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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9: 디스 민즈 워 (5)
Episode 39: 디스 민즈 워 (5)
믈라디노프와 함께 골목으로 들어온 병사도 도망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묶인 손목을 다시 확인하고, 확실하게 기절 시켜 두려고 머리를 한 대 치려는 순간.
병사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찔끔하는 것이 보였다.
“이봐.”
대답이 없다.
그러면 뭐 하나. 눈꺼풀 움직이는 게 다 보이는데.
헛웃음을 터뜨리며 이준기는 다시 말했다.
“이봐. 깨어 있는 거 다 보여.”
“아··· 네. 죄송합니다.”
병사는 눈을 뜨고 번쩍 일어나 이준기 앞에 차려자세로 섰다.
이준기가 물었다.
“러시아에서 왔나?”
“그렇습니다.”
“마피아?”
“네. 하지만 그냥 조무래기예요. 구원자는 물론 아니고, 그냥 동네 깡패예요. 어쩌다 보니까 마피아 놈들에게 강제로 징집당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제발 살려주십쇼.”
“많이 듣던 얘기군. 나쁜 놈이기는 한데 정말 나쁜 놈은 아니고, 다른 나쁜 놈이 시키는 대로 하는 나쁜 놈이니까 봐 달라는 그런 나쁜 놈.”
“사··· 살려주세요.”
“좋아,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네, 물론입니다. 뭐든지 명령만 내려주십쇼.”
“해가 질 때까지만 여기에서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하면, 적어도 나한테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약속해주마.”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놈··· 어디 가지 못하게 잘 감시하고 있어.”
“네. 잘 보고 있겠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으면 된다. 저놈을 제압하라든가 하는 그런 무리한 요구가 아냐. 그냥 감시만 해.”
“알겠습니다.”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24시간 동안 피를 흘려도 절대 죽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이준기는 알렉세이 믈라디노프 쪽을 바라보았다.
이준기의 시선을 따라 병사도 그를 쳐다보았다.
신음은 잦아들었지만, 믈라디노프의 눈에 불타오르는 증오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다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고, 검붉게 물든 바지에서는 피가 떨어지는 중이다.
이준기는 고개를 다시 돌려 병사에게 하던 말을 이었다.
“저놈은 구원자인 데다가 체력 스탯을 엄청나게 찍어놔서, 절대 안 죽어. 체력이 95라니···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저 상처로는 절대 안 죽으니까 신경 꺼라.”
“네,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저놈이 얼마나 센 놈인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그런데 저놈은 나한테 졌어. 그러니까 누가 더 셀까?”
“어··· 어르신이 더 셉니다.”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는 게 명줄 보존하는 길이야. 알겠지?”
“네, 물론입니다.”
“찍소리라도 내면, 돌아와서 너부터 죽일 거다. 그러니까 잠자코 있어. 잠자코 저 녀석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대기하다가 해가 지면 돌아가도 좋아.”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병사의 눈에 서린 공포가 보였다.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를 구출해야 한다.
이준기는 골목 입구 쪽으로 가서 황금문 쪽을 바라보았다.
“뭐, 뭐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인질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줄을 맞춰 앉아 있다.
세르게이와 바실리사도 경찰복을 입은 인질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
달라진 모습은 러시아 병사들이다.
정복자인 양, 으스대며 여유롭게 대화하고, 어슬렁거리던 모습이 아니다.
전부 얼어 있다.
그 한기가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다.
모두 두 줄로 정렬한 채,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군단장 순시라도 받는 것처럼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다.
바로 그 군단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까 그 중국인이 서 있다.
사진을 찍어대다가 민병대에 제지당할 때만 해도 안경 쓴 더벅머리 덕후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짧게 자른 머리에 안경도 없다.
동작 하나하나에 각이 잡혀 있다.
군인 중에서도 정예 요원에서나 느껴지는 오라가 그 주변에 퍼지고 있었다.
그 중국인이 러시아 마피아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확실했다.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경찰들과 함께 인질 자리에 앉혀져 있다.
‘적··· 이었다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하려면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이준기는 생각했다.
*****
세르게이는 두 손을 머리 뒤에 댄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다른 인질들과는 달리 두 손을 묶지는 않았지만, 이마에 총구가 겨눠져 있다.
