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29화 (12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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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9: 디스 민즈 워 (2)

Episode 39: 디스 민즈 워 (2)

아파트 창문가에 앉아서, 길수연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협회 신학길 사무총장과 만난 것이 어제다.

광화문 차원문 공격대에 꼭 참가해 달라는 것이 그가 한 말의 전부다.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집에까지 찾아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다니.

결국 둘은 강남역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나라 최고 힐러이신 길수연 님이 꼭 참가해 주셔야 합니다.”

“스케줄 체크해 보고 연락 드릴게요.”

“사상 초유의 A등급 던전입니다. 길수연 힐러님 없이는 불가능해요. 이건 협회장님 말씀입니다.”

“이상덕 회장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길수연이 싫어하는 티를 내자, 신학길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학길은 짜내듯이 대답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입니다. 구원자님께서 나서주셔야죠.”

“국가적 위기 상황이란 말이죠.”

“그렇습니다. 공격대 구성이 급선무입니다. 제가, 다른 구원자분들도 만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러니까, 꼭 좀 부탁드립니다. 길수연 힐러님 없이 이번 던전은··· 어렵습니다.”

“알겠어요. 하지만 대답은 아직 못 드려요.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나중에 연락 주겠다고는 했지만, 이번 공격대에서 빠지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인천 공항 차원문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이번 차원문을 국가적 재해로 규정했다.

정부 기관은 물론 많은 수의 금융기관과 대기업이 몰려 있는 곳이다.

차원문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인천 공항 때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지경이다.

‘김나리 힐러 역시 빠지지 못하겠지. 브릴리언트 길드 전체가 태업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길수연은 창밖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간밤에 내린 눈이 조금 쌓였다.

얼마 되지 않는 눈이지만, 아이들이 나와 눈을 굴리며 놀고 있었다.

길수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사람들의 생활. 일상의 행복.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그런 평화로운 날들···’

*****

문아린 역시 자기 집 창문으로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다.

간밤에 내린 눈이 얇게 바닥을 덮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이 조그맣게 보였다.

눈 위에서 몇 발자국을 걷고, 하얀 눈 위에 난 자기 발자국을 돌아보고 좋아하는 작은 아이들.

그 옆에는, 모여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들.

‘세상은, 변한 게 없구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비극은 일어난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오늘도 누군가가 죽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겠지만, 세상은 평소와 똑같이 돌아간다.

눈이 오고, 아이들이 뛰놀고, 눈사람이 만들어진다.

‘준기 오빠는··· 눈을 좋아했을까.’

아이들 몇몇이 술래잡기라도 하는지 꼬리를 물고 뛰어다닌다.

맨 뒤를 쫓아가던 가장 작은 아이가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진다.

화들짝 놀라면서 아이에게 뛰어가는 엄마.

아이를 일으켜 세우면서, 어디 다친 데 없냐고 묻는다.

꼬마는 울음을 멈추고 자기 옷을 탁탁 턴다.

쪼그려 앉은 엄마도 아이의 옷을 여기저기 털어준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아이를, 아니 아이 뒤편을 바라보는 엄마.

희고 푸른 구름 같은 것이 피어나면서 뭉게뭉게 번져간다.

창밖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문아린.

그녀의 눈에 익숙한 풍경이 들어왔다.

희푸르게 요동치며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돌고 도는 구름 덩어리.

차원문이다.

*****

람보르기니가 굉음을 내면서 정지했다.

파란색 문이 열리고, 한상태가 허겁지겁 차에서 내렸다.

한상태는 카드키로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엘리베이터 두 대는 모두 다른 층을 운행하고 있었다.

한상태는 기다리지 않았다.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달음박질쳐 위층으로 올라갔다.

11층에서 문을 열고 튀어나온 한상태는 회장실, 즉 김범규의 방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혀··· 형님!”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

김범규였다.

“김 회장!”

“한 회장님.”

“계획했던 대로 일 진행하는 거 맞지?”

“무슨··· 말씀이신지.”

“공격대 말야. 광화문···”

“일단, 제 방으로 들어가시죠.”

회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은 뒤, 김범규는 말했다.

“전화도 안 하시고, 왜 이렇게 급하게 여길 오신 거예요?”

“뉴스도 안 보나? 아니, 뉴스가 문제가 아니라 이건 김 회장이 먼저 알았을 거 아냐. 개포동 차원문.”

“아··· 개포동 차원문요. 난 또 뭐라고.”

“이런 얘기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 인천 공항 차원문 정찰대에 브릴리언트 길드가 빠졌었잖아. 기억하겠지?”

“그건 정찰대였잖아요.”

“이번에는 그러지 않는다는 거지? 약속하는 건가?”

