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48화 (14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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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2)

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2)

“잠깐. 멈추자.”

이준기가 말하고, 다들 멈춰 섰다.

지평선에 겹쳐 보이던 숲이 이제는 많이 가까워졌다.

나무들이 서로 구별되어 보이기 시작하는 정도.

그러나 풍경이 위화감을 강하게 풍긴다.

몇 년 전까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색 배합.

흰색은 구름 같이 포근한 느낌 대신 창백하고, 푸른색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이 공허하다.

천천히 회전하는, 희푸른 소용돌이.

“차, 차원문?”

“왜 저게 숲속에 있죠?”

“기차··· 때문일까요?”

차원문은 인구가 많은 곳, 그래서 대개 도시에 생긴다.

도시에서도 주택가보다는 도로, 그중에도 교차로에 많이 생긴다.

그래서 정착인구가 아니라 ‘유동인구’에 비례한다는 이론이 나왔다.

유동인구 이론에 따르면 교차로뿐 아니라 고속도로나 기찻길 부근에도 차원문이 많이 열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론은 여전히 이론일 뿐이다.

변덕스러운 던전 마스터가 그냥 아무 곳에나 열어젖힌다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차원문.

세르게이가 물었다.

“피해 가야 하겠지?”

“차원문이라면, 거점이다. 분명히 누군가 경비를 서고 있을 거야.”

바실리사도 한 마디.

“어느 쪽이냐가 문제겠지만요···”

“러시아군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쪽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안전하다고 할 수 없죠.”

“그쪽도 우리를 모르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모르니까요.”

바실리사는 ‘즐거운 농부’에서의 일을 생각하는 듯했다.

“어느 쪽이든, 체크는 해봐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온 이유를 생각하면 말이죠.”

“찬성해요.”

“나도, 대장. 그런데 짐은 어떻게 할까?”

“전투에 돌입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버리고 가는 게 맞겠지만··· 총은 어떻게 하지?”

현재 그들이 가진 총은 돌격소총 단 한 자루.

황금문 시가전 당시 이준기가 알렉세이 믈라디노프에게 빼앗은 것이다.

문제는···

“총알도 없잖아! 그걸 뭐하러 가져가?”

“총알이 없는 걸, 적은 모르겠지.”

“그건 그렇겠지만···”

“세르게이, 그리고 바실리사. 가방은 여기에 버려도 될 것 같아요. 이 근처라면 인적도 별로 없고, 이제부터는 체력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총도 버린다는 이야기지?”

“아니. 총은 내 가방에 넣어서 들고 갈게. 위협용으로 총을 쓸 수도 있고··· 가방 하나 정도쯤은···”

바실리사가 웃었다.

“앞뒤가 조금 안 맞네요. 체력 비축이 필요하다고 하시고서.”

이준기도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원래 앞뒤가 안 맞아요.”

*****

그들은 조용히 다가갔다.

아직은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저쪽에도 구원자가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구원자의 예민한 청력을 조심해야 한다.

조금씩 전진하는 그들.

과연, 구원자의 청력은 민감하다.

선두에서 다가가던 이준기가 다시 스톱 사인을 냈다.

“응?”

“쉿!”

멀리서 들리는 말소리.

사람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가 아니다.

인적 없는 이런 곳에, 더구나 이 시간에 누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꽤 큰 목소리로 잡담을 나누고 있다.

‘러시아어가 아니잖아?’

이준기는 생각했다.

유럽어는 맞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잠깐 배웠던 불어도 아니고.

스페인어 내지는 이탈리아어 정도 되려나?

너무 멀리에서 들려오는 외국어라 판단이 쉽지 않다.

아무튼 러시아어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큰 힌트다.

그렇게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을 때,

바실리사가 나즈막하게 말했다.

“스페인어군요.”

“아!”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셋 중에서 나만 무식한 것 같아.”

*****

1월 24일 월요일, 오전 0시 34분.

상황이 다시 급변했다.

차원문 방향의 지평선을 배경으로 반딧불이가 흩뿌려지는 것 같더니,

요란한 총격음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멀리서 벌어지는 지표면의 불꽃놀이.

주황색 불빛이 어두운 새벽을 배경으로 반짝거리고 나면,

2초 정도 뒤에 요란한 소리가 몰려온다.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비명에 이어, 러시아어가 들렸다.

“추격해! 차원문 안으로 도망간다!”

엄폐물이 별로 없는 황량한 겨울 들판.

총성이 들리는 즉시 그들은 걷기를 멈추고 몸을 숨겼다.

