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64화 (16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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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3: 아브람의 탑 (4)

Episode 43: 아브람의 탑 (4)

열네 번째 방에서 이준기 일행을 기다리는 다섯 명.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으면서, 니키타가 말했다.

“슬슬 배고파지는데요, 맛은 없지만 식량 패키지라도 먹을까요?”

“그래? 좋을 대로 해. 나는 됐으니, 먹고 싶은 사람은 먹도록.”

다들 의자에 앉자, 콜랴가 식량 패키지를 꺼내며 말했다.

“보스. 얘기나 더 해주시죠. 오늘 그 인간 폭탄은 왜 하신 건지, 하하.”

“으흐흐. 콜랴, 너는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잘 꺼내는구나. 기특한데?”

“감사합니다, 보스.”

“콜랴 말대로, 아까 그 인간 폭탄 얘기를 해주지. 일단, 다들 들었지만 바실리사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은 우크라이나 민병대 쪽의 내 끄나풀을 이용했다. 그놈이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대단히 궁금한걸··· 크크크.”

“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끄나풀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으흐흐. 그놈의 이름은 파벨 아킨페프다. 민병대 중령인지 뭔지 하는 놈인데, 원래도 우크라이나 육군 중령이라고 하더군. 뭐, 나라 꼴이 말이 아니어서 지금은 꽤 쪼들리게 살고 있지. 그래서 내 끄나풀이 된 것이고.”

“네···”

“나는 그놈에게 명령했지. 이곳 그라옌코로 오지 않으면 인질들을 다 죽이겠다는 메시지를, 바실리사에게 전달하라고. 여기에서 부가 설명을 하자면, 바실리사는 미겔 산체스라는 스페인 놈을 도와 내 부하를 죽였다. 그래서 미겔 산체스와 바실리사는 아는 사이가 됐지. 그런데 미겔 산체스라는 녀석은 내 끄나풀, 파벨 아킨페프의 지휘를 받는 입장이거든. 그러니까···”

“보스는 파벨 아킨페프에게 말해서, 미겔 산체스를 통해 바실리사를 끌어들이라고 한 거군요?”

“그래. 파벨 아킨페프가 미겔 산체스에게 그렇게 말하도록 시켰지. 아브람 일당은 아주 무서운 놈들이니까, 바실리사 정도 되는 실력자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염치 불고하고 부탁하라고.”

“음··· 맞는 말이잖아요.”

“으하하. 그래 맞는 말이지. 그러니까, 바실리사 일행은 파벨 그 녀석이랑 이미 만났을 거야. 미겔 산체스 입장에서도, 자기 직속 상관이 간곡히 부탁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했을 테니, 그 상관, 즉 파벨 녀석을 바실리사 일행에게 소개라도 시켜줘야 하는 입장이었을 것이고.”

“네, 보스. 그래서, 바실리사는 이미 보스의 최후통첩을 받았잖습니까. 그런데 아까 그 인간 폭탄을 또 굳이 보내신 이유가 뭔지···”

“그 얘기를 하려고 처음부터 맥락을 얘기한 거야. 왜냐하면··· 내가 그 촌뜨기 놈한테 폭탄을 둘러서 바실리사에게 보낸 이유는···”

“네···”

“파벨 그 녀석이 곤란해하는 걸 보고 싶어서지.”

“아···!”

콜랴가 가볍게 탄성을 내지르자, 아브람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하하. 바실리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아니, 자기가 크라프초프카에 있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고 폭탄맨을 보냈을까. 그렇게 생각할 거 아냐. 그렇담 제일 의심 가는 사람은 누구냐.”

“파벨 아킨페프죠.”

“그렇지. 더 나아가서 미겔 산체스까지 의심해도 좋고. 미겔은 꽤 고레벨 구원자니까, 둘이 치고받고 싸우면 더 좋은 거지. 직접 구경을 못 하는 것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따가 바실리사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보자고. 죽이기 전에 말야. 으하하.”

칭퉁 야우가 말했다.

“던전으로 입장한 것은 네 명입니다. 바실리사 일행 셋과 미겔 산체스겠죠.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았어요.”

“흥. 하긴 그렇군.”

“기다리는 것, 생각보다 지루하군요.”

“그것도 그렇구만.”

콜랴가 물었다.

“바실리사 녀석들이 옆방까지 오면, 이 방에서 들릴까요? 옆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올지, 여쭤보는 겁니다.”

칭퉁 야우가 뭐라고 말할 기색을 보이자, 아브람이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콜랴··· 네놈은 던전 상식이 모자라는군. 던전 안에서 폐쇄된 공간은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연결된 게 아니다. 아직까지 그걸 모르나?”

