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67화 (16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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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3: 아브람의 탑 (7)

Episode 43: 아브람의 탑 (7)

이제부터 진지하게 상대해주겠다고 말하며 이준기는 단검을 교차해 보였다.

이준기의 눈초리에 가득 담긴 살의가, 마치 냉기 공격이라도 되는 듯 아브람을 덮쳤다.

뱀의 똬리에 갇힌 초식동물이 된 느낌이다.

아브람을 향해 냉혹한 시선을 고정한 채, 이준기가 가볍게 바닥을 차고 달려들었다.

아브람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장검을 앞으로 들어 칼부림을 해보았지만,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준기의 단검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베고 지나갔다.

아브람은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사··· 살려줘!”

“죽어라.”

기계가 말하는 것처럼 단조로운 말투로 이준기는 대답했다.

그리고 또다시 가볍게 바닥 위를 날아 아브람에게 달려들었다.

또다시 이준기는 아브람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 지나갔다.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

“죽어라.”

또다시 단조로운 목소리의 대답.

이어서, 가벼운 발걸음이 사무실 바닥을 딛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베고 지나가는 예리한 칼날.

마지막으로, 격려라도 하는 듯이 아브람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이준기.

‘나···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절망감에 휩싸인 채 아브람은 이준기를 바라보았다.

이준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악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금까지 아브람은 이준기를 상대로 단 한 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게 현실이라고?

이렇게까지 계획이 빗나간 것은 처음··· 아닐까?

“죽어라.”

이준기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아브람의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양손으로 검을 꽉 쥐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 이준기가 반대편에서 다시 뒤로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아브람의 오른쪽 어깨에는 이미 네 개의 자상이 평행으로 그어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위로 사선이 그어졌다.

이준기가 드라이한 어조로 말했다.

“다섯 개.”

아브람은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네 개의 짧은 평행선, 그리고 그걸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사선.

다섯 개를 의미하는 표시.

와들와들 떨리면서도, 아브람은 목소리를 내어 항의했다.

“이··· 이게 무슨 장난이냐? 뭐 하는 짓이야!”

“너희들은 이런 장난을 남들한테 자주 하잖아? 당해보니 느낌이 다른가?”

양손으로 꽉 쥔 장검이 아브람의 몸 앞에서 후들후들 떨렸다.

목소리가 다시 잠기기 전에, 말을 해야 한다.

다급한 마음에 바깥으로 끄집어낸 아브람의 말은 퉁명스럽게 들렸다.

“살려줘···”

“너무 건방진 말투인데? 살려달라는 말을 그런 말투로 하나?”

“사··· 살려줘! 제발··· 부, 부탁이다!”

이준기는 잠깐 아브람을 노려보고 나서 대답했다.

“칼을 버려라.”

“사··· 살려주는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내가 칼을 왜 버려야 하냐!”

“네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벌벌 떨면서, 아브람은 검을 쥔 손을 아래로 내렸다.

쥐어 짜내듯, 그는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주··· 죽여라.”

차갑게 노려보면서, 이준기가 대답했다.

“그것 또한,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

니키타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툐마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빼앗긴 무기는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탁자 위에 놓였다.

아브람과 그는 손이 묶인 채로 의자에 앉혀졌다.

미겔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걸로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끝나는 건가? 이게 정말 현실이야?”

아브람보다는 니키타가 더 많이 다쳤다.

이준기와는 달리, 바실리사와 세르게이와 미겔은 마피아 팀을 상대로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레벨이었음에도, 툐마는 끝까지 저항하며 아군에게 피해를 입혔다.

죽일 기세로 덤빈 것은 니키타도 마찬가지였다.

아브람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니키타는 혼자서 세 명을 상대로 분투했다.

니키타는 덤벼드는 기세로 힐링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걸 쳐다보면서, 세르게이도 힐링 포션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미겔과 바실리사는 경상으로 끝났다.

“하··· 하나만 더 마시게 해다오.”

손이 묶인 자신에게 힐링 포션을 먹여주던 미겔에게, 니키타가 말했다.

유리병의 붉은 액체가 어느새 다 사라졌다.

이렇게 양이 적은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미겔이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이준기는 고개를 저었다.

