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63화 (16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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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3: 아브람의 탑 (3)

Episode 43: 아브람의 탑 (3)

“보스, 얘기 좀 해주십시오. 푸가초프의 이리나 보로비예프는 또 어떻게 엮으신 겁니까?”

기다리기 지루한지, 서열 4위의 콜랴 투르네포프가 물었다.

아브람 일행이 있는 방은 전형적인 사무실 세팅이었다.

그래서 책상도 의자도 많았다.

던전 포맷에 관한 칭퉁 야우의 설명도 끝났다.

회의 탁자에 둘러앉은 채, 어떤 사람은 탁자에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벽과 천장의 무늬를 세고 있었다.

콜랴의 제안을 아브람도 반기면서 말했다.

“으흐흐. 좋아. 심심한데 이야기나 해볼까.”

“지하조직이라는 게 원래 그렇기는 하겠지만, 푸가초프는 내부 분열이 심한 것 같네요. 이리나 보로비예프 그 여자는 바실리사에게 이를 간다면서요?”

“그래, 그렇지. 우선, 바실리 엘리셰프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 사실은 여자라는 것, 바실리사 엘리셰프라는 건 모두 알고 있지?”

“네. 보스께서 말씀해 주셨으니.”

칭퉁 야우가 물었다.

“아, 그래요? 원래는 남장이라도 하고 다녔나 보군요.”

“그래요. 남장을 하고 바실리 엘레셰프라는 이름을 썼지요. 극동 마피아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여자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죠?”

콜랴가 보스 대신 대답했다.

“배신자가 있었어요. 배신자에게 들은 정보죠.”

“흐흐, 콜랴.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걸, 그렇게 가로채면 어떡하나?”

“아··· 죄송합니다, 보스.”

“보리스 라비노비치라는 자가 있었소. 푸가초프의··· 나름 간부급이라고 하더군. 그가 우리에게 포섭되었지. 그를 통해서 바실리사의 정체를 알게 된 거지.”

칭퉁 야우가 물었다.

“그래요? 그 간부는 어떻게 포섭한 거죠?”

“포섭할 것도 없었지. 그가 제 발로 찾아왔소.”

“한심하군요. 돈 때문이었나요?”

“그렇소. 그자는 돈을 요구했지.”

“그가 배신한 것을, 푸가초프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겁니까?”

“글쎄. 그 점은 좀 애매한데. 보리스는 배신하고 얼마 안 있어 죽었으니까 말이오.”

“흠··· 배신자의 말로군요.”

“바로 바실리사에게 죽었소. 보리스가 바실리사를 우리 아지트 중 한 곳으로 유인해서 죽이려고 했는데, 오히려 당하고 말았지. 그때 내 부하가 열 명도 넘게 죽었다고. 구원자 한 명을 포함해서. 피해가 막심했지.”

“흐음···”

“그런데 그 직후에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지. 보리스가 푸가초프에 입회시킨 구원자 중에 이리나 보로비예프라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가 보리스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걸 알게 된 거지.”

“어떻게 그런 걸 알게 된 겁니까?”

“푸가초프에 배신자가 어디 보리스 하나뿐이겠소?”

“하하. 그렇군요. 쉬넨코 회장님의 정보망은 우리 중국 기준에서 판단해도 대단히 훌륭합니다.”

“칭찬 고맙소, 야우 선생. 어쨌든 난 이 이리나라는 여자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더구만.”

“흐음. 그래요?”

“이리나는 보리스가 죽은 데 대해서 바실리사에게 복수심을 품었소. 이 얼마나 좋은 상황이오? 적을 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말이오. 그래서, 이리나를 통해서 바실리사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는데, 이게 안 되더란 말이지.”

“왜죠?”

“이리나는 보리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바실리사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실리사와의 연락을 끊었소. 아시다시피 푸가초프는 점조직이오. 바실리사와 연결이 되는 것은 보리스와 이리나뿐이었는데, 이리나가 연락을 끊으니 바실리사와는 접촉할 방법이 없어졌지. 이리나가 복수심에 불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요. 그렇지만 않았어도 이리나를 통해 거짓 정보를 흘렸다면 쉽게 바실리사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지. 오늘 이 난리를 피우지 않아도 되었던 거란 말이오.”

콜랴가 물었다.

“그래도, 보스, 이리나는 결국 이곳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이리나는 바실리사를 죽이겠다고 혈안이 된 상태였으니까, 바실리사의 위치만 알려주면 곧바로 달려들 것이라고 예상했지. 정보원 노릇은 못 했지만, 대신 칼이 되어 준 거지.”

“이리나와 바실리사가 싸웠을까요?”

