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56화 (15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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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2: 교차로 (3)

Episode 42: 교차로 (3)

우크라이나 내전.

미국 내전보다는 지리적 규모가 작고, 중국 내전보다는 개입된 사람들의 수가 적다.

그러나 당당하게 2022년 초 세계 3대 내전의 하나다.

아니,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내전이다.

내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 본질은 국가 간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러 나라가 개입된 전쟁.

내전이라는 딱지가 붙은 이유는, 표면적으로 그것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라는 건 현재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조차 출근하지 않고 총을 들고 거리를 떠돈다.

‘민병대’ 소속으로서.

이런 상황인 만큼, 친우크라이나 대 반우크라이나, 또는 침략자의 이름을 이용해서, 친러시아 대 반러시아 세력의 대결이라고 불러야 옳다.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전쟁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쪽을 도와 참전한 세력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유럽 10여 개 국가의 구원자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나름대로 조직을 갖추고 참전했지만, 나머지는 개인 차원에서 참전한 것이다.

러시아 쪽을 지원하는 것은, 중국 정부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만 떠돌고 있을 뿐, 그 실체가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러나 소문은 무서운 것.

중국에서 괴물 구원자를 보내 러시아 마피아를 돕는다는 말은 이미 세간의 화제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세력 쪽에 널리 퍼져 있었다.

“총알을 멈추는 구원자라고 하던데.”

“손을 앞으로 내뻗으면··· 총알이 오다가 멈춘다고 하더군.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말이야!”

“아니, 그러면 무적이잖아! 어떻게 죽여?”

“구원자로 죽여야지.”

“중국에서 비밀리에 육성한 특급 구원자라고 하던데. 유전공학을 이용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소문이 파다하지만, 정작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1월 28일 금요일, 오후 3시.

칭퉁 야우는 아브람 쉬넨코와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드디어 만나 뵙는군요. 쉬넨코 씨. 칭퉁 야우입니다.”

“아브람 쉬넨코요. 반갑소.”

“일주일이 넘었군요. 제가 공식적으로 당신들을 돕기 시작한 것도. 이제야 만나주시다니··· 참 영광입니다.”

“으하하. 그렇게 까칠하게 굴 것도 없잖소? 난, 바쁜 사람이오. 당신도 마찬가지겠지만.”

“텔레비전에서는 자주 뵈었습니다. 자주 얼굴 비추시던데요.”

“대중매체에서 절 그냥 놔두지를 않는군요. 인터뷰 요청 거절하는 게 제 비서가 하는 가장 큰 일이죠.”

“러시아의 일론 머스크, 러시아의 마윈이라고.”

“으하하. 그들이 제멋대로 가져다 붙인 별명이오. 당치도 않은 얘기지.”

“역시 그렇죠?”

“당연하지! 그들이 미국의 쉬넨코, 중국의 쉬넨코라고 불린다면 모를까! 주객전도 아니겠소!”

“흐흐흐. 역시 그렇군요.”

칭퉁 야우가 아브람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건 분명했지만, 둘은 애써 무시했다.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감정싸움이나 할 수는 없다.

칭퉁 야우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만나는 것은, 시점을 아주 적절하게 잡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제저녁 뉴스 봤습니다.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으하하. 칭찬이죠, 그거?”

“물론입니다. 화끈하게 일을 처리하시는 것이, 저와 스타일이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글쎄··· 내가 원래 그렇게 막 나가는 성격은 아니오. 하지만 이번에는 화가 좀 많이 나서··· 조금 과격하게 일을 진행했지.”

“최고입니다. 저라면··· 원래부터 그런 식으로 했을 겁니다. 제가 원래, 막 나가는 성격이라서요.”

“으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는군.”

“이걸 좀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칭퉁 야우는 테이블 위로 조간신문을 툭 던졌다.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사진은 탱크, T-80의 모습이었다.

- 우크라이나 동부의 작은 마을, 그라옌코의 공포.

- 탱크를 앞세운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마을. 마을 사람 전부가 인질.

- 우크라이나 내전의 규칙이 바뀌는가? 주변 국가들, 일제히 우려 표명.

“이게 다가 아니죠? 안 그렇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왜 호외를 발간하지 않는 거지? 임팩트가 충분히 강하지 않았나?”

