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33화 (13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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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9: 디스 민즈 워 (6)

Episode 39: 디스 민즈 워 (6)

중국인은 안경을 벗어 던져 버리고, 머리에서 가발을 떼어 냈다.

키는 크지 않지만, 이제 보니 몸이 단단하고 다부져 보였다.

겨우 안경과 가발로 그런 모습이 가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너! 이리 와라.”

중국인의 밀치기 한 방에 멀리 굴러가 나동그라져 있던 병사가 재빨리 일어나 뛰어왔다.

“이름이 뭐냐? 계급··· 아니, 서열은?”

“이름은 드미트리 레벤코프입니다. 서열은··· 없습니다. 모스크바에 있을 때는 20명 정도의 부하를 관리했습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네가 대장인 거지?”

“네? 네. 그렇습니다. 우리들 일반 병사들 중에서는요. 우리 지휘관인 알렉세이 믈라디노프 님은 아까 보셨듯이 저쪽 골목에 가 계십니다.”

“알렉세이 믈라디노프, 그 녀석은 구원자?”

“네. 그렇습니다.”

“레벨은?”

“자··· 잘 모릅니다. 하지만 대단히 높다고 들었습니다. 거의 40레벨 정도라고···”

“훗, 제법 높기는 하군.”

중국인은 코웃음을 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안심해라. 난 너희들 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을 도우러 왔다. 그러니까, 우린 한 편이란 말이다.”

병사들이 가볍게 환호하며 웅성거렸다.

무시무시한 능력의 구원자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좋은데, 심지어 같은 편이라니.

중국인의 손짓에 따라 공중에 떠 있던 총기들이 하늘을 날아 그가 서 있는 자리로 움직였다.

총들을 차곡차곡 쌓은 뒤, 그는 뒷짐을 지고 고참 병사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칭퉁 야우다. 그냥 야우 님이라고 불러도 좋다.”

“네, 알겠습니다. 야우 님.”

“객으로 왔으니 주인 행세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상황이 개판으로 돌아가는 건 막아야겠어서 일어섰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알렉세이가 저쪽에 가 있는 동안에는 내가 상황을 통제하겠다. 알겠나?”

“무··· 물론입니다. 야우 님.”

칭퉁 야우의 말이 사실인지는 상관없었다.

병사 모두가 한꺼번에 덤빈다고 하더라도 그를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말을 듣는 수밖에.

목숨이라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인데, 중국인이 적이 아니라니 반가울 뿐이다.

“아까 나를 웃겼던 녀석. 일으켜라.”

칭퉁 야우는 세르게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드미트리 레벤코프가 직접 세르게이를 붙잡아 일으켰다.

칭퉁 야우가 말했다.

“세르게이라고 했던가? 세르게이 로스코비치?”

“로스코비츠다.”

“그래 로스코비츠. 극동 마피아 소속이라는 게 사실이냐?”

“그렇다. 아까 말한 대로다. 이름은 세르게이 로스코비츠. 서열은 12위다. 현재 사할린을 담당하고 있고, 모스크바 마피아 지원을 위해 잠깐 나와 있다.”

“그런데 왜 이놈들이 너에 대해 전혀 모르지?”

“그건···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비밀 지원 작전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 말은 지금 이 상황에서 너무 수상하지 않나?”

“모스크바 마피아나, 극동 마피아에 연락해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하긴 그렇지. 구원자라는 사실만 믿고 뻥카를 친다고 보기에는 만만치 않은 주장이니까. 그래서, 넌 레벨이 어떻게 되냐?”

세르게이는 잠깐 주저했다.

40레벨을 ‘제법 높다’고 평한 칭퉁 야우다.

이 질문에 대해서야말로 뻥카를 쳐야 하는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세르게이는 바실리사 쪽을 곁눈질했다.

바실리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저 여자 허락을 받는 거냐?”

“아··· 아니다!”

“그래? 저 여자는 어디 소속이고, 서열은 어떻게 되지?”

“저 여자는···”

우물쭈물하는 세르게이 대신 바실리사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바실리사 쿠즈네츠다. 극동 마피아 소속이고, 서열은 말할 수 없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난 극동 마피아 소속 비밀 요원이다. 내 서열을 알고 싶다면 보스, 블라디미르 아쉬코프에게 직접 물어라.”

