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52화 (15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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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6)

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6)

어둠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날아오던 총알이 공중에 멈춰 섰다.

세르게이, 바실리사, 그리고 미겔 산체스.

구원자들의 향상된 시각으로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총알 멈추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칭퉁 야우의 신들린 컨트롤을 보고 기가 죽은 세르게이에게, 이준기는 그렇게 말했다.

그동안 목격한 것은 물론, 직접 당한 것도 있는 세르게이는 이준기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말을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다.

자신이 요청한 대로, 저격수의 총알을 ‘텔레키네시스’로 멈추는 이준기를 보고 세르게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대장!’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확고부동한 이준기 교의 신자가 된 세르게이,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동료, 바실리사와 미겔 산체스가 바라보는 가운데,

0.1초 정도 공중에 떠 있던 총탄은 왔던 길을 거슬러 날아갔다.

날아든 강속구를 방망이로 받아치는 타자처럼,

이준기는 날아온 총탄의 궤적을 뒤집었다.

총탄은 쾌속으로 일직선을 그으며 왔던 길을 거슬러 날아갔다.

멀리 떨어진 나무 위에서, 무거운 물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에 총을 맞은 저격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세르게이가 낮은 목소리로 이준기에게 말했다.

“확인해야 할까? 지금 대장이 처리한 저격수 말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조심하면서 국경을 넘자.”

“그··· 그래, 대장.”

*****

국경을 넘고도 그들은 1킬로미터를 더 움직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제 좀 쉴까.”

불침번 첫 순번은 미겔이 자청했다.

세르게이는 눈을 붙이자마자 쌕쌕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이준기도 조금 후에 잠들었다.

바실리사는 깨어 있었다.

이미 해가 뜨는 중이다.

지금 잠들어 봤자 곧 깰 것이다.

그녀는 눈에 덮었던 손수건을 치우고 일어났다.

급한 대로 만든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겹게 타고 있었다.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미겔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주무시게요?”

“지금 자서 뭐 하겠어요. 이미 아침인데.”

“그런가요. 하긴, 해가 뜨려고 하네요.”

잠시동안 그들은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미겔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바실리사는 러시아 사람이죠?”

“네.”

“세르게이도.”

“네, 그래요. 러시아인이 왜 러시아에 맞서 싸우냐는 거죠?”

미겔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네.”

“저는,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마피아에 맞서 싸우는 겁니다.”

“아!”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 미겔이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말했다.

“저는··· 민족주의에 갇혀 있는 걸까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서 전쟁이나 일으키는.”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거잖아요.”

“훗. 엘리셰프 씨는 참 말을 멋지게 하시네요.”

“아··· 이거 저작권 있는 건데. 제 말이 아니고 준기 씨 말이에요.”

“에, 그래요?”

“세르게이가 말해줬어요. 왜 러시아에 와 있냐고 물었는데, 준기 씨가 그렇게 대답했다고 하더라고요.”

바실리사는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 말했다.

“누구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법이지.”

“우하하···!”

웃음을 터뜨렸다가 미겔은 자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피곤한 건지, 세르게이와 이준기는 여전히 잘 자고 있었다.

바실리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러시아가 아니라 마피아와 싸운다는 말도 준기 씨 거예요.”

“아, 그래요?”

“세르게이에게 그렇게 말하더군요. 러시아가 아니라 마피아에 적대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말이죠. 여기 우크라이나에 들어올 때, 그렇게 말했어요.”

“아···”

“국익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저나 세르게이는 민족반역자일지도 모르죠. 어쩌면 말이에요.”

“그···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민족을 배신한 사람이고, 산체스 씨는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건, 그저 각자 사정이 다른 것뿐이에요.”

“그렇···겠죠?”

“범죄조직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아보신 적이 있어요? 제 입장을 이해하려면 그런 경험이 필요해요. 말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해하기 쉽지 않죠.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가 되려면, 경험을··· 공유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각자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만 이야기한 거예요.”

바실리사의 말을 곱씹어본 다음, 미겔이 입을 열었다.

“범죄조직이 지배하는 세상··· 왠지 저도 알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엘리셰프 씨는 화내실지도 모르지만··· 스페인 정부가 공정하다고 믿는 바스크인은 많지 않아요. 우리는 바로 그 부분에 저항하는 겁니다. 차별에 저항한다고 하면, 왠지 더 옳은 가치를 위해 싸우는 느낌이군요. 민족주의자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말이에요.”

“화내지 않아요, 산체스 씨. 그리고, 바실리사라고 불러주세요. 엘리셰프라고 하닌까 왠지 어색하네요.”

“그럴까요? 그럼 저도 미겔이라고 불러주세요, 바실리사.”

“네, 그래요, 미겔.”

잠시 다시 침묵이 흘렀다.

말이 사라진 동안에는, 타닥거리며 타는 모닥불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이준기 저 사람은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말 못 할 사정이라고는 했지만, 혹시 바실리사는 아는가 해서요.”

“아뇨. 저도 몰라요. 저는 그저··· 지레짐작할 뿐이죠.”

“지레짐작이요?”

“불의를 참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하지만 제 말은 그냥 넘겨들어 주세요. 사실, 저는 준기 씨를 만나기 전부터 그의 팬이었으니까요. 팬심에 현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패··· 팬이라고요?”

“그렇게까지 반응하실 필요가 있어요? 구원자 팬덤은 엄청나잖아요. 구원자가 다른 구원자의 팬인 것도 흔한 일이고요.”

“이준기 씨가 유명한 사람인가 보죠? 저는 잘 몰랐어요.”

“헬렌 카자크나 조슈아 테일러에 비하면 덜 유명하겠지만, 나름 유명한데요, 이준기.”

“아··· 그랬군요.”

