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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2: 교차로 (7)
Episode 42: 교차로 (7)
그라옌코.
탱크까지 동원한 모스크바 마피아에 점령된 마을.
마침내 그들은 그곳에 들어섰다.
처음 느껴보는 한기가 그들을 휘감았다.
“이··· 이상하게 추운데?”
세르게이의 말에 바실리사가 대답했다.
“정말 그런데요. 도대체 왜죠?”
“설마···”
이준기는 회상했다.
‘이런 종류의 서늘함··· 느껴본 적이 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CCTV와 연동된 드론을 시작으로, 그들을 향한 맹공이 시작되었다.
방탄 헬멧까지 풀세트를 갖춘 병사들이 몰려왔다.
수십 명의 중무장 병력.
그러나 상대는 네 명이나 되는 구원자들.
게다가 전원 사격까지 잘하는 이상한 구원자들이다.
병사들은 하나씩 쓰러져갔다.
목덜미나 얼굴을 맞기도 하고, 방탄 헬멧을 90도로 직격해 들어온 탄환에 쓰러지기도 했다.
탱크를 호위하며 움직이던 병력이 모두 쓰러졌다.
이준기 일행의 소총 사격으로는 탱크의 외피를 뚫을 수 없다.
그러나 탱크도 그들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병사들과 교전 중에도 구원자들을 맞히지 못한 탱크의 주포가 그들의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제기랄!”
탱크 해치가 열리면서 병사들이 뛰어나왔다.
처음 두 명은 나오자마자 사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러나 세 번째 병사는 앞의 두 명을 방패로 삼아 탱크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미겔이 급하게 그를 향해 추가 사격을 가했지만 소용없었다.
“저 새끼들 잡아!”
탱크에서 탈출에 성공한 병사가 달려가면서 주변을 향해 외쳤다.
“기습 따위 소용없어! 당장 나와서 저놈들을 잡아! 나를 보호하란 말이다!”
탱크 근처의 길바닥에서 커다란 철판이 들썩거리면서 열렸다.
병사들이 함성을 외치며 쏟아져 나왔다.
도망가는 병사를 쫓던 이준기는 건물 뒤로 몸을 엄폐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말로만 듣던 우라 돌격이냐.”
새로 보충된 사람들의 방벽 뒤로 여유롭게 도망치면서, 도주하던 병사가 이준기 일행에게 크게 외쳤다.
“차원문 안에서 보자!”
이준기가 말했다.
“구원자였군.”
“이 마을에 차원문이 있었군요.”
“차원문이 이 마을의 불운이었구나.”
“러시아 국경 가까이 있기도 하고요.”
지하에서 튀어나온 병사들을 처리한 다음에도, 시가전은 길게 이어졌다.
골목에도, 건물 안에도 병사들이 숨어 있었다.
총성이 멈추었다가도, 이준기 일행이 엄폐물을 벗어나면 다시 총알이 날아오고는 했다.
마침내 총성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 태양은 이미 하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일행은 마피아 구원자가 도주했던 경로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을 회관이 가까워지자,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가 그들을 엄습했다.
“아··· 안돼!”
바실리사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이 열린 마을 회관에는 산더미처럼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인질로 잡혀 있던 마을 주민들이다.
전원이 이곳에 모여 처형당한 것이다.
*****
“요··· 용서할 수 없어!”
미겔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들은 마을 회관 정문으로 들어와, 뒷문을 통해 나가고 있었다.
시체의 산 옆으로, 두 사람 정도가 나란히 통과할 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치, 이 길을 따라서 오라는 듯이.
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마을 회관 뒷문을 통해, 조금 떨어진 거리에 차원문의 빛 소용돌이가 보였다.
또 다른 건물의 문 건너편이었다.
마을 회관을 나와, 그들은 그 건물을 향해 걸었다.
급조한 조립식 건물이었다.
외벽도 내벽도 페인트가 칠해져 있지 않았다.
차원문이 나타난 곳에, 나중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초라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값비싼 가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고급 바(bar) 시설에, 오크 나무로 만든 고급 책장, 벽걸이 TV, 아일랜드형 부엌···
고급 목제 사무용 책상, 그리고 마치 ‘회장님 자리’라고 써놓은 듯한 최고급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그 책상 바로 옆에, 차원문이 희끄무레한 빛을 내뿜으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높이 계산이 조금 틀렸는지, 차원문의 타원 맨 꼭대기는 지붕에 닿아 잘려있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벽걸이 TV 화면이 켜지면서 자동으로 영상이 재생되었다.
정문을 마주하고, 회장 책상 바로 뒤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이다.
원래 이 건물을 쓰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침입자인 그들을 위해 준비된 텔레비전.
“바실리사와 친구들이군? 환영한다.”
