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31화 (13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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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9: 디스 민즈 워 (4)

Episode 39: 디스 민즈 워 (4)

모스크바 마피아 보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서열 9위의 믈라디노프에게 그 정보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준기는 믈라디노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마치, ‘뭘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눈이 이준기의 눈을 맞받았다.

“좋아. 서열 9위에 불과한 네가 보스의 위치를 알 리가 없지. 인정한다. 다음 질문이다. 네가 여기 우크라이나에서 맡고 있는 임무는 뭐냐?”

“난 우리 조직의 우크라이나 작전 총괄 담당이다.”

“우크라이나 작전이라는 건 뭐냐?”

“뭐긴 뭐야. 이름에 그냥 나와 있잖아. 우크라이나를 먹는다는 작전이지.”

“하! 간단명료하군. 그러니까, 모스크바 마피아의 나와바리를 우크라이나까지 확장한다는 얘기?”

“그렇지.”

“그 작전에 극동 마피아가 개입되어 있는 이유는 뭐냐?”

“극동 마피아? 마냐 말이냐?”

“그렇다.”

“그건, 아까 말한 대로다. 극동 마피아와 우리는 형제 조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는 아니고?”

“그 조직들은 우리와 연합··· 말하자면 동맹 관계다. 형제와는 다르지.”

“그래? 우크라이나를 점령이라도 하고 나면, 너희 모스크바 마피아는 나와바리의 일부를 극동 마피아에 떼어줄 용의라도 있다는 말이냐?”

“보스가 결정할 사항이기는 하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좋아. 지금까지의 대답은 만족스럽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다음 질문이다. 현재 전황을 말해봐라.”

“뉴스도 안 보는 거야?”

“대외비를 포함해서, 네가 파악하는 대로의 전황을 내게 설명해라.”

“좋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지? 작년 말에 크림반도를 빼앗긴 것은 알고 있지?”

“그래.”

“크림반도를 우리가 두 눈 멀뚱히 뜨고 빼앗긴 것은 아냐. 뉴스에는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특히 CNN이라든가 서방 쪽 뉴스 말이다. 그건 사실이 아냐. 당시, 우리는 양쪽 방향에서 동시에 푸시를 받았다. 크림반도, 그리고 여기 키예프. 키예프에서 대대적으로 공세에 나선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서도 대등한 규모의 공세를 전개할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지.”

“성동격서도 아니고, 양쪽이 모두 진짜 공격이었는데, 양쪽 모두에서 패하기까지 했다. 그 얘기군.”

“그렇게 표현하니 정말 속이 쓰리군.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게 대패를 했으니 분석을 했겠지?”

“물론이다. 우리 결론은··· 외세의 개입이다.”

“외세?”

“핀란드, 그루지야, 폴란드, 심지어 그리스와 프랑스에서까지 떨거지들이 들어온 모양이야. 우린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 러시아 연합군 같은 거지.”

“지금 나열한 나라들. 증거가 있나?”

“전부 다. 내가 하나하나 죽이면서 물어본 거니까.”

“하! 그래?”

“그리스 놈이 제일 독하던데. 죽을 때까지 욕만 해대더구만. 살려달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어.”

“구원자들이겠지?”

“그렇다. 적어도 내가 잡아 죽인 놈들은 전부 구원자들이었지. 하지만 그냥 일반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쭙잖은 호승심에 남의 나라 일에 간섭하려고 기어들어 오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꼭 구원자들 사이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 총만 쏠 줄 알면, 총알받이로라도 쓸모가 있는 거니까.”

“너희 쪽에는, 그러니까 러시아 쪽에는 그런 사람들 없어?”

“자원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 말야? 다른 나라에서?”

“그래.”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그렇다면, 그건 너희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제삼자 입장에서 볼 때, 러시아 너희가 침략자라는 얘기잖아.”

“크림반도는 원래 우리 땅이다. 한국에서 세계사 시간에 그런 걸 가르치는지는 모르지만.”

“크림 전쟁은 우리도 배운다. 나이팅게일 여사 덕분이지.”

“훗. 그런가. 나이팅게일 여사 덕분에 우리는 나쁜 놈으로 나오겠군. 악역으로 말야.”

“패자는 언제나 악역이지. 역사란 그런 것 아닌가?”

