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34화 (13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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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9: 디스 민즈 워 (7)

Episode 39: 디스 민즈 워 (7)

“이만하면 됐어. 잠깐 멈추자.”

바실리사의 말에, 세르게이가 달리기를 멈췄다.

과연, 멀리 오기는 한 모양이다.

성 소피아 성당의 모습이 매우 작아졌고, 꼭대기 쪽이 무너진 황금문은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까, 그거, 대장이었겠지?”

“그래. 준기 씨였겠지.”

“함께 갔던, 알렉세이 믈라디노프는 처리한 건가?”

“그렇다고 봐야 앞뒤가 맞지 않겠어?”

“그런데··· 아까 그 중국인···”

세르게이가 말끝을 흐렸다.

바실리사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말문이 막혔던 세르게이가 말을 이었다.

“대··· 대장보다 센 거 아닐까?”

바실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필요한 질문은 아니니까.

그러나 곱씹어볼 질문이다.

과연, 정말 그런가?

지금까지 이준기가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들을 보아온 그들이다.

그러나 아까 그 중국인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공중에서 총알을 멈추다니.

세르게이가 다시 말했다.

“40레벨을 제법 높다고 말할 정도라면···”

“그것보다는 높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 현재 세계 최고 레벨은 아직 50레벨이 되지 않아.”

“그··· 그래. 내가 알기로도.”

“헬렌 카자크가 50레벨이 됐을 수는 있겠지. 얼마 전에 49레벨이었으니까. 그래도···”

“중국···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

“그리고 비밀에 싸여 있는 나라지. 그래서 소문도 정말 많고.”

“그래, 소문은 정말 많이 들었지. 하지만 이제···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나니까···”

이런 식의 대화를 이어가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고, 바실리사는 생각했다.

그래서 세르게이의 눈을 바라보며 한 음절씩 분명하게 말했다.

“일단, 준기 씨와 합류하자. 내가 전화할게.”

*****

달리기를 멈추고 이준기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골목길인데, 왠지 웅장한 벽이 한쪽 면을 메우고 있다.

휴대폰을 켜고 위치를 확인했다.

국립미술관.

이준기는 골목을 돌아 정문을 찾았다.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총을 들고 미술관으로 쳐들어오지는 않겠지.

표를 사고 정문을 걸어 들어갔다.

르네상스풍의 평면적인 그림들을 흘끗 보고 지나치면서 이준기는 빠르게 걸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사람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소수의 관람객들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이기는 하지만 혹시나 일리야 레핀이라도 볼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이준기는 19세기 그림이 전시된 쪽으로 걸었다.

일리야 레핀은 없었지만 19세기 화풍을 보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준기는 의자에 앉아 풍경화를 감상했다.

그리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까 그 중국인··· 기억에 없는 사람이다.’

회귀자의 오만이랄까··· 지금까지는 일어나는 사건들을 편하게 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해설하며 잘난 척을 하는, 그런 꼴이었다.

그렇게 해설을 하다가 기억이 잘못되기라도 해서 틀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얼마나 우스운가.

지금, 딱 그런 느낌이다.

텔레키네시스로 총알을 멈추다니.

린핑 루도, 길수연도 하지 못했던 수준의 컨트롤이다.

오직 자신만이 할 줄 안다고, 마음속에 은근히 자만심을 가지고 있던 그런 컨트롤.

그런 컨트롤을 벌써, 40레벨대에, 할 줄 안다니.

린핑 루의 말이 떠오른다.

“중국에는 정부가 비밀리에 육성 중인 구원자들이 많이 있어요. 저도 그들 중 하나죠. 그런데 서로 존재를 모르니까. 언제 어디에서 막강한 실력을 가진 누구를 만나게 될지···”

이준기는 자신이 아는 중국인 상위 랭커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도대체 누굴까? 웨이 리도, 스티브 챈도 아닌데. 어쩌면 그들보다도 한 수 위의 실력자인지도 모른다.”

전화가 진동했다.

이준기는 전화를 꺼내 화면을 켰다.

송신자의 이름이 떴다.

‘랜턴.’

바실리사다.

*****

숙소는 세르게이가 정리했다.

짐이라고는 거의 없지만, 어쨌든 추적자들에게 힌트가 될 만한 흔적은 최대한 지우려고 노력했다.

할머니는 뭔가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안절부절못했다.