텔레비전, 인터넷, 잡지를 통해 익숙한 아브람 쉬넨코의 얼굴이 나타났다.
바로 이곳에서 찍은 영상.
회장 의자에 앉은 아브람 쉬넨코의 왼쪽으로 커다란 차원문의 일부가 보였다.
“여기까지 왔다니, 일단 축하한다. 내 최소한의 기대 수준은 일단 통과했다는 말이니까. 하하하하!”
화면 속의 아브람 쉬넨코가 공허하게 웃었다.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건지, 얼굴 근육은 움직이지 않은 채, 입만이 웃음소리를 내뿜었다.
“바실리사. 네가 나에게 끼친 피해는 정말··· 상상을 초월해. 천문학적이야. 그래서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내가 당신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 것이지. 어때? 마음에 들었나, 내 선물은? 마을 회관 말이야. 하하하핫!”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 아브람은 정말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이마에 손바닥을 집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10여 초를 넘기는 웃음이 계속되었다.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미겔이 말했다.
“저··· 저런 개자식!”
마침내 웃음이 멈추고, 아브람은 말을 계속했다.
화면 속의 그는 자신의 왼편에 위치한 차원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바로 이곳. 이 차원문 안에서 나는 당신을 기다릴 거야, 바실리사. 친구들과 함께 나를 따라오라고.”
아브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원문을 향해 움직이는 그를 카메라가 따라간다.
차원문 앞에 선 아브람이 말을 계속했다.
“이 차원문의 입장 인원 제한은 10명이다. 나는 네 명의 부하와 함께 안에서 기다리겠다. 몇 명이 몰려왔는지는 모르지만, 아쉽게도 손님은 다섯 명밖에 받을 수가 없어. 5대5··· 공평한 대결 아닌가?”
말을 끝내고 아브람은 천천히 왼쪽으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책상 앞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도착하자 그는 책상에 걸터앉아 말을 이었다.
“바실리사. 당신에게는 할 말이 아주 많아. 빨리 만나고 싶어 죽겠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죽어도 잊지 못할··· 그런 이야기를 말야.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난 당신을 아주 좋아해. 당신은 아름다워. 딱 내 취향이지. 아니, 오해하지 말라고. 나에게 여자는 많지. 러시아 최고의 청년 갑부니까, 귀찮아 죽겠는데 여자들이 줄줄 따라다니거든. 하지만··· 당신 같은 타입은 아직 없어. 뭐랄까··· 아버지에게 대드는 듯한 그 눈빛이 정말 맘에 들거든. 하하하.”
아브람은 건조하게 웃었다.
“아름다운 바실리사··· 당신의 시체는 내가 차원문에서 가지고 나올 거야. 내게 최고의 선물이니까. 당신은 아름다운 박제가 되어 내 사무실에 전시될 거야. 약속하지. 음흐흐흐···”
세르게이와 미겔이 흥분해서 외쳤다.
“미··· 미친!”
“사이코패스 같으니!”
바실리사는 오히려 침착했다.
이준기도 가만히 있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흥분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동안 화면 밖을 노려보던 아브람이 한 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바실리사. 그 여자는 잘 만나 봤나? 이리나 보로비예프 말야.”
이리나의 이름을 듣고, 바실리사를 시작으로 전원이 동요했다.
“물론, 그녀를 해치웠으니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당연해. 이리나 정도의 여자가 당신을 막을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그 여자는 보리스와 함께 지옥 불에 타고 있을 테니 말야. 바로 그게 그 여자가 원했던 거지.”
걸터앉은 자세에서 일어나 아브람은 화면 앞으로 다가왔다.
“더 말하면 재미가 없을 거야. 나머지 이야기는 던전 안에서 들려주지. 당신의 육체가 죽기 전에, 난 당신의 정신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것도 보고 싶거든. 생각만 해도 짜릿하군. 자, 이제 내 얘기는 끝났다. 빨리 들어와라. 보고 싶어 죽겠으니까.”
화면이 꺼졌다.
“결국··· 이리나도···”
세르게이가 말을 흐렸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직접, 아브람의 입에서 들을 거야. 지레짐작은 의미 없지.”
이준기도 말했다.
“바실리사 말이 맞아. 도발 따위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아브람을 생포해서, 직접 들으면 되는 거야.”
“그래. 알았어, 대장.”
미겔이 물었다.
“그런데, 이준기 씨. 우리끼리 괜찮을까요?”
“우린 네 명이나 되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네? 하하하.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냉철한 계산입니다. 게다가 보수적인 예측이죠.”
- 차원문 고유번호 13878. 랭크 B. ‘문 뒤에 문’.
- 차원문 소멸 조건: 문 100개 열기.
- 차원문 입장 조건: 입장 인원 제한 10인.
