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45화 (14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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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8)

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8)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에 대해서, 이견은 없었다.

그러나 해석은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니까.

“한상태가 회장이 이겼다!”

“이상덕은 죽지 않았어. 그게 이긴 거냐?”

“하시바 상, 결투의 승패는 어떻게 결정되는 겁니까? 심판으로서 공정하게 대답해 주세요.”

“안 돼! 제삼자인 하시바가 승패를 결정하다니.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힐링 포션을 마시고 체력을 회복한 한상태가 옥신각신하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섰다.

김범규를 비롯한 한상태 일파는 반기는 분위기였지만, 반대편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한상태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만?”

오대영, 강명성, 변희영··· 그리고 누구보다 유지호가 큰 목소리로 한상태를 반박했다.

이상덕을 지지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유지호는 그들과 같은 길드 소속도 아니다.

단지 베팅을 잘못해서 죽게 된 상황이니, 남들보다 두 배는 억울했다.

“이상덕의 시체가 어디 있습니까? 이거, 데스매치 아니었나요?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겁니다!”

한상태는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승부에는 항복이라는 것도 있죠. 이건, 이상덕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다고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결과입니다만?”

“이상덕이 직접 그렇게 말한다면 한번 생각해보겠소! 이상덕을 데려와요!”

이상덕과 같은 길드 소속이라고 해서 죽음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오대영이 서울연합 대표 격이라도 되는 듯이 말했다.

“우리들은 이 상황을 이상덕 회장의 패배로 받아들일 수 없소.”

“나, 한상태는 이렇게 쌩쌩하고, 이상덕은 여기에 없는데도 말입니까?”

“애초에, 결투의 승패에 관해서 분명하게 합의를 해야 했소. 그런 게 없었으니, 이번 결투의 승패는 정해지지 않은 거라고밖에는···”

“제가 보기에는 말입니다. 김범규 회장의 해석이 정확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승패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이거죠?”

“김범규 회장의 말이 맞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당신이 여기에 쌩쌩하게 살아 있는 만큼, 이상덕 회장은 지금 던전 밖에 쌩쌩하게 살아 있을 테니 말이오!”

“사자의 서가 작동했다는 것은, 이상덕이 한 번 죽었다는 얘깁니다. 이상덕이 한 번 죽었다면 그건 당연히 나의 승리라는 얘기 아닙니까?”

“아이템의 차이는 인정되는 것 아니오? 한상태 당신이 전설급 방패를 들었다고 그걸 내려놓고 승부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잖소? 이상덕 회장도 사자의 서를 들고 결투를 한 것이고, 그 아이템을 쓴 것뿐이오. 아직 승부는 결정되지 않은 거지.”

한상태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오대영··· 부회장. 당신 말이 백번 맞다고 칩시다. 이상덕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하자는 말이죠. 그렇다고 해도, 승패는 달라지지 않아요.”

“왜 그렇소? 왜?”

“사자의 서가 발동되었다면, 이상덕은 지금 차원문 바로 바깥에 있을 거요. 그런데 들어오고 있지 않잖아요? 그게 도망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결투에서 도망이란 패배. 당연한 거죠?”

“그, 그건···”

하시바가 앞으로 나섰다.

“중립적 입장에서 말씀드리죠. 결투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헤아리지 못한 것은 사과드립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야스다의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하시바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승부는 결정되었다고 봐야겠군요. 한상태 회장의 말이 정답입니다. 사자의 서를 사용한 것을 인정해서, 이상덕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해석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상덕이 다시 던전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이상덕의 도주. 따라서 그의 패배. 이것이 결과입니다.”

야스다의 통역이 끝나자, 이상덕 일파가 일제히 반발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 결투는 데스매치야. 죽음 외에 패배하는 방법은 없다! 이상덕은 아직 죽지 않았어!”

“일본인은 빠져!”

김나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이상덕 지지자들은 여전히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하시바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나리가 말했다.

“제가 한 가지 제안해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이대로는 결판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오늘 결투는 무승부로 하고, 다음번에 다시 하면 어떨까요?”

김범규가 그녀의 말을 제지하려고 했지만, 한상태가 한발 빨랐다.