“당연하다. 이리나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용병을 고용했어. 거기에 내 부하 몇 명을 얹어주기까지 했지. 복수심에 불타는 녀석을 이용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지. 하지만 결국 거기까지였다.”

“네?”

“바실리사 일행이 던전에 들어왔다. 그 말은, 이리나가 바실리사를 막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지. 네 명이 들어왔다면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봐야지.”

“바실리사를 이곳으로 유인한 것도 첩자를 이용한 건가요?”

“물론이지, 콜랴. 하지만 더 자세한 것은 묻지 말라고. 다치는 수가 있으니.”

“무··· 물론입니다. 보스. 저는 그냥 궁금해서.”

“콜랴··· 그리고 야우 선생.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내 정보망은 그야말로 어디에나 있소. 러시아 정부나 푸가초프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민병대에도 있지. 바로 그걸 이용해서 바실리사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고.”

“대··· 대단합니다, 보스.”

콜랴가 박수를 치자, 니키타와 툐마도 얼른 따라 했다.

박수가 한참 이어졌다.

도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칭퉁 야우가 끼어들었다.

“박수는 그만 좀 하시죠. 보스가 훌륭한 건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 그래. 야우 선생 말대로 그만 좀 두라고. 얼굴 화끈거리게 이게 뭔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칭퉁 야우가 박수를 그만두게 한 것은 아브람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중국놈··· 맘에 안 드는군. 이따가 잘 봐두겠어. 실력이 정말 쓸만한지 말야.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때, 모두의 상태창에 메시지가 떴다.

- 지금까지 20개의 문을 열었습니다.

칭퉁 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냥 속도가 제법이군요. 천천히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겠습니다.”

“하긴 그렇군. 방 다섯 개 돌파하는 데 40분 정도 걸린 건가?”

“꼼꼼하시군요. 소요 시간을 재고 계셨다니.”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이 그저 요행만은 아니라는 얘기 아니겠소?”

*****

“열세 번째 방이에요.”

바실리사가 이준기를 따라 진입하며 속삭였다.

“고마워요, 바실리사. 출구는··· 동쪽이군요.”

“이 방은 순수 퍼즐이죠. 그렇다면 다음 방은···”

“소수 정예 몬스터와 퍼즐의 결합이군요.”

“미로가 아니니 기습은 어렵겠군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세르게이가 뒤따라 들어서면서 말했다.

“또··· 퍼즐이야? 그냥 퍼즐··· 이게 제일 싫은데.”

“그래도 간단한 퍼즐이잖아. 1,000조각짜리 그림 맞추기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런가··· 난 퍼즐이라면 뭐든지 싫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이건 해야지. 일이니까.”

“그래, 그렇지.”

던전의 퍼즐은 간단한 형태였다.

네 개의 벽면에 설치된 발판을 순서대로 누른다든가, 키릴 문자 알파벳을 차례로 눌러 단어를 완성시킨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키릴 문자라니, 외국인들은 차원문 정리도 못 하겠네.”

“러시아 사람에게 알파벳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하긴 그런가요. 스페인에 한자로 된 퍼즐 나오면 정말 겁나긴 하겠네요.”

방안에는 다섯 개의 책상이 한 줄로 정렬되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첫 번째 책상 위에는 뭔가가 놓여 있었고, 나머지는 비어 있었다.

그들은 첫 번째 책상을 향해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놓여 있었다.

B4 정도의 사이즈인 스테인드글라스는 동화 풍의 그림이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세르게이가 외쳤다.

“바실리사!”

바실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르게이가 말한 것이 자기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죽어가는 엄마의 곁을 지키는 소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구획 중 하나가 비어 있고, 책상 위에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유리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간단하잖아? 그냥 그림 맞추기네. 1,000조각은 아니지만.”

세르게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빈자리에 딱 맞는 유리 조각을 집었다.

이준기를 쳐다보며 그는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겠지? 여기에 놓는다?”

이준기도, 바실리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게이가 빈자리에 맞는 유리 조각을 올려놓자, 그림 전체가 빛을 내며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건너편의 두 번째 책상 위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나타났다.

“으흠··· 차례로 그림 맞추기인가? 동화 내용을 따라가면서?”

세르게이의 말에, 미겔이 물었다.

“바실리사? 설마 그게 동화 이름이에요?”

“네. <아름다운 바실리사>라는 동화죠. 러시아판 신데렐라.”

“아하!”

그 말을 듣고 미겔이 바실리사를 쳐다보았다.

바실리사가 흠칫하며 미겔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면서 그녀가 말했다.