- 차원문 소멸 보상: 생존자 전원 1레벨 상승 및 보너스 스탯 포인트 10점.
- 퇴각 페널티: 2레벨 강등.
차원문 정보를 일독하고, 바실리사가 말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군요. 입장 인원 제한 말예요.”
*****
차원문 안으로 진입하자, 늘 보던 자판기와 보급품 선반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오두막이 아니다.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있음 직한 사무실의 모습이다.
지구 방향과 던전 방향으로 난 문도 모두 철제다.
미겔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현대식 대기실은 처음인데요?”
세르게이가 물었다.
“대장은 어때? 대장은 이런 식의 던전도 이미 본 거야?”
당연히 예전에 경험해 본 것이지만,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지면 곤란하다.
이준기는 거짓말로 대답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들은 얘기는 좀 있지만.”
“어? 정말이야? 좀 의왼데.”
“크게 다를 건 없다고 들었어. 문제는··· 방을 100개나 클리어해야 한다는 거지. 정확하게 말하면 99개지만.”
“아··· 그렇군. 문을 100개 여는 거니까.”
“오래 걸릴 거야.”
‘문 뒤에 문’ 포맷이라면 동일한 크기의 방 100개로 되어 있다.
한 변의 길이가 10미터가 조금 넘는, 정사각형 모양이다.
시작 위치의 대기실도 같은 형태다.
튼튼한 벽, 그리고 장애물의 존재를 고려해야 한다.
이준기는 벽을 손으로 쾅쾅 쳤다.
“게다가··· 다른 방에도 이런 가구나 장애물 같은 게 있을 수 있지. 그걸 고려해야 해.”
이준기의 말에, 바실리사가 물었다.
“B 등급 던전인데, 몬스터는 어떤 유형이 나올까요? 오크? 놀?”
“다른 B 등급과 마찬가지로 그런 녀석들이 나오겠죠.”
이준기는 물론 어떤 유형의 몬스터가 나오는지 알고 있다.
다른 던전 포맷보다 더 다양한 적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별다른 준비는 필요 없다.
그것보다는 방의 포맷이 다르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서로 다른 8가지 유형의 방이 무작위로 배치된다.
“오크나 고블린이 책상이나 선반 뒤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올 겁니다. 지형지물을 주의해야죠.”
“그건, 숲이나 설원 포맷이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네, 그렇죠. 그러니까 특별히 다를 건 없습니다.”
“춥지 않아서 좋네요. 실내라서.”
미겔이 멋쩍게 웃었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몬스터도 문제지만, 우리의 주적은 마피아잖아요. 먼저 들어온 그들이 유리하겠죠, 아무래도?”
“던전 포맷은 정말 다양하죠. B 등급 던전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들도 이런 유형은 처음일 겁니다. 먼저 들어왔다고 유리할 게 뭐 있겠어요?”
“문 뒤에 문··· 이라는 이름대로 되어 있는 던전이라면, 바로 그 문 뒤에 숨어 있다가 기습할까 봐요.”
“모든 문은 제가 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준기는 장착 중인 아이템 링크를 내보냈다.
- 다이내믹 폴리곤(Dynamic Polygon).
- 목걸이. 에픽 등급.
- 발동 효과: 하루에 한 번, 방어되지 않은 공격을 공격자에게 반사합니다.
“아아··· 그 아이템이 있었구나!”
세르게이가 말하자, 바실리사도 덧붙였다.
“그렇군요. 기습을 한 번 방어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 아이템은 기습을 한 번밖에 막아주지 못하잖아요? 그 아이템이 한 번 발동하고 난 다음에는, 제가 문을 열게요.”
바실리사가 자신의 성흔, ‘포켓 유니버스’의 설명을 링크했다.
- 포켓 유니버스.
- 심각한 수준의 대미지가 들어올 경우, 자동으로 방어 스킬이 발동합니다. 가장 적절한 방어 스킬이 발동되며, 발동에 필요한 스킬 책이 소모됩니다. 스킬 책이 모자랄 경우, 발동하지 않습니다.
세르게이가 한마디 했다.
“으음··· 기죽어서 함께 다니기도 쉽지 않군. 성흔이라는 거··· 되게 희귀하다고 들었는데, 우리 중에는 나만 없는 것 같은데? 맞지?”
이준기가 세르게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세르게이, 그래서 네가 제일 대단한 거야. 성흔 없이도 그 정도의 실력이니까. 안 그래?”
“그··· 그런가?”
세르게이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이준기가 바실리사에게 말했다.
“바실리사, 고마워요. 하지만 바실리사가 문을 열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방어해야 하는 기습은 딱 한 번, 아브람과 그의 일당이 숨어 있는 방문을 열 때뿐입니다. 설마, 우리가 몬스터에게 기습을 허용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