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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8: 불타는 배 (4)
Episode 38: 불타는 배 (4)
- 차원문 고유번호 10500. 랭크 B. ‘13층’.
- 차원문 소멸 조건: 탑 최상층에 위치한 보석 탈취.
- 차원문 입장 조건: 최대 5인 입장 가능.
- 차원문 소멸 보상: 에픽 아이템 1개 이상.
- 퇴각 페널티: 2레벨 강등.
차원문 정보를 체크하고, 세르게이는 이준기에게 물었다.
“13층? 보석? 대장, 이거 알아?”
“내가 뭐든지 다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뭐 딱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운 좋게도, 이건 알아.”
“아, 뭐야. 역시 이것도 알고 있었군. 모르는 것처럼 얘기하더니.”
바실리사가 끼어들었다.
“그러게요. 세르게이 말대로, 준기 씨는 도대체 모르는 게 뭐예요?”
“성 소피아 성당이 키예프에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그건, 착각할 수도 있죠. 그리고 저나 세르게이는 차원문 얘기하는 거잖아요. 도대체 비결이 뭐예요?”
“열심히 공부하고, 정보 공유도 하고 그러는 거죠.”
“정보 공유요?”
“지금은··· 은둔 중이긴 하지만요.”
바실리사는 더 묻지 않았다.
마피아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자신처럼, 이준기나 세르게이도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스에서는 이준기가 비행기에서 사고로 추락했다고 말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은 이준기를 처음 만나면서부터 알았다.
어떤 사정으로 지금 이준기가 러시아에서 잠행 중인 건지, 굳이 물을 이유가 없었다.
‘준기 씨가 러시아에 온 것만 해도 다행이니까.’
이준기가 말했다.
“일단 들어가요. 잠 좀 자고 나서, 차원문 정리하고 나오죠.”
“정리 못 하면 2레벨 강등인데, 준기 씨는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는군요.”
“정말이야, 대장. 대장은 정말 모든 일에, 아니 모든 차원문에 대해서 자신만만한 거 같아.”
*****
“이쪽입니다.”
신학길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쪽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하시바 세이이치로는 기다렸다.
호텔 직원이 차 문을 열어줄 때까지.
차에서 내리면서, 하시바는 호텔 직원에게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넸다.
호텔 직원은 당황했다.
‘1달러 지폐? 이거 환전이나 해주나?’
지갑을 닫고, 하시바는 에헴 소리를 내며 호텔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다리던 직원이 문을 열자, 하시바는 미소를 띠며 고맙다고 말했다.
억지로 웃는 그 모습이 염소나 쥐를 연상시켰다.
겨우 16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하는 키, 그리고 왜소한 몸집.
구원자가 되기 전에는 뭘하던 사람이었을까.
“짐은 방으로 옮겨놓겠습니다. 곧바로 회의장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잠깐이라도 쉬시겠습니까?”
“곧바로 가십시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호텔 직원이 회의장으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저는 협회장님 모시고 회의장으로 가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죠.”
“그렇게 하시죠.”
*****
“이렇게 일찍 오신 걸 보니, 하시바 상은 준비가 철저한 성격···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렇게 생각하시죠. 사흘 정도 먼저 온 것, 별것 아닙니다만.”
“다른 분들은 월요일 입국이라고 들었습니다.”
“주말을 본국에서 보내느냐, 외국에서 보내느냐, 그 정도 차이인 거죠.”
“한국은 자주 오셨습니까?”
“아뇨. 사실은··· 처음입니다.”
“네, 처음이요?”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군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나라인데, 이제나 와보네요.”
“그렇다면, 관광이라도 좀 하셔야겠군요. 신 총장한테, 주말 관광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뭘 좋아하십니까? 골프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온천?”
“하하하. 다 좋아합니다. 하지만··· 관광은 일 끝난 다음에 하겠습니다.”
“자기 관리 철저하시군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아닙니다. 과찬이시군요.”
“정말입니다. 일본 랭킹 3위나 되시는 분인데 말입니다.”
“저같이 키도 작고, 못생긴 남자는··· 뭐든 열심히 해야죠.”
“아, 아닙니다, 하시바 상! 무슨 겸양의 말씀을···”
그렇게 말은 했지만, 하시바 세이이치로에 대한 이상덕의 첫인상은 딱 그거였다.
원숭이.
일본 랭킹 3위의 실력자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실례의 말이라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최고급 정장을 차려입었지만, 마치 서커스단 원숭이 같은 모습이다.