“그는 작년 8월 말에 각성했어요. 그런데 지금, 겨우 5개월 만에 40레벨 중반. 유명할 만하지 않나요?”

미겔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 정도예요?”

“한국에서는 이미 탑랭커죠. 한국 랭킹 공식 1위가 겨우 41레벨이에요. 준기 씨보다 훨씬 낮죠.”

“이준기 씨는 왜 한국 공식랭킹에 포함되지 않는 거죠?”

“준기 씨는 현재 실종 상태예요. 공식적으로는요. 비행기에서 추락했죠.”

“네?”

“뭔가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하죠? 그런데, 더 묻지는 않았어요. 준기 씨도 분명히 ‘말 못 할’ 사정이라고 했으니까요. 아마··· 한국도 구원자 계가 그렇게 반듯하지는 않은 거겠죠.”

“휴우···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게 다 그런 쪽이라는 게 우울하네요. 좋은 세상이라는 것도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해가 뜨네요.”

동쪽으로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주황색으로 지면이 덮이는 모습을 보니, 한겨울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을 정도로 따스해 보였다.

시각적으로만 느껴지는 온기이기는 하지만.

“후후. 아까 그거···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요.”

바실리사는 모닥불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로 미겔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총알을 멈추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걸 거꾸로 돌려보내다니.

세르게이가 ‘대장’이라 부르며 따르는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바실리사가 고개를 돌리고 미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사실 저도 오늘 처음 봤어요.”

“그래요?”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말은 했었어요, 예전에. 하지만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일이죠.”

“말을 했다고요? 총알을 멈출 수 있다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아··· 그런데 이 얘기를 해야 하나. 좀 상황이 복잡한데.”

“네? 곤란하시면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미겔은 우리 편이니까, 이야기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사실은, 세르게이와 제가 총알을 멈추는 사람을 본 적이 있거든요. 게다가 하필 러시아 마피아에 고용된 사람이었죠. 그러니까,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는 사람.”

“네에?”

“놀라시는 것도 당연해요. 저도 처음 봤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세르게이도 무척 침울해했죠. 너무 강한 적이 갑자기 나타나서.”

“어떻게 그런 일이···”

“세상은 넓어요. 존재하는 모든 강자들을 우리가 다 파악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총알을 멈추는 사람을 본 다음에?”

“세르게이가 하도 침울해하니까, 준기 씨가 말했죠. 그거, 자기도 할 줄 안다고.”

“아! 그런 맥락이라면, 그런 얘기를 해야겠군요. 팀의 사기를 생각하면.”

“네, 맞아요. 세르게이는 몰라도, 저는 그 얘기를 믿었죠. 팬심이라고 얘기하시면 별로 할 말도 없지만, 어쨌든 적어도 저는 믿었어요. 하지만··· 직접 보는 건 정말 또 다른 일이더라고요.”

“네, 분명 그럴 겁니다. 저도 너무 놀라서···”

“게다가, 준기 씨는 총알을 멈췄다가 다시 날려 보냈잖아요. 칭퉁 야우는 총알을 멈추기까지만 했어요.”

“아··· 그랬군요.”

“칭퉁 야우는 총알을 멈추게 했던 그 사람 이름이에요. 키예프에서 봤죠.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어요, 러시아 마피아를 지원하러 왔다고. 중국 이름··· 외우기는커녕 발음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나 세르게이나 칭퉁 야우의 이름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 정도로 충격이 컸던 거죠.”

“이해합니다.”

“아침 해가 너무 좋네요. 우리 편이 총알을 멈추고 그걸 다시 거꾸로 날려 보내는 걸 봐서 그런가, 하하.”

*****

세르게이도, 이준기도 머지않아 일어났다.

옷가지로 눈을 덮고는 있었지만, 해가 뜨고 나니 도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기지개를 켜면서 세르게이가 말했다.

“우와~ 잘 잤다. 잠깐이라도 푹 자니까 훨씬 낫네.”

모닥불을 끄고,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

“자꾸 밤낮을 바꾸게 해서 미안해요. 제가 원래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은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인데···”

“괜찮아요, 준기 씨. 저는 이런 거 익숙해요.”

“그럼, 나도 괜찮아, 대장! 이런 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말야···”

한 시간 정도 걷고 나서, 그들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햄버거 가게가 있었다.

이준기가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글로벌 경영 방침이 마음에 들기는 참 오랜만이군.”

“준기 씨 말버릇이에요. 저는 재미있는데, 미겔은 어때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버거 잭(Burger Jack)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아침 메뉴를 잔뜩 쌓아놓고, 커피를 마셔가며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대장, 여기 커피는 어때?”

“음··· B+ 정도?”

미겔이 물었다.

“오오··· 커피 감평까지 하세요?”

“물으니까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저보고 커피에 까다롭다고 해서··· 진짜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겠죠.”

“하하, 그건 B+라는 평점하고는 맞지 않는 한마디인데요? B+는 그냥 하신 말이고, 지금 그 말이 진짜 평점이군요.”

“그런가요? 하하.”

식사를 마치고, 미겔은 이준기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나오기로 한 것도 갑자기 어젯밤에 결정한 일이라서요.”

세르게이가 끼었다.

“대장이 말은 저렇게 해도, 속에 다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아니, 정말 아닌데, 세르게이. 나, 원래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야. 지금까지 같이 다니고도 그걸 몰라?”

“에에?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아직도 대장을 파악하지 못한 거네.”

“정말이라고. 나는 앞뒤도 안 맞고, 생각도 계획도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이렇게 허구헌날, ‘말 못 할’ 사정을 만들고 다니는 거지.”

“정말, 아무 생각 없어? 어디로 갈지? 뭘 할지?”

“휴우. 잠이라도 좀 자고 나면 뭔가 생각이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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