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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4: 가지 않은 길 (3)
Episode 44: 가지 않은 길 (3)
“저··· 잠깐만요.”
“네?”
고블린 무리를 향해 돌진하려는 문아린을 오이빈드가 제지했다.
“이건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규칙상, 저는 문아린 구원자님을 도와드리면 안 됩니다.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끼어들 수 있어요. 구원자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경우에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저기 저 무리 쪽으로 돌진하려고 하신 거죠? 고블린이 다섯이나 되는데요. 그러다가 위험해지시면, 제가 끼어들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오늘 테스트는 물 건너갑니다. 나중에 다시 하든가 해야 해요. 그건 아무래도···”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그건 너무 지나친 걱정 아닐까요? 고블린 일반 병사들입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정말로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도와주시면 되죠.”
“아···”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네? 어떻게요?”
“제가 단 한 대라도 맞으면, 그때 도와주세요. 아예 실격 처리를 하셔도 좋고요.”
“네?”
“갑니다.”
오이빈드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문아린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갑자기 달려드는 문아린을 보고, 고블린 병사들도 무기를 꽉 붙잡고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무리였다.
- 고블린 병사에게 39의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 고블린 병사가 쓰러졌습니다!
선두의 한 녀석을 ‘척추파쇄자’로 날려버리고 문아린은 건너편 둔덕까지 뛰었다.
무리의 다른 병사들이 짧은 다리로 그녀를 쫓아왔지만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뒤로 돌아선 문아린은 양손도끼를 왼손으로 옮겨 잡고 외쳤다.
“화살 비!”
고블린 무리의 머리 위로 푸른 빛의 얼음 화살이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렸다.
화살을 맞은 고블린 병사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렇게 느려진 발로 그들은 문아린을 향해 어떻게든 다가오려고 했다.
그러나 얼음 화살을 세 개째 맞는 순간, 고블린 병사들의 생명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걸로 광역 처리를 하면 간단은 하겠지만, 내 전투 스타일은 이게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문아린은 시전을 끊었다.
아직 두 마리가 남았다.
기어 오는 속도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향해 그녀는 도끼를 휘둘렀다.
- 고블린 병사에게 47의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 고블린 병사가 쓰러졌습니다!
상대방은 레벨도 낮고 피통도 작은 고블린 병사다.
치명타가 아니더라도 척추파쇄자에 한 대면 골로 간다.
발동 효과 같은 건 보여줄 수도 없다.
문아린은 척추파쇄자를 인벤토리에 돌려놓고 대신 ‘오크 분쇄자의 검’을 들었다.
‘다마스커스’조차 이들에게는 과한 무기다.
10레벨 중반까지는 쓸만한 ‘오크 분쇄자의 검’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바람의 가호!”
그녀는 자신에 버프를 넣고 마지막 고블린 병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땅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녀와 스쳐 지나간 고블린 병사가 옆구리를 움켜쥐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 고블린 병사에게 19의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 고블린 병사가 쓰러졌습니다!
문아린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눈을 들자,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오이빈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하··· 합격입니다!”
*****
구라모토 신스케 일본 구원자협회장.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는 맞은 편의 인물을 향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두운 조명은 두 사람의 얼굴 정도만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 일본의 구원자 계는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 너는 잘 몰랐겠지만, 그게 사실이야. 밖에서 보기에는 하나로 화합된 모습을 보여왔지만, 사실은 그랬지. 서로 죽이겠다는 식의 대결은 아니고, 정책 대결이었지만.”
“몰랐습니다.”
“흠··· 그게 우리 일본과 너희의 차이라고나 할까? 집안싸움을 하더라도, 바깥에 그 모습이 새 나가게 하면 안 되지. 그게 무슨 망신인가.”
“상관없습니다. 한국은 이제 저와 상관없는 나라니까요.”
“그래. 훌륭한 자세다.”
“이야기를 계속해주시죠.”
“그래. 일본 구원자 계에 존재하는··· 아니 존재했던 두 개의 파벌은 바로 정한파와 정러파다. 한국을 칠 것이냐, 러시아를 칠 것이냐 하는 노선 차이였던 셈이지. 다수파는 정한파였어. 나도 그렇고, 이번에 한국으로 원정을 간 하시바 세이이치로, 그 녀석도 정한파였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런 말씀입니까?”
“잘 알겠지만, 여기에서 이준기라는 변수가 등장하지. 이준기 그 녀석만 없었더라면, 우리 일본의 야마토 연합은 여전히 한국 정벌이라는 노선을 유지했을 거다. 그런데 그놈 때문에··· 자존심 상하지만 단 한 녀석 때문에 계획을 변경해야 할 정도로 차질이 생겨버리고 말았지.”
