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54화 (15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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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2: 교차로 (1)

Episode 42: 교차로 (1)

너무 늦기 전에 출발하겠다는 미겔을 환송하고 나서, 셋은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우선 바실리사에게 이준기가 물었다.

“바실리사. 일단 즉각적인 위험은 벗어났습니다. 이제 따로 가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함께하셔도 좋고요.”

“당연히, 저는 함께하겠어요!”

이준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함께 해주시면, 저로서는 영광이죠. 정말 고마워요, 바실리사.”

“후후. 사실 저는 돈도 없어요. 앞으로도 더부살이하면서 신세 좀 져야겠네요. 두 분과는 달리, 저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아본 적도 없고.”

“하하하. 도시락 정도는 저도 사드릴 능력이 됩니다. 마요네즈까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바실리사는 큰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다음으로, 이준기는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세르게이···”

“나도 함께야, 대장!”

“정말 괜찮겠어? 원래 우크라이나까지 함께 오기로 한 거잖아? 우크라이나가 위험해서 벨라루스로 온 것이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려는 듯, 세르게이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를 가든, 나도 따라간다. 대장.”

“고맙기는 한데, 정말 그럴 필요는 없어. 알지? 넌 이제 나에게 빚이 없어, 세르게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려는 거야. 대장을 따라다니면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서.”

“위험한 일이라는 거, 알잖아.”

“어차피 위험한 인생을 살아왔어. 마피아로도, 구원자로도.”

그렇게 말하며 세르게이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해는 이미 지평선을 넘어갔고, 어스름이 퍼지고 있었다.

그래도, 화창한 날이다.

낮잠을 자느라 통째로 날려 먹기는 했지만.

이준기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고마워. 세르게이라면 든든하지.”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고맙네. 그런데···”

세르게이는 바실리사를 쳐다보았다.

이준기는 몰라도, 범죄자인 자신을 바실리사가 받아줄지 걱정하는 눈빛.

그러나,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바실리사가 냉큼 선수를 쳤다.

“세르게이, 너는 우리와 함께 가야 해.”

“정말이지? 고마워, 바실리사. 정말 고마워.”

“준기 씨는 빚이 없다고 했지만, 난 아냐.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빚을 갚으라고. 알았지?”

“그래. 그래. 고마워, 바실리사.”

세르게이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려 바실리사를 쳐다보았다.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바실리사.

여태껏, 그에게 그녀가 그런 환한 미소를 보여준 것은 처음이었다.

*****

우크라이나 모처.

모스크바 마피아 보스, 아브람 쉬넨코가 앉아 쉬고 있다.

럼을 넣은 홍차를 홀짝이며 그는 이제까지의 과정을 복기했다.

‘지하철역의 낙서··· 그게 발단이었지.’

1월 15일, 말은 많고 실속은 적은 이반 클리츠비치가 기자회견에 나섰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 열린 차원문을 정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워낙 사람들 시선 끄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말리지 못했다.

‘말렸어야 했나.’

그날 오후, 차원문은 소멸했지만 이반은 나오지 않았다.

던전 안에서 사망했다는 얘기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반 녀석은 저렙들 버스 기사를 자청했던 것인데.

차원문 근처에서 난데 없이 총기 난사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혼란을 틈타 자객들이 들어간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경찰 쪽 커넥션을 통해, 소멸 직전의 차원문에서 세 명이 나왔다는 보고도 받았다.

타샤 카플론스카야 모스크바 경찰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

여자 한 명, 남자 둘, 게다가 한 명은 아시아계라는 구체적인 정보도 들어왔다.

“푸··· 푸가초프 녀석들이 그렇게까지!”

“우리 조직 서열 5위를 암살하다니, 더는 놔두면 안 되겠습니다, 보스.”

“지금까지와는 너무 다른데요. 감히 겁도 없이···”

부하들이 분노해서 소리쳤다.

아브람은 귓전으로 그 말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푸가초프가 그럴 리가 없다.

예카테린부르크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쪽도 마찬가지다.

겨우 찾은 힘의 균형, 그래서 겨우 얻은 내전의 종결이다.

그걸 그들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리가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머지않아 의문은 풀렸다.

아직 뉴스에 보도되기도 전에, 부하 한 명이 보고했다.

“보··· 보스! 이런 사진이 지금 SNS에 퍼지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보았다.