“약속이라뇨? 그렇게 말씀하셔도··· 제가 어떻게.”

“뭐? 무슨 얘기야?”

“저 한 사람에 대한 얘기야 제가 약속드릴 수 있죠. 하지만 제가 길원들 전부에 대해서 보증할 수는 없잖습니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막강 브릴리언트 길드의 마스터, 김범규가 길원들 통솔을 못 한다고?”

“한 회장님도 아시잖아요. 이상덕도 같은 길드 길수연을 어떻게 하지 못했는데, 저라고 다르겠어요?”

“뭐··· 무슨 소리야? 벌써 누가 빠지겠다고 하기라도 했단 거야?”

“저도 답답합니다, 형님.”

“빨리 좀 말해봐. 누구야?”

“김나리요. 조금 전에 저한테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개포동 가겠다고.”

한상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표정이 굳은 상태로 그는 잠시 동안 김범규를 바라보다가 등을 뒤로 기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덕이 일본놈들을 끌어들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는데도, 공격대에서 빠지겠다고?”

“공격대에서 빠지겠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만···”

“무슨 소리야?”

“개포동 차원문에 들어가겠다고, 공격대를 모으겠다고 했어요.”

“개포동 차원문, 그거 C등급이라면서? 그걸 김나리가 왜 가?”

“전들 아나요. 아무튼 사람들 모아서 가겠다는데.”

“그래서, 그걸 다음 주 수요일에 가겠다는 거야?”

“아뇨. 그렇게 딱 집어서 일정을 겹치게 하겠다고 말한 건 아녜요. 하지만···”

“하지만?”

“오늘 토요일인데, 월요일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화요일에 나온다고 치고, 어떻게 수요일 공격대에 들어가요?”

“제기랄··· 김나리 왜 그래? 생각이 없어?”

“길마로서 제가 죄송합니다.”

“청와대에서 떠밀기라도 해야 하는 거야?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형님, 청와대는 소용없을 거예요.”

“엥?”

“제가 아는 사람 통해서 알아봤는데, 청와대는 이상덕 회장 계획을 반겼다고 합니다. 이상덕 회장한테 격려 전화 했다고 하던데요. 대통령이 직접.”

“뭐? 일본놈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그 계획을··· 칭찬했다고?”

“네. 구국의 결단이라고.”

한상태는 테이블에 손가락을 튕겼다.

“내가··· 뉴스 보자마자 곧바로 여기로 달려온 건데. 김 회장이 길원들 통제를 못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면목이 없네요.”

“내가··· 김나리를 만나보겠어. 방이 어디야?”

“나갔습니다. 공격대 모집하겠다고.”

“뭐라고? 김나리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신난 거야? 어디 갔는지 알아?”

“문아린···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문아린?”

“차원문 생긴 곳이, 문아린 구원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이라고 합니다.”

*****

이상덕은 하시바 세이이치로가 묵는 호텔로 급하게 달려왔다.

최고급 보안 시설을 갖춘 호텔 회의장, 바로 어제도 회의를 했던 곳이다.

‘이거, 주말도 없구만.’

잠시 기다리자, 하시바 세이이치로가 신학길과 함께 나타났다.

“하시바 상. 주말인데 쉬시지도 못하고···”

“아닙니다. 신 총장 말로는 좋은 일이라던데요?”

“네. 그렇습니다.”

“공격대가 딱 망할 각이라고요?”

“네. 저쪽 멤버 몇 명이 빠져나갈 것 같아요.”

“그거 희소식이군요. 별도로 손을 쓸 일도 없게 됐네요. 이게 웬일입니까.”

“하시바 상이 오셔서, 하늘이 돕나 봅니다. 하하하.”

“구체적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중입니까?”

이상덕은 신학길을 돌아보며 물었다.

“신 총장, 나도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니까. 하시바 상에게 보고 한번 하지.”

“알겠습니다, 협회장님.”

신학길은 노트북을 열고 뉴스 기사를 보여주었다.

“한글 기사를 읽으시라는 것은 아니고, 여기 사진을 보십쇼.”

신학길이 가리키는 사진은 차원문을 찍은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생긴 차원문.

한국 사람들은 흔히 마주치는 광경이지만, 일본인 하시바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빽빽하게 모여 사니, 거기에 차원문도 생기고 하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차원문 생기는 건 흔한 일이죠.”

“그렇군요. 그래서··· 이 차원문이 어디에 생긴 겁니까? 누구 나와바리죠?”

“역시 하시바 상. 예리하십니다. 차원문이 생긴 곳은 개포동입니다. 바로 브릴리언트 길드의 나와바리죠. 이번 공격대에서 협회장님 반대편에 설 가능성이 농후한 길드입니다.”