때마침 건초더미 한 덩이가 덩그렇게 밭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리가 모두 침전해 바닥으로 깔려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기다렸다.

적막이 다시 깔리자, 이준기가 말했다.

“할 일이 생긴 것 같지?”

“오늘 하루 정말 기네.”

“월요일이야. 자정이 지났어.”

“아아···”

*****

털모자로 머리와 귀를 덮은, 아직 앳된 모습의 청년 병사는 추위에 발을 굴렀다.

장갑을 끼고는 있었지만, 상황도 끝난 마당에 총을 굳이 손에 들고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총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총이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그는 총을 꼭 껴안았다.

“어어? 왜 이러지?”

총은 그의 품을 비집고 나와, 공중으로 떴다.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공중에서, 총은 180도 방향을 돌려 그를 향했다.

조정간이 딸깍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앞뒤로 움직였다.

“꼼짝 마.”

옅은 갈색 머리의 러시아인 남자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의 손에 들린 AK-74M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병사는 손을 들었다.

남자에 이어 짧은 금발 머리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냐?”

“그··· 그렇다.”

여자에 이어 이번에는 동양인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서 나타난 두 명의 앞으로 나왔다.

그가 손을 뻗자, 공중에서 병사를 겨냥하고 있던 소총이 그의 손을 향해 빨려가듯 날아갔다.

손아귀로 빨려 들어온 소총을 제대로 고쳐잡고, 동양인이 말했다.

“소속은?”

“소··· 소속?”

“모스크바 마피아, 맞지?”

“그··· 그렇다.”

이준기는 그를 잠시 흘끗 보더니 말했다.

“오오, 고급 인력이군.”

“무··· 무슨 얘기냐?”

“구원자가 차원문 보초라니.”

병사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르게이가 이준기에게 물었다.

“구원자야? 레벨은?”

“13.”

“쪼렙이군.”

“그래도 그렇지··· 모스크바 마피아는 구원자 인력이 남아도나?”

“모스크바까지는 잘 모르지만, 극동 마피아에서도 쪼렙 구원자는 막 굴리는 편이야. 언제 죽을지 모르니 굳이 귀하게 다룰 필요를 못 느끼는 거지. 적어도 20레벨은 돼야 제대로 구원자 취급을 받을 수 있다고.”

그건 사실 마피아만의 관행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구원자들의 평균 레벨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높아져 간다.

저레벨 구원자들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언제 죽어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저레벨 구원자에 대한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 세계적으로 내전이 확산된 이 시점에서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다.

제레벨 구원자가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건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르게이의 설명이 끝나자, 병사가 그에게 말했다.

“너··· 너도 마피아라는 거야? 극동 마피아?”

“질문하는 건 네가 아닐 텐데?”

“마··· 마피아라면 왜 나를 공격하는 거지?”

“졸업했어. 별로 수지가 맞는 일이 아니어서.”

병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준기가 질문했다.

“추가로 여기에 투입되는 병력이 있나?”

“그건 나도 모른다.”

“알고 있는 선에서 말해.”

“아마··· 아침이 되면 더 오지 않을까?”

“일반 병력 말하는 거겠지? 구원자가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그, 그래, 아마도. 일반인 병력이 오게 될 거다. 러시아 민병대나 우크라이나 경찰 출신 변절자가 오겠지. 여··· 여길 점령하게 되면, 지켜야 하니까. 나··· 나는 몰라. 대장이 결정할 일이니까.”

“차원문 안으로 들어간 사람 수는 얼마나 되나?”

“다··· 다섯이다.”

이준기가 세르게이와 바실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섯이나 들어갔다니, 상황이 급박하게 됐다.”

“그러게. 도망간 사람은 둘 정도겠지?”

바실리사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둘뿐이었어요.”

세르게이가 총구로 병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녀석은 어떡하지?”

이준기는 병사를 쳐다보았다.

대학생 정도 됐을 나이다.

벌써 마피아 소속으로 외국 원정이라니.

“시간이 없다. 빨리 대답해라.”

“아··· 알았다! 뭐든지 물어봐라.”

“오늘 작전 개요.”

“이곳 차원문 탈환이다.”

“일반 병력 백업도 없이, 구원자들끼리만 온 이유는 뭐지?”

“여길 지키는 녀석들이 세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

“그래도 마찬가지잖아? 많은 병력으로 밀지 않은 이유가 뭐냐?”

“차원문 안으로 도망가니까 그렇지.”