그의 이마에 소총 부리를 겨냥하도록 명령받은, 세르게이 전담 병사만이 열외 중이다.
다른 병사들은 그의 앞쪽으로 열 맞춰 서 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상태로, 차려자세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그림자가 해를 가려서 그런지, 더 추운 느낌이다.
사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조금 전까지 일어난 일 때문이지만.
이준기가 골목으로 끌려나간 직후부터, 세르게이는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굴렸다.
끌려가면서도 여유로운 웃음을 보인 이준기가 걱정된 것은 아니지만, 계획이 틀어진 것은 사실이다.
팀이 둘로 갈라졌다.
이준기는 이준기대로 상황에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대책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세르게이는 병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들, 러시아 마피아지?”
“죽고 싶나? 조용히 있어라.”
“나도 러시아 마피아다.”
“뭐라고?”
“나는 극동 마피아 서열 12위, 세르게이 로스코비츠다. 내 이름을 들어봤겠지?”
병사들 일부가 동요했다.
그들 대부분은 모스크바 마피아 소속이다.
극동 마피아라면 그들에게 형제 조직이다.
“마피아··· 극동 마피아라고?”
“같은 편이라는 거야?”
“구··· 구원자라도 되는 건가?”
“로스코비츠라는 이름 들어봤어?”
“극동 마피아 서열 12위가 누군지까지는 모르지.”
병사들 중 고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허리에서 권총을 뽑아 세르게이의 머리에 가져다 대면서 물었다.
“극동 마피아라고? 극동 마피아 보스 이름이 뭔지 정도는 알겠군?”
“날 못 믿는 건가? 보스 이름은 아쉬코프다. 블라디미르 아쉬코프.”
“맞았어. 하지만 그건 우연히 알 수도 있는 정보다. 네가 극동 마피아 서열 12위라는 사실을 증명할 다른 방법이 있나?”
“나는 구원자다.”
“구원자라고 다 마피아는 아니지.”
“러시아에서는 구원자라면 대개 마피아지. 그걸 모르나?”
“러시아에도 마피아가 아닌 구원자가 있다. 너야말로 그걸 모르나?”
“그걸 내가 왜 모른단 말이냐. 얼마 전까지도 푸가초프와 싸우던 나다.”
“정말로 극동 마피아 상위 랭커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피아나 구원자 쪽으로 지식이 많은 건 인정해줘야겠군.”
“나는 극동 마피아다! 너희를 도우러 비밀리에 파견되어 왔단 말이다. 보스 아쉬코프의 명령에 따라서.”
“어떻게 증명할 거냐는 말이다.”
“구원자 스킬을 하나 보여주겠다. 어떠냐?”
세르게이는 생각했다.
타이탄 테라코타.
그 기술을 보여주면 다들 화들짝 놀라면서 머리를 조아릴 것이라고.
오른발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만으로도 무시무시할 것이다.
그 발로 바닥을 찍어 깊게 파이고 그을린 발자국을 만들어 보이면 모두 기절초풍하겠지.
그러나 상대방은 제안을 거절했다.
“거절하겠다. 네가 정말 구원자라면, 무슨 일을 벌일 줄 알고?”
“누굴 해치겠다는 게 아니다. 여기 바닥을 살짝 그을려 주겠다.”
“네 말을 내가 어떻게 믿느냐는 말이다. 게다가, 네가 구원자라는 걸 증명하는 것과 네가 극동 마피아라는 걸 증명하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이지.”
“이렇게 말이 안 통할 줄이야. 너, 모스크바 마피아 소속이라면, 이름과 서열을 대라.”
세르게이의 이마에 총구를 여전히 겨눈 채로, 병사는 피식 웃었다.
“날 협박하는 거냐? 배포는 마피아급이군.”
“난 내 소속과 이름을 댔다. 난 너에게 같은 걸 요구하는 것뿐이다.”
“네 질문에 내가 대답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니, 내가 직접 알아보겠다. 잠깐 기다려라.”
“좋아. 네가 내 신분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하지만 내가 여기 계속해서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 햇볕이 쬐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편하게 앉아 있고 싶다. 그리고 저 여자도 내가 데려가겠다. 내 동료다.”
“네 신분이 확인되기 전에는 안 된다. 저 여자도 물론 마찬가지고.”
