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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8: 불타는 배 (3)
Episode 38: 불타는 배 (3)
“길수연은 접촉했어?”
“네, 협회장님.”
“뭐라고 해?”
“생각해 보겠다고···”
“길수연답군. 예전에 내 밑에 있을 때부터 말을 참 오지게 안 들었지. 생각해 보겠다고?”
“네···”
“말은 그렇게 해도, 아마 들어올 거야. 길수연 성격에··· 그럼, 그렇고말고.”
“그럼··· 문제없겠죠? 협회장님 계획에···”
“아마 그렇겠지. 더 확실한 게 좋기는 하지만.”
이상덕의 지시에 따라 신학길은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었다.
협회 차원에서 조사하는 거라고 말은 했지만, 신학길의 일거수일투족이 이상덕의 지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덕의 계획은 간단했다.
20명 공격대를 10대10 구도가 아닌 3파전 구도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에 신학길에게 이미 지시했다.
“10대10은 영 미덥지가 않아서 말야. 내편 10명 대 내 반대편 10명은 너무 아슬아슬하지.”
“뭔가 계획이 있으신 거죠?”
“그럼. 일단 길수연부터 만나 봐.”
“길수연요? 협회장님, 길수연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그게 바로 길수연의 묘한 장점이라고나 할까? 난 길수연을 좋아하지 않지만, 길수연은 날 대놓고 적대하지는 않거든.”
“네··· 그렇죠.”
“즉, 길수연은 중도파라는 거다. 내 편 10명, 한상태 패거리 9명, 그리고 길수연으로 공격대가 구성되면, 난 10대9의 수적 우세를 일단 확보하는 거지. 일본놈들을 제외하고도 말야.”
“아!”
“길수연 말고도 중도파에 설 사람은 또 있을 거야. 그걸 좀 알아보라고, 신 총장.”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국 구원자들로 공격대 T/O가 차든 안 차든, 일본인들을 개입시키겠다는 것이 이상덕의 계획이다.
그걸 신학길에게 설명하면서, 이상덕은 또 하나의 대비책으로 공격대에 중도파를 참여시키도록 지시했다.
이틀 전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박건우는 공격대에 참가하겠다고 했습니다.”
“박건우는 원래 문경새재, 그러니까 박충기 길드 멤버였잖아. 박충기 노선에 전적으로 따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왠지 불안해.”
“현재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슬쩍 떠보려고 했지만, 별 얘기를 하지 않더군요.”
“또 누굴 만났지?”
“유지호, 방혁우는 우리 편이라고 봐도 되겠죠?”
“유지호··· 아직도 소형 길드 마스터나 하려고 하는 그릇이니까. 나한테 대항하려고는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기름칠은 좀 해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방혁우··· 지금 몇 레벨이나 됐지?”
“방혁우··· 네, 여기 있습니다. 32레벨입니다.”
“원래 탑픽 소속이었던가?”
“네. 탑픽에서 4탱이었죠. 몇 달 전만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성나린, 채준영이 죽고 나서 2탱까지 올라왔죠. 충무공 길드와 연합할 당시에는.”
“내가 잘 모르는 인물이라서 말야. 오대영이 잘 좀 챙겼으면 좋겠는데.”
“제가 오대영 회장, 아니, 오대영에게 잘 얘기해 놓겠습니다.”
“만나는 봤어?”
“네, 회장님. 공격대 관련 조사라고 하면서 만났습니다.”
“어떤 인물인가?”
“그냥 고리타분한 샌님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래?”
“제가 보기에는··· 다분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습니다. 권위에 도전한다든가 할 것 같지는 않아요.”
“말 몇 마디 나눠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런데 방혁우가 지금 랭킹이 어떻게 되지?”
“네··· 찾아보겠습니다. 25위네요.”
“공격대에 참가 못 할 수도 있겠군.”
신학길은 프린트한 문건을 뒤져보면서 말했다.
“지금 순위가 다음 주 수요일까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20위권 내에서 확실하게 협회장님 편이라고 볼 수 있는 건 모두 7명입니다.”
“그래? 예상보다 적군.”
“협회장님, 오대영, 강명성, 변희영, 정두리, 박보도, 남경철. 이렇게 일곱입니다.”
“확실하게 내 반대편에 설 것 같은 사람들은?”
“그··· 그건 훨씬 불확실해서···”
“대강 추려보면 어떻게 되냐는 거지.”
“한상태, 장대한, 한소미까지는 협회장님 반대편에 선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상태가 지금 협회장님에 반대하는 여론을 이끌고 있고, 장대한, 한소미는 한상태와 같은 길드니까요.”
“문제는 결국 브릴리언트군.”
“네, 협회장님. 브릴리언트 길드가 20위권에 무려 여섯 명이나 있습니다. 협회장님 길드가 일곱 명인데, 브릴리언트도 만만치 않습니다. 원래도 큰 길드였는데 멤버 보강까지 해서.”