“바깥을 지키고 있으면 되잖아.”

“그건 해봤다. 일주일이 넘게 안 나오더라.”

일주일 동안 던전 식량 패키지라니, 여간 독종이 아니라고 이준기는 생각했다.

“여기 차원문이 그렇게 중요한가? 구원자를 여섯 명이나 투입할 정도로?”

“국경에서 가까워서 그렇다. 벨라루스를 통해 자꾸 서유럽 놈들이 쳐들어와서.”

“서유럽?”

“조금 전에 도망간 녀석들도 서유럽 놈들이다. 스페인에서 왔다고 들었다.”

“추격 대상이 누구인지, 혹시 알고 있나?”

“그런 건 모른다. 나는 바깥이나 지키는 역할이다. 네 말대로 쪼렙이라서 차원문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차원문 정보를 체크하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그건 그렇군. 여기 C등급이네. 13레벨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지.”

이준기가 다시 질문했다.

“좋아, 그럼, 들어간 녀석들에 대해 말해.”

“뭐··· 뭘?”

“이름, 레벨 정도는 알겠지? 그 외에 아는 것도 다 말해라.”

“대장은 막심 안드레예프(Maksim Andreyev). 레벨은 잘 모르지만 30레벨 후반 정도라고 들었다.”

세르게이와 바실리사가 그 이름을 듣고 한마디씩 했다.

“막심 안드레예프? 간부급인데?”

“막심 안드레예프. 모스크바 마피아 서열 7위쯤 될 거예요.”

병사는 나머지 네 명에 대해서도 이름과 대략적인 레벨을 말했다.

모두 듣고 나서, 이준기는 바실리사에게 물었다.

“혹시, 이런 녀석 정보도 가지고 있나요?”

바실리사가 앞으로 나서며 병사에게 물었다.

“네 이름은?”

“미··· 미트로판 알리코비치.”

바실리사가 이준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어요.”

“하긴, 그렇겠죠.”

“죽일게요.”

바실리사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병사가 새된 비명을 뱉어냈다.

“히이익!”

이준기가 말렸다.

“잠깐만요.”

“왜 그래요? 악의 씨앗이에요. 조금만 있으면 20레벨이 넘을 거고, 본격적으로 악행을 하고 돌아다니겠죠. 아니, 이미 많은 악행을 했을 거예요.”

*****

차원문 안쪽에서 그들은 다시 모였다.

먼저 세르게이가 입장하고,

다음으로 병사의 멱살을 쥔 채로 바실리사가 들어왔다.

맨 나중에 이준기가 들어왔다.

바실리사는 오두막 바닥으로 병사를 내동댕이쳤다.

병사가 애원했다.

“살려줘요! 저는 마피아가 된 것도 최근이고··· 별로 한 게 없어요! 제발··· 살려줘요!”

바실리사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제발 좀 믿어줘요! 전 그냥 똘마니잖아요! 제가 뭘 했겠어요?”

“하나만 묻겠다. 살인을 한 적 있나?”

“아뇨! 아니에요! 절대!”

바실리사가 옷깃 사이로 펜던트를 꺼냈다.

‘아름다운 바실리사의 해골 랜턴’.

그녀가 질문을 반복했다.

“다시 묻겠다. 살인을 한 적이 있어?”

“그··· 그건 뭐예요? 목걸이를 왜 저한테 들이미는 거예요?”

“질문에 대답해.”

바실리사의 차가운 눈초리에 병사는 흠칫했다.

눈앞에 드리워진 해골 모양의 펜던트가 섬뜩한 느낌으로 빛났다.

“대답해!”

“저··· 정말 없어요! 살인은 안 했어요!”

펜던트 해골 장식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붉은 실과 같은 것이 해골의 눈에서부터 나와 병사를 향해 다가왔다.

“아아악! 이거 뭐예요!”

바실리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살인자.”

병사의 얼굴을 휘감은 채, 붉은 실이 타올랐다.

“으아아악!”

조금 역겹다는 표정으로, 세르게이는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병사는 곧 시체로 바뀌었다.

바실리사가 이준기에게 말했다.

“그냥 밖에서 죽였어도 됐었잖아요.”

“그래요. 제가 또 잘못 판단했군요.”

“러시아예요. 한국이 아니라고요! 마피아에 구원자인 사람이 무고할 가능성은··· 없어요.”

이준기는 잠시 병사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실리사의 눈을 보았다.

“미안해요, 바실리사. 자꾸 이런 험한 일을 하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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