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40화 (140/248)

────────────────────────────────────

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3)

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3)

“저는 한국어가 짧아서··· 이제부터는 제 부하, 야스다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야스다.”

하시바의 소개에 따라, 그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야스다 겐지입니다. 하시바 님이 말씀하신 대로, 오늘 본게임의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리둥절한 사람들은 옆 사람과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러는 와중에 김나리가 나서서 물었다.

“무슨 진행을 한다는 겁니까?”

“김나리 힐러님이시죠?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하려는 것은, 오늘 결투를 좀 더 실감 나게 즐기기 위한, 간단한 양념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묻는 겁니다.”

“결투. 일기토. 일대일 대결. 이 얼마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입니까? 하지만 이런 구경을 훨씬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있죠. 베팅 말입니다.”

“베··· 베팅? 골드라도 걸라는 말입니까? 그게··· 제정신인 제안이냐고요.”

“베팅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골드를 걸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걸어야 합니다.”

“뭘 말입니까?”

“여러분의 목숨을.”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었다.

김범규가 나서서 외쳤다.

“그게 무슨!”

“이건 단지 흥미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한국 구원자들의 통합을 위해섭니다.”

“그게 무슨 궤변이오!”

“오늘 이상덕과 한상태 중 하나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국에서 지지부진하게 계속되고 있는 구원자 계의 분열 사태가 종식되지 않습니다.”

“그게 베팅과 무슨 상관이냐고!”

“여러분들은 여하튼간에, 승부를 가리려고 이 던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상덕 일파 대 한상태 일파.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몰살당하면, 그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구원자 계가 통합을 위해 한 발짝 다가서는 거죠.”

“그런데?”

“그런데 일대일 대결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상덕이나 한상태 한 명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는 통합에 어려움이 있어요. 이기는 쪽이 모든 걸 갖는다··· 이렇게 규칙을 정한다고 해도, 패자의 편에 섰던 사람이 대결 이후에도 살아남는다면, 분쟁의 불씨는 계속 살아있는 거죠. 그래서··· 그걸 꺼뜨리려는 겁니다.”

“미··· 미쳤군!”

“아닙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이야기입니다. 눈을 감고 잠시만 생각해 보십시오. 이건 대단히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일대일 대결이라는 간편하고도 흥미로운 방법으로, 양 계파의 전면전 효과를 거두는 겁니다.”

이번에는 오대영이 외쳤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희들만 이득인 것 아니냐!”

“우리들···이라 하시면?”

“너희 일본 말이다. 한국인 구원자들을 되도록 많이 죽이려는 거잖아!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늘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말이다.”

“하하. 저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거예요. 그리고, 오대영 회장이시죠? 이상덕 회장과 함께 상대편을 몰살하고 권력을 휘어잡으려는 전개가 꼬여서 심사가 불편하신 건가요? 아까까지만 해도 저희 일본인들 모습을 보고 반가워하시던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태도를 싹 바꾸셨으니 말입니다.”

“무··· 무슨 소리냐!”

야스다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 베팅 들어갑니다. 베팅은 무조건 이상덕 아니면 한상태 둘 중 하나로 정하셔야 합니다. 중립도 포기도 없습니다. 시간 내에 결정을 하지 않으실 경우, 저희가 미리 파악한 성향에 따라 베팅을 정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박건우 구원자님?”

“네, 넵?”

“만약에 선택을 하지 않으실 경우, 박건우 구원자님은 한상태 편에 베팅을 하는 걸로 정하겠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박건우 구원자님은 오늘 한상태 편에 서는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나··· 나는···”

“부끄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합리적 선택을 통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게 인간 아닙니까? 그러나 걱정 마세요. 선택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조금 후에 조사를 시작할 테니, 생각을 미리 해두세요.”

야스다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국인 공격대를 둘러보았다.

“서울연합 여러분들은 이상덕, 프라이드나 브릴리언트 여러분들은 한상태. 저희는 대략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분은 도저히 모르겠군요. 길수연 구원자님?”

