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55화 (15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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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2: 교차로 (2)

Episode 42: 교차로 (2)

1월 26일 아침 8시.

미겔을 떠나보내고, 이준기와 일행은 기차를 타고 민스크로 이동 중이었다.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한 유럽 세력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모스크바 마피아, 그리고 푸가초프 양쪽이 그들을 뒤쫓고 있는 상황.

점조직 푸가초프 내에서 바실리사의 접촉점인 이리나 보로비예프가 선봉이 되어 그들을 쫓고 있다.

푸가초프의 정보망을 이용하지 못하니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민스크에 도착하면, 미겔에게서 얻은 주소와 접선 방법을 이용해 유럽 조직과 접촉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내전에 직접 투입된 미겔 산체스도 조직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민족자결의 원칙을 지원한다는 대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전쟁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기밀 엄수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창밖으로 평화로운 겨울 들판의 모습이 펼쳐졌다.

바로 국경 너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벨라루스는 차분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이준기는 휴대폰 화면을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바실리사가 웃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계속 확인해요? 애인한테서 올 연락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 바실리사. 그게 아니고, 뉴스 보는 거예요.”

“뉴스요? 월드컵 결승이라도 하는 거예요?”

“하하. 비슷한 거죠. A 등급 차원문에 공격대가 진입하는 날이니까.”

“A 등급이라고요?”

A 등급이라는 말에 세르게이도 돌아보았다.

“서울 한복판이에요. 정말 어려운 싸움이 되겠죠.”

“A 등급이라면 도대체 뭐가 나올까요? 그걸··· 닫을 수는 있는 건가요?”

“그래서, 한일 연합 공격대가 진입한 모양입니다.”

“한일 연합 공격대요? 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는 이웃 나라끼리 전쟁이나 하는데, 한국과 일본은 사이가 좋군요. 보기 좋아요.”

“네··· 일단은. 급한 불을 꺼야죠.”

“차원문에서 몬스터가 나오는데, 왜 지구인들은 단합하지 못하는 걸까요? 공동의 적이 있다면 인류는 단합할 줄 알았어요. 영화에서는 그렇게 하잖아요?”

이준기도 늘 궁금해하던 문제다.

아마, 지구가 당장 멸망할 기세가 아니라서 그런 것 아닐까?

차원문이라는, 딱 먹기 좋은 크기로 서빙되는 위기에 사람들은 어느새 적응해버린 것이다.

차원문과 구원자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지구인들은 빠르게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이준기는 공시생 시절 읽었던 공상과학소설을 생각했다.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인의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지구인들이 단합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외계인을 신처럼 받드는 비밀조직, 즉 인류 문명의 배반자들이 인류에 맞선다.

현실은 오히려 더 참담했다.

중국 작가의 그 소설에서는 인류의 극히 일부분이 그 비밀조직에 가담한 것뿐이다.

인류의 99% 이상은 다가오는 위협에 직면하고 단합했다.

400년 뒤에 도착할 외계 함대를 무찌르기 위해 모든 국가들이 연합한 것이다.

반면, 차원문이 발생한 현실에서 인류는 단합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고 있다.

오히려 그 이전보다 더 사분오열된 모습이다.

차원문이라는 위협과 함께 구원자라는 신무기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콩가루처럼 분열된 세계 각국이 연합하게 되는 계기는 오히려 내부에서 나오게 된다.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존재는 몬스터가 아니라 구원자.

바로 조슈아 테일러와 그 일당이다.

조슈아의 위협에 세계 각국은 힘을 합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준기는 다시 휴대폰을 켜고 뉴스 포털을 확인했다.

벨라루스 시각으로는 아침 8시이지만, 한국 시각으로는 벌써 오후 2시다.

아침 10시 30분경에 공격대가 이미 차원문에 진입했다.

로스터가 이미 밝혀져 있어 궁금할 것도 많지 않은 공격대지만, 뉴스는 넘쳐흘렀다.

뉴스의 초점은 또다시 한일 연합 공격대가 만들어졌다는 것.

갑작스럽게,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일본인 구원자 10명이 추가로 투입된 것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 제3차 한일 연합 공격대! 사상 초유의 A 등급 던전 공략을 위한 협회의 포석인가.

- 사전 예고 없이 갑자기 투입된 추가 병력. 비밀 작전인가?

- 일본 측 구원자 명단 비공개. 그 이유는?

