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50화 (150/248)

────────────────────────────────────

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4)

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4)

- 프로스트바이트(Frostbite).

- 5~10 대미지. 공격 속도 1.5초.

- 단검. 에픽 등급.

- 발동 효과: 유효 타격 시마다 상대방에게 빙결 효과를 가합니다. 15초 동안 유지되며, 최대 7회까지 중복됩니다. 빙결 효과에 걸린 적은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

참 좋은 무기다.

그러나 무기가 아무리 좋아도 맞히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금 전 안톤이 이준기를 상대로 그랬듯이.

‘귀검’씩이나 쓰고도 단 한 번의 유효타를 만들지 못하다니.

“고맙다, 안톤.”

프로스트바이트를 들고 일어서면서, 이준기는 시체가 된 안톤에게 말했다.

힘 스탯에 의한 대미지 보정이 있기는 하지만, ‘흑요석 칼날’의 대미지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는데, 좋은 무기를 얻게 된 것이다.

‘오캄’과 ‘카데쉬’는 발동 효과 때문에 계속 써야 하겠지만, 이제 흑요석 칼날과는 작별 인사를 해도 될 것 같다.

도망치는 안톤을 추격할 당시, 이미 러시아 팀은 괴멸된 상태였다.

남아 있는 일행이 걱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쪽에서 이준기를 걱정할 수도 있는 일.

이준기는 서둘러 돌아왔다.

“대장!”

“준기 씨!”

앉아서 쉬던 그들이 일어나며 이준기를 맞았다.

리더 막심 안드레예프를 제외하면, 모스크바 마피아 쪽은 전원 사망한 모양이다.

힐링 포션을 마시던 미겔 산체스도 뒤뚱거리며 일어났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모양.

“저는 미겔 산체스라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있다.

헬렌, 그리고 린핑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과거의 팀원이다.

전 세계를 돌아 샌프란시스코까지 조슈아 테일러를 추격했던 최후의 6인.

그 팀에서 근접 딜링과 잠행, 암습을 담당했던 미겔.

스페인 빌바오 출신이며, 바스크족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 중 하나다.

바스크 독립 국가 건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조슈아 테일러의 세계 지배를 막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준기 일행에 합류했다.

“이준기라고 해요. 처음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막심 안드레예프는 손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준기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 미겔을 향해 말했다.

“러시아 마피아가 그동안 죽 주장해 왔던 것이 맞다는 얘기인 거죠?”

“외세의 개입··· 이라고 저들이 말하는 것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스페인에서 달려왔죠.”

“동료분의 일은··· 안 됐습니다.”

“이니고(Inigo)··· 좋은 곳에 갔겠죠. 한평생 남을 위해서만 살아왔으니까요.”

“스페인에서는, 두 분만 오신 겁니까?”

“아뇨. 더 많이 있을 겁니다. 저희만 해도 처음에는 세 명이었어요. 마누엘(Manuel)까지.”

“그분은···”

“죽었어요. 죽을 각오를 하고 온 것이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겔 산체스라는 개인에 대해서라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한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이준기는 계속해서 물었다.

“스페인에,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단체가 조직되기라도 한 겁니까?”

“흠··· 더 설명을 드리기 전에 한 가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네. 뭐죠?”

“복잡한 설명을 피하려고 그냥 스페인에서 왔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저는 바스크에서 왔어요. 빌바오라는, 바스크족의 도시죠.”

바실리사도 세르게이도 어차피 한 번은 들어야 하는 설명이다.

이준기는 모르는 척 물었다.

“바스크?”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끼어 있는 아주 작은 지역이죠. 우리 바스크인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사람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말이죠. 카탈루냐도 독립한 마당에, 바스크가 스페인과 프랑스의 일부라는 건 용납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아··· 바스크 무장 투쟁.”

“들어보신 적이 있죠?”

“네. 아일랜드와 함께 유럽에서는 가장 강경한 무장투쟁 노선이라고···”

“강경한 무장투쟁이라고 하니 너무 무섭게 느껴지는군요. 바깥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게 그런 거겠죠.”

“하지만 최근에는 무장 투쟁 같은 건 없었다고,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구원자라는 새로운 변수를 가지고, 새로운 형태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죠. 카탈루냐처럼 성공한 케이스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바스크에서 오신 미겔 님.”

