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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3)
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3)
- 차원문 고유번호 10831. 랭크 C. ‘벌목 현장’.
- 차원문 소멸 조건: 현장 감독 사망
- 차원문 소멸 보상: 레어 아이템 1개 이상.
- 퇴각 페널티: 1레벨 강등.
“또 벌목 현장이네. 삼림지대라서 그런가.”
“아아, 벌목 현장.”
이준기의 농담에, 세르게이가 의미심장하게 던전 유형 이름을 되뇌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둘이 ‘함께’ 깼던 바로 그 포맷이다.
멱살 잡혀 들어와서 억지로 깬 던전이기도 하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바로 그 던전.
바실리사가 말했다.
“벌목 현장은 저도 클리어해봤던 유형이네요.”
“그래요? 러시아에는 벌목 현장 포맷 던전이 많군요.”
“그런가 봐요. 묘하게 해당 지역과 던전을 매치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던전 마스터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군요.”
“이 모든 게 신의 장난이라면··· 장난기가 많은 신인가요 아니면 사려가 깊은 건가요.”
세르게이가 말했다.
“이 던전 포맷.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잖아. 처음에 도망 온 사람들도 그렇고, 나중에 쫓아 들어온 사람들도 몬스터 피해 다니려면 피곤하겠군.”
“오랫동안 열려 있었으니, 몬스터가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일 수도 있지. 하지만··· 대강 봐도 별로 그런 느낌은 아니네.”
셋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광활한 삼림 지대에 벌목꾼들이 바글바글 모여 열일하는 중이었다.
사할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밤중에 들어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밤중에도 이들은 횃불을 켜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오두막이 위치한 언덕으로부터 벌목 현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산을 깎아 만든 굽잇길이었다.
외길이다.
바로 그 길로, 도망자도 추격자도 지나갔을 것이다.
길 위에 핏자국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총격전이 끝난 지 아직 30분이 지나지 않았다.
핏자국을 살펴보며 세르게이가 말했다.
“도망치는 쪽에서 흘린 피겠지?”
“스페인 사람이라고 비명 지르는 소리가 다른 것도 아니고, 총을 맞고 비명을 지른 사람이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 그래도, 핏자국은 도망치는 쪽이라고 봐야겠지?”
바실리사가 말했다.
“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차원문 안으로 들어온 거 아닐까요?”
“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총상을 입지 않았더라도 도망칠 곳은 여기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하긴 그렇겠군요.”
“총을 맞았다면, 치료를 해야 했을 텐데, 쫓기는 입장이니 쉬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힐링 포션을 마시면서도 이동해야 했겠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말예요. 그렇다면, 이 핏자국은 스페인 구원자들의 피라고 봐야겠네요.”
세르게이가 끼어들었다.
“추격하는 쪽이었다면 힐링 포션을 마시고 치료를 끝낸 다음에 이동했겠지.”
“100% 확신은 못 하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핏자국이 누구 것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정보는 아냐. 아주 중상이 아니었다면 이미 총상은 치료됐을 거야.”
“그렇겠군.”
“여기에서 보이는 위치에는 도망자도 추격자도 없다는 게 더 중요한 정보겠지.”
“같은 포맷이라고 해서, 지형까지 똑같은 건 아니지? 사할린 던전에는 이렇게 내려다보는 언덕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맞아. 같은 포맷이라고 해도 지형은 던전마다 다르다. 지형을 모르니 도망치는 쪽이 불리해. 언제 몬스터들을 건드릴지 모르니까.”
“그렇군.”
잠시 머뭇거리다가, 세르게이가 이준기에게 물었다.
“그래서, 대장, 작전은?”
“우리는 추격자를 또 추격하는 입장이다. 우리가 제일 유리해.”
“그래서··· 무작정 뒤쫓자는 거야?”
“추격하는 거지. 울창한 숲에서 정찰이라면, 쉽잖아?”
세르게이가 그게 뭐가 쉽냐는 표정으로 바실리사를 쳐다보았다.
바실리사가 웃으며 이준기에게 대답했다.
“제일 쉽죠.”
*****
이준기야 그렇다고 치고, 바실리사의 정찰 실력에 세르게이는 감탄했다.
은폐 및 잠행은 물론, 먼 곳까지 시야를 확보하는 기술, 지형지물에서 흔적을 확인하는 기술, 어느 것 하나도 세르게이는 흉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르게이는 이준기와 바실리사의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다.
마침내 그들은 현장에 다다랐다.
벌목꾼들의 기계톱 소음에 섞여 쇠붙이들이 격돌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걸 이준기가 잡아냈다.
소리를 따라 도착한 현장.
오크 벌목꾼 둘과 함께 사람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유럽스러운 외모의 남자다.
꿈틀거리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사망한 듯하다.
추격자 쪽은 다섯 명 모두 무사해 보였다.