“아··· 김범규 회장.”

바로 어제 브리핑을 받았는데, 길드 이름만 듣고 마스터 이름을 대는 것을 보고 이상덕은 놀랐다.

머리가 매우 비상한 것이, 본인이 말하듯이 하시바 히데요시, 즉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과연 닮은 데가 많았다.

하시바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김범규가 여기 차원문을 핑계로 광화문 공격대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 겁니까?”

“그게··· 그렇게 됐다면 완벽한 그림인데. 그렇게까지는 아니고요, 일부 멤버가 공격대에서 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

“일부라면 누구요? 김나리 힐러라도 빠집니까?”

“네. 김나리 힐러가 김범규 회장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브릴리언트 길드에 밀정이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웬만한 길드라면 다 저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죠.”

“김나리 힐러가 빠진다면, 그건 꽤 괜찮은 전개군요. 그런데, 김나리 힐러가 다음 주 수요일에 정확하게 그곳으로 일정을 바꾸겠다고 한 겁니까?”

“아직 날짜까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벌써 토요일 오후입니다. 아무리 급하게 공격대를 모아도 월요일이나 돼야 던전 진입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수요일 공격대에 참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거군요?”

“네.”

“가능성은 글쎄··· 80% 정도 되겠군요. 100% 확정된 사실이 아니니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 특히 가족들 소재 확인하는 건 예정대로 진행해 주세요.”

*****

황금문 앞에서 민병대 군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바실리사.

그녀의 눈앞으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군복을 입은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두 명이 쓰러지는 동시에, 골목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어나오면서 우크라이나 쪽 병력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경찰들은 엄폐물을 찾아 우왕좌왕 헤맸다.

그리고 순식간에 진압당했다.

“멈춰!”

위협적인 외침과 함께 철컥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이준기와 일행은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천천히, 뒤로 돌아.”

그들은 뒤로 돌아 무장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옆에, 손을 번쩍 들고 뒤로 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사진을 열심히 찍던 중국인이다.

“운이 좋군. 외국인 인질이라니.”

이준기와 중국인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총을 든 사내의 지시에 따라 황금문 부근을 향해 걸었다.

공사용 가림막은 이미 뜯기고 부서져 있었다.

그 안쪽으로는, 60% 정도가 부서진 황금문의 잔해가 보였다.

그들은 총을 든 사람들의 지시에 따라 안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건축물 아래쪽에 인질로 잡힌 경찰 10여 명이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쪽으로.”

무장한 남자는 그들이 앉을 자리를 총구로 가리켰다.

인질이 된 경찰들 오른쪽이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키 큰 러시아 남자가 무전기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구원자들의 청력으로 무난히 들을 수 있는 정도.

“그래. 수고했어, 마냐. 상황 정리됐다. 철수해도 좋아.”

처음에 군인을 저격한 스나이퍼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스나이퍼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이준기는 세르게이와 바실리사에게 입 모양을 지어 보였다.

“마냐··· 마리아.”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극동 마피아 서열 5위 마리아 보로닌.

극동 마피아 5인방 중에 유일하게 아직 만나보지 못한 상대.

예브게니 영감의 말에 따르면, 모스크바 마피아 지원 차 나가 있다고 했다.

어쩌면 우크라이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흔한 이름이니까.’

이준기는 무전기 통화를 한 남자를 주시했다.

저격수에게 지시를 할 정도면, 지휘관급이라고 봐야 한다.

7미터, 아니 8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조금만 이쪽으로. 5미터 안으로 들어와라.’

그 남자가 갑자기 뒤로 홱 돌았다.

인질들을 둘러보던 그의 눈이 이준기의 눈과 마주쳤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서 다가왔다.

‘이르헬의 눈’을 사용하려면 정신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기도 전에, 그가 이준기에게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넌 뭐냐?”

“나··· 나는···”

이준기가 서툰 러시아어를 가장해서 말을 더듬었다.

바실리사가 러시아어로 말했다.

“한국인이에요! 러시아어, 잘 못 해요.”

남자가 바실리사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 들어 올렸다.

강제로 일으켜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글거리는 눈초리로 그가 말했다.

“넌 또 뭐야? 이놈과 일행이냐?”

“난 벨라루스에서 왔어요. 우리 셋은 관광객이고요.”

“관광?”

“네.”

“여기, 우크라이나. 전쟁 중인 거 모르나?”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 그래? 국제 뉴스에서 아직 잘 다뤄주지 않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오늘 뉴스에 크게 나도록 노력 좀 해봐야겠군.”

남자는 바실리사를 거칠게 내팽개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부하들 중 한 명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네!”

“저 새끼 끌고 나를 따라와라.”

“누··· 누구를?”

남자는 이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한국인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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