이준기가 예상했던 대로, 이상덕은 일본 세력을 끌어들였다.

랭킹 20위권 내의 구원자 전원을 투입했지만, 사상 초유의 A 등급 던전인 만큼 일본의 원조를 받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는 기사가 많았다.

신중한 성격의 이상덕 협회장에 대한 찬사를 실은 사설도 있었다.

소수 의견이 없지는 않았다.

광주 차원문에 이어 또 일본의 도움을 받게 되면 부채(負債)가 쌓이는 꼴이라고 지적한 기사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던 두 나라가 갑자기 왜 이렇게 화기애애한 것인지,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런 시각을 드러내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일본 세력이 개입하게 된 것까지는 이준기가 예상했던 범위였지만,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주 잠깐 동안, ‘속보’라는 이름으로 기사 제목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오보, 아니면 보도 통제.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파괴력이 있는 내용이었다.

- [속보] 광화문 공격대 전멸. 이상덕 협회장만 간신히 탈출.

30분쯤 전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기사.

클릭해보면 제목밖에 없는, 정말 말 그대로의 속보.

그것이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졌다.

다시 기사가 뜰까 싶어 계속해서 휴대폰을 열어보고 있지만, 뉴스 포털은 잠잠하다.

국내외 검색 엔진을 동원해서 뉴스 검색을 해봐도 마찬가지다.

이준기는 생각해보았다.

속보 기사가 떴다 사라졌던 시점을 생각하면, 공격대 전멸 시각은 1시 30분 이전이다.

세 시간 만에 한일 도합 30명의 고레벨 구원자들이 전멸했다고?

불가능한 사건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확률이 낮다.

30명이라면 입구에서 준비를 마치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린다.

서로 말도 안 통하는 한일 연합 공격대라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던전 포맷을 생각해도 그렇게 빨리 전멸하는 사건은 일어나기 쉽지 않다.

건물 안에 진입하고, 레이드 대상을 결정한 뒤 소환 절차까지 거쳐야 하는 ‘4대 천왕’ 포맷이다.

세 시간 내에 그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뭔가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해?”

세르게이의 말에, 이준기는 생각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고향에 생긴 차원문이라서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거지?”

“그렇지, 뭐. 신경을 끊으려야 그럴 수가 없네.”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가 보면? 아··· 안되나··· 사정이 있다고 했지.”

*****

민스크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그들은 택시를 잡았다.

“고양이 박물관(Cat Museum) 가주세요.”

“고양이 박물관? 그런 게 있어요?”

“모르세요?”

손님들이 내리기라도 할까 봐, 택시 기사는 일단 차를 출발시키면서 말했다.

“어디쯤인지 알려주시면···”

“일단 구시가(Old Town) 쪽으로 가주세요. 검색해서 주소 불러드릴게요.”

세르게이는 휴대폰을 빠르게 조작한 뒤, 검색한 주소를 기사에게 불러주었다.

기사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는 동안, 세르게이는 앞자리에서 뒤를 돌아 일행 둘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고양이 박물관이라니··· 난 고양이 별론데.”

“고양이가 왜 별로야?”

“난 개가 좋아. 고양이는 눈이···”

“그래? 고양이 눈 자세히 보면 되게 예쁜데. 보석 같다고.”

“에엑··· 고양이 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고?”

마치 지금 고양이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세르게이는 몸을 뒤로 뺐다.

“이거 곤란하네. 고양이 박물관이니까, 고양이가 있을 텐데. 세르게이는 밖에서 기다리는 게 나으려나.”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대장. 나도 같이 간다. 고양이가 별로라고 했지 무섭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바실리사가 고양이 같은 눈으로 세르게이를 쳐다보았다.

뒤를 보려고 잔뜩 틀었던 자세를 바로잡고, 세르게이는 다시 앞을 향해 바르게 앉았다.

고양이가 별로라고 말했지만, 무서워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고양이를 만나면 저렇게 어는 건 아닐까.

양팔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다니, 알수록 재미있는 녀석이다.

고양이 박물관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흔한 캣카페 이상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고양이 관련 여러 가지 물건이 전시 중이었지만, 박물관이라고까지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장소도 협소했다.

운영 방식도 캣카페와 마찬가지였다.

입장료에 음료값이 포함되어 있었다.

커피와 홍차 중에 고르라는 말에, 셋은 모두 커피를 주문했다.