한 명이 힐링 포션을 들이키면서 주변을 살폈다.
큰 부상은 아닌 듯 보인다.
부상에서 회복 중인 건지, 애초에 작은 부상인데 힐링 포션을 들이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던전 안으로 사람이 진입했다는 메시지를 이미 상태창에서 보았을 텐데, 지원군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추격 중인 대상 외에 다른 적은 없다고 자신하는 듯, 큰 소리로 그는 외쳤다.
“모두 침착해! 어디론가 내뺐을 수도 있지만, 나무 뒤에 숨었을 수도 있다!”
쌍 단검을 든 샤프한 인상의 남자가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나 같으면 도망은 안 갑니다, 막심. 한 놈이라도 병신 만들어야죠. 기습할 거예요.”
둘의 대화로 보건대, 추격 중이던 적이 갑자기 모습을 감춘 모양이다.
리더가 말을 받았다.
“사라졌잖아.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고.”
“귀검입니다. 저도 가지고 있는 스킬이죠. 막심은 저와 함께 던전을 돌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 안톤도 가지고 있는 스킬이라면 잘 알겠지!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거지?”
“귀검의 지속시간은 2초. 벌써 한참 전에 지났죠. 지금쯤이라면,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겁니다.”
나무 뒤에 숨은 채로 세르게이는 이준기를 바라보았다.
불안한 기색이 떠오르는 눈동자에, 긴장한 듯 침을 삼키는 세르게이.
이준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검’을 가진 구원자가 지금 이곳에 적어도 세 명이 있다.
벌목 현장의 작업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린 가운데, 이곳 사람들만 침묵을 지켰다.
툭하면 끊어질 듯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공기를 휘감았다.
다음 순간, 깨질 듯 깨질 듯 이어지던 소음 속의 침묵 사이로, 한줄기 금속성 타격음이 지나갔다.
츠팟!
“크헉!”
러시아 마피아 중 하나가 다리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동료가 다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안톤은 자세를 낮춘 채 양손의 단검을 바깥으로 세워들고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주변을 세세하게 스캔이라도 하는 듯, 돌고 있다.
“지금!”
그렇게 외치면서, 안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피핏!
“컥!”
건너편의 나무 뒤에서 사람이 쓰러졌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 붉은 턱수염, 지금은 잔뜩 찡그렸지만 서글서글한 큰 눈.
이준기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미겔!’
이준기와 함께 조슈아 테일러에게 맞섰던 최후의 6인 중 하나, 미겔 산체스(Miguel Sanchez).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쓰러진 미겔의 바로 옆에서 안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톤이 단검을 내리질렀지만, 미겔은 옆으로 구르면서 피했다.
긴장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피아 리더, 막심이 드디어 상황을 파악한 듯, 외쳤다.
“놈이 쓰러졌다! 덤벼!”
미겔을 향해 마피아 넷이 달려 나갔다.
미겔에게 다리를 맞은 마피아는 아직 다리를 절뚝거렸다.
깊게 베인 모양이다.
바실리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준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준기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이준기의 부재(不在).
그 의미를 파악한 바실리사는 인벤토리에서 석궁을 꺼내 쥐었다.
스팟!
미겔을 향해 달려들던 마피아 하나가 다리를 붙잡고 나지막한 비탈을 굴렀다.
이준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을 보고, 바실리사도 쇠뇌의 방아쇠를 당겼다.
퍽!
일직선으로 미겔을 향해 움직이던 다른 마피아가 석궁 탄환을 맞고 주저앉았다.
그러는 사이, 미겔과 안톤은 서로 쌍 단검을 교차하며 뒹굴고 있었다.
피핏!
이준기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마피아의 옆에, 또 다른 한 명이 주저앉았다.
곁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이준기가, 조금 전 공격으로 주저앉은 그 마피아의 옆구리에 카데쉬를 찔러 넣었다.
“끄아악!”
쿵!
세르게이의 양손 둔기, ‘퍼시벌의 평온’이 허공을 세차게 가르고 땅을 찍었다.
모스크바 마피아 팀의 리더, 막심이 가까스로 그의 공격을 피하면서 외쳤다.
“뭐야, 이 새끼는? 아까 들어온 것이 우리 쪽 지원병력이 아니었다는 거야?”
몸을 돌리고 나서 세르게이를 향해 선 그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너, 넌··· 세르게이 아니냐? 세르게이 로스코비츠!”
****
일이 벌어진 순서는 그랬다.
러시아 팀에게서 달아나던 스페인 팀은 일하던 오크 벌목꾼 둘을 발견한다.
쓸데없이 동선을 늘이지는 말아야겠지만 애드는 피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가까스로 애드 반경 바깥에서 이동하는 그들.
그러나, 추적하던 러시아 팀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러시아팀은 원거리 공격으로 오크 벌목꾼들을 애드시켰다.