칭퉁 야우가 내민 것은 아침 신문이다.

어제, 그러니까 1월 27일에 일어난 사건까지만을 다루고 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은 텔레비전을 봐야 알 수 있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든지.

“신문이라는 게··· 참 중요한 매체인데 말이죠. 발행 부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동감이오. 신문이라는 게 있어야 티타임도 더 우아한 것이데.”

“그래서··· 오늘 새벽 일도 축하드립니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오. 예상했던 것이라서 대비를 단단히 해두고 있었지.”

“우크라이나 놈들도 탱크를 동원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그놈들 생각하는 건 딱 그 정도 아니겠소?”

“탱크에는 헬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전형적인 생각 아닐까요?”

“우크라이나 녀석들은 겁쟁이요. 우리가 동원하는 수단, 거기까지만 따라가지. 더 이상의 수단을 쓰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지. 왜 그렇겠소?”

“후후··· 핵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무기 수준을 점점 높이다 보면, 결국 그들은 사다리 꼭대기를 쳐다보며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한단 말이오. 그걸 그놈들도 아는 거지.”

“예전에, 그러니까 한 30년 전에 소련이 망했을 때··· 러시아로 핵무기를 넘긴 것을 후회하고 있겠군요.”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어울리는 주인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거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다룰 줄이나 알겠소?”

“하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거니까요. 저는 핵무기야말로 어린애들이나 혹하는 무기라고 생각합니다만.”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칭퉁 야우는 자신만만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정확히 이해했다.

큰 이권이 걸린 사업이다.

사업 파트너를 화나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칭퉁 야우가 말을 수습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저는 그저 공무원. 국가적 대사 같은 것은 잘 모릅니다.”

“으하하! 생각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시오.”

칭퉁 야우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본론을 이야기하셔야죠.”

“아차차··· 그렇지. 오늘 야우 선생을 모신 것은···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그런 겁니다.”

“신나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소. 야우 선생과 같은 실력자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내가 만들었거든.”

“말씀하시죠.”

“이번 일요일, 그러니까 1월 30일. 하루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시겠소?”

“일요일이요?”

“그렇소. 탱크로 점령한 그곳, 거기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소.”

“바실리사 엘리셰프 말입니까?”

“그렇소.”

“방해를 받는 일은 없겠죠?”

“오늘 새벽에 이미 확인하지 않았소? 이제 그 마을은 우리 거요. 그렇게 피해를 보고 퇴각했는데, 또다시 기어들어 올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요. 우크라이나 놈들은 딱 그 정도지.”

“하긴··· 민간인이 그렇게 죽어 나갔으니.”

“흐흐흐.”

“전쟁은 역시 남의 땅에서 해야죠. 그래야 민간인이 죽어도 그쪽 민간인이 죽으니.”

“어때요? 구미가 좀 당기십니까?”

“물론입니다. 바실리사 엘리셰프와 그 부하들을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요! 너무 흥분돼서 오늘 밤잠이나 잘 수 있을런지···”

“으하하하! 역시 야우 선생은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나 보군요.”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건방지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져본 적이 없어서요.”

“으하하하! 야우 선생. 기대하겠소. 전적에 1승, 추가해주시오.”

“맡겨만 주십시오.”

*****

1월 29일 토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던 이준기는 문자를 수신했다.

광화문 차원문 클리어 소식을 휴대폰으로 확인하던 중이었다.

- 9995

1월 29일이니, 0-1-2-9.

여기에 9-8-7-6을 각각 더해서 10이 넘는 부분을 빼면, 9995.

미겔과 약속했던 연락 방법이다.

이준기는 표시된 번호로 전화를 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

“이준기 씨!”

“미겔.”

“어··· 어이가 없는 일이···”

“어이가 없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죠. 말씀하세요.”

“죄송하지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말씀하세요.”

“우크라이나로 다시 들어오셔야 하는 일입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준기는 컴퓨터 화면의 기사를 다시 쳐다보았다.

며칠 전부터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된 마을, 그라옌코의 모습이 떠 있었다.

1월 27일 오후, 러시아 측이 탱크를 밀고 그라옌코를 점령했다.