길수연이 손을 들었다.

“여기 있어요.”

“아아, 듣던 대로 미인이시군요. 사진으로는 뵈었지만, 실제로 뵈니 더욱 아름다우십니다. 그런데 길수연 구원자님은 어느 쪽인지, 저희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요. 예전에 이상덕 협회장과 같은 길드였지만, 지금은 갈라졌고, 그렇다고 해서 한상태 회장을 분명히 지지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맞습니까?”

“난, 기권합니다.”

“기권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난 차원문 정리를 위해서 공격대에 들어왔어요. 결투 놀이에 베팅하러 들어온 게 아니고요.”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죠. 예상치 못한 사태이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적응은 하셔야죠. 유연성을 보여주세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있던 길수연이 팔짱을 풀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한 가지 물어보죠.”

“말씀하시지요.”

“이 결투 놀이···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멈출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투 이후에 차원문 정리는 원래 계획대로 하는 건가요?”

“아하!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군요.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결투 이후에, 공격대는 차원문을 정리하는 본연에 임무로 돌아갑니다. 모자라는 인원은 저희 일본에서 보충해 드립니다. 그러니까 베팅은 가급적이면 비슷하게 해주세요. 18명이 한 사람에게 몰빵했다가 그 사람이 지기라도 하면, 남은 공격대원은 우리 일본인들을 합쳐도 11명밖에 안 되니까요. 그런 상황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 일은 한다, 이거군요?”

“물론이죠.”

“할 일을 먼저 하고, 유치한 결투 놀이는 그다음에 하면 어때요?”

“하핫, 역시 길수연 구원자님. 구원자 계의 모범이십니다. 하지만 그건 기각합니다. 서로를 죽이려는 두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한 부대에 묶어서 전투를 치른다? 어불성설이죠. 전투 도중에 서로에게 칼을 들이댈 겁니다. 그렇게 되면··· 패싸움이죠. 설마, 그걸 원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시는 거죠?”

“인간 본성이 원래 그렇죠.”

“염세주의자이신가 봐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좀 보세요. 염세주의자가 안 되고 어떻게 배깁니까?”

“흠···”

길수연은 다시 벽으로 기대면서 팔짱을 꼈다.

할 말을 다 한 모양이었다.

길수연을 한번 슬쩍 쳐다보고 나서, 야스다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한 가지 설명을 빼먹은 게 있네요. 사람들이 죽고 나면, 아이템이 남게 됩니다. 아이템 배분에 대해서도 미리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의 조의 목소리가 조금 들리기는 했지만, 그저 웅얼거림뿐이었다.

누구도 명시적으로 항의하지 않자, 야스다는 말을 이었다.

“이상덕과 한상태. 어느 쪽에 베팅을 할지 정하시고 나서, 양쪽 편 응원단의 로스터가 나오면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상대측 응원단 중에서 누구의 아이템을 갖고 싶은지, 그걸 정하시는 겁니다.”

이번에는 몇몇이 분명히 항의 조로 말했다.

“뭐, 뭐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마시고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하는 편이 아이템 배분도 빠르고,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을 지목해 주세요. 그 사람은 죽고, 아이템은 빼앗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스릴 넘치는 일입니까!”

“미··· 미친!”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지목할 경우, 가위바위보로 우선권을 정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베팅하고 아이템 우선권 정하고 하는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 베팅 들어가겠습니다. 심사숙고할 시간, 5분을 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하셔서, 내 목숨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야스다는 입술 양쪽이 귓가에 걸리도록 씩 웃으면서 설명을 마쳤다.

*****

순서대로, 공격대원들은 야스다에게 자신의 베팅을 말했다.

야스다는 자신의 상태창에 베팅 내용을 받아 적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선택 내용을 공표했다.

“이상덕.”

“네. 좋습니다. 변희영 구원자님은 역시 이상덕 회장 쪽이군요!”

