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44화 (14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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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7)

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7)

검은 연기가 흩어지자, 바닥에 엉덩이를 깐 채 힐링 포션을 들이키는 한상태의 모습이 나타났다.

자폭해버린 어둠의 정령은 물론, 이상덕의 모습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한상태 회장이 이겼다!”

“그런데··· 이상덕은?”

사람들은 한상태를 바라보았다.

힐링 포션으로 아물고 있기는 하지만, 폭발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게 보였다.

이상덕이라고 무사했을 리가 없다.

폭발 전에도, 한상태보다는 이상덕의 부상이 더 컸다.

야스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시바를 쳐다보았다.

“하시바 회장님··· 어떻게 된 거죠?”

“나도 어둠의 정령은 잘 몰라. 자폭 기능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

“그렇다면, 자폭으로 이상덕은 죽고, 한상태는 간신히 살아남은 건가요?”

한상태 지지자들이 외쳤다.

“한상태가 이겼어!”

“한상태 회장의 승리!”

그러나 이상덕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지? 죽었다는 이상덕은 어디 있나?”

“이상덕의 시체를 가져와라.”

“아직 결투는 끝나지 않았어!”

김범규가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김범규는 쪼그리고 앉아 검은 연기가 사라진 폭발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역시.”

김나리가 물었다.

“무슨 얘기예요?”

“어떻게 된 건지 알겠어.”

“네? 어떻게 된 건데요?”

“사자의 서.”

“네?”

“이상덕은 전설템, ‘사자의 서’를 가지고 있었지. 몬스터에게 죽을 경우 부활하는 그 아이템 말야. 그거, 기억나지?”

“어떻게 그게 기억나지 않겠어요? 그 난리가 있었는데.”

“그게 발동한 거야.”

“그렇다면, 이상덕은 지금 던전 바깥에 있다는 거예요?”

김나리는 상태창을 열고 아이템 정보를 찾았다.

- 사자의 서.

- 소모품. 전설 등급.

- 발동 효과: 몬스터의 공격에 의해 소지자가 사망할 경우, 소지자를 완전히 치유하고 던전 바깥으로 이동시킵니다. 퇴각 페널티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한 번 발동하면, 이 아이템은 사라집니다.

김나리는 김범규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몬스터의 공격··· 그래서!”

“그래. 어둠의 정령의 자폭. 어둠의 정령은 몬스터.”

*****

어둠의 정령이 자폭하는 순간, 이상덕의 육체는 거대한 압력, 그리고 열기를 느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다음 순간, 이상덕은 차원문 바깥에 있었다.

폭발 순간, 엉덩방아를 찧은 그 자세로,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저, 저거!”

“차원문에서 사람이!”

“뭐, 뭐야?”

차원문을 가장 안쪽에서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 중 일부가 이상덕을 알아보았다.

“이상덕 회장이잖아!”

“오늘 공격대 공격대장인데, 벌써 나온 거야?”

병사들 중 하나가 이상덕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상덕 협회장님?”

“고··· 고맙소.”

이상덕은 병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획이 성공했다.

‘몬스터의 공격’으로 사망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이상덕은 어둠의 정령을 자폭시켰다.

그 결과, 완전히 회복된 몸으로 그는 던전 바깥에 나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병사의 보고를 받고 달려온 최한식 중령이 이상덕에게 물었다.

“큰··· 싸움이 있었소.”

“네. 말씀하시죠.”

“나는 ‘사자의 서’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소. 죽게 될 경우, 던전 바깥으로 텔리포트 되는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지. 체력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로 말이오. 지금 내가 바로 그런 모습이잖소?”

“네에? 그렇다면···”

“그렇소. 죽었다가 살아난 거 같소. 죽어본 적이 없으니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지금 나는 여기 살아 있고, 그 아이템은 없어졌소. 한 번 발동하고 나면 없어진다는 설명이었거든.”

“그렇다면, 공격대도 위험한 상황이군요?”

이상덕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최한식이 재차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이상덕은 말했다.

“그렇소. 공격대장인 내가 죽을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이니까.”

“공격대가 전멸할 수도 있는 겁니까? 일본인들까지 가세했는데요?”

