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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1)
Episode 41: 런어웨이 트레인 (1)
1월 23일 일요일.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는 저항 조직 ‘즐거운 농부’를 찾아갔다가 마지막 조직원, 루슬란을 만났다.
루슬란의 집 벽장에는 이리나 보로비예프가 숨어 있었다.
바실리사가 보리스와 푸가초프를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함정을 판 것이었다.
보리스에게 들은 마지막 정보에 따르면 바실리사 일행은 모두 죽고 바실리사 혼자여야 했다.
그러나 바실리사는 남자 한 명과 함께 루슬란의 집으로 들어왔다.
극동 마피아 멤버, 세르게이 로스코비츠.
구원자 둘을 상대할 수는 없어서, 이리나는 바실리사에 대한 공격을 일단 포기했다.
루슬란의 집을 나온 다음, 세르게이는 바실리사에게 이야기했다.
루슬란의 집에 누군가가 매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날 저녁, 정탐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이준기에게 세르게이와 바실리사는 그날 일을 이야기했다.
“큰일 날 뻔했군. 세르게이가 한 건 했는걸.”
“뭘··· 나도 밥값은 해야지.”
“세르게이, 바실리사, 짐을 챙기자. 오늘 밤 기차로 우크라이나에서 나가는 게 좋겠어.”
서로를 쳐다본 뒤, 바실리사가 이준기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칭퉁 야우까지 가세한 모스크바 마피아가 우리를 쫓고 있을 겁니다. 거기에 이리나와 푸가초프까지 우리를 쫓는다면··· 우크라이나 안에서 도망 다니는 건 한계가 있어요.”
“기차는··· 밤 기차가 있을까요?”
“네. 매일 밤 9시에 민스크로 가는 기차가 있어요. 바실리사나 세르게이가 정탐 다닐 때, 숙소에서 빈둥거리면서 알아놨죠.”
“민스크로 가게 되다니··· 벨라루스 출신이라고 둘러댔다가 정말로 벨라루스에 가게 됐군요.”
“벨라루스, 가 본 적 있나요?”
“아뇨. 처음이에요. 기대되는데요.”
바실리사가 그렇게 말하며 웃자, 세르게이도 웃으며 말했다.
“나도 벨라루스는 처음이야. 이러다가 세계 여행이라도 하겠는걸.”
바로 그런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2022년 5월 샌프란시스코 선언과 함께 이준기의 레지스탕스가 결성된다.
제6차 세계 구원자포럼에서 조슈아 테일러가 경악스러운 선언을 하자, 그 자리에 모였던 반대파 구원자들이 연락처를 교환한 것이 그 시초.
미국을 통일한 조슈아가 첫 해외 식민지로 영국을 지목하고, 영국에서 첫 전쟁이 시작된다.
헬렌 카자크의 도움 요청에 따라 런던에 모인 수많은 레지스탕스 구원자들.
내전 때문에 스페인에 묶여 있던 미겔 산체스를 제외하고, 최후의 6인 중 다섯 명은 런던에서부터 행동을 함께했다.
협회를 둘러싼 내분에 깊숙이 개입하는 바람에, 이번에 이준기는 원래보다 몇 달이나 먼저 외국에 나와 있게 되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이준기는 이미 동료 두 명을 모았다.
조슈아 테일러라는 주적은 아직 무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준기의 세계 방랑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짐은··· 어떻게 하지?”
“웬만한 것들은 버리고 가볍게 가면 좋겠지만, 우리는 지금 추적을 당하는 중이니까, 우리 흔적이 있는 물건은 전부 가져가야 할 것 같아. 버린다고 해도 벨라루스에다 버리자고.”
일곱 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온 집주인 할아버지는 황급히 짐을 싸는 손님들을 보면서 불안해했다.
이번에도 집주인을 진정시키는 역할은 세르게이가 맡았다.
“급하게 여행 일정이 바뀌어서 나가는 겁니다. 숙박요금은 돌려주지 않으셔도 돼요.”
각자의 가방에 짐을 쑤셔 넣고, 셋은 숙소를 나섰다.
“나는 기차역에 가서 표를 사 놓을게. 저녁도 거기에서 먹을 거니까, 둘은 저녁 먹고 기차 출발 30분 전까지만 기차역으로 와줘. 각자 따로.”
“알았어, 대장.”
“알았어요, 준기 씨.”
*****
기차는 아무 문제 없이 제시간에 출발했다.
셋은 같은 칸에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인 기차라면 같은 객차에서 따로 떨어져 앉으면 되지만, 침대차라서 별수 없었다.
다른 칸에 타게 되면 비상시에 연락이 쉽지 않다.