“하··· 한상태로 할게요.”

“오오? 선우결 구원자님, 한상태로 결정했습니다! 어느 쪽일지 고민 많이 하셨죠?”

선택이 끝나자, 야스다는 베팅 상황을 공개했다.

- 이상덕: 오대영, 강명성, 변희영, 정두리, 박보도, 남경철, 유지호

- 한상태: 김범규, 김나리, 최현, 나현우, 장대한, 선우결, 신다은, 박건우, 김새로미, 한소미

“아아, 이건 실망인데요, 이상덕 회장. 부동층 세 명 중에서 겨우 한 명, 유지호 구원자만 건졌네요. 나머지 두 분은 한상태를 선택. 그래서 현재 베팅 상황은 7 대 10! 상당히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길수연 구원자님.”

야스다는 오두막 한 가운데쯤의 벽에 기대 서 있는 길수연을 가리켰다.

지구 방향 출입구 쪽으로는 이상덕 지지자들이, 던전 방향 출입구 쪽에는 한상태 지지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양쪽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 지역에, 길수연이 서 있었다.

하시바와 야스다를 제외한 일본인 구원자 8명은 지구 쪽 출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던전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봉쇄한 것이다.

길수연이 반응하지 않자, 야스다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길수연 구원자님?”

“난, 기권합니다.”

“기권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죠.”

“난, 기권이라고요.”

“하하하. 제가 이래서 길수연 구원자님 팬이죠. 매달 랭킹 발표 때마다 길수연 힐러님 순위도 찾아보고··· 물론 구원자님 팬카페도 가입했고요!”

“팬카페? 그런 건 저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알겠습니다. 자, 그럼, 길수연 구원자님은 선택은?”

길수연은 말이 없었다.

야스다가 말했다.

“하하, 저는 정말 길수연 구원자님 팬인데··· 완력을 쓰고 싶지는 않단 말입니다!”

야스다가 눈을 부릅뜨고 길수연을 노려봤지만, 길수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야스다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길수연 구원자님, 선택은?”

길수연은 눈을 감았다.

야스다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길수연 구원자님, 설마··· 우시는 거예요? 하핫, 나 이것 참··· 여자를 울리다니.”

그때.

길수연이 거대한 물방울에 둘러싸였다.

길수연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야스다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보··· 보호막!”

일본인 구원자들이 막고 서 있는 지구 방향 출입구.

길수연은 그쪽을 향해 달렸다.

야스다, 이어 하시바가 소리쳤다.

“마··· 막아!”

일본인 구원자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 쥐고 길수연의 앞을 막아섰다.

길수연은 달리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텔레키네시스!”

맨 앞에서부터, 길을 막아선 일본인 구원자들이 마치 볼링핀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아니, 저년이!”

일본도처럼 가늘고 긴 양손검을 빼 든 하시바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귀검!”

하시바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문을 향해 달리던 길수연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빛의 방패!”

순간적으로 손에 쥐어진 빛의 원반.

길수연은 하시바가 사라진 지점을 향해 그걸 던졌다.

웅···!

직선 방향으로 달려들던 하시바가 빛의 방패를 맞고 모습을 드러냈다.

방패에 맞은 하시바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잠시 공중에 멈춰 섰다.

아교가 채워진 웅덩이에서 수영이라도 하듯, 공중에 붙들린 하시바가 힘겹게 꾸물럭거렸다.

거미줄에 걸린 듯 공중에 거의 멈춰 있는 하시바 세이이치로.

문을 막고 서 있던 마지막 일본인 구원자가 그 모습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하시바를 저지한 길수연이 고개를 돌려 그 일본인 구원자에게 명령했다.

“비켜!”

길수연은 한국어로 말했지만, 무슨 뜻인지는 자명한 상황.

길수연의 얼음장 같은 표정에 위축되어, 일본인 구원자는 찍소리도 못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문을 통해서 그녀가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