서글서글한 큰 눈에 주름을 잔뜩 잡으면서 미겔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미겔의 설명은 그랬다.

유럽 각국에서 우크라이나를 도우러 오는 사람들은 개인 자격으로 오는 것뿐이다.

그들은 무작정 우크라이나에 도착해서 경찰이나 군인을 잡고 물어본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민병대 본부로 안내되어, 그들은 실제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세르게이가 프로세스의 허점을 지적하려고 하자, 미겔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첩자가 들어올 수 있죠. 그래서 민병대 본부도 나름대로 보안 대책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러시아 침략자를 상대로 어느 정도 전공을 올리기 전까지는, 민병대의 간부를 만날 수 없어요. 지부 소속으로 활동하는 거죠.”

“그렇다면 본부는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산체스 씨는 현재 어느 쪽이신 거죠?”

“지부 레벨이냐 본부 레벨이냐를 물으시는 건가요?”

“네.”

“아직까지는 지부 레벨입니다. 1월 말까지 이곳 차원문을 방어하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다음 단계는 모스크바 마피아에 관한 정보 수집이다.

이준기는 묶인 채 앉아 있는 막심 안드레예프에게 물었다.

“이름, 그리고 소속을 말해라.”

“막심 안드레예프. 우크라이나 해방 전선(Ukraine Liberation Front) 간부다.”

모스크바 마피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해방 전선 소속이라 자신을 소개하다니.

적반하장격인 막심의 태도에 이준기는 기가 막혔다.

“해··· 해방 전선?”

“훗. 이름이 마음에 안 드나?”

“그래서··· 너는 이게 독립운동이라고 말하는 거냐?”

“독립···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겠지. 같은 민족끼리 모여서 살자는 거다. 그게 웃기나?”

“이건, 전쟁이잖아. 침략전쟁.”

“독립전쟁이다. 크림반도는 원래 우리 땅이다.”

막심 안드레예프는 크림반도가 왜 러시아 땅인지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했다.

이준기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건 잘 알고 있어. 이미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게다가, 여기 두 사람은 러시아 사람들이지.”

이준기는 세르게이와 바실리사를 가리켰다.

막심이 흥분하며 외쳤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세르게이 로스코비츠! 넌 뭐냐, 매국노냐?”

의외로 단호한 어조로, 세르게이는 대응했다.

“난, 원래 정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막심이 지지 않고 몰아붙였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중립을 지켜야지! 왜 조국의 일을 방해하는 거냐!”

“선악에는 조금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 나쁜 놈들을 혼내 주는 게 생각보다 즐거워서 말이지.”

“선악? 너 따위가 그런 걸 정한다고? 기준이라도 가지고 있나? 그냥 네 맘대로겠지. 안 그래?”

“마음대로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악이라는 건 있어. 예전에 마피아 짓을 하던 때와는 다르게, 나쁜 녀석들을 혼내 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밤에 잠도 잘 자고 말야.”

“아, 그러셔?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다! 마피아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죽이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셨다고?”

이준기가 나서려고 했지만, 세르게이는 눈짓으로 그럴 필요 없다고 신호했다.

세르게이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마피아에 들어갔던 것, 그건 내 실수다. 그 일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어.”

“러시아에서 마피아가 단지 범죄 조직이라고 생각하나? 러시아는 무정부 상태다! 마피아의 조직력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단 말이다!”

“궤변은 이미 충분히 들었어. 마피아들 중에는 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 지금 또 복습을 할 생각은 없다.”

이준기가 끼어들었다.

“오늘 작전의 개요를 말해라. 이곳 차원문이 너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하지?”

“할 말 없다.”

“나는, 제네바 협약 따위 몰라. 나쁜 놈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빨리 죽여라.”

“후발대가 있나?”

“···”

미겔이 말했다.

“여기 차원문이 중요한 이유는,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벨라루스를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이죠.”

“우크라이나 민병대 쪽도 같은 판단인 겁니까?”

“글쎄요. 이곳 차원문은 우크라이나에 들어올 때보다는 우크라이나에서 나갈 때 중요한 지점이죠.”

“입국할 때는 그냥 비행기나 기차로 들어온다는 얘기죠?”