“그래? 비밀 요원이 있다니 극동 마피아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조직이군. 그런데 비밀 요원인 네가 서열 12위보다는 높다는 얘기군?”

“우린 그냥 동료다. 내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허락이 아니라 동의다.”

“그래, 그래. 알겠다. 그렇다면 질문에 대답을 해라, 세르게이. 네 레벨은?”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36레벨이다. 낮아서 미안하군.”

*****

칭퉁 야우는 드미트리 레벤코프에게 명령했다.

“부하 하나를 시켜서, 세르게이와 바실리사를 집중 마크하도록.”

“네?”

“저들이 우리 편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게다가 구원자들이야. 총을 이마에 들이대고 감시해라.”

“네. 알겠습니다!”

드미트리의 지시에 따라 부하 한 명이 소총을 들고 총구를 세르게이의 이마에 들이댔다.

바실리사에게도 총을 든 병사가 배정되었지만, 총구를 이마에 들이대지는 않았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특별 대우, 고맙군요. 칭퉁 야우 씨.”

“별말씀을. 총이 하나 더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이렇게 좋은 대접을 해줬다는 사실을 나중에 우리 보스가 알면 어쩌시려고.”

“극동 마피아 보스가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일지도 모르는 구원자를 그냥 활개 치게 놔두라고요? 정중히 거절하죠.”

“글쎄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기 세르게이나 나나, 우리 보스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세르게이나 당신이나, 한 가지 분명하기는 하군요. 말이 많다는 것.”

칭퉁 야우는 고개를 돌려 드미트리에게 말했다.

“아까, 어디에 전화하려고 했어?”

“아까 전화라면···”

“세르게이 신분 확인 말야.”

“아··· 그건··· 마땅히 전화할 데가 없더라구요. 저는 그냥 조무래기라서, 간부 전화번호 같은 건 당연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전화하는 척만 한 거야?”

“세르게이 저놈이 하도 난리를 쳐대니까, 일단 어떻게 무마해보려고 한 거죠. 알렉세이가 돌아올 때까지··· 알렉세이는 간부니까 세르게이 신분 확인을 할 수도 있고, 어쩌면 세르게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세르게이 말이 사실이라면요.”

“그렇군. 그런데 당신 보스, 왜 안 와?”

“그··· 글쎄요. 심문이라도 하시는 걸까요?”

“심문?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아, 아니··· 그게 아니지. 아까 그 한국인, 세르게이와 바실리사와 일행이었지?”

“아··· 그렇군요.”

칭퉁 야우가 고개를 홱 돌려 바실리사를 노려보았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뭐죠?”

“당신, 그리고 세르게이는 모두 극동 마피아 소속 구원자들이라면서?”

“그래요.”

“아까 너희와 함께 있던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인가?”

“이제 좀 감이 오시나요? 네, 맞아요.”

“우연의 일치가 너무 길게 이어지면 그건 뭔가 잘못됐다고 봐야겠지. 극동 마피아가, 우크라이나 작전에 상위 구원자 세 명을 차출했다고? 그게 지금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거야?”

“보스 마음속을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설명은 못 하겠군요. 하지만 그게 사실이에요. 우리 셋 모두, 극동 마피아예요.”

“하!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좋아. 속아주지. 한국인 이름은 뭐지?”

“한국인이 아니고 고려인이에요. 한국계 러시아인이죠.”

“좋아. 그렇다고 치고, 이름은?”

“알료샤.”

칭퉁 야우는 세르게이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동요가 전혀 없었다.

한국계 러시아인의 이름이 알료샤인 것은 맞는 모양이다.

칭퉁 야우는 세르게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한국계 러시아인. 이름은 알료샤. 그리고 구원자?”

세르게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 구원자도 보통 구원자가 아니란 말이다.”

“허? 재미있는 반응이군. 알료샤가 너희 조직 보스라도 되냐?”

“보스는 아니지만··· 매우 막강한 구원자다.”

“너한테 매우 막강한 구원자라는 건 도대체 레벨이 어느 정도인 거냐?”

