텔레키네시스로 원래 가능하기는 한 거예요?”
“그 정도로 괜찮았어요?”
조금쯤은 으스대는 느낌으로, 이준기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요. 세상에 누가 봐도, 폭탄이 터진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다른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담 다행이고요. 의도한 대로 되었다면 성공한 거군요.”
지난 며칠 동안, 이준기 일행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남아 있는 야쿠자 잔당을 소탕했다.
아지트를 찾아내기 위해 세르게이는 여러 차례 마약중독자 역할을 해야 했다.
그렇게 아지트를 하나씩 찾아 정리했다.
처음에 찾아냈던 스가 노리나가의 본거지만 남겨 두었다.
러시아로 진군해올 야쿠자 쪽의 추가 병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가 굴러들어왔다.
“와··· 왔습니다! 여··· 연락이···”
스가가 딸꾹질을 해가면서 이준기에게 보고했다.
“본국에서? 후지사와파, 아니면 일본 구원자협회?”
“본가에서··· 후지사와 님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본에서 추가 병력이 온다는 내용이겠지?”
“네··· 넵.”
“혹시··· 명단도 받았어?”
“죄··· 죄송합니다.”
“고급 정보는 내려보내지 않는다는 건가.”
“저에게는 그냥 시··· 심부름 정도만 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가 해야 할 일은 뭐지? 호텔이나 식당 예약?”
“하··· 항구에서 시내까지 차량 준비, 그리고 시··· 식당 예약입니다.”
“그게 다야?”
“시··· 식당에서 보··· 보고를 듣겠다고···”
“무슨 보고?”
“무··· 물론, 전황 보고입니다. 사··· 사실 제가 파악하는 부분은 별로 어··· 없어서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결국 나와바리 관리 보고 정도가 되겠군.”
“네··· 그렇습니다.”
이준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은 말이지.”
“저··· 저는 뭐··· 뭘 준비해야 할까요?”
“너는 말귀를 좀 알아듣는 편이군. 악당들은 대개 말귀가 좀 어두운데 말야.”
“가··· 감사합니다. 준비할 것을 얘기해 주십시오.”
“발연통, 그리고 작지만 시끄러운 스피커 정도랄까.”
*****
차 안에서 사람 둘이 기어 나왔다.
운전사, 그리고 일본인 하나.
분명히 폭탄이 터졌는데, 둘은 별로 다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두 명 모두, 자기 힘으로 차에서 기어 나왔다.
자동차 역시 생각보다 크게 부서지지 않았다.
추가 폭발도 없고, 찌그러진 정도도 신기하리만큼 경미하다.
차에서 내려 건물로 피신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다시 나왔다.
장대한, 유지호, 그리고 최현도 건물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무정부 상태라더니, 언제 왔는지 경찰 몇 명이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폭발해서 하늘로 올라갔다가 떨어진 차량 주위에는 간소하게나마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하··· 하시바 상!”
근처 편의점에서 유유자적 걸어 나오는 하시바 세이이치로를 보고, 최현이 외쳤다.
“흐음··· 역시나.”
“무사하십니까?”
“보시다시피 저는 멀쩡합니다. 이 정도는 예상했죠. 저는 다른 차에 타고 있었어요.”
“처··· 철저하시군요. 그럼 아까 1번 차량에 탄 사람은?”
“제 도플갱어라고나 할까요. 카게무샤라고 하면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높이는 것 같아서 말이오.”
“이런 사태를 예상하시고 데려오신 겁니까?”
“네. 배 안에서는 우리와 따로 지냈으니 최 선생이 모르는 것도 당연합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인물이라더니, 과장이 아니라고 최현은 생각했다.
하시바는 부서진 차량 쪽을 한번 쓱 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 친구는 별로 다치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제 역할을 끝냈으니 병원에라도 보내야겠습니다.”
“하시바 상···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걸 예측해서 미리 대비를 해놓으셨다니.”
“하지만 예상대로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걸 보니, 조금 짜증이 나는데요.”
“차량은··· 후지사와파에서 준비한 것 아닙니까?”
“그래요. 후지사와파 야시로 구미에서 준비한 거죠.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놈들의 여기 블라디보스토크 지부. 스가 노리나가라는 놈팡이가 준비한 겁니다.”
“그 사람이··· 배신을?”
“뭐, 그렇게 봐야 하는 상황 아닙니까? 러시아 쪽에 포섭된 거겠죠. 회유를 당한 건지 협박을 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식당도 위험하겠군요?”
“본국에 있는 후지사와파에 연락을 해서 상황 파악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내 이놈의 자식을 그냥···”
그렇게 말하며 하시바는 폭발했던 차량을 쳐다보았다.
최현을 향해 그는 조용히 뇌까렸다.