“아아··· 죄송해요. 하지만 전 이거, 거의 트라우마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애들이 너무 놀려서···”

“에고··· 그렇겠군요. 저도 이름이 만약 ‘엘 시드’라도 됐다면···”

그림 동화를 보고 즐거운지, 세르게이가 흥얼거리며 말했다.

“바실리사는 정말 바실리사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바실리사 목걸이가···”

바실리사가 항의했다.

“그만해, 세르게이!”

“사실이잖아. 바실리사가 가진 아이템 이름이 ‘바실리사의 해골 랜턴’이란 말이에요.”

“에? 그건 또 뭐예요?”

“동화에 나오는 아이템이죠. 그런데 그걸 바실리사 엘리셰프 씨가 정말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

“네? 정말요? 이건 정말 대박이네요. 저도 이름을 아서라고 바꾸면 엑스칼리버가 생기려나. 하하하.”

바실리사가 노려보자, 세르게이는 ‘좀 봐줘’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준기가 말했다.

“던전 설계에 해당 지역 문화를 고려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기는 해요. 한국에도 그런 게 있으니까요.”

“하긴,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네요. 스페인에서도.”

“세르게이는 예전에 ‘바보 이반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고요.”

세르게이가 경악해서 입을 벌렸다.

“아아··· 그랬었지···”

“해골 왕의 면갑이 오히려 나은 거지.”

“남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군.”

“뭐, 아이템 이름이 무슨 상관이야. 나라면, ‘바보 온달의 갑옷’ 같은 게 나와도 감지덕지할 텐데.”

“바보 온달?”

“어느 나라에나 착한 바보에 관한 이야기는 있지.”

“하긴··· 바보는 무해하니까.”

*****

퍼즐이 싫다던 세르게이는 앞장서서 퍼즐을 맞추어나갔다.

첫 번째 그림은 죽어가는 엄마의 곁을 지키는 바실리사.

두 번째 그림은 새엄마와 새언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바실리사.

세 번째는 마녀를 찾아 숲을 헤매는 바실리사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였다.

네 번째 그림은 마녀가 바실리사에게 해골 랜턴을 건네주는 장면이었다.

커다란 유리 조각을 들어 빈자리에 채워 넣자, 그림이 빛났다.

그리고 다섯 번째 책상 위에 마지막 그림이 펼쳐졌다.

앞장선 세르게이를 따라, 일행은 다섯 번째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된 <아름다운 바실리사>의 한 장면이 놓여 있었다.

새엄마와 새언니가 바실리사 앞에 서 있다.

경악하며 손을 번쩍 올리는 그 둘.

해골 랜턴에서 불꽃이 나와 그들을 잡아먹기 직전이다.

이번 그림에서 비어 있는 부분은 해골 랜턴이다.

계모와 새언니를 향해 달려드는 불꽃이 튀어나온 그 자리가 비어 있다.

그런데 책상 위에는 미완성의 그림 외에 아무것도 없다.

빈자리를 채우는 데 써야 할, 여분의 색유리 조각이 없는 것이다.

“어어?”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세르게이는 책상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랍도 없는 책상에는 여분의 조각이 놓여있을 만한 장소가 딱히 없다.

바닥까지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세르게이는 이미 지나온 네 개의 책상으로 돌아가 꼼꼼히 살폈다.

완성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곁에 놓여 있던 여분의 조각들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네 개의 책상에는 완성된 그림이 하나씩 놓여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거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 세르게이를 보고, 이준기는 기억을 떠올렸다.

‘문 뒤에 문’ 포맷의 던전 퍼즐 중에는 아이템을 잡아먹는 퍼즐이 있다는 사실을.

이준기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바실리사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느다란 목에서 목걸이를 풀어내 손에 쥐었다.

“펜던트야,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는 동화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바실리사는 해골 펜던트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손이 스테인드글라스의 빈자리를 향해 움직였다.

펜던트가 빈자리에 놓이자, 스테인드글라스가 밝게 빛났다.

“아아··· 그렇게 되는 거구나.”

세르게이는 그렇게 말하고 바실리사를 바라보았다.

바실리사가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다행이네. 마침 이게 있어서.”

“모··· 목걸이가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고, 세르게이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바실리사의 목걸이를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스테인드글라스는 한 덩이로 불에 구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했다.

“어··· 이게 왜 안 떨어지지?”

세르게이가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펜던트는 이미 그림과 한 덩이가 되어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목걸이를 분리하려고 애쓰는 세르게이의 손을, 바실리사가 살포시 잡았다.

“됐어, 세르게이. 이게 이 퍼즐의 의미인 것 같아.”

“바실리사!”

“이제야 전래동화와 갈라지게 되는구나. 오히려 속이 시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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