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6)
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6)
“바, 바실리사? 무슨 일이야! 이··· 이런 시간에.”
6시 42분이다.
그냥 저녁 시간인데 ‘이런 시간’이라니.
눈에 익은 전화번호에 대한 반응으로는 의외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였다.
바실리사가 살아있다는 사실, 그것 자체에 대해 보리스의 목소리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보, 보리스!”
“무슨 일이야?”
“스, 습격당했어요.”
“습격? 습격이라니? 누구한테서?”
“마피아겠죠. 총으로 공격했으니까요···”
“초··· 총으로? 어디에서?”
“차원문 정리하고 나오다가··· 습격당했어요.”
“툴라에서?”
“네. 툴라에서.”
“지··· 지금은 어디야? 아··· 잠깐, 혹시 스피커폰이야?”
“네··· 운전 중이라서.”
“우, 운전 중? 바실리사가 운전 중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모··· 모두 죽었어요. 그래서···”
“주, 죽었다고?”
“네. 둘 다, 죽었어요.”
“그럼, 바실리사 혼자 차를 몰고 도망치는 중이라는 거야?”
“네.”
“지금 어디쯤인데?”
“모스크바로 가는 중이에요. 지금··· 푸시치노 지나가고 있어요.”
“그래? 그럼 얼마나 걸리지, 여기까지?”
“모스크바 시내까지 두 시간 정도요.”
“두 시간 정도란 말이지···”
“저, 어디로 가야 하죠? 전에 묵었던 민박집으로 갈까요?”
“아, 아냐. 거긴 안전하지 않아. 잠깐··· 잠깐 생각해 볼게.”
상대방에게 들킬까 봐 숨을 죽이고 있는 이준기와 세르게이는 물론, 바실리사에게도 길게만 느껴지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 그래, 바실리사! 포돌스크로 와.”
“포돌스크요?”
“그래. 포돌스크 기차역 근처에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술집이 있어. 위치 찍어줄 테니, 그쪽으로 찾아와.”
“네, 알겠어요.”
“도착할 때쯤 문자라도 줘. 내가 먼저 도착하겠지만, 나도 준비할 게 이것저것 있으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수고했어, 바실리사. 살아남아서 다행이야.”
“고마워요.”
“좀 이따가 보자. 연락 줘.”
“네.”
통화 종료 버튼이 눌리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바실리사가 먼저 말했다.
“보··· 보리스가!”
“바실리사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네··· 아무래도··· 이상하니까요. 처음에 전화 받을 때부터.”
“포돌스크에서 보리스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뇨.”
“나폴레옹이라는 술집은 들어본 적이 있어요? 아는 곳인가요?”
“아뇨.”
세르게이가 물었다.
“포돌스크로 가?”
“그래야겠지.”
“나폴레옹으로?”
“차는 좀 멀리 세워야 할 것 같아. 보리스가 정말 변절자라면, 우릴 기습하려고 하는 것일 테니까.”
“보리스가 변절자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얘기야?”
“확신까지는 아니지. 붙잡고 물어봐야겠어.”
“포돌스키 기차역에 환승 주차장이 있어. 지금이라면 바글바글할 거야. 사람도 차도.”
“거기에 세우고 걸어가면 되겠군.”
“바로 그 얘기지.”
*****
“뭐야?”
“안녕하세요? 웹서빙(Web Serving)에서 나왔습니다.”
“웹서빙? 그게 뭔데?”
“음식 주문, 배달 대행업체입니다. 고객님이 주문을 하셔서, 음식 주문하고, 픽업하려고 왔습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린 그런 서비스에 가입한 적이 없어!”
“고객 요청에 따라 음식을 주문하고 픽업하는 서비스라서요. 어떤 식당에서든 주문이 가능한 것이 저희 업체의 장점이죠. 식당 쪽은 가입할 필요가 없고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아무튼, 우리는 오늘 저녁에 단체 손님을 받게 되어 있어서, 그런 요청을 받을 수가 없으니 가 봐.”
“네?”
“오늘 영업 안 한다고.”
“요리 하나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수수료도 드리겠습니다.”