레닌 기념 도서관 역.

지하철 플랫폼 벽면에 스프레이로 조잡하게 휘갈긴 낙서.

‘아브람 쉬넨코, 키예프에서 보자. – 이반.’

키예프에서 보자고 한 것으로 보아, 모스크바 마피아의 우크라이나 원정에 대해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이미 항간의 화제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적을 것이다.

이반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것은, 명백한 도발이다.

글 쓴 이가 이반 클리츠비치를 죽였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자신 만만한 녀석이라는 얘기.’

아브람은 준비해두었던 장기 말을 쓸 때가 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신호가 한 번 끝까지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다.

“네.”

“보리스, 나다.”

*****

투자 성과는 준수했다.

보리스는 바실리사 엘리셰프라는 여자에 관한 정보를 줄줄이 뱉어냈다.

“바실리사 엘리셰프? 블라디보스토크에 원수졌다는 그 사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이반을 죽이고 나한테 협박 낙서까지 남겼다고?”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낙서 얘기는 하지 않아서요. 게다가 뉴스에 따르면 낙서를 한 건 남자라고···”

“바실리사,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물론입니다. 내일··· 툴라의 차원문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툴라? 거기는 또 왜?”

“일행이 있는 모양이에요. 다 같이 결정한 거겠죠.”

“일행이 있는 건 나도 알아. 뉴스에도 나왔잖아. 3인조라고.”

“그··· 그렇죠.”

“툴라 지부 자식들은 도대체 뭘 하길래?”

“아··· 아마 제압된 것 같습니다.”

“제압?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무능해 빠져가지고···”

“죄···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고··· 내일 툴라 던전에 들어간다고?”

“어떻게 할까요? 제가 직접 들어가 볼까요? 지원 병력을 보내주시면···”

“이반 그 자식이 내 새끼들 열 명을 데리고 들어가 다 죽였다. 구원자가 남아도는지 아냐?”

“죄송합니다.”

“구원자를 반드시 구원자로 죽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래서 준비한 것이 여남은 명의 일반 병력으로 구성된 기습조였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는 순간, 총알 세례를 퍼붓는 것.

그러나 그것도 실패했다.

결과를 확인하러 간 부하는 우리 편만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현장을 보고했다.

“제기랄! 이거 대체 뭐야? 엘리셰프 그 여자가 또 이겼다고?”

“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좋다고, 좋아. 사냥감이 훌륭하면 사냥꾼은 의지를 더 불태울 뿐이지. 어디, 두고 보자.”

“여··· 연락을 해볼까요?”

“바실리사한테?”

“네.”

“이봐, 보리스. 배신이라는 건 말야, 타이밍이야. 지금 전화를 하면 네놈이 바실리사 뒤통수를 쳤다고 자백하는 것밖에 더 돼? 자백하고 싶어?”

“아··· 아닙니다.”

“일단 기다려. 저쪽이 너를 의심한다면 모를까, 그럴 확률은 별로 없지. 저쪽에서 너에게 전화를 해 올 거다.”

과연 전화가 왔고, 보리스는 들뜬 목소리로 아브람에게 보고했다.

“3인조 중에 살아남은 건 바실리사뿐이라고 합니다. 일단··· 포돌스크의 술집으로 오라고 얘기해뒀습니다.”

“포돌스크의 술집이라면, 나폴레옹?”

“네.”

“좋아. 타격대를 배치해 줄 테니, 확실하게 처리해. 부하들에게는 네가 우리 쪽 첩자라고 이야기해놨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내 부하들과 쓸데없는 잡담은 하지 마. 앞으로도 내게 중요한 에이전트로서 가치를 유지하려면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당장 준비해.”

“네, 보스. 그런데···”

“뭐야?”

“구원자도 하나 정도 붙여주십시오.”

“그쪽은 바실리사 하나라며?”

“네. 그렇기는 하지만···”

“좋아, 좋아. 바실리사가 생각보다 세다, 이거지? 내가 솜씨 좋은 놈 하나 붙여주지.”

“감사합니다, 보스!”

“보스라고 부르지 마. 우리 관계를 생각해 봐. 그게 가당키나 해?”

“아··· 알겠습니다.”

“물불 안 가리는 새파랗게 젊은 놈이 하나 있어. 맥스라고. 그 녀석을 붙여주마. 그러니까 오늘 일 잘 처리해.”