몸에 딱 맞는 맞춤 정장이라서 더 그런 느낌이다.
누가 원숭이에게 정장을 맞춰주겠는가.
“겸양은 무슨··· 제 학창 시절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네? 하하··· 글쎄요.”
“태합. 그겁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어서, 사실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화에서 그 뜻을 안다고 하면, 실례겠지.
이상덕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제 성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하시바 아닙니까.”
“네, 그런데요?”
“하시바 히데요시라고 아시죠?”
난처하다.
하시바 히데요시를 모른다고 해야 하나?
이상덕은 한국 구원자 계의 대표적인 일본 통이다.
일본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실력.
그런데 하시바 히데요시를 모른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상덕은 말했다.
“하시바 히데요시라면··· 토요토미?”
“네, 맞습니다. 역시 이 협회장님. 듣던 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빠삭하시군요.”
“아닙니다. 그 정도는...”
“오다 노부나가 사후,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 히데요시가 차지한 관직 이름입니다. 처음에는 관백, 나중에는 태합.”
“아아···”
“그러니까 내가 히데요시 그 원숭이 새끼처럼 생겼다. 그런 얘기 아니겠습니까?”
“네? 네··· 하하···”
농담이라고 하는 모양이니 웃기는 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느 수준으로 반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상덕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잔뜩 담아 멋쩍게 웃었다.
“뭐, 괜찮습니다. 그렇게 나쁜 얘기도 아니니까요. 히데요시는 그래도 천하인이었으니까. 저를 천하인에 비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오, 그렇군요. 학창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신 거군요.”
“아닙니다. 학창 시절에 제가 히데요시랑 비슷한 구석이라면 외모··· 정도였겠죠. 학창 시절 제 성적은 그냥 중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일본 전체에서 3위에 올라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어느 날 갑자기, 구원자로 각성하는 바람에요. 그전에는 마약 운반이나 하는 잔챙이 야쿠자였죠.”
“야··· 야쿠자요?”
“역시, 놀라시는군요. 하긴, 제 몸집으로 어떻게 조직에 들어갔는지··· 의아할 수밖에요.”
“아니, 아닙니다. 조직에도 두뇌는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기는 합니다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시바 상···”
“말씀하시죠.”
“아직도··· 조직에 계신 겁니까?”
하시바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나름대로 호탕하게 웃으려는 모양이었지만, 목소리가 하이톤이라서 영 아니었다.
“하하하. 이상덕 상, 무슨 그런 말씀을. 야쿠자는 범죄 조직 아닙니까.”
“아하하, 그렇죠. 제가 실례되는 질문을 드렸네요.”
“조직은··· 그 조직은 제가 싹 밀어버렸습니다. 저를 깔보고 심부름이나 시키던 녀석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잘 자고 있겠죠. 태평양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말입니다. 드럼통 안이라서 다리를 쭉 못 펴는 게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군요. 으하하하!”
랭킹 1위였던 다케다 시게히데도, 최고의 공격대장이라는 아시카가 타마유키도, 네네키루마루라는 전설템을 휘두르던 야마시타 시게루도 이상덕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이 남자는 다르다.
몸집도 왜소하고 외모도 형편없지만, 이 남자는 이상덕이 기대하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 같았다.
‘무서운 놈이다. 지금 내 편이라는 게 다행이라고 느낄 만큼.’
*****
이준기가 잠에서 깼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잘 잤어요?”
“네. 24시간 만에 자서 그런지 정말 꿀잠이었네요.”
“저는 조금 전에 일어나서 잠깐 둘러봤어요. 그런데···”
“어땠나요?”
“아시겠지만, 여긴 아무것도 없군요. 오두막 바깥에 탑 하나, 그게 전부예요.”
“그렇죠? 사실 이 포맷은 가장 간단한 형태의 던전이라서, 여러모로 잘 됐어요.”
“B등급이잖아요.”
“그렇죠. 전투는··· 어렵죠.”
“역시 그런가요?”
“하지만, 우리 팀은 워낙 막강해서 문제없을 겁니다.”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세르게이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고, 뭘 준비해야 하는지, 설명해줄 거지?”
“물론이지. 이제 설명 시작하죠.”
이준기는 땅바닥에 기다란 직사각형을 그렸다.
직사각형을 여러 개의 칸으로 나누니, 탑 모양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여기 1층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13층까지 가는 거죠.”