“다시 또 느끼는 거지만, 정말 당신은 마음에 드는군. 이렇게 마음에 맞는 대화는 정말 오랜만이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우린 적이다. 지금 내게 나쁜 놈은 바로 너란 말이다.”

“그래. 그랬었지.”

“넌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벌레처럼 밟아 죽이려고 했겠지.”

“네가 구원자라고 밝혔다면, 좀 더 격식을 갖췄을 거야. 정중하게 죽여줬을 거다.”

“구원자라고 밝히고 죽는 것보다는,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남는 게 낫지 않겠어?”

“지금 이 상황이 말하고 있군. 그게 정답이라고.”

믈라디노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크림반도에 대해서 한마디만 더 하자.”

“그래. 말해봐라.”

“몇 년 전에··· 크림반도는 러시아와 다시 합쳐졌다. 그건 알고 있나?”

“대략적으로는.”

“그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다. 주민 투표에서 90%가 넘는 찬성표가 나왔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와 함께하고 싶다고, 그렇게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크림반도가 우리 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내가 대답할 질문은 아닌 것 같군.”

“아니, 네가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넌 한국에서 왔잖아. 핀란드나 그리스에서 온 놈들과 마찬가지로, 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도우러 온 거다. 바로 그 판단에 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거다.”

“그런 문제의식은 분명히 일리가 있군. 하지만 가정이 틀렸어. 난 우크라이나를 침략자에게서 구해내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정말인가?”

“내가 적대하는 대상은 러시아가 아니다.”

“그럼··· 왜 온 거냐?”

“난 러시아가 아니라 러시아 마피아를 막으러 온 거야.”

*****

믈라디노프의 눈빛이 달라졌다.

살려달라고 말할 때조차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그는 침을 튀겨가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러시아 마피아가 곧 러시아다! 러시아에 가봤다면서, 그걸 모르겠나? 러시아 정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부패한··· 썩어 문드러진 집단이다. 곧 썩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다. 러시아 마피아는··· 썩어빠진 현 정부를 대신해서 제대로 된 러시아 정부를 만들 것이다!”

“차르라도 다시 세우겠다는 거냐?”

“네가 뭘 안다고! 외국인 주제에 함부로 말하지 마라! 러시아 마피아야말로 러시아 민중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후우··· 알료샤 믈라디노프. 말이 좀 통하는 녀석인가 했더니 너도 결국 마피아 쓰레기로구나. 어떻게, 도적 떼가 민중을 대표한다는 말이냐?”

“푸가초프, 로빈 후드, 후스··· 민중의 반란은 언제나 역사를 변혁시켜왔다. 현시대에서는 우리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마피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감개무량하군. 너희 모스크바 마피아에 맞서 싸우는 조직 이름이 푸가초프인 것, 모르냐?”

“하! 외국인치고는 꽤 많이 알고 있군. 그건 놈들이 그렇게 참칭한 것뿐이다. 감히 푸가초프의 이름을 더럽히다니. 썩어 빠진 조직 주제에.”

“썩어 빠졌다고?”

“푸가초프 간부 중 하나가 작년 말에 우리에게 투항했다. 현재 우리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지. 그놈들은··· 그런 녀석들이다. 돈 몇 푼에 곧바로 동료들을 팔아먹는··· 그런 놈들이다. 그런 녀석들이 대의라고? 하하하!”

“갑자기 질문이 하나 생기는군. 그놈 이름이 뭐야? 푸가초프 배신자.”

“그게 왜 궁금하냐?”

“질문은 내 권리다. 네놈의 목숨 한 시간과 바꾼 거란 말이다.”

“후우··· 그랬었지. 좋아, 대답해 주지. 놈의 이름은···”

“보리스?”

“하!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네가 그놈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얘기는··· 보리스가 죽었나?”

“그렇다고 대답해야겠군.”

“그따위 녀석··· 죽어도 싸다. 어차피 이용 가치가 다하면 죽여버릴 생각이었으니.”

“그놈 말에 따르면, 너희 보스는 극동 마피아를 형제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까 네 말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더란 말이다.”

“무슨?”

“나는 극동 마피아를 공격하고, 모스크바로 넘어왔다. 내가 극동 마피아를 공격하는 내내, 그는 내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니까, 모스크바 마피아는 이미 자기편으로 포섭한 보리스를, 극동 마피아 공격에 활용했다는 말이 되는 거지.”