“엄청난···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와는 너무도 다른··· 그런 무서운 상대였소.”

“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공격대를 전멸시키고 몬스터가 바깥으로 나올 수도 있는 겁니까?”

“그렇소. 그러니까 경계를 확실히 해주시오. 뭐든, 차원문에서 나오는 낌새가 있으면 일제사격을 해버리시오.”

“그··· 그래도 될까요? 공격대원 중에 퇴각하는 분이라도 계시면···”

“아··· 아니 그럴 리 없소. 나도 퇴각하는 데 실패해서 죽게 된 거 아니오? 퇴각하기에는 너무 강한 상대요. 그러니까··· 차원문에서 뭐라도 나오면 곧바로 쏴버리시오. 수백, 수천 발을 쏴서 벌집을 만들어야 간신히 죽일 수 있을 거요. 명심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최한식 중령은 사색이 된 병사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러는 사이, 이상덕은 병사들 사이를 빠져나가 사라져버렸다.

*****

길수연과 문아린이 도착했을 때, 이상덕은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

사람이 드나들 때 차원문은 색깔이 변한다.

그걸 보자마자 카페를 나와 차원문이 있는 곳까지 급히 달려왔지만, 이상덕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길수연 구원자님! 아까 차 실장님과 함께 가신 것 아니었습니까?”

“도중에 내렸어요. 아무래도 차 실장님이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보다, 대답해 주세요, 최한식 중령님. 차원문에서 나온 것이 이상덕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많이 다친 상태였나요?”

“아뇨. 아주 멀쩡했습니다. 사자의 서? 뭐 그런 이름의 아이템이 발동해서 죽기 직전에 살아난 거라고 하더군요.”

“사자의 서!”

길수연이 뒤통수라도 맞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문아린은 길수연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 이거예요. 사자의 서.”

‘사자의 서’에 대한 아이템 링크를 받은 문아린은 상태창을 읽은 후, 길수연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상덕 회장이 몬스터와 싸우다가 죽을 뻔했다는 얘기잖아요?”

“네. 그렇게 되겠네요.”

“하지만··· 이상덕 회장은 한상태 회장과 싸우는 중이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 둘이 싸우기 전에 제가 나왔으니,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죠. 하지만 맞아요. 결투 직전이었다고요.”

“한상태 회장에게 패해서 죽기 직전에 나온 건 아니겠죠, 설마?”

“아이템 설명에 ‘몬스터에게 공격당해 사망할 경우’라고 되어있잖아요. 몬스터에게 공격당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아이템 설명에 오타가 있었던 적은 없잖아요.”

“그렇다면 공격대가 몬스터를 공격했다는 말인가요?”

“제가 빠져나온 지 아직 한 시간도 되지 않았어요. 결투를 아예 안 하기로 했다면 몰라도, 그 시간 안에 결투를 끝내고 레이드를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아요? 일본인 구원자들의 대장인 하시바도 그렇게 얘기했다고요. 오늘은 결투만 하고, 던전 클리어는 내일부터 하겠다고.”

최한식 중령이 기침을 했다.

“읏흠··· 저···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는지.”

“네. 중령님. 이상덕 회장이 뭐라고 했나요?”

“몬스터··· 그러니까 대장 몬스터와 싸움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공격대가 크게 밀려서 전멸 직전이라고.”

“네?”

“자신은 ‘사자의 서’가 발동해서 어떻게 살아나왔지만, 공격대는 전멸할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몬스터가 공격대를 전멸시키고 바깥으로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나오면 집중사격으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상덕 회장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습니다.”

“휴우···”

한숨을 내쉬는 길수연에게 문아린이 물었다.

“정말일까요?”

“글쎄요··· 하지만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요. 이상덕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나온 뒤에 사람들이 결투를 중지하고 레이드에 나섰다는 건데··· 분위기가 절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최한식 대령이 다시 헛기침을 했다.

길수연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두 분 구원자님들··· 차원문에서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저희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

협회 직원들은 갑자기 사무실에 나타난 이상덕의 모습에 놀랐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신학길이었다.