“영업 안 한다고 했다. 계속 나를 귀찮게 한다면···”
“아,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남자는 재빨리 문을 닫고 물러섰다.
그리고 가게 간판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나폴레옹’.
남자는 총총히 밤길을 걸어갔다.
*****
사례금을 받은 후,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져갔다.
걸어가다가도, 그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바실리사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침내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바실리사는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준기가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군요.”
“네, 예상했던 대로예요. 오늘 밤, 영업 안 한다고 했답니다.”
“그렇다면 쉬워진 거 아냐, 대장? 그냥 쳐들어가면 되잖아.”
“그래, 세르게이. 그냥 FPS 게임 하듯이 쓸어버리면 되는 거지. 바실리사가 위험한 연극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야.”
바실리사가 물었다.
“보리스,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될까요?”
“보리스도 지금쯤은 전화가 와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우리 쪽에서 굳이 연극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그냥 돌입하는 걸로···?”
“네.”
세르게이가 말했다.
“총은 이것뿐이야. AK-74M. 바실리사도 괜찮지?”
“물론이에요.”
“탄창은 30발들이 바나나 탄창뿐이야. 45발들이라도 있었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는데 말야. 여분 탄창을 가져가야 할까? 어떻게 생각해, 대장?”
“30발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보리스··· 이 사람은 생포해야 해. 그럴 게 아니라면 오늘 작전은 복수전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이준기와 세르게이는 보리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웹 검색으로 찾아낸 단 하나의 사진이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이 사진은 조금 갸름하게 나왔네요, 얼굴이. 이 사진보다 얼굴이 조금 더 넓고, 각 지다고 생각하세요. 턱도 조금 더 울퉁불퉁하고.”
“알았어, 바실리사.”
“다른 사람들은 사살해도 좋아. 하지만, 보리스는 무력화시켜야 해. 무릎을 쏴.”
“알았어, 대장.”
*****
8시 28분.
바실리사가 전화를 했던 장소에서 포돌스크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거리다.
넉넉하게 계산해도 8시에는 도착해야 한다.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는 방탄조끼 위로 체크무늬 니트를 입고 바에 앉아 있었다.
바실리사가 찾아오면 만나야 하니, 최대한 의심 받지 않을 복장을 하고 있다.
보리스는 시계를 보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문에서 보이지 않도록, 벽이 꺾이는 지점 뒤에 서 있던 중무장한 사내가 그에게 말했다.
“보리스, 왜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거지?”
“그··· 글쎄? 차가 막히는 건 아닐까?”
“이 시간에? 모스크바에서 나오는 방향도 아니고, 들어오는 방향이 막힌다고?”
“길에··· 교통사고 차량이라도 있는 건가···”
“널 의심하고 있다든가 하는 건 아니고?”
“아냐, 안톤. 그럴 리가 없어. 바실리사는 구원자 각성 당시부터 내가 관리하던 아이다. 내가 키운 거나 다름없다고. 날 의심할 이유가 없어.”
“확실해?”
“아까도··· 공격받았다고 나에게 연락해왔잖아.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나에게 말야.”
“천애 고아라며?”
“그래, 맞아. 위기에 빠졌을 때, 나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을 거야.”
“그런데, 왜 아직까지···”
“그러게 말야. 사고라도 난 건가?”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헛수고를 하더라도 그쪽이 더 낫지. 구원자를 상대해야 한다니. 기분이 더럽다구.”
“구원자라고 특별한 것도 없다. 총 맞으면 그냥 죽는 거야. 그건 잘 알고 있잖아?”
“그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바실리사는 나를 믿고 있어. 생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적진에 걸어들어오는 거니까.”
“그랬으면 좋겠군.”
“그리고, 우리 쪽도 구원자가 있잖아. 나도 있고, 맥스도 있고.”
자기 이름이 불리는 걸 듣고, 건너편 테이블에서 맥스가 손을 들어 보였다.
가죽 재킷 차림에 해골 모양 목걸이와 반지를 주렁주렁 찬 모습의 소년.
술집이라는 장소를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 한 명이다.