“이준기···”
“너도 기억하겠지만, 도톤보리에서 전용택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그놈 때문이다. 다케다 시게히데··· 그놈이 직접 증언한 거야. 알다시피, 도톤보리 던전에서 살아나온 일본인 구원자는 그놈 하나뿐이었지.”
“다케다 상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그따위 자식, 생각하기도 싫어. 이준기에게 죽을 뻔해서, 그 이후로는 구원자를 은퇴한 거나 다름없어. 집에 틀어박혀 나오려고도 하지 않는 걸, 지금은 어떻게 사무실까지는 나오게 했지만··· 후배들 교육이나 하고 있다고. 도톤보리 사태 이후로 던전에 들어가려고 하질 않는단 말야. 일본 최고 탱커였던 놈이··· 한심하게도 말이지.”
“도톤보리 던전··· 이준기에게 전부 죽은 게 맞기는 합니까?”
“숨통을 끊은 게 누구냐고 묻는다면, 전부 이준기가 죽인 것은 아니지. 전용택이나 다른 한국인에게 죽은 녀석도 있고, 고블린에게 죽은 녀석도 있다고 하더군. 난 그 말을 듣고 다케다가 실성을 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 아무튼 사실인 것 같아. 고블린 용병들이 나타나서 이준기 편을 들었다고, 그렇게 다케다가 증언했다.”
“고블린 용병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요.”
“일부 던전에 그런 요소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유럽과 미국에 확인해 봤어.”
“그걸 이준기는 어떻게 알고···”
“적이지만 대단한 놈인 건 인정해야 한다. 도톤보리에 이어, 광주에서도 이준기는 우리 일본에 막대한 피해를 줬으니까. 야마시타 시게루가 그렇게 간단히 당할 줄은 나도 몰랐어. 혹시 알고 있나? 그 녀석의 무기는 네네키리마루. 우리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하고 있는 물건이지. 아니,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아이템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아무튼, 전설 등급 무기란 말이야.”
“게다가 기습을 위해 차원문에 미리 입장하기까지 했죠.”
“그래. 그렇게까지 하고도 이준기에게 당했지. 도톤보리에서 네 명, 이어서 광주에서 또 한 명. 고레벨 구원자들이 갈려 나갔다!”
“죄송합니다.”
“정한파 주장대로 한국 공략을 계속 진행하다가는 도대체 피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 내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는 녀석들까지 생겼지. 이 내가··· 구라모토 신스케가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의 애송이 한 놈 때문에 말이야!”
“송구합니다.”
“다 지난 일이야. 이제 이준기도 정리되었고, 러시아 공략은 찬찬히 잘 진행되고 있으니까.”
“러시아 공략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구라모토는 맞은 편의 인물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좋은 자세다. 배우려는 자세 말이다.”
“감사합니다.”
“리더십 위기를 나는 정면으로 돌파했지. 하시바 그놈이 먼저 나에게 접근하기는 했지. 자기는 이제 정한파에서 정러파로 태세를 전환할 거라고 하면서, 나도 그렇게 하는 게 어떠냐고 말하더군. 나와 하시바가 정러파로 갈아타고 나니, 집안싸움도 없이 우리 야마토 연합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원정도 잘 되었고··· 얼마 전까지는 말야.”
“얼마 전까지는··· 말입니까?”
“이미 작전이 일부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1월 중순에 말이야.”
“벌써 몇 주 전에 이미 성공했다는 겁니까?”
“그래. 사할린을 접수했다. 사할린과 연해주에는 일본 사람들도 꽤 있고, 당연히 우리 첩보원들도 많이 있지. 그들을 통해 사할린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챘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어. 사할린 접수는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웠지.”
“다행이군요.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래. 부끄럽게도 연해주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
구라모토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에비앙 생수를 들이켜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연해주도 처음에는 쉬웠어. 아까 말했지, 무주공산이었다고··· 연해주도 처음에는 무주공산이었어. 너도 알고 있겠지? 러시아는 지금 무정부 상태다. 구원자의 대부분은 마피아다. 청나라가 망하고 중국 땅을 군벌들이 나눠 먹기 하던 것과 비슷하지. 현재 러시아는, 정부가 아니라 마피아가 나누어 지배하는 나라다. 그건 연해주도 마찬가지지.”
“말씀 계속하십시오.”