“폭발한 차량이 아주 멀쩡하군요? 아주 특이한 폭탄인가?”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아까 보니까 사람들도 별로 다치지 않은 모양입니다.”
“왜 이따위 장난을 한 걸까요? 설마 불발탄?”
“그··· 그런 걸까요?”
“분명히 폭발음이 났고, 연기도 자욱하게 피어올랐는데··· 차량이 3층 건물 높이까지 튀어 오르는 걸 내가 봤단 말이오.”
“맞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그런데 멀쩡하다? 차도, 사람도?”
하시바의 부하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의 손에는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다.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의 러시아 여자가 부하의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러시아 경찰이 따라왔다.
러시아 여자가 뭐라고 말했다.
“뭐라는 겁니까?”
하시바가 영어로 묻자, 러시아 경찰이 대답했다.
“휴대폰, 자기 거라고. 돌려달라고 합니다만.”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소? 내가 뭘 봐야 하는 모양인데.”
하시바의 부하가 크게 말했다.
“저 여자가 찍은 동영상입니다. 이걸 잘 보십시오.”
하시바는 동영상을 보았다.
선두의 차량이 폭발해서 하늘로 날아오르던 순간부터 찍혀 있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차량은 자연스럽게 중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내려오다가···
“허!”
“보셨습니까?”
최현도 옆에서 작은 화면을 같이 보고 있었지만, 뭘 봤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시바가 부하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최현에게 보여주었다.
동영상을 두 차례 다시 보고 나니, 최현은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챘다.
“차량이··· 떨어지다가 잠깐 공중에 멈췄군요. 아주 살짝 지면에서 떠서 말입니다.”
“맞아요, 최 선생. 저한테도 그렇게 보입니다. 이게, 원래 이런 거요?”
“원래 이런 거라뇨?”
“폭발해서 튀어 오르는 자동차를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묻는 거요.”
“차가··· 떨어지다가 바닥에 부딪혀 다시 튕긴 게 아닙니다! 떨어지다가 아주 잠깐 공중에 멈춘 거라고요.”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군요.”
“이··· 이게 뭐죠?”
하시바는 혀를 차며 최현을 바라보았다.
“최 선생··· 빌드가 어떻게 되오?”
“네? 빌드요?”
“스킬 트리 말이오.”
“아··· 화염과 마나입니다만.”
“마나··· 그건 왜 찍었소?”
“네?”
“화염 법사신 것 같은데, 마나는 왜 찍으셨냐는 겁니다.”
“그··· 글쎄요? 어쩌다 보니까···”
“마나는 몇 개나 찍으셨소? 마나 쪽으로 희귀 스킬 익히신 거라도 있습니까?”
“네? 아··· 아뇨. 아직은···”
“훗. 그런 겁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하시바는 최현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주눅 드는 자신을 변호하기라도 하려는 건지, 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원숭이 주제에 눈은 뱀이네··· 섬뜩한 놈.’
옆에서 기다리던 경찰이 하시바에게 영어로 말했다.
“다 보신 것 같은데, 휴대폰, 돌려주시죠.”
“알겠소.”
하시바가 손을 벌리자, 휴대폰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경찰과 휴대폰 주인인 러시아 여자는 물론, 주변의 일본인 부하들도 탄성을 내질렀다.
“오오오!”
“뭐··· 뭐 하는 거예요! 내 휴대폰 망가뜨리지 마요!”
건물 3층 높이까지 올라갔던 휴대폰은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두둥실 움직이며 내려왔다.
휴대폰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잡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던 주인의 손으로, 휴대폰은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휴우···”
박수가 쏟아졌다.
하시바가 최현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텔레키네시스요. 처음 보는 겁니까?”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텔레키네시스로 유명한 한국의 구원자로는 이도협이 있다.
그는 염력으로 물건 움직이는 것을 자랑삼아 자주 보여주고는 했다.
우유갑이나 야구공 같은 물건들 말이다.
이도협도 저렇게까지 높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
못했을 것이다.
할 수 있었다면 분명히 여러 차례 자랑하고도 남았을 인간이니까.
하시바의 텔레키네시스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는 이도협의 텔레키네시스를 회상하며, 최현은 대답했다.
“아··· 아뇨. 하지만···”
“이렇게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런 말씀입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세상은 넓지. 그 넓은 세상 어딘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을 가진 자도 있을 거고 말이오.”
“네···?”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지 잊으신 겁니까?”
최현은 생각했다.
도대체 이 원숭이 같은 작자가 묘기를 부리기 전에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최현은 갑자기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아!”
“생각났습니까?”
“서··· 설마···”
“바로 그 설마일 거요. 적어도, 내 결론은 그렇소.”
“마···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