“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때의 통화 내용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해질 지경이다.

그 작전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패했다고 보고할 인원도 남지 않고 전멸했다.

다음 날, 아브람은 직접 포돌스크의 그 술집, ‘나폴레옹’에 갔다.

경찰이 미리 손을 써둔 덕에, 기자들은 꼬이지 않았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 건물이 참혹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대··· 대단하군요, 바실리사라는 그 여자는.”

함께 현장을 관찰하던 부하가 그렇게 말했다.

아브람이 면박을 줬다.

“이게··· 한 명의 소행으로 보이냐? 네 눈에는?”

“아··· 아닌가요?”

“적어도 두 방향에서 총탄이 날아들어 온 흔적이··· 이렇게나 많다! 바실리사라는 그 여자가 앞문으로 왔다가 뒷문으로 왔다가 하면서 총을 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자··· 잘못했습니다.”

“보리스가 잘못 알고 있었다. 그놈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셋 모두 살아있을 거야.”

부하들과 함께, 아브람은 술집 ‘나폴레옹’의 문을 나섰다.

사살된 조직원들과 함께, 폐허가 된 건물이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사라져갔다.

*****

이리나 보로비예프(Irina Boroviev).

푸가초프의 멤버이자, 바실리사의 공식 접촉점 중 한 명이다.

비공식적이지만, 그녀는 보리스 라비노비치와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천애 고아인 자신을 레지스탕스로 키워준 보리스.

그를 배신하고 죽이기까지 한 푸가초프의 배신자, 바실리사.

배신자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생존 이유다.

‘난 푸가초프가 아니다. 난 보리스의 딸이나 다름없어. 푸가초프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이용하는 조직일 뿐이다.’

지금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직은 그녀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

30레벨 후반에 이른 구원자를 버릴 조직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공식 접촉점, 사벨리를 통해 그녀는 여전히 푸가초프의 정보망을 이용하고 있다.

“바실리사가 배신자라는 증거가 있기라도 해?”

사벨리의 질문에, 이리나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러나 곧 평정심을 되찾고 대답했다.

“한두 번 이야기한 게 아니지만 한 번만 더 이야기해 드리죠. 보리스의 마지막 일정은 바실리사를 만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보리스라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사라져버렸어요! 시체도 못 찾았죠!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그 두 사건이 반드시 연관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그건 너도 알잖아?”

“이봐요, 사벨리. 내가 그렇게 아둔해 보여요? 가능성이 90%인 시나리오를 놔두고, 왜 내가 10%의 가능성을 시험해 봐야 하는 거죠?”

“바실리사에게 연락이 가능한 것은 너뿐이니까 그렇지.”

“바실리사와 연락이 끊긴 지 이미 오래됐어요. 바실리사는 제 연락을 받지도 않는다고요.”

“이봐, 이리나. 나도 알 건 알아. 바실리사가 아니라 네 쪽에서 연락을 끊은 거잖아.”

“좋아요. 그렇다고 해도, 벌써 열흘도 넘었어요. 연락을 안 한 지가! 그런데 갑자기 제가 연락을 하면 저쪽에서 뭐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바실리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바실리사의 현재 위치를 제일 알고 싶은 건 바로 저예요! 하지만 그녀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진실은 하나예요. 바실리사가 조직을 배신하고 보리스를 죽였다는 것.”

“보리스가 너와도 접촉을 유지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우린 점조직이야. 그렇게 비공식 채널을 두면 어떡해?”

“하! 지금 그게 문제예요? 이제 보리스가 죽었으니 비공식 채널은 없어졌어요. 문제 해결됐군요.”

“사적인 원한은 나중이다, 이리나. 조직의 명령을 우선해줬으면 좋겠어.”

“배신자의 처단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니, 조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우리 조직 보스는 누구예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그건 네가 알 필요 없어. 아니, 사실 나도 몰라.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평 조직원이다.”

“그래서, 지금 극동 마피아 견제를 가라고요? 하바로프스크에?”

“그래. 그게 내가 하달받은 내용이야.”

“싫어요. 제가 부탁한 정보나 좀 알아봐 줘요.”

그렇게 실속 없는 대화를 한 것이 며칠 전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다른 내용의 연락을 받았다.

“이리나!”

“사벨리? 무슨 일이에요?”

“바실리사의 위치가 확인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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