“사할린의 경우는 간단해. 거길 지배하던 마피아가 사라졌다고 하더군. 항쟁에서 밀려 제거된 게겠지. 사할린은 극동 마피아의 나와바리였는데, 누가 공격했는지는 모르겠어. 그래서 말 그대로 무주공산. 그냥 빈 땅 접수한 거야. 물론 구원자가 아닌 일반인 마피아들을 좀 처리하기는 했지. 하지만 그건 그냥 길거리에서 쓰레기 줍기 같은 잡일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
“사할린을 접수하고 나서, 연해주 쪽도 좀 알아봤지. 나와바리가 더 크기도 하지만, 보안 체계가 나름 잘 되어 있어서 조금 애를 먹기는 했지만··· 그게 다 예브게니라는 영감 때문이더군. 구원자도 아닌데 극동 마피아 2인자가 된 게 다 이유가 있더구만. 일본어만 된다면 내 부하로 쓰고 싶을 정도였지.”
“그 정도로 유능했습니까?”
“후후. 그렇다니까. 누구와는 달랐지.”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답하는 상대를 보며, 구라모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 내가 널 그곳으로 보내는 이유가 뭐겠나? 난, 아직 너의 실력을 믿고 있다는 거지.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라.”
“명심하겠습니다.”
“연해주 작전이 틀어진 이유는 간단해. 완전히 와해되었다고 생각했던 극동 마피아 조직이··· 살아있었다. 구원자가 포함된 병력이 상당히 남아 있더군. 그러니까,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고 잠시 바깥에 나갔다가 돌아온 거라고 하더군.”
“그랬습니까.”
“그렇다. 연해주 팀은 전멸했다. 이건 나중에 첩보망을 통해서 알아낸 정보야.”
“상대방 파악은 끝내셨습니까?”
구라모토는 책상 서랍을 열고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걸 잠시 감상하듯 쳐다보던 그는, 사진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리아 보로닌. 극동 마피아의 현재 보스다.”
“에? 여자란 말입니까?”
“보스에 남녀가 어디 있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마피아 보스도 여자다.”
“흠··· 그렇습니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다. 구원자 각성 전에 군인이었다는 말이 있어. 그것도 특수부대원.”
“러시아라면··· 스페츠나츠?”
“그래. FSB··· 그러니까 과거에 KGB라고 부르던 조직 휘하의 특수 부대 소속이었다고 한다.”
“재미있군요.”
“너니까 내가 이런 대단한 상대를 맡기는 거다. 넌, 내가 아는 최고의 흑마법사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사할린이나 연해주를 넘어서 러시아 전체를 경영할 것이다. 그 발판이 되는 것이 연해주다. 연해주를 점령하고 나면, 내가 누구에게 그곳을 맡길 것 같은가?”
“네···? 그 말씀은?”
“후후후. 그렇다. 바로 너다.”
“가··· 감사합니다!”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다. 작전 디테일은 바깥에 나가면 나기사가 설명해줄 거야. 나가보도록.”
“그··· 그런데, 회장님.”
“뭔가?”
“이준기 말입니다.”
“이준기?”
“죽은 것, 확실합니까?”
구라모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시체를 찾았는지 궁금해서.”
“찾았다. 그리고 처리했지.”
“없앴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얘기잖아?”
“화장이나, 수장을 하셨다는?”
“둘 다다. 태우고 나서 드럼통에 넣어 태평양 깊은 곳으로 던져넣었다. 그걸 설사 누가 발견한다 해도 아무런 증거가 없어. 그냥 시멘트가 들어 있는 드럼통이니까. 이준기의 재를 넣은 시멘트지.”
“철저하시군요.”
“이준기는 확실하게 죽었다. 그딴 걱정은 하지 말아.”
“유품 같은 것은 혹시 없습니까?”
“내가 왜 그놈의 유품을 챙겨야 하지?”
“시체를 찾았다고 말을 하려면··· 언론에 유품 정도는 공개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공식적으로는 그냥 실종 상태다. 시체도 못 찾았다고 얘기하고 있어. 이준기가 죽었다는 것은, 나를 포함해서 소수만이 알고 있는 극비 정보다.”
“그렇군요. 저에게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거야, 너는 알 자격이 되니까 알려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제, 나가보도록.”
“네, 회장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구라모토의 맞은 편에서 남자가 일어서서 묵례를 했다.
재킷의 매무새를 고치려는 듯 옷자락을 한번 잡아당기고 나서,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회의실에서 바깥으로 나오자, 사무실의 밝은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회장 비서가 그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쪽으로 가시면 나기사 부장님이 자세한 설명을 드릴 겁니다.”
“고마워요.”
“뭘요. 마츠야마 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