“내전 중인데도, 기차는 제시간에 출발하네요.”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주변 국가들과 관계가 악화되는 건 바라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폴란드나 벨라루스로 통하는 교통 시설은 양쪽 모두 공격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하더군요.”
“그렇겠군요. 벨라루스는 현재 중립적인 입장이지만 언제든지 반러시아 정책을 펼 수도 있을 테니 말이죠.”
“지금 정권은 약하게나마 친러시아적이지만,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죠.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벨라루스도 똑같은 위협을 느낄 테니까요.”
“폴란드는요?”
“폴란드는 또 다른 문제죠. 나토(NATO) 국가이기도 하고.”
밤 기차 여행이라, 일찍부터 잠을 청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국경을 통과할 때 여권을 보여줘야 할 텐데, 문제가 일어나려면 그때 일어날 것이다.
잠결에 일어나서 여권을 뒤적거리다가는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
침대칸은 생각보다 호화로웠다.
영화에서 보던 2층 침대를 예상했던 이준기는 헝겊 시트에 푹신해 보이는 베개까지 마련된 침대칸을 보고 조금 놀랐다.
놀라기는 다른 둘도 마찬가지였다.
“우와, 비싼 표이기는 하지만··· 이건 꽤 좋잖아?”
“기차 침대칸이 이 정도로 좋을 줄 몰랐어요.”
이준기가 말했다.
“저도 놀랐네요. 비싼 표로 사기는 했지만 생각 외로 호화롭네요? 하지만 너무 좋아할 일도 아니에요. 국경을 무사히 통과한 다음이라면 모를까, 잠을 잘 수는 없으니까요.”
그들은 양쪽 침대를 소파 삼아 앉았다.
이준기가 물었다.
“비자 문제는 설마··· 없겠죠?”
“러시아 여권이라 우크라이나에서도 벨라루스에서도 비자는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원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죠.”
“우크라이나 경찰이 우리를 쫓고 있을 수도 있는 거죠?”
“네. 충분히 가능해요. 우크라이나 경찰에도 친러시아 세력이 침투해 있으니까요.”
평소 일정은 한 명이 정탐을 나가 있는 동안, 다른 두 명이 쉬는 것이었지만, 오늘 오후에는 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준기는 정탐 순번이었고,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는 ‘즐거운 농부’를 찾아갔으므로.
그래서 평소보다 피곤한 하루였는데, 밤에 기차까지 타서 잠도 청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르게이가 물었다.
“만약 경찰이 우릴 체포라도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잽싸게 도망쳐야지. 하하하.”
이준기가 조금 억지스럽게 큰 소리로 웃자, 세르게이와 바실리사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농담입니다. 사실은 나도 그 부분이 제일 걸려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국경에서 검문을 할 때는, 기차가 정차하겠죠?”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아무리 우리들이라도,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는 멈춰 있는 기차에서 도망치는 게 더 쉽겠죠. 문제는···”
“쫓아오는 쪽에서도 그게 더 쉽다는 거겠죠.”
“그래요. 그래서 추격전이라도 벌이려고 한다면, 기차가 멈춰 있는 것보다는 달리는 중인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하단 말이죠.”
“그럼 어떻게 하죠? 검문 직전에, 그러니까 기차가 멈추기 전에 뛰어내리는 건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그 방법을 검토하고 있었어요.”
이준기는 휴대폰 화면을 둘에게 보여주었다.
지도 앱 화면에, 국경 부근의 항공 사진이 떠 있었다.
기차길 주변이 숲이다.
세르게이가 신난다는 듯 외쳤다.
“숲이잖아! 던전 안에 가장 흔한 지형!”
“도망치기 딱 좋은 지형이지.”
*****
계획은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일행은 10분마다 교대로 침대칸을 나가서 바깥을 정찰했다.
화장실에 가는 척을 하기도 하고, 창가에 서서 바깥을 구경하기도 했다.
11시쯤 되었을 때, 세르게이의 순번.
이번에 세르게이는 정말로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건너편 객차에 검문 중인 경찰이 보였다.
경찰 복장도, 역무원 복장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을 하나씩 체크하고 있었다.
항의하는 사람에게는 신분증을 보여주기도 했다.
검문 중이던 경찰 한 명이 하품을 했다.
실적도 나오지 않는 일을 매일 하려니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세르게이는 조용히 침대칸으로 돌아와 말했다.
“바로 옆 객차에 검문을 도는 사람들이 있어.”
“벌써?”
“수상한 사람들을 감시한다는 명목이겠지. 어쨌든 내전 상황이니까.”
“그렇다면··· 우릴 쫓고 있을 가능성은 반반이겠군.”