“김나리 힐러님? 지금 제정신입니까? 어렵게 얻은 승리를 차버리겠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목숨을 걸고 이상덕 그놈과 싸운 건 납니다. 힘든 싸움을 겨우 이겨놨더니, 무승부라고요? 김나리 힐러님은 제 편 아니었습니까?”

“그, 그건요···”

“지금은 승자의 입장에 있으니 그런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이상덕이 이겼다면 어땠을까요? 저쪽 편에 선 사람들 중에, 김나리 힐러님같이 자애로운 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때, 오대영의 옆에 서 있던 강명성이 크게 외쳤다.

“서울연합 여러분! 출구를 뚫고 나갑시다! 유지호 회장님도요!”

강명성은 창을 꼬나쥐고 출구 쪽을 향해 도약했다.

*****

방문이 제대로 꽉 닫혔는지 확인하고 나서, 이상덕은 금고를 열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차곡차곡 모아둔 금괴가 쌓여 있었다.

“이걸로 될까? 아니지··· 골프 가방은 들고 탈 수가 없으니···”

이상덕은 골프 가방에서 골프채를 빼다가 옆으로 던져버렸다.

방안을 둘러보니 골프 회사 로고가 박힌 더플백이 보였다.

이상덕은 더플백을 열고 금괴를 닥치는 대로 넣었다.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노크 소리가 이어지다가 결국 문이 열렸다.

신학길이었다.

화들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이상덕은 뒤로 넘어졌다.

신학길은 열린 금고, 금괴가 가득 든 더플백, 그리고 이상덕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열려진 금고에는 금괴 여남은 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상덕이 소리 질렀다.

“뭐야, 신학길! 문 닫고 나가!”

신학길은 문을 닫았지만, 나가지는 않았다.

신학길이 이상덕을 향해 걸어왔다.

이상덕은 경계하면서 외쳤다.

“뭐야, 너 미쳤어?”

“사··· 상덕아··· 너··· 어디 가는 거야?”

“상덕아? 사앙더억아아? 야, 신학길! 이제 내가 만만해 보이냐?”

“아니, 그게 아니고··· 어디 가는 거야? 그 금괴들은 뭐야?”

“내 돈으로 산 금괴다. 뭐 문제 있냐?”

“그렇게 많이?”

“아니, 이 자식이···”

“미안하지만, 상덕아··· 아까 전화하는 거 다 들렸어.”

“뭐, 뭐라고?”

“그렇게 크게 통화하는데 안 들릴 리가 없잖아. 다른 직원들도 다 들었을 거야. 방음 공사, 아직인 것 잊었어?”

협회 사무실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나서, 회장실에 대한 방음 공사는 아직이었다.

계획은 하고 있었으나, 정적을 모두 제거했다는 안도감에 이상덕은 공사를 미루고 있었다.

“그··· 그랬었나?”

“일본에 취직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 그런 좀비 같은 눈초리 좀 그만둘 수 없어? 정신 차려, 신학길!”

“내··· 내가? 내가 뭐 어때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상덕아.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건 너야.”

“야! 신학길! 너 미쳤구나?”

“날··· 아니, 우리를 버리고 일본으로 도망간다고?”

“도망? 잠시 피해 있는 것뿐이야. 닥치고 내 방에서 나가, 신학길!”

“일본에 취직하려면 나도 데리고 가. 네가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잠시 피해 있는 거라고. 다시 돌아온단 말야. 그러니까 제발 내 방에서 좀 나가라.”

“네가 떠나면··· 사람들이 날 가만둘 것 같아? 사람들은 너 때문에 나도 미워한다고!”

“이 새끼가 정말··· 말로 안 되는구나?”

이상덕이 손을 들어 다가오는 신학길을 향해 내뻗었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색의 액체가 빠져나오는 듯하더니, 화살의 모양이 되어 신학길에게 날아갔다.

신학길은 검은 화살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찌르는 듯한, 타는 듯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으아아!”

“닥쳐라, 신학길. 까불지 말란 말이다!”

“끄아아··· 살려줘, 상덕아.”

“조용히 처박혀 있으면, 내가 일본에서 자리 잡고 나서 불러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깝치지 말고, 사무실 정리 잘하고 들어가. 알았어?”