“뭐라고? 정말이냐?”

“네가 말했지 않았나. 보리스는 이미 작년 말에 너희에게 투항했다고. 내가 극동 마피아를 공격한 것은 올해 들어서다.”

“처음··· 듣는 얘기다.”

“극동 마피아를 공격할 때만 해도, 나를 돕던 보리스가, 모스크바 마피아를 공격하자마자 나에게 총구를 들이대더군. 물론, 네가 지금 보고 있다시피 승자는 나다. 보리스는 지옥이든 어디든 자기가 믿던 신의 심판을 받고 있겠지.”

믈라디노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형제 조직이라는 극동 마피아를 등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죽을 상황에 닥쳐서까지 차분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던 그다.

죽음의 위협보다 신념이 깨지는 것이 더 두렵다는 말인가.

악당에게 그런 신념이 있었다니.

믈라디노프는 멍하니 주절거렸다.

“그··· 그런 일이...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지? 보리스는 네 말대로 돈 몇 푼에 자기 동료를 팔아먹는 그런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죽기 직전에 목숨을 구걸하며 떠벌였던 내용이다. 그게 과연 거짓이었을까?”

“그··· 그랬단 말이지···”

“보리스가 네 직속 부하였나?”

“그건 아니지만···”

“보리스에게는, 옛 동료, 그러니까 푸가초프 소속 구원자를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알고 있나?”

“그건 당연하잖아. 푸가초프 놈들은 죽어 마땅한 버러지들이다.”

“보리스가 죽이려고 한 대상에는, 극동 마피아 소속 구원자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지. 그건 몰랐겠지.”

“저··· 정말이냐?”

“정말 죽을 뻔했지. 절묘한 기습이었어. 하지만 결과는 보는 대로다.”

“그··· 극동 마피아는?”

“잘 살아 있어. 게다가 이제는 정말··· 개과천선했다고나 할까.”

“개과천선?”

“왜? 모스크바 마피아에 배신당한 극동 마피아다. 마피아를 그만두는 게 당연한 선택 아닐까?”

“그··· 그런가···”

“마피아가 민중을 대표한다고? 어디에서 그런 미친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개소리라는 것··· 너도 사실은 알고 있었겠지. 마음속에서 그런 메아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 아냐.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알아봐라. 죗값을 치르면서.”

멍한 표정의 믈라디노프가 고개를 숙였다.

그를 바라보며 이준기가 말을 이었다.

“알료샤 믈라디노프.”

“응?”

“약속을 지키겠다. 죽는 대신 감옥에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어··· 어떻게?”

이준기는 믈라디노프의 손목을 묶었다.

플라스틱 줄 한 개라면 쉽게 풀리겠지만, 여러 개라면 쉽지 않을 것.

플라스틱 줄 십여 개를 하나씩 조였다.

“그···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좀 적당히 하라구.”

“내 마음이 바뀌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어.”

“아··· 알았다.”

“입 벌려.”

“뭐?”

믈라디노프의 입에 헝겊 조각을 마구 쑤셔 넣었다.

기절해 쓰러져 있는 부하의 겉옷을 찢은 것이다.

처음과는 달리, 어리둥절하면서도 조금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믈라디노프는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네가 몸담고 있던 조직. 그냥 양아치 조직이었다.”

믈라디노프는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너는 그저 장기 말에 불과했던 거지. 보리스와 마찬가지야.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그런 장기 말.”

믈라디노프의 눈에 적의가 드러났다.

이준기는 계속했다.

“아브람, 그놈이 너를 동료로나 생각할까? 형제 조직이라고 해놓고 극동 마피아를 등쳐먹을 생각이나··· 아니, 그걸 행동으로 옮기던 놈이니까. 아브람 밑에서 너는 죽을 때까지 혹사나 당할 운명이었던 거지. 그 대가가 이거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외국 땅에서··· 이제부터 오랫동안 감옥에서 지내야겠지.”

핏발이 선 믈라디노프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안녕, 알료샤.”

이준기는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둑.

위협 앞에는 의연할 수 있어도, 고통 앞에서는 그럴 수 없는 법.

믈라디노프는 재갈이 물린 채로 비명을 질러댔다.

무릎에 총을 맞은 그는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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