바실리사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모스크바 마피아 끄나풀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요.”
“현재 상황에서 50%의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무시할 수 없죠.”
“어떻게 하죠?”
이준기는 휴대폰 지도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아직 숲 지대에 진입하기 전이다.
항공 사진에는 푸르른 농경지가 가득했다.
“우크라이나는 곡창지대라고 하더니, 하하.”
“한겨울인 지금이라면 텅 빈 들판이겠군요. 숨을 곳이라고는 없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도 되고 싶었건만··· 우리 운명이 그게 아닌가 보네요.”
“지금 뛰어내리겠다는 얘기죠?”
“네.”
*****
기차에서 사람이 뛰어내렸는데, 아무런 소동도 없었다.
누가 뛰어내렸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땅 위를 가볍게 한 바퀴 구르고, 이준기는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바실리사도 사뿐히 한 바퀴를 구르고 일어났다.
세르게이는··· 두 바퀴··· 아니 세 바퀴···
“우하하하! 이거 재밌네!”
네 바퀴나 구르고 일어나서 창피한지, 세르게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기차 창문이 열리고, 바깥을 향해 소리라도 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기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제가 두 분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도망자 신세에 오늘 밤은 노숙···”
“그것도 아니고 그냥 잠을 못 자는 거 아닐까요?”
이준기는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를 차례로 쳐다보고 말했다.
“맞아요. 피곤하지 않으시다면, 적어도 숲 지대에 이를 때까지 달리겠습니다.”
“피곤하지 않아요.”
“나도 괜찮아, 대장.”
이준기는 휴대폰 지도 앱을 조작하고 나서 말했다.
“27킬로미터 정도 되네요. 농지를 걸어야 하니 불편하고 속도도 느리겠지만, 우리들 속도라면 걸어가도 네 시간이면 도착하겠네요. 숲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거기에 도착하고 나서 다음 단계를 생각해 보죠.”
“가방은 어떻게 하지?”
“이런 곳에 버려놔도 괜찮기는 할 거야. 내일이나 모레 추격자들이 우리 짐을 발견하고 뒤쫓는다고 해도, 우린 이미 벨라루스로 도망친 후일 테니까.”
“그래도··· 더 신중하게 하는 게 어때요? 제 생각에는 적어도 숲속에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발견되는 걸 조금이라도 늦추는 게 좋죠.”
“바실리사, 대장! 나도 찬성!”
셋은 행군이라도 하듯이 나란히 한 줄로 걷기 시작했다.
*****
걷는 도중, 세르게이가 이준기를 불렀다.
“대장, 그러고 보니 할 얘기가 있다.”
“뭔데?”
“프로코포프에 이어,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와도 연락이 안 되는데. 예브게니 영감 말야.”
“언제부터?”
“이틀 전에 보낸 메시지에 대답이 없어. 지금까지 하루 이상 걸린 적이 없는데.”
“일본이 사할린 접수하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털었다는 건가?”
“그게 아무래도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지.”
“예브게니가 단독으로 우릴 배신했다는?”
“극동 마피아가 형님뻘인 모스크바 마피아에 사실대로 털어놓았을 수도.”
“극동 마피아는 아직도 모르는 거겠지. 모스크바가 푸가초프를 이용해서 자기들을 견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겠지. 이젠 그런 견제도 필요 없겠지만 말야. 보스도 죽었고, 조직이 와해된 거나 다름없으니.”
“예브게니 영감이 있으면, 어느 정도 유지가 될 거라고 했잖아?”
“그래. 예브게니 영감은 수완가니까. 하지만 그건 누가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는 얘기라고.”
“하긴 그렇겠군. 만약 예브게니 영감이 사실대로 모든 걸 털어놨다면, 모스크바는 극동 마피아를 그냥 놔두지 않겠지.”
“물론이야. 그냥 합병해 버리겠지.”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극동 마피아를 유지시키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형식상으로는 극동 마피아가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만들겠지. 그래야 연합 체제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하니까. 연합에 두 자리는 유지해야지.”
“어떻게 됐든, 우리 목표는 바뀌지 않는다. 모스크바 마피아에게 결정타를 가하는 거 말야.”
“그래. 동의해. 모스크바 마피아가 무너진다면, 남은 마피아 잔존 세력 정도는 푸가초프로도 대항할 수 있을 거야.”
듣고 있던 바실리사가 말했다.
“그럼요. 푸가초프는 해낼 거예요.”
배신당해 죽을 뻔했던 바실리사는 지금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찍혀 조직의 추적을 받고 있다.
그래도 그녀에게 푸가초프의 대의는 삶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가치다.
바실리사가 야구 모자의 챙을 내려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