칭퉁 야우가 덧붙였다.

“보스 말씀이 맞습니다. 입구 오두막처럼 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문이 완전히 닫히는 공간이나 포탈 같은 걸 타고 이동하는 공간은 완전히 별개의 공간입니다. 문으로 연결된 100개의 방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이 던전은 그저 100개의 별도 공간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죠.”

“그렇군요. 진짜로 옆방이었다면, 소리를 듣고 미리 준비할 수도 있을 텐데. 아깝네요.”

아브람도 한마디 했다.

“준비는 무슨. 우린 다섯이고, 레벨도 높다. 저쪽은 제일 높은 게 아마 미겔 산체스일 거다. 43레벨. 바실리사는 보리스가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36레벨이었다고 했어. 그동안 렙업을 좀 했다고 해도 40레벨은 안 되겠지. 그런데 나는 46레벨이고, 야우 선생은 47레벨이지. 콜랴 너도 45레벨이고··· 도대체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니키타, 툐마도 42레벨, 40레벨이니까요.”

“싸움이 아니라, 징벌이라고나 할까··· 아니, 처형?”

“그렇군요, 보스!”

“처형하기 전에, 바실리사에게 해줄 말이 있어. 입이 간질거려 참을 수가 없군.”

“그게 뭡니까, 보스? 정말 궁금하군요.”

“특급 기밀이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나만의 정보다. 너희들,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미녀가 새파랗게 질리는 모습이라는 건, 보기 어려운 거니까.”

*****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이준기를 선두로 일행이 방에 들어섰다.

아브람은 회의 탁자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아 그들을 맞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대한 조용하게 문을 열었지만, 이준기도 아브람도 기습의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서는 이준기를 보고, 마피아 부하 세 명이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아브람은 그들을 제지하며 일어서서 말했다.

“어서 오시게. 자네는 이름이 뭔가, 선봉장 씨?”

“내 이름은 알료샤. 바실리사를 도와 너의 폭정을 끝내러 왔다.”

“폭정? 그 얘기는 천천히 하도록 하지. 다음, 뒤에 선 러시아놈의 이름은 뭐냐?”

세르게이가 어깨를 펴면서 대답했다.

“내 이름은 세르게이 로스코비츠다. 나쁜 놈들을 혼내주러 왔다.”

아브람의 곁에 서 있던 콜랴가 말했다.

“로스코비츠? 너 혹시··· 극동 마피아 녀석 아닌가?”

“훗. 날 알고 있나?”

“아하? 극동 마피아의 세르게이 로스코비츠가 맞다고? 너··· 미쳤어?”

“극동 마피아는 나의 과거일 뿐이다.”

“아, 그래? 배신자의 말로를 보여주마.”

칭퉁 야우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극동 마피아라뇨? 모스크바 마피아의 형제 조직 아닙니까?”

“우크라이나 때문에 극동 쪽에 신경을 좀 못 썼더니, 아주 개판이 된 모양이군.”

“저 녀석도 박제를 만들어야겠는데요? 본때를 보여야죠.”

“좋은 생각이군, 야우 선생.”

“남자 박제가 별로라고 생각하신다면, 절 주셔도 좋습니다. 기념품으로 들고 가죠.”

“으하하. 그것도 재미있겠군. 생각해 보겠네.”

아브람은 다시 이준기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빨간 머리 녀석은 미겔 산체스일 것이고. 바실리사··· 드디어 만나보는구나. 반갑다.”

바실리사가 아브람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나도 반가워 죽을 지경이다. 널··· 내 손으로 끝낼 수 있다니.”

아브람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바실리사에게 느끼한 미소를 날렸다.

“이봐, 바실리사. 내 말을 오해했군. 나는 정말 반갑다고 말한 거야. 우리가 나이 차이는 별로 안 나지만,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딸을 만나는 기분이군. 정말이야.”

“무슨 역겨운 소리냐, 아브람 쉬넨코. 푸가초프의 이름으로 너를 처형하겠다.”

“으하하하! 푸가초프라고! 이거 정말 재미있군! 그동안 고생한 걸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이야! 바로 너의 입에서, 푸가초프라는 이름을 들으니 말이야.”

“무슨 소리냐? 시답잖은 도발은 가소로울 뿐이다.”

“으하하하! 정말 귀엽지 않소, 야우 선생? 저게 바로··· 내 딸이오!”

아브람은 시원하게 웃어젖히며 칭퉁 야우에게 물었다.