칭퉁 야우는 바실리사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

같은 편이지만 세르게이가 정말 창피하다는, 그런 표정이다.

칭퉁 야우는 그들 둘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정말 재미있군. 그러니까 너희 3인조의 두목은 알료샤인 거군?”

바실리사는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세르게이는 동요했다.

방금 전 문장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칭퉁 야우는 드미트리에게 말했다.

“너희 보스, 알렉세이. 저쪽 골목으로 갔지?”

“네, 야우 님.”

“병사 둘, 아니 셋을 데리고 빨리 구하러 가라. 총에 탄창 새 걸로 채우고.”

“네?”

“세르게이는 36레벨. 너희 보스는 기껏해야 40레벨. 그런데 포로랍시고 데려간 알료샤는 그보다 레벨이 높을 거다. 상황 판단이 안 되나?”

“아!”

*****

총성이 울렸다.

골목 쪽으로 뛰어가려던 드미트리와 병사들이 멈칫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명령을 재확인하려고, 드미트리는 고개를 돌려 칭퉁 야우를 바라보았다.

역시 칭퉁 야우를 바라보고 있던 드미트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끔찍한 광경을 예상하며 눈을 살짝 뜬 그의 눈앞에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칭퉁 야우의 가슴 앞에서 총알이 멈추어 서 있었다.

연이어 총성이 울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의 총알이 순서대로 날아와 칭퉁 야우의 가슴 앞에 모였다.

공중에 그대로 떠 있는 여섯 개의 총알.

총성이 멈추었다. 드디어 저격수의 탄창이 빈 모양이다.

칭퉁 야우는 인상을 쓰면서, 마치 날파리라도 쫓듯이 손을 거칠게 휘저었다.

공중에 모여 있던 총알 여섯 개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칭퉁 야우가 병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기습이다!”

병사들은 일제히 자세를 낮추면서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경계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칭퉁 야우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경계 자세를 유지하면서 황금문 쪽으로 움직였다.

다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칭퉁 야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총성이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번 총격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지 않았다.

뒤쪽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빨리, 건물 안으로!”

총격이 이어졌다.

병사들이 하나둘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총성이 날 때마다 인질들은 움찔하며 자세를 조금이라도 더 낮추려고 애썼다.

“응사해라!”

칭퉁 야우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대항 사격을 했다.

알렉세이가 이준기를 끌고 간 골목은 황금문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난 골목이다.

지금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은 그보다 훨씬 남쪽이다.

병사들은 그쪽을 향해 미친 듯이 총알을 퍼부었다.

“계속해서 사격해! 저쪽에서 응사할 틈을 주지 마라!”

칭퉁 야우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소리를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빗발치는 일제 사격음에 섞여 반대쪽 총격이 가끔 섞여 들렸다.

반자동 사격.

서너 발씩 이어지는 총격이 서너 차례 들려왔다.

“겁내지 마라! 이쪽으로 쏘는 게 아니라 공중으로 쏘는 사격이다. 계속해서 퍼부어라!”

총알을 공중에서 멈추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총성을 듣고 총격 방향을 파악하다니.

이렇게 대단한 존재가 같은 편이라는 생각에, 병사들은 용기를 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지르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아아아!”

잠시 후, 칭퉁 야우가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멈춰라.”

대부분 사격을 멈추었으나, 일부 병사들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총성에 귀가 먹은 건지, 악에 받친 감정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지 그들은 방아쇠를 계속 당겨댔다.

“멈춰!”

칭퉁 야우가 다시 외쳤지만, 아직도 두 명의 병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텔레키네시스!”

칭퉁 야우가 그렇게 외치면서 두 병사를 향해 손짓을 했다.

순식간에 총성이 멎었다.

조정간이 잠금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자 벙찐 표정으로 병사들이 칭퉁 야우를 쳐다보았다.

“상황 끝났다.”

과연, 더 이상 총성은 없었다.

칭퉁 야우는 인질들 쪽을 돌아보면서 한 마디를 보탰다.

“목표 완수로군.”

드미트리와 병사들은 칭퉁 야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쳐다보았다.

바실리사와 세르게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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