“협회장님, 어떻게···”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 와 있냐는 얘기겠지. 신 총장, 내 방으로 와요. 지금 당장.”

이상덕은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신학길이 뒤를 따라와 문을 두드리자, 이상덕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노크 따위 집어치우고, 당장 들어와!”

신학길이 우물쭈물하면서 협회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상덕은 캐비닛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내 잔에 따르고 있었다.

“신학길 총장... 자네도 마실 건가?”

“아, 네? 네, 네. 감사합니다.”

신학길이 잔을 들자, 이상덕은 자기 잔을 홀짝인 다음 말했다.

“지금 당장, 김포 공항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 하나 예약해. 일등석으로.”

“네, 넵?”

“김포 공항까지··· 얼마나 걸리지? 아무튼 빠른 걸로 빨리 예약해 줘요.”

“일본에는 왜?”

“일본 협회 구라모토 회장 만나러 가는 거지 왜는 왜겠어?”

“왜 이렇게 갑자기···”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비행기 표나 빨리 예약해! 당신이 검사야 뭐야?”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일본 협회 구라모토 회장 연결해. 아··· 아냐, 내가 직접 하지. 신 총장은 비행기 빨리 예약하고, 차 준비해. 공항까지 빨리 가야 하니까.”

신학길이 방을 나서자마자, 이상덕은 일본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협회장 직통 번호였지만, 비서가 받았다.

이상덕은 유창한 일본어로 말했다.

“한국 협회 이상덕 회장입니다. 구라모토 협회장님 부탁해요.”

*****

“아, 이상덕 회장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이 시간에?”

유들유들 능구렁이 같은 구라모토 신스케의 목소리를 듣자, 이상덕은 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침착해야 하는 상황.

이상덕은 분노를 억누르고 말했다.

“구라모토 회장님. 지금 당장 제가 일본으로 가겠습니다. 하네다 공항에 직원 좀 대기 시켜 주세요.”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냐고요?”

“네. 무슨 일이시길래 이렇게 갑자기.”

“하시바 세이이치로. 그 사람 뭡니까? 저를 지원하러 온 것 아니었나요?”

“하시바 그 사람이 뭘 잘못하기라도 한 겁니까? 하시바 그 사람, 실수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닌데요. 빈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서요.”

“구라모토 회장님.”

“네.”

“하시바 세이이치로, 그 사람에게 내린 지시가 정확하게 뭡니까?”

“무슨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이 회장님 요청 대롭니다. 회장님 도와서 반대파를 싹 쓸어버리라고 했죠.”

“아, 그래요?”

이상덕은 분을 삭이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회장님? 뭐가 잘못됐습니까?”

“하시바 그 작··· 아니 그 사람이··· 공정하게 심판을 보겠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와 한상태, 둘이 일대일 대결을 하라고 하면서, 자기가 아주 공정하게 심판을 봐주겠다고.”

“네?”

“구라모토 회장은 정말 모르시는 일이라는 거죠?”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이 회장님. 하시바는 이 회장님을 도우러 간 겁니다. 다른 명령 같은 건 없어요.”

“그렇다면··· 저를 다시 좀 도와주십시오.”

“뭡니까? 말씀하십시오.”

“하시바 그자가 공정하게 심판을 보는 바람에, 제가 한상태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졌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저는 일본 구원자협회에 취직하는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 그게 무슨···”

“저는 41레벨 구원자입니다. 일본 협회에도 큰 힘이 될 거란 말입니다. 게다가 일본에 대한 애정이라면 보통의 일본 사람들보다도 더할 겁니다. 제가, 구라모토 협회장의 오른팔이 되겠다는 겁니다.”

“하··· 한국 협회는 어쩌고요?”

“말했잖습니까! 한상태 그놈과 일기토를 해서 제가 졌다고요. 그리고··· 아마 저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하시바 그 작자가 만든 규칙에 따라 전부 죽었을 거요. 그러니까··· 나는 한국에서 모든 걸 잃었단 말입니다. 하시바 그 작자 때문에!”

“고정하세요, 이 회장. 사정은 알겠으니.”

“지금 당장, 제일 이른 비행기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직원을··· 아니, 제가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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