칭퉁 야우가 의아하다는 눈으로 대답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딸이라뇨? 쉬넨코 회장 나이가 몇인데 저렇게 다 큰 딸이 있다는 겁니까?”

바실리사도 소리쳤다.

“아브람 쉬넨코! 나를 모욕하지 마라! 지금 당장 승부를 가리자!”

아브람이 웃음을 멈추고 칭퉁 야우에게 말했다.

“야우 선생은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하구려. 그러니까 내 말은··· 바실리사 엘리셰프가 내 딸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네? 그게 무슨···”

“내가 키웠으니, 내 딸이지!”

부르르 떨던 바실리사가 더는 참지 못하고 아브람에게 달려들었다.

방패를 몸에 붙이지도 않고, 그녀는 오른손의 검을 앞으로 내밀고 돌진했다.

5미터 남짓한 거리를 순식간에 가로질러 바실리사는 손에 든 칼날을 앞으로 내질렀다.

칭퉁 야우가 손을 앞으로 뻗어 마치 벌레를 쳐내듯이 손등을 휘둘렀다.

바실리사의 몸이 바닥으로 굴렀다.

그녀의 오른손에서 장검 ‘북해의 바람’이 떨어져 나와 공중에 떴다.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칭퉁 야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유지한 채, 손바닥을 까닥였다.

공중에 뜬 바실리사의 장검이 칭퉁 야우를 향해 움직였다.

“어엇?”

칭퉁 야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를 향해 다가오던 바실리사의 무기가 공중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눈을 더욱 부릅뜨면서, 칭퉁 야우는 윗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북해의 바람’은 공중에 뜬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무기를 가져간다면··· 그건 반칙 아니오?”

이준기가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오른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이준기는 왼손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텔레키네시스 대 텔레키네시스.

양편에 늘어선 사람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바실리사까지, 열네 개의 눈이 둘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넌 뭐냐? 알료샤라고 했나?”

“안녕하시오, 칭퉁 야우. 이름은 많이 들었소.”

“내 이름을 들었다고?”

“이제야 만나는군요. 난 말이오···”

이준기의 왼손이 까딱하며 움직였다.

공중에 멈춰 서 있던 장검이 이준기의 손으로 빨려들듯이 날아들었다.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외에 또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걸.”

뒤로 물러나 세르게이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바실리사에게, 이준기는 손안의 검을 넘겨주었다.

“으하하하하! 이거 걸작인데!”

작위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아브람이 마구 손뼉을 쳐댔다.

*****

“이거··· 정말 기대 이상이군. 오늘 정말 즐거운 싸움이 되겠어. 그렇지 않소, 야우 선생?”

아브람의 말에, 칭퉁 야우가 당황한 어조로 대답했다.

“봐준 겁니다. 보스에 대한 공격은 막아야겠지만, 무기를 빼앗는 것은 좀 심한 것 같아서.”

“으하하. 아무려면 어떻소. 바실리사의 부하 중에 저렇게 쓸만한 놈이 있을 줄은 나도 몰랐소.”

“저놈은 제가 직접 손봐주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하시오.”

아브람은 바실리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바실리사··· 좋은 부하를 두었구나. 감격스럽다.”

“부하라니··· 우릴 모욕하지 마라. 우린 동료다.”

“어떤 단어를 쓰든, 사실은 변하지 않지. 아무튼,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무슨 소리냐!”

“원래 계획은··· 다 죽이고 나서 너 하나만 살려둔 채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냐!”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저 정도 실력의 부하라니,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다.”

“우리가 왜 네 이야기 따위에 시간을 낭비해야 하지?”

“왜냐니··· 재미있기 때문이지. 너도 이야기를 듣고 나면 생각이 바뀔 거란다, 나의 아이야.”

“닥쳐라, 아브람! 이 이상 나를 모욕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아브람은 로션이라도 바르는 것처럼 손바닥으로 양쪽 볼을 쓰다듬어 내렸다.

“바실리사. 이건 정말로 중요한 얘기다. 너를 죽이기 전에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자비심이야. 너도 고마워할 거다. 그러니까··· 일단 얘기를 들어보는 게 어떨까?”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냐.”

“푸가초프 얘기다.”

“푸가···초프?”

“푸가초프의 수장을 만나보고 싶지 않은가?”

“뭐? 푸가초프의 수장을 네가 알고 있다고?”

“알고 있고말고.”

아브람은 회의 탁자 뒤에서 반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자, 바실리사, 인사해라. 푸가초프의 수장, 아브람 쉬넨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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