몬스터들과 뒤엉켜 허둥대는 스페인 팀을 상대로, 러시아 팀은 손쉽게 한 명을 쓰러뜨린다.
다른 한 명, 미겔 산체스는 스킬 ‘귀검’을 쓰고 시야에서 사라진다.
바로 그 시점에서 이준기 일행이 개입한 것이다.
전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5대1의 전투가 5대4로 바뀌었다.
크게 당황한 러시아 팀은 시작부터 일방적으로 밀렸다.
레벨로 보더라도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이준기, 바실리사, 세르게이의 레벨은 각각 46, 39, 36에 달한다.
미겔 산체스도 43레벨이나 된다.
반면 러시아 팀의 최고 레벨은 리더 막심 안드레예프. 41레벨.
귀검의 안톤이 40레벨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40레벨 미만이다.
러시아 팀은 하나씩 쓰러졌다.
시작부터 셋이 부상당했다.
이준기의 귀검과 연이은 공격에 둘이,
그리고 바실리사의 석궁에 한 명이 부상당했다.
바실리사가 세르게이를 도와 막심 안드레예프를 쓰러뜨리는 사이,
이준기는 안톤을 상대하는 동시에 부상당한 적들을 하나씩 솎아냈다.
결국 혼자 남게 된 안톤은 줄행랑을 선택했다.
“내가 쫓아간다.”
그렇게 말하고, 이준기가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리더 막심보다 레벨은 하나 낮지만, 러시아 팀의 에이스는 안톤이었다.
오면서 파악한 길을 거꾸로 가는 방법으로, 안톤은 몬스터의 애드를 피해 뛰었다.
그러나 이준기가 더 노련했다.
아무리 뛰어도 거리를 벌릴 수가 없다.
안톤은 생각했다.
‘도대체 저 녀석은 민첩 스탯을 얼마나 찍은 거지? 나보다 더 높단 말인가?’
쫓아오는 것은 단 한 명이다.
거리를 벌릴 수 없다면, 쓰러뜨려야 한다.
자존심을 건드려 일대일 대결로 몰고 갈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
그렇고 생각하고 안톤은 멈춰 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 이준기를 향해 외쳤다.
“좋다. 일대일 대결은 어떠냐?”
사뿐하게 정지하면서 이준기가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도발도 필요 없이, 적은 일대일 대결이라는 늪으로 스스로 걸어들어왔다.
안톤이 쌍 단검을 앞으로 내밀면서 외쳤다.
“넌 뭐냐? 러시아인이 맞기는 한 거냐? 왜 남의 나라 일에 끼어드는 거지?”
“난 그저 이 근처를 지나가던 이방인이다. 나쁜 놈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량이 심하게 부족한 성격이라, 간섭을 좀 하게 됐을 뿐이다.”
“나쁜 놈이라니? 뭘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거냐? 고토(故土)를 회복하는 게 왜 나쁜 일이지?”
“그따위 이념질에 사람 목숨이 희생돼야 한다면, 나쁜 일이 맞지.”
“이념질이라니? 다른 사람의 신념이라고 함부로 비하하지 마라.”
“신념? 너의 그 신념이 애국심이든 민족주의든 난 관심 없다. 다만, 그따위 머릿속의 허상을 위해서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역겨운 것이지.”
“고매한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이로군. 죽이기 전에 이름이나 알자.”
“난, 이준기다.”
안톤이 놀라서 물었다.
“뭐? 이준기? 정말이냐? 이준기라고?”
“곧 죽을 놈에게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나를 아나?”
“이준기? 죽지 않았다고? 비행기에서 추락했다면서?”
“뭐··· 여러 가지로 운이 따라줬지. 낙하산에 구멍이 나기는 했지만, 착지하기 전에 점멸을 썼다.”
“무슨 소리야? 비행기에서 추락했는데 스킬로 살아남았다는 얘기냐?”
“미안하지만 지금 우리는 대결 중인 걸로 아는데? 스킬 강의 시간이 아니란 말이다.”
“미··· 믿을 수 없어. 비행기에서 추락해서 스킬로 살아남았다고?”
“그게 그렇게 신기한가? 아쉽지만, 그걸 배우기 전에 너는 죽을 거다.”
“거짓말··· 거짓말이다. 네가 이준기라는 증거가 어디 있냐? 죽여주마.”
살의를 잔뜩 담아 외치기는 했지만, 안톤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떨렸다.
사상 최고의 속도로 레벨업의 사다리를 올라온 자, 이준기.
비행기 추락에서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아마, 레벨도 자신보다 더 높을 것이다.
일대일 대결에서는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안톤.
지금은 다르다.
회의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 채로, 그는 달려 나갔다.
“귀검!”
안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준기는 주석을 상대하던 때를 떠올렸다.
침착하게, 검날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만 막아내면 그만이다.
공격이 어디로 들어오는지는 거의 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