“왜 그래?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하면 되는데. 조치해 줄게.”

“아녜요, 할머니. 일정이 좀 달라져서 미리 가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숙박비도 돌려주지 않으셔도 되고요···”

“그래도··· 내가 미안해서 그러지.”

“마린스키 궁도, 부서지기는 했지만 황금문도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할머니.”

“그래··· 일정이 바뀌었다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잘 가.”

“안녕히 계세요.”

셋은 커피숍에 모였다.

이준기가 먼저 말했다.

“다른 신분을 만들 수는 없겠지?”

“무리야. 블라디보스토크에 연락해서 새로 받는다고 해도 며칠은 걸릴 거야. 아니, 그것도 어려울걸. 우크라이나에서 도대체 누구 명의로 우편물을 받으라는 거야. 인편으로 받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훨씬 더 시간이 걸리겠지.”

“어쩔 수 없군. 일단은 세르게이의 위조 신분증을 당분간 이용해야겠다.”

“대장··· 아니, 알료샤. 그 신분증은 어때? 스즈키.”

“그럼, 내 신분증은 어떻게 하고?”

“여기 한국대사관에 가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으면?”

바실리사가 발끈했다.

“세르게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준기가 그러나 바실리사의 말을 막았다.

“아냐, 바실리사. 세르게이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지금 우리들 중에 신분이 노출되어 있는 건 세르게이뿐이니까, 불안하게 느끼는 건 당연해.”

“가짜 신분이기는 하지만 말야.”

“그래도 불안한 건 불안한 거지.”

“그렇다면 그냥 내 신분증을 써. 바실리 엘리셰프.”

“모스크바 마피아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사람 신분을 쓰자고?”

“농담이야.”

“하하···”

이준기는 멋쩍게 웃다가 멈췄다.

바실리사가 농담을 한 적이 있던가?

커피숍에 자리를 잡은 지 15분이 넘었다.

커피잔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중국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숙소를 갑자기 옮기는 것도, 그다지 이성적인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갑자기 강적을 만나서 동요한 것뿐이다.

뭐라도 해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것.

이준기가 입을 뗐다.

“아까 그 중국인···”

세르게이가 냉큼 미끼를 물었다.

“아, 아는 사람이야, 대장?”

“아니.”

“그, 그럴 수가.”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

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전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세르게이는 이준기에게 ‘전지’를 기대한 것이 틀림없다.

“모르는 사람이야? 전혀?”

바실리사가 다시 확인했다.

“그래. 미안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야. 이름도 몰라.”

“이름은··· 칭퉁 야우라고 했어. 가명인지도 모르지만.”

세르게이의 말을 듣고 바실리사가 말했다.

“용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 아니잖아.”

“그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온 코미디언이었다면 기억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겠어? 총알을···”

세르게이는 말을 멈추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배경음악도 적당한 커피숍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았다.

백색소음이 이렇게 풍부한 환경도 찾기 힘들 것이다.

세르게이가 말을 멈춘 것은, 누가 수상하게 생각할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말하려는 내용 자체가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이준기가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말했다.

“좋아, 세르게이, 바실리사. 나도 그 중국인, 아니 칭퉁 야우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해. 하지만 거기까지다.”

“무슨 얘기야?”

“총알 멈추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뭐어?”

세르게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커피숍 직원도 돌아볼 정도였다.

이준기는 싱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세르게이. 나를 그 정도로 과소평가한 거야? 아무튼, 자리는 옮겨야겠다.”

*****

자리를 옮기는 차에, 그들은 아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세르게이의 촉을 따라, 또다시 그들은 허름해 보이는 뒷골목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음식 이야기만 하면서, 그들은 따뜻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세르게이는 기분이 한창 고양되어 있었다.

“아, 맛있다. 살 맛 난다!”

“뭐가 그렇게 좋아, 세르게이?”

바실리사가 조금쯤 어이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맛있어서. 맛있어서 그래.”

“감자가?”

“그래, 감자가 정말 맛있네. 감자야말로 민중의 힘이다.”

“무슨 소리야, 도대체.”

그러나 바실리사는 세르게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총알을 멈추는 매트릭스의 괴인이 저쪽뿐 아니라 우리 편에도 있다는 사실.

그걸 알고 나니 의기소침했던 기분이 날아간 것이다.