“그렇죠.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나갈 때는, 즉 도망가야 할 때는 이미 신원이 노출된 상태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무리가 있죠.”

“차원문에서는 몬스터가 나옵니다.”

이준기가 너무 당연한 말을 진지하게 하자, 미겔은 조금 벙찐 표정을 지었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준기 씨 얘기는 이거예요. 차원문을 방치해서 얻는 이득이 있다고 해도, 차원문은 그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위협이 됩니다. 닫아도 괜찮냐는 질문이에요.”

이심전심. 이들이 이미 좋은 팀이라는 증거다.

이준기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해 주는 바실리사가 고마웠다.

“바로 그 얘기예요. 고마워요, 바실리사.”

*****

미겔은 차원문 봉쇄에 대해 동의했다.

막심 안드레예프의 처형 역할도 자원했다.

“마누엘, 이니고··· 그리고 죽어간 다른 동료들의 원한을 풀어줘야죠.”

말을 그렇게 했지만, 이준기는 알고 있다.

살인이라는, 마음에 큰 부담이 되는 행동을 직접 떠맡으려 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다.

말과 행동이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그는 언제나 사려가 깊었다.

가벼워 보이는 행동들 하나하나, 사실은 모두 깊은 숙고의 결과다.

던전 공략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46레벨의 이준기에게는 경험치가 들어오지도 않는 C등급 던전이다.

43레벨의 미겔, 39레벨의 바실리사, 36레벨의 세르게이에게도 너무 쉬운 던전.

-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 1시간 내에 차원문이 소멸합니다.

- 보물 상자가 생성되었습니다.

- 최소 레어 등급 아이템 1개가 보장됩니다.

일행은 입구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보물 상자를 확인했다.

아무에게도 필요치 않은, 그다지 성능이 좋지 않은 단검이 나왔다.

레어템이라고 했으니 서운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조금은 기운이 빠지는 상황.

미겔이 나섰다.

“정말, 아무도 필요 없다는 말씀이죠?”

세르게이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미겔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런 잡템을 욕심내는 건가?

이준기는 알고 있다.

‘이르헬의 눈’을 통해 재확인까지 했다.

미겔 산체스의 성흔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량차오의 망치’.

- 량차오의 망치.

- 아이템에서 마력을 추출, 다른 아이템에 무작위 특수 효과를 부여합니다.

이준기의 ‘운명의 사다리’, 린핑 루의 ‘샨티라의 거울’, 헬렌 카자크의 ‘라로쉬의 변칙’.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성흔이다.

그러나 미겔 산체스의 성흔은 달랐다.

쓸데없는 아이템을 재활용하여, 착용 중인 아이템의 성능을 개량하는 능력.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쓸 수 있는 능력이다.

길수연의 성흔, ‘보드칫의 행운’과 마찬가지로 팀에게 도움이 되는, 이타적인 성흔.

어리둥절해 하는 세르게이와 바실리사.

미겔은 모두를 돌아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성흔··· 이라고 아세요?”

세르게이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바실리사는 알아듣는 표정이었다.

미겔이 계속했다.

“저에게는··· 성흔이 있습니다. ‘량차오의 망치’라는 이름이에요. 량차오가 누군지는 저도 모르지만요, 하하하.”

미겔은 자신의 성흔에 관한 설명을 상태창에 공유했다.

세르게이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오오! 이런 게 가능해요?”

“네. 그래서요, 이 단검을 아무도 쓰시지 않을 거라면, 제가 마력을 추출해서, 다른 아이템을 강화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요? 본인이 쓰시지 않으시고?”

“오늘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 이렇게라도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요.”

바실리사가 말했다.

“산체스 씨, 그 성흔은 하루에 여러 번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어떤 아이템이라도 마력 추출이 가능한가요?”

“네. 레어 등급 이상이라면요.”

“그렇다면, 모스크바 마피아 멤버들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들도 가능하겠군요?”

세르게이가 신나서 말했다.

“아, 그렇네! 전부 해서 아이템이 대여섯 개는 될 것 같은데! 레어 등급만 해도.”

“그래. 우리가 쓰기에는 성능이 별로라고 생각해서 그냥 버려둔 것들. 이렇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미겔이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일어섰다.

“자, 망치질을 좀 해볼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