“무릎만 펴고 있겠다고.”
“안돼.”
“우리를 이렇게 푸대접했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텐데?”
“네 말만 믿고 너를 풀어줬다간, 내가 보스한테 맞아 죽을 거다. 아까 네 친구를 데리고 저쪽 골목으로 간 사람 말이다.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그놈이 나보다 서열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놈? 알렉세이 면전에서 그렇게 한번 불러봐라. 아무튼 무모한 건지, 담력 하나는 대단한 놈이군. 아니면 그냥 정신줄을 놓은 건가?”
“이봐,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마라.”
“훗. 네놈이 극동 마피아 보스라고 해도 내 대답은 마찬가지다. 나는 말이다, 너보다는 내 직속 상관 알렉세이가 훨씬 더 무섭거든.”
“제기랄. 말이 안 통하는군. 빨리 극동 마피아나 어디에 전화라도 해보란 말이다. 예브게니 영감이나 프로코포프나. 그리고 일단 무릎 꿇은 거라도 풀 수 있게 해다오. 다리 아프단 말이다.”
“계속 그렇게 까불면 다리에 한 방 쏴주겠다. 구원자는 회복력이 좋아서 총알 한두 발 맞아도 끄떡없다며?”
“뭐, 뭐야? 누가 그런 낭설을···”
무식한 마피아라면 정말 총을 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르게이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지으며 병사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을 보고 반가워진 세르게이가 서둘러 말했다.
“예브게니 영감의 전화번호를 불러주마. 478···”
“기다려. 난 극동 마피아에 전화를 걸려는 것이 아니다. 모스크바 쪽에 네 신원을 확인하겠다. 그러니까 잠자코 있어.”
“모스크바 누구? 아브람?”
“감히··· 보스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나는 극동 마피아 서열 12위다. 간부란 말이다. 모스크바 마피아 간부급이 아니면 나를 모를 수도 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어라.”
“전화 좀 빨리 해라. 다리 아프단 말이다.”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세르게이의 왼쪽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 정말 웃겨주는군.”
전화를 걸려던 병사가 웃음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더벅머리에 뿔테 안경으로 눈이 반쯤 가려진 중국인이 고개를 들고 웃어젖히고 있었다.
“뭐냐, 중국인? 죽고 싶나?”
“조금 두고 보려고 했는데, 나도 시간이 없다.”
중국인이 러시아어로 말했다는 사실을 반 박자 늦게 깨달은 병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생긴 공간을 밟고, 중국인은 일어섰다.
인질들을 향해 총구를 향하고 있던 병사들이 그에게 총구를 향하며 외쳤다.
“꼬··· 꼼짝 마라!”
중국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디디며 말했다.
“역시, 말로는 안 되겠지?”
세르게이와 대화를 하던 병사가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서며 부하들에게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쏴! 쏴버려!”
중국인을 향해 총구를 향하고 있던 병사 둘이 손가락을 당겼지만 방아쇠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이거 왜 이래?”
“초. 총이··· 이상해!”
병사 한 명이 조정간을 확인하고 외쳤다.
“잠금장치가 걸려 있잖아. 그런데··· 이게 왜 안 풀리지?”
옆의 병사도 마찬가지로 총의 사격 모드를 바꾸려고 했지만 조정간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고참 병사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바보 자식들··· 뭐 하는 거냐.”
그러나 그는 허리춤에서 꺼낸 권총을 손에서 놓쳤다.
떨어지는 권총을 왼손으로 받으려고 재빨리 손을 내저었으나, 그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권총은 중력 방향을 따라 아래로 떨어지는 대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오오오!”
“어어?”
앉아 있던 인질들, 그리고 러시아 마피아들 모두에게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권총에 이어, 병사들이 손에 들고 있던 소총들이 하나둘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대로 5미터 상공까지 떠오른 총기들은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중국인이 고참 병사를 밀치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중국인에게 가슴이 밀쳐진 병사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두 바퀴를 굴러갔다.
“구··· 구원자!”
중국인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공중에 떠 있던 총 하나에서 총성이 울렸다.
마피아와 인질들 모두 움찔했다.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도 넋이 나간 상태로 중국인의 원맨쇼를 구경하고 있었다.
“네놈들이 이 모양이니까, 도와주려고 내가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