니키타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희망이라고는 한 줌도 남지 않고 완전히 새어 나가버린 목소리로, 니키타가 중얼거렸다.

“어차피··· 죽일 거잖아. 힐링 포션이라도 마시게 해줘···”

미겔이 또다시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바실리사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너희는··· 적에게 자비를 베푼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마을 회관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바실리사가 니키타의 앞에 섰다.

그녀의 그림자가 자기를 덮치자, 니키타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사무실 조명을 배경으로 자기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마녀 같았다.

“니키타 예세닌.”

“···”

“살인 17건, 살인 교사 29건, 그리고 전쟁 범죄를 포함한 기타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 사형을 언도한다.”

“마음대로··· 해라.”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나?”

“크림반도는··· 러시아 사람들이 살아온 땅이다. 그걸 되찾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건 너도 인정해주길 바란다. 너도··· 러시아인이잖아.”

“그게··· 마지막 할 말이라고?”

“구차한 모습을 보고 싶은 거냐?”

“아니다. 그럴 의도는 없었어. 정말이다.”

“그래, 그럼. 자비로운 죽음을 허락해 줄 수 있을까?”

“그래.”

바실리사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탁자에서 단검을 집어 들고, 그녀는 니키타의 앞에 와서 섰다.

손목을 풀어주고, 바실리사는 그에게 단검을 건넸다.

“고맙다.”

두 손으로 꽉 쥔 단검을, 니키타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정확히 찔러넣었다.

*****

힐링 포션이 허락되지 않은 아브람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이따금 토해냈다.

이준기가 그를 향해 말했다.

“병원이라도 보내주고 싶을 지경이군. 사실은 얼마나 조금밖에 다치지 않았는지, 너도 알면 놀랄 거다.”

“아파··· 정말 아프다··· 남의 고통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빨리 죽여···”

“여기저기, 베이고 긁힌 상처뿐이야. 너 자신의 화염 공격에 당한 것이 제일 심한 부상일걸?”

“흐흐흐··· 끝까지 조롱받는구나··· 나도 처량한 신세군. 담배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얼어 죽을 던전 같으니.”

바실리사가 아브람의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아브람은 고개를 들어 바실리사를 쳐다보았다.

이준기를 마주할 때 증오와 절망만이 가득하던 그의 눈에 조금 다른 빛이 나타났다.

“바실리사··· 넌··· 내 작품이다. 자랑스럽구나.”

“닥쳐라, 아브람.”

“곧 죽을 자의 말이다. 조금도 거짓이 섞이지 않은··· 진심이란 말이다. 너에게는 자비라는 것도 없냐?”

“자비라는 단어를 더럽히지 말아라. 더 고통스럽게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훗··· 죽여라, 바실리사. 뭘 망설이는 거냐? 네 인생을 통째로 가지고 놀았던 나다. 내가 밉지 않은 거냐?”

“아브람 쉬넨코.”

“응?”

“살인 11건, 살인 교사 37건···”

반쯤 우는 소리가 섞였지만, 아브람이 갑자기 크게 웃어젖혔다.

“으하하하··· 그건 다 내가 그냥 지어낸 숫자다··· 모르겠냐?”

“하긴, 그렇겠지.”

“내 것만 그래. 다른 녀석들의 범죄기록은 진짜다. 부하들 관리 차원에서 전부 다 기록해두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네가 보리스를 통해 받은 모스크바 마피아 녀석들의 범죄 기록은 전부 진짜야. 극동 마피아도 마찬가지고.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기록이지.”

“그렇다면, 너의 범죄기록은?”

“내가 왜 내 범죄기록을 남기겠나?”

“네가 어떤 범죄를 얼마나 저질러 왔는지, 모른다는 거냐?”

“바실리사··· 너는 네가 죽인 사람들 숫자를 기억하는 거냐?”

“다··· 당연하잖아!”

“그런가··· 역시, 넌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인가 보다.”

“당연히··· 너와는 다르다!”

“훗··· 흐흐흐.”

아브람은 고개를 떨구고 스스로를 비웃는 것처럼 웃었다.

바실리사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브람 쉬넨코.”

“또 뭐야.”