“훗. 그것도 있지만, 브릴리언트는 최근 몇 달 동안 상위 랭커 사망자가 가장 적은 길드였지. 탑픽, 충무공, 코리아··· 나를 지지하던 길드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동안, 브릴리언트 멤버들은 잘도 살아남았거든.”
“아··· 그런 점도 있었죠.”
“인천 공항 차원문··· ‘와이번 네스트’에서 내가 박충기와 전용택을 작살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훨씬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준기 그 녀석의 부재가 아쉽군.”
“이준기··· 그렇군요.”
“하지만 그 녀석도 나는 100% 믿지는 않았지. 사사건건 나한테 시비를 걸던 녀석인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고 덜컥 믿어버릴 수는 없는 거잖아? 오사카 기자회견 때 기자들 앞에서 나한테 대들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으려고 한다고.”
“그··· 그랬었죠. 고얀 놈 같으니라고.”
“그러니까, 작년 말에 그놈을 제거한 것은, 잘한 일이야.”
“그렇고 말고요.”
신학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덕이 이준기를 중용하는 바람에, 자기 지위에 큰 위협을 느꼈던 신학길이다.
이준기가 사라진 데 대해서 신학길만큼 기뻐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말야, 왠지 예감이 좋다구. 좋아. 이번 던전.”
“그럼요, 협회장님. 모든 일이 다 잘될 겁니다.”
“신 총장, 요즘 뉴스 잘 챙겨 보나? ‘2위의 저주’라는 말, 들어봤어?”
“드··· 들어봤습니다.”
“신기하지 않아? 권영호부터 시작해서, 고성하, 전용택, 그리고 이준기까지. 그런데 지금 2위가 누군가?”
“하··· 한상태 회장이죠.”
“지금까지 아주 정확하게 지켜졌던 패턴이지. 9월 권영호, 10월 고성하, 11월 전용택, 그리고 12월 이준기. 그런데 1월은 아직 조용해. 적어도 랭킹 2위가 죽지는 않았지. 그런데 때마침 2위 자리는 한상태··· 그 자식이 차지하고 있지.”
“네···”
“마치 신의 뜻이라도 되는 듯이 말야. 2위는 한상태, 그리고 우리나라 사상 최초의 A급 던전에 진입하는 게 바로 다음 주라는 거지.”
*****
한상태는 길드 사무실에서 회의 중이다.
부길마 두 명, 장대한과 한소미가 그와 함께 있다.
회의실 벽 스크린에는 현재 구원자 랭킹이 표시되어 있다.
한상태가 말했다.
“박건우, 그리고 문아린. 이 두 명이 키플레이어군.”
“박건우는 문경새재 출신인데, 우리 편으로 붙지 않을까요?”
“장담할 수 없지. 문경새재 길드원 전체가 반협회장 파벌이었던 것도 아니니까.”
“박건우는 그렇다고 쳐도, 문아린은 절대 이상덕에게 협조할 리가 없잖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신선자 출신이니까? 신선자 전용택이 박충기 오른팔이었으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이준기 때문이죠.”
“이준기?”
“이준기가 죽은 데 대해서, 이상덕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상덕 지시에 따라 일본에 가다가 죽은 건데.”
“하긴 그런가? 그런데 문아린과 이준기가 사귀기는 한 거 맞아?”
한소미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전우애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적어도 문아린은 진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가··· 문아린이 이준기 죽음 이후에 두문불출하고 있기는 하지.”
“바로 그 부분이 문제죠. 문아린이 이상덕 협회장 쪽에 붙을 가능성은 0이라고 보더라도, 우리 편이 될 가능성도 별로 안 보이니까요.”
“공격대에 나오지 않을 거다?”
“거의 한 달 동안 아예 외출도 안 한다고 해요. 공격대에 참가할 몸 상태가 아니지 않을까요? 공격대에 들어올 생각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이 있다고 해도 컨디션이 말이 아닐 거예요.”
한상태가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면, 그건 문제인데, 정말. 왜냐하면, 랭킹 21위 유지호, 이 작자는 이상덕 쪽에 붙을 것 같아서 말야.”
“그 사람, 잘 아세요?”
“아니, 잘 몰라. 하지만 나도 새 길드를 만드는 와중에 혼자서 조그만 길드를 유지하는 걸 보면, 보통 독불장군이 아닐 것 같아서 말야.”
“독불장군이면, 이상덕처럼 권력 추구하는 사람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장대한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 얼마 전에 신학길 사무총장이랑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신학길? 이상덕 쪽에서 선수 치는 건가?”
“우리도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장 부길마가 한번 만나주겠어?”
“저보다는, 한소미 부길마가 만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저처럼 우락부락한 남자보다는 한소미 부길마가 낫죠.”
“장대한 부길마가 뭐 어때서. 그래도 한소미 부길마가 협상은 더 잘할 것 같기는 해. 한소미 부길마가 유지호 이 사람 한번 만나주겠어?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성차별 같은 거 아냐. 오해 말라고.”