“탑 내부는 어떤가요?”
“바실리사, 아까 탑 주변을 돌아보셨다고 하셨죠?”
“네. 세르게이도 같이 둘러봤어요.”
“딱 그 정도 크기입니다.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광대한 던전이 펼쳐지지는 않아요.”
“다행이네요. 시간도 많지 않은데.”
“그렇죠. 차원문 정보에 나와 있듯이 모두 13개 층이 있고, 최상층인 13층에는 보석함이 있습니다. 그 보석을 손에 쥐기만 하면 끝나요.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그래도··· 13개 층이나 되는데.”
“모든 층에 몬스터가 있습니다. 이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몬스터가 많지 않아요. 모든 층은 1인용 전투라고 보면 됩니다.”
“혼자 전투를 한다고요?”
“모든 층은 우리 정도 전력이라면 혼자서 깰 수 있어요. 세르게이, 너도.”
세르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몬스터 하나예요. 놀 검사, 오우거 마법사, 오크 주술사 정도. 여러 명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더 약한 몬스터들이죠. 오크 경비병 둘이라든가, 코볼트 졸개 다섯 마리라든가···”
“그럼 쉽기는 하겠군요. 하지만 굳이 혼자서 상대할 필요가 있나요? 우린 셋이니까, 셋이 잡으면 더 쉽고 빠르게,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잖아요?”
“13층 포맷이 재미있는 이유는···”
“재미요?”
“빠른 템포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죠. 그 이유는 이겁니다. 각 층에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 계단 통로는 해당 층 몬스터가 싸우는 중에만 열려 있습니다. 싸우기 전에도 잠겨 있고, 전투가 끝나도 잠겨버립니다. 전투 도중에만 위아래로 통하는 통로가 열리는 거죠.”
“아, 그래서··· 한 사람은 몬스터를 상대하고, 다음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거군요?”
“네, 맞아요. 그래서 이 던전은 솔로잉이 안 돼요. 적어도 두 명이 필요하죠.”
“몬스터와 전투를 하면서 계단을 올라가면요?”
“각 층의 몬스터는 그 층에 묶여 있습니다. 계단실에 진입하는 순간, 몬스터의 전투 상태가 해제되고, 계단실 문이 닫히면서 구원자는 계단 바깥으로, 그러니까 조금 전까지 있던 그 층으로 쫓겨납니다.”
바실리사가 아쉽다는 듯이 웃었다.
“바실리사, 혼자서 깨보고 싶은 거예요?”
“아, 아녜요. 그냥, 뭔가가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되는 방법이 없을까 반발하는 심리가 있어요. 이상하죠?”
“아뇨. 그게 뭐 이상해요. 아주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요?”
세르게이가 말했다.
“나도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렇게 하면 세상 살기 너무 피곤하지 않아?”
“글쎄. 나는 원래부터 이랬으니까.”
“아무튼, 대장이나 바실리사나 별종이라니까, 별종.”
이준기가 둘에게 말했다.
“설명, 다시 갑니다.”
“네.”
“그러니까, 순서를 정해야 해요. 셋이니까 빠르게 갈 수 있어요. 1층 담당은 저나 바실리사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세르게이, 그냥 효율을 생각하는 거니까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그런 건 걱정 말라고, 대장. 내가 레벨 제일 낮은 건 나도 아니까. 1층 맡는 사람이 13층을 맡게 되니까 최저 레벨인 나보다는 다른 사람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그렇지, 세르게이. 정확해.”
“최고 레벨인 대장이 13층을 맡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바실리사가 할 경우의 이점은 뭐야?”
“보석함은 말하자면, 14층이지.”
“아하. 그러니까, 13층 몬스터가 싸우는 중이어야 보석함이 열린다는 거군? 맞지?”
“정확해, 세르게이. 센스가 좋은데.”
“뭘··· 나도 대장과 던전을 다닌 경험이 조금 쌓였으니까.”
“다시 요약하면, 13층 몬스터와 싸우는 도중에 다른 멤버가 보석함을 열고 보석을 꺼내야 합니다. 그런데 보석함을 여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아요. 환상, 그러니까 허깨비가 보이거든요.”
바실리사가 물었다.
“허깨비요?”
“네. 악몽을 보는 거죠. 그래서 이왕이면 그걸 제가 할게요.”
“단지 악몽을 보는 거라면, 그걸 굳이 준기 씨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악몽을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런 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