단순한 성격의 세르게이가 부러웠다.

나이프로 감자를 반으로 가르던 세르게이가 날씨라도 묻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대장, 아까 그거 대장도 할 수 있다 이거지?”

이준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물론이야. 설마, 보여달라는 건 아니겠지?”

“보여준다면 사양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난 대장을 믿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계속해서 보여줬으니까.”

“스킬 이름은 텔레키네시스다.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희귀한 스킬도 아냐.”

“그래··· 그렇게 외치는 걸 들은 것 같아. 막판에 말야. 그 중국놈이.”

“하지만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 정도 컨트롤이 되는 건 아냐. 내가 놀란 이유가 그거야. 내 짧은 경험으로는, 그걸 할 줄 아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부끄럽지만.”

“부끄럽다니··· 그건 아니지, 대장. 잘은 몰라도, 칭퉁 야우 그 녀석도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할걸?”

바실리사도 동의했다.

“맞아요. 그럴 거예요.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세르게이가 감자를 씹어 목으로 넘기며 말했다.

“그래서, 텔레키네시스, 그거지? 처음에 대장이 날 만났을 때 썼던 그 기술.”

아무렇지도 않게, 감자가 맛있다는 듯한 말투로 옛이야기를 하니 이준기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곤란했다.

세르게이가 말을 이었다.

“그거 말야. 설마··· 기억이 안 나는 거야? 나, 코피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었잖아. 그거, 대장이 내 손을 텔레키네시스로 움직여서 내 얼굴을 때린 거지?”

“푸핫!”

바실리사가 먹던 것을 뿜었다.

이준기와 세르게이가 돌아보았다.

*****

칭퉁 야우는 인질을 딱 두 명만 남기고 풀어주었다.

“이렇게 줄줄이 데리고 다녀봐야, 힘만 빠질 뿐이야. 농성이라도 할 게 아니라면, 짐은 가볍게 해야지. 인질도 짐이라고.”

“네··· 알겠습니다.”

중상을 입은 알렉세이 믈라디노프는 이제 전력에서 제외되어야 할 상황.

마피아 소대장 드미트리 레벤코프의 직속 상관이 알렉세이 믈라디노프에서 칭퉁 야우로 바뀌었다.

모스크바 마피아 보스 아브람 쉬넨코가 직접 그렇게 지시했다.

드미트리 레벤코프로서는 보스의 모습은 본 것은 물론 목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보스.”

“중국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다. 최고의 의전으로, 잘 모시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드미트리를 아브람이 불러 세웠다.

“그런데, 드미트리.”

“네, 보스.”

“그거, 정말인가? 약간은 과장이 섞인 얘기지?”

“초··· 총알 멈춘 것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죄··· 죄송하지만, 보스. 정말입니다. 과장이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진실입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니까요. 저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지켜봤습니다.”

“그래? 그런 대단한 자가 우리를 도우러 왔으니 잘 됐군. 좋아. 이제 가봐.”

드미트리는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는 보스의 눈에는 뭔가 불안의 기미가 보였다고.

마피아 보스의 자리라는 건, 결국 힘으로 얻고 지켜야 하는 자리다.

아무리 제 편이라 해도, 너무 막강한 존재가 나타났다면 아무래도 불안할 것이다.

칭퉁 야우는 풀어주는 인질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드미트리는 물론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총알을 멈추는 칭퉁 야우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다.

그냥 풀어주기만 하면, 그들은 자기편에게 칭퉁 야우의 공포를 퍼뜨릴 것이다.

뭘 요구할 필요가 없다.

1월 23일 일요일.

사흘 연속으로 다른 잠자리에서 일어난 칭퉁 야우는 드미트리를 불렀다.

바로 문밖에서 대기라도 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드미트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드미트리는 방안으로 들어와 차려자세로 섰다.

‘편히 쉬어’라고 해도 좋으련만, 칭퉁 야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편히 쉬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드미트리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칭퉁 야우의 아침 명령을 들었다.

“계속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조금 짜증이 나려고 한다. 세르게이 일행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거지?”

“죄송하지만 그, 그렇습니다. 밤중에도 수색을 계속했지만···”

“밤중에 수색하는 건 그만둬. 효과는 없고 애들만 지칠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쪽은 어때?”

“아직 대답이 없습니다.”

“인명을 경시하는 놈들이군. 인질 한 명,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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