“으으으··· 너, 너무 아프다. 사··· 상덕아.”

“이름 부르지 마, 새꺄. 어디다 대고 상사 이름을 함부로 불러!”

“끄으으···”

“안 죽어, 새꺄. 검은 화살 한 방 맞고 죽는다는 게 말이 돼? 아니··· 일반인에게 쏴본 적은 없으니··· 에이, 몰라.”

이상덕은 신학길을 뒤로하고 가방에 금괴를 더 욱여넣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금고 안의 모든 금괴를 더플백에 넣을 수는 없었다.

이상덕은 금괴 몇 개를 꺼내 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억지로 더플백의 지퍼를 닫고 나서, 이상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호화 크리스털 캐비넷에는 최고급 위스키가 줄을 서 진열되어 있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이상덕은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아본 뒤, 가방을 등위로 들쳐 멨다.

신학길은 여전히 신음하고 있었다.

한 번 눈길을 주기는 했지만, 이상덕은 곧 신학길을 외면하고 문을 향해 걸었다.

*****

“모두, 출구를 향해 공격해요!”

변희영이 외쳤다.

강명성이 소리를 지르며 출구를 향해 대시하자, 오대영과 변희영이 재빠르게 반응하며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일본인들도 만만치 않았다.

레벨도 레벨이지만, 길수연에게 한번 당한 것이 있어서 경계 수준이 높아져 있었다.

일본인들과 이상덕 지지자들이 얽혀 싸우는 것을 보면서, 김범규를 비롯한 한상태 지지자들은 멍하니 서 있었다.

야스다는 일본인 구원자들에 가세하여 싸우고 있었지만, 하시바는 아직 뒷짐을 지고 있었다.

하시바가 김범규에게 말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도망가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냥 두고 보시는 겁니까?”

“하··· 하지만···”

김범규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한상태가 달려나갔다.

점프에 이은 연속 동작으로, 한상태는 오대영을 향해 칼을 내리질렀다.

“하··· 한상태! 무슨 짓이냐!”

“계약대로 이행하는 것뿐이야. 이상덕의 졸개, 죽어라!”

“뭐··· 뭐라고? 이 살인자···”

피 맛을 보고 광분이라도 했는지, 한상태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오대영은 한상태의 맹공에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일본인 구원자에게 등을 공격당해 쓰러졌다.

“하··· 한상태! 네놈이 이상덕과 뭐가 다르냐!”

“닥쳐라, 쓰레기.”

한상태는 쓰러진 오대영을 발로 밟고, 변희영을 향해 방패를 던졌다.

변희영의 뒤에서 강명성이 나타나 한상태가 던진 방패를 창끝으로 쳐냈다.

돌아오는 방패를 왼손으로 낚아채면서, 한상태가 외쳤다.

“좋아! 다음은 너냐, 강명성!”

“당신, 미쳤군.”

한상태가 검을 휘두르며 돌진하자 강명성도 창으로 맞받아쳤다.

*****

협회 사무실 직원들은 잔뜩 신경이 곤두선 채로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상덕 협회장이 공격대에 들어간 오늘은 무두절, 즉 노는 날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간 이상덕은 통화를 시작했다.

이따금 목소리를 죽이려고 하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격앙된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이 들렸다.

삼성동 사무실의 협회장실은 방음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도곡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방음처리 공사가 예정되어 있기는 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정적들이 제거된 다음이라서, 굳이 귀찮은 방음처리 공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이상덕의 국제전화는 직원들에게 생중계되었다.

신학길을 비롯해서 일본어를 아는 직원들은 통화내용을 거의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자세한 자초지종은 이야기되지 않았지만, 요지는 그거였다.

이상덕이 일본으로 튀려고 한다는 것.

통화가 끝나자, 신학길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협회장실 방문을 두드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학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노크를 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몇 차례 더 노크를 시도하던 신학길은 결국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이상덕이 화를 내고, 신학길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혔지만, 둘이 싸우는 소리는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이상덕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신학길이 쓰러지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잠깐 동안, 문 안쪽의 사무실은 조용해졌다.

문이 벌컥 열렸다.

탕!

사무실 사람들이 일제히 움찔했다.

총소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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