“한 회장님,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네, 알겠어요. 제가 만나보죠.”
“고마워. 그런데 박건우, 문아린만 문제인 건 아냐. 다들 알겠지만.”
“그렇죠. 선우결 회장이 어떤 입장인지도 잘 모르겠고, 길수연 힐러도 마찬가지고요.”
“길수연은··· 아마 또 중립이겠지. 그 망할 놈의 중립 말야.”
“하긴··· 길수연 힐러는 이상덕이 인천 공항에서 반대편을 학살할 당시에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요?”
“그런 상황에 중립이라니··· 말이 되냐고!”
한상태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말문이 막혔다.
학살극이 벌어지는 와중에 애매한 태도를 보인 건 자기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김범규처럼 뭘 받아먹고 그러지는 않았잖아!’
“길수연은 공격대에 들어오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걸 수도 있겠어!”
“20위권에서 또 한 명이 빠진다면, 다음 순위 랭커들이 들어오겠죠. 황채성, 박희주, 설국헌···”
“황채성은 브릴리언트지만, 박희주는 서울연합이잖아.”
“그 사이에 순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죠.”
“저 사람들, 다음 주 수요일 전에 어디 던전이라도 들어가나?”
“그건, 모르죠. 그런 것까지는 협회도 모를걸요. 본인들한테 물어봐야 할 텐데. 그럴 시간 여유는 없죠. 물어보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설국헌 교수님도 있었군. 설 교수님은 우리 길드니까··· 도움이 될 텐데.”
“지난번처럼 학살극이라도 벌어졌다가는··· 설 교수님 쓰러지시는 거 아녜요? 충격받아서. 연세도 있으신데.”
“그런가···”
“한상태 회장님, 이렇게 표를 만들고 분석해 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사실 지금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건, 김범규 회장을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거라고요. 브릴리언트가 20위권에만 6명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을 전부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도, 브릴리언트가 중립 선언이라도 했다가는 우린 전부 끝장이에요.”
“끝장···”
“네, 끝장요. 저도 인천 공항 거기에서 죽을 뻔했잖아요. 정말 목숨 구걸해서 간신히 살아남았죠. 그걸 생각하면··· 전 사실 이상덕 회장과 함께 차원문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무섭다고요.”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 생각해서 그렇게 된 거야.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
“아, 그게 아니라고요?”
“유명한 성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에 있는 거고요. 키예프에 있는 건 다른 거예요.”
“아··· 그걸 몰랐네요. 창피해라.”
“그게 뭐 창피해요. 전 한국이나 일본에 있는 건축물 하나도 모르는데.”
이준기와 바실리사가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 그들은 수도원의 지하에 도착했다.
지하 교회라고도 부르는 그곳은, 게임에서나 보던 던전, 바로 그 모습이었다.
높이는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은 정도에, 두 명이 나란히 걷기도 힘들 정도로 너비가 좁은 지하 굴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지하 무덤이라니··· 정말 RPG에나 나오는···”
뭔가 복잡한 지하 굴이 안쪽으로 계속 뻗어 나가는 것 같이 보였지만, 차원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지하 시설 중 그나마 넓은 부분은 입구에 위치한 지하 교회였는데, 바로 거기에 희푸른 차원문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건, 정말 위험하군요. 차원문에서 괴물이 나와서 저쪽 지하 굴로 들어가 숨어버리면 어떻게 하죠? 언제 거기에서 나와 사람들을 해칠지 어떻게 압니까? 그야말로 차원문 밖에 던전이 하나 더 생기는 거죠.”
“그러게요. 지하에 생긴 차원문이라 경비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아예 방치가 되어 있다니.”
듣다 못 한 미샤가 말했다.
“처···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군인 몇 명이 지키고 그랬어요. 여긴 제 구역이라서 잘 안다고요. 지금 이 모양으로 방치된 건, 러··· 러시아 사람들이 치··· 침략한 이후라고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지만, 미샤는 세르게이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았다.
“그래요. 고마워요, 미샤. 이제 가보셔도 돼요.”
바실리사가 그렇게 말했지만, 미샤는 여전히 세르게이의 눈치를 보았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그래, 수고했어, 미샤. 이제 가 봐도 좋아. 하지만, 우리 얘기를 어디에 가서 하면··· 알지?”
“아··· 알았습니다.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넘어온 깡패들은 우리가 처리해 준다. 전부 다 다시 돌려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할 거라고.”
“저··· 정말요?”
미샤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세르게이를 쳐다보았다.
“세르게이는··· 구원자인 거죠?”
“그래.”
“부럽습니다.”
세르게이는 잠깐 생각했다.
구원자가 되어서 좋은 점과 나쁜 점.
역시, 좋은 점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미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부럽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직업이야.”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우크라이나에서는 말이죠. 전쟁 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