1월 28일 새벽, 우크라이나 역시 탱크와 기갑부대를 앞세워 탈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러시아군에 완전하게 당한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지 않았다.

순수히 군사력으로만 탈환군을 밀어낸 것.

패배에 당황한 우크라이나는 점령군이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았다고 비난했다.

그렇게 거짓을 말하고는 곧 후회했다.

그들의 주장을 사실로 만들어주겠다면서, 점령군은 마을 사람 일부를 처형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 각국은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도 비난했다.

그렇게 사태는 장기화되었다.

그라옌코에 대한 점령은 그렇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곳과 관련된 일이다.

미겔은 직접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준기는 맥락 사이에서 그것을 포착했다.

이준기 일행은 벨라루스의 한 작은 도시에서 머물고 있었다.

현지 구원자들을 도와 차원문을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행동의 시점은 예상보다도 빨리 왔다.

“어디로 가야 하지?”

세르게이가 물었다.

“크라프초프카? 그런 이름이야.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 나라 국경이 만나는 근처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의 작은 도시다.”

“우크라이나로 다시 들어가는군.”

“우크라이나 민병대 쪽 사람이 입국을 도와주기로 했어. 그렇다고 해서 100%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100%라는 게 어딨어. 언제나 변수는 있는 거지.”

“그래, 그렇지.”

바실리사가 말했다.

“그곳, 점령된 마을 그라옌코 부근이죠?”

“멀지 않아요.”

“러시아군이 가까이 있다는 얘기군요.”

“군대를 동원한 그라옌코 탈환 작전은 당분간 없을 겁니다.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으니까요.”

“그렇다면··· 특수부대 동원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특이사항이 있다면, 우리가 바로 그 특수부대라는 거죠.”

“그럴 줄 알았어요.”

세르게이가 끼어들었다.

“미겔이··· 그렇게 얘기했어? 통화가 짧았는데 그사이에 그런 얘기를 다 했나 해서.”

“네 말이 맞아, 세르게이. 미겔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지. 미겔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구출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어.”

“그렇군··· 그 사람이 그 마을에 있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대장?”

“그래. 그냥 예감이기는 한데.”

“그래서, 우리가 구출해야 하는 사람이 누군데?”

“펠릭스 코왈스키(Feliks Kowalski). 우크라이나 지원 총괄 담당인 폴란드 군인이라는군.”

*****

작전 개시는 1월 30일 일요일 아침.

3국 접경 지역의 우크라이나 쪽 소도시, 크라프초프카에서 새벽에 미겔과 만나기로 했다.

이준기 일행을 데리러 올 우크라이나 민병대 간부와는 3국 접경지대 벨라루스 쪽에서 만난다.

작전 실행 당일 새벽에 만나서, 브리핑을 받고, 곧바로 작전에 돌입한다.

보안 때문에 긴 이야기를 전화로 할 수 없다고, 미겔은 말했다.

이준기도 동의했다.

일행은 우선 국경 근처로 이동했다.

숙소를 잡고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내일은 긴 하루가 될 것이라고, 다들 예감했다.

“이젠 남이 의뢰하는 일까지 해야 하는군. 그야말로 용병 생활인데··· 정말 괜찮아요, 바실리사?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려도? 세르게이, 너도 괜찮아?”

“괜찮아요, 준기 씨. 저는 준기 씨 판단을 믿어요.”

“나도 대장이 결정하는 대로 한다. 이번에도 나쁜 녀석들을 혼내주고 착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일이잖아?”

이준기가 훗 하고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 주니까,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네. 이거, 세르게이식 화법인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대장이나 바실리사와 달리 그냥 무식쟁이야.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라고.”

“그래, 그래도 고마워, 세르게이. 이렇게나 나를 도와주니까 말이지. 바실리사도, 정말 고마워요.”

둘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대답했다.

“고마울 게 뭐 있어요, 우린 한 팀이잖아요.”

“그래, 대장. 우린 한 팀이잖아?”

이준기가 말했다.

“이렇게 힘든 일을 맡기다니. 미겔한테 이번 일 관련해서는 보수를 톡톡히 받으려고요.”

“하하. 뭔데요?”

“미겔 산체스라는 훌륭한 구원자가, 우리 용병팀을 위해 평생 봉사하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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