“너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범죄··· 아니, 죄. 그 대가로 너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푸가초프의 이름으로.”

“흐··· 흪! 푸하하하!”

아브람은 피를 토하며 웃어젖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고 갑자기 웃다가, 피가 기도로 넘어간 것이다.

“으하··· 으하하! 푸하하하! 푸··· 푸가초프라고? 그 조직 수장이 누구인지 잊었나?”

“푸가초프는··· 나다.”

“뭐라고?”

“푸가초프는 지금 이 시간부로 다시 태어난다. 푸가초프는, 러시아 사람들이 범죄조직과 부정 부패한 정부의 손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것이다. 내가 그 첫 번째 멤버다.”

“으하하하··· 맘대로 해라.”

“네 말이 맞다고 가정하면··· 러시아에는 아직도 자신이 푸가초프라는 저항 조직의 일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내 말이 맞나?”

“그래, 그렇다. 많다는 표현은 좀 어폐가 있을지 몰라도. 순수 푸가초프 멤버는 너까지 포함해서 전부 열 명 정도였으니까.”

“이리나도 나와 마찬가지였겠지? 자신이 푸가초프라는 저항 조직의 멤버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한 것이겠지?”

“이리나··· 그래, 맞아. 하지만 이리나는 결국 보리스의 복수를 하겠다며 날뛰는 걸로 끝났지. 푸가초프를 버렸어. 사벨리를 통해 내가 내린 지령도 듣지 않았단 말이다. 흐흐흐··· 그렇게 생각하니 이리나 보로비예프야말로 진정한 단 한 명의 푸가초프로군. 푸가초프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전에 자신이 조직을 버렸으니까.”

“사벨리?”

“흐흐흐. 다 말해주지. 사벨리 아이바조프스키(Saveliy Aivazovsky). 역시 순수 푸가초프 멤버다. 그래봤자 내 지령대로 움직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너와 함께 이리나의 접촉점이었던 녀석이지.”

“아브람, 네가 없어진 다음에 푸가초프는 어떻게 될까?”

“뭐? 그걸 나한테 묻는 거냐?”

“네가 말한 대로, 푸가초프는 점조직이다. 게다가, 접촉점이 별로 없는 조직 하부 멤버들은 대개 진짜 레지스탕스지. 그들은, 네가 사라져도 푸가초프의 이상을 믿고 전진할 것이다. 왜냐하면, 점조직이니까.”

“그···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신난다는 얘기냐?”

“세상을 네 마음대로 주물렀다고 생각하겠지만, 넌 사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푸가초프조차도··· 네 의도와는 달리 정말로 마피아에 대항하는 저항 조직으로 살아남을 거야.”

“그깟 것··· 상관없다. 내가 죽는 마당에··· 내가 눈 하나라도 까딱할 것 같나?”

“지옥 불에 타면서··· 이 세상에서 네가 원하던 것과는 반대로 돌아가는 것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너는 곱씹게 될 거다.”

“그따위 협박, 내게 통할 것 같나?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라도 할 것 같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내 말을 떠올리게 될 거다.”

“으하하하! 역시, 넌 내 딸이야. 정말 사랑스럽군.”

승자의 여유 때문인지, 푸가초프라는 저항 조직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런지, 바실리사는 분노하지 않았다.

아브람의 도발에도, 그녀는 침착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으하하하! 네가 사형 집행인이라도 되는 것 같지? 넌 살인자다, 바실리사. 나와 마찬가지야. 널 창조한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살인마란 말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

“좋아. 겨우 그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는 거지?”

“바실리사! 너를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보니와 클라이드가 될 수 있었단 말이다!”

“마지막 말을 남길 기회는 줬다. 이제, 죽어라.”

“보니와 클라이드! 바실리사와 아브람!”

바실리사의 손에 그녀의 무기, ‘북해의 바람’이 쥐어졌다.

사형 집행인의 손에 칼이 쥐어졌음에도, 아브람은 여전히 광기에 휩싸인 듯 떠들어댔다.

“바실리사와 아브람! 환상의 2인조! 살인마 커플!”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바실리사는 검을 아래로 내렸다.

“바실리사와 아브···! 바··· 바실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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