한 모금을 마시고 조용히 입에서 잔을 떼는 이준기를 보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다행이다··· 내지는 ‘그것 봐라’라는 말투였다.

“역시 아니지?”

“응?”

“표정만 봐도 알겠구만. 하긴, 박물관에서 좋은 커피를 찾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그렇게 다 보여? 표정 관리를 좀 해야 하나.”

세르게이가 살짝 허리를 기대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정말··· 고양이 알러지라도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접선 장소가 이상해.”

고양이 박물관까지는 아니지만, 캣카페라면 가본 적이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동생이 억지로 끌고 간 것이다.

신림동 고시원에서 집과 학원을 반복하던 시절이었다.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해서 그런지, 캣카페는 그에게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준기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비시니언, 스핑크스, 스코티시 폴드 같이 흔히 접하지 못하는 종들의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코티시 폴드. 건강에도 좋지 않은 열성 유전 형질을,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강제하는 인간들··· 귀가 접혀있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의 마음속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짙은 회색 털을 가진 스코티시 폴드가 다가와 그의 다리에 머리를 비벼댔다.

세르게이는 이준기에게서 한 발짝 떨어지고, 바실리사는 오히려 반걸음 다가왔다.

바실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준기 씨, 고양이한테 인기가 좋네요?”

“아하하··· 이런 일은 처음인 것 같은데··· 이 스코티시 폴드는 접대묘인가봐요. 개냥이 수준일세···”

“그런 말 들은 것 같아요. 캣카페 같은 데 있는 고양이들은 붙임성이 좋다고.”

“아, 그렇군요? 어쩐지···”

“애초에 그런 고양이들을 고르는 건지, 이런 곳에 오게 되니까 고양이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만약 환경에 적응하는 쪽이라면, 좀 불쌍하죠?”

“에고··· 그건 정말 그렇네요.”

이준기는 쭈그리고 앉아 스코티시 폴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붙임성이 있는 고양이인 건지, 고양이는 눈을 감고 갸르릉 소리를 냈다.

고양이의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햇살 반짝이는 오후의 낮잠 같은 느낌이었다.

평화로운 세상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이미지 중 하나 아닐까.

불과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국경 건너편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인데 말이다.

커피는 별로지만, 고양이들과는 시간을 좀 더 보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온 이유는 일 때문이다.

게다가, 세르게이를 위해서라도 일을 빨리 끝내고 이곳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

사방팔방에 늘어져 있는 고양이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세르게이의 모습이 처량했다.

미겔에게 들은 대로, 이준기는 책꽂이 앞으로 갔다.

책꽂이의 비좁은 공간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이준기는 큰 소리로 물었다.

“영어로 된 책은 없습니까?”

장식용으로 꽂아 놓은 책들 중에 영어로 된 책이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그것이 접선 암호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곧바로 한 여자가 책꽂이 쪽으로 다가왔다.

고양이가 수 놓인 앞치마를 두른 그녀가 이준기에게 말했다.

“박물관에서 책이라도 읽으시려고요?”

“그냥 궁금해서요.”

“책은 많아요. 특별히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어요?”

“셰익스피어 있습니까? <맥베스>라는가···”

“아···!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왕위를 빼앗고, 그렇게 남의 땅을 빼앗으려는 자, 맥베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 조직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암구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기와 일행은 그녀를 따라서 창고를 겸하는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고양이 사료, 청소 도구, 각종 집기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좁은 공간이 더 좁아 보였다.

작은 테이블 옆에서 의자를 찾아 앉은 그들에게 직원이 물었다.

“어떻게 알고 오신 거죠? 인터넷 카페 가입하신 거예요?”

“아뇨. 사람 소개로 왔습니다.”

“그래요? 누구 소개죠?”

“미겔 산체스.”

“아··· 미겔. 그랬군요. 직접 만나신 거예요?”

“네.”

“미겔··· 무사하죠?”

“네. 미겔은 무사합니다만···”

“네? 그럼 이니고와 마누엘한테는 무슨 일이 생겼나요?”

“K.I.A(작전 중 사망)입니다.”

“아···! 그럴 수가···”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직원은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율리아라고 해요. 평 조직원입니다. 구원자가 아니라서 지원 업무를 맡고 있어요. 전쟁이니까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있어야 하니 힘들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미겔을 구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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