18세라고는 하지만, 중학생으로 보일 만한 외모다.
손에 든 피젯 스피너를 돌리며, 맥스가 물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요, 안톤?”
“목표물이 나타날 때까지지. 아니, 목표물을 처리할 때까지.”
“안 오잖아요.”
“보스 지시는 그거다.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한, 집에 갈 생각은 마.”
“누가 집에 간대요? 클럽에 가야 한다구요. 모스크바까지 가려면 시간도 걸릴 텐데. 이게 뭐예요? 아무리 늦어도, 아홉 시 되기 전에 끝날 줄 알았는데.”
맥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손안에는 요란하게 도는 피젯 스피너.
이번에는 보리스에게 묻는다.
“바실리사, 예뻐요?”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거지?”
“왜긴요? 여자가 예쁘면 좋은 거죠. 보기에도 좋고, 죽이기에도 좋잖아요.”
“미친놈.”
맥스가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뒷문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문 바로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맥스가 그쪽을 쳐다보면서 한마디 했다.
“뭐야, 저 아저씨?”
다음 순간, 뒷문이 내팽개쳐지듯이 열렸다.
총탄이 퍼부어져 들어왔다.
손에 쥐고 있던 피젯스피너를 던져버리면서, 맥스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의 머리에서 겨우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눈앞으로 지나가는 총알이 보였다.
보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기습이다!”
*****
안톤은 침착하게 테이블 하나를 쓰러뜨리고, 그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총알이 쏟아부어진 뒷문을 향해서 총구를 겨냥했다.
문은 다시 닫혀 있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고, 총을 쏘고, 다시 도망갔다?’
보리스는 몸을 숙이고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했다.
그리고 몇 발자국을 걸어, 바 끝의 사각에 몸을 숨겼다.
바텐더 자리에 서 있던 마피아도 고개를 숙인 채 뒷문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정문이 열리면서 총성이 울렸다.
바텐더 위치에서 뒷문을 주시하던 마피아가 머리에 총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미닫이문이 다시 닫히기 직전, 한 사람이 바닥을 구르면서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뒷문을 주시하고 있던 마피아들을 상대로, 그는 침착하게 한 발씩만, 총알을 발사했다.
AK-74M이 불을 뿜을 때마다, 머리에 총알을 맞은 남자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순서대로 쓰러지는 남자들.
마치 무성영화 같다.
세 명을 쓰러뜨리고 나서, 정문으로 난입했던 남자는 오른쪽으로 굴러 바 안쪽으로 들어갔다.
“보리스!”
바 안쪽에서 오른쪽 주방으로 도망가던 보리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0.1초 정도 지났을까.
뭔가 뜨거운 것이 무릎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악!”
이미 다섯 명이나 쓰러졌지만, 비명을 지른 것은 보리스가 처음이다.
고통에 울부짖는 보리스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다시 뒷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뒷문에서 오른쪽, 그러니까 정문에서는 벽으로 가려진 메인 홀을 향해 그는 총알을 난사했다.
한 명씩 조준사격을 하던 정문의 남자와는 달리, 그는 아낌없이 총알을 쏟아부었다.
비명을 질러대던 보리스가 조용해졌다.
정문의 침입자가 그의 머리를 향해 개머리판을 휘둘러 그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안톤이 소리쳤다.
“정신 차리고, 응사한다!”
안톤은 뒷문의 침입자를 향해 반자동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어느새 육중한 냉장고 뒤에 엄폐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테이블, 뒤로는 벽을 엄폐물로 쓰고 있었지만, 안톤은 술집의 메인 홀 한가운데에 있었다.
가장 불안한 위치.
“응사해!”
대답이 없었다.
안톤은 뒷문 쪽을 향해 반자동 사격을 한바탕 퍼부었다.
냉장고에 총알이 박히는 소리가 나고, 이번에는 그쪽에서 안톤을 향해 반자동 사격을 가했다.
안톤은 테이블 뒤에서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서너 발의 총알이 날아왔다.
나무 테이블의 부서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옆으로 구르면서 안톤은 다른 테이블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외쳤다.
“야, 이 새끼들아! 응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