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18화 (11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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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5)

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5)

“세르게이, 빨리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

바닥을 굴러 총알을 피하면서, 이준기는 외쳤다.

세르게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피아 한 명을 ‘회오리’로 공중에 띄운 바실리사는 세르게이를 향해 힐을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힐러 쪽으로 특화한 것도 아니고, 특성을 마구잡이로 찍는 바람에 빛의 책 몇 권을 찍은 바실리사.

사정거리도 짧고 치유량도 적은, 그런 미약한 힐밖에는 구사할 수 없다.

그녀가 건물 벽에서 나오려고 할 때마다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세르게이!”

바실리사가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세르게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이준기는 총알 사이를 누비며 적의 수를 하나씩 줄여갔다.

스킬 책을 전부 다 소모했다.

이제는 그저 반사신경과 체력으로 버틸 뿐이다.

이제 세 명이 남았다.

한 명은 바실리사의 회오리에 걸려 공중에 떠 있다.

다른 두 명은 건물 벽 뒤에 엄폐한 채로 총알 세례를 퍼붓고 있다.

두 명이 한 팀이다.

한 명이 탄창을 교체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총알 세례를 퍼붓는 중이다.

오늘 이후에 세상은 없다는 듯,

탄창의 총알이 모두 날아갈 때까지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서 힘을 빼지 않는다.

무식하지만, 효과적인 전술이다.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다.

이준기가 외쳤다.

“바실리사!”

“네!”

“일단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요!”

“그게 가능해요?”

“차원문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가능합니다.”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하죠?”

“그냥 들어가서 계시면 돼요. 힐링 포션은 있죠?”

“네.”

“제가 나중에 세르게이를 던전 안으로 던져 넣을 테니, 그때 세르게이에게 힐링 포션을 먹여주세요.”

“아··· 알겠어요!”

바실리사가 건물 벽 뒤에서 뛰어나와 차원문 쪽으로 뛰었다.

차원문은 이미 크기가 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바실리사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이준기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적들을 향해 다가갔다.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이준기는 바닥을 굴러 총알을 피하면서 건너편 건물 벽 뒤로 움직였다.

차원문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 세르게이.

바실리사가 세르게이를 들쳐메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바실리사! 그냥 들어가요!”

탄창을 바꾼 2인조의 한 명이 차원문 쪽을 향해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바실리사에게 총알이 쏟아졌다.

첫 번째 총알은 그녀의 성흔, ‘포켓 유니버스’가 막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스킬 책이 바닥났다.

“으악!”

바실리사가 어깨에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바실리사!”

바실리사가 쓰러진 채로 왼쪽 팔을 들어, 차원문을 건드렸다.

그녀의 몸이 차원문 안으로 사라졌다.

*****

건물 벽 뒤에 숨어 이준기는 권총의 탄창을 열었다.

딱 한 발이 남아 있다.

2인조는 번갈아 가며 탄창을 전부 비워내는 사격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총격전의 아비규환으로 사고가 경직되어 버렸기 때문이리라.

이준기는 자신의 왼쪽 하늘 위에 떠 있는 마피아를 잠깐 올려다보았다.

이제 내려올 때가 됐다.

‘저 녀석의 총이 필요하다.’

회오리바람에 갇혀 있던 마피아가 땅 위로 착지했다.

구원자의 스킬에 당해본 적이 없는 일반인.

땅 위에 거칠게 착지하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발이 땅에 닿을 때, 생각보다 더 묵직한 중력에 발목이 삐끗한 것이다.

이준기는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크헉!”

이준기는 골목에서 나와 쓰러진 상대방을 향해 달렸다.

슬라이딩을 하며 그의 손에서 총을 빼앗은 이준기.

방향을 틀어 다른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빼앗은 것은 소총.

이번에도 AK-74M이다.

‘잠깐 받은 레슨이 도움이 많이 되는군.’

2인조의 총격 패턴은 이미 고정된 지 오래다.

박자를 하나하나 세고 나서, 이준기는 1초의 빈틈을 이용해 고개를 내밀고 건너편 골목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풀썩.

정확히 이마에 총알을 맞고 2인조의 한 명이 쓰러졌다.

신음도 내지 못한 채.

“으아아아아!”

다른 한 명이 광기에 휩싸였다.

미친 듯이 이준기가 숨어 있는 벽 쪽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벽이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철컥, 철컥···

그는 방아쇠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겼으나, 빈 탄창은 반응하지 않았다.

눈물에 범벅이 된 마피아 멤버의 시야에, 골목에서 나온 이준기의 실루엣이 뿌옇게 보였다.

총알이 날아왔다.

*****

울리는 알람을 무시하다가, 오늘이 소풍 날임을 깨닫고 번개같이 일어나는 초등학생.

그렇게 세르게이가 벌떡 일어났다.

“헉··· 여··· 여기가 어디지? 내가 사··· 살았나?”

이준기, 그리고 바실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 다행이다.”

“살았군요!”

세르게이가 계속 두리번거렸다.

이준기가 혹시나 해서 말했다.

“아직, 시력이 돌아오지 않은 건가?”

“아···! 대장! 바실리사!”

“휴우··· 놀랬잖아.”

주변에 힐링 포션을 담았던 유리병들이 잔뜩 있었다.

마시고 버리면 10분도 안 돼서 어딘가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는 유리병이다.

‘이렇게 많이 쌓여 있다니, 도대체 몇 개를 먹인 건가···’

“여긴··· 던전 안?”

“그래.”

“그래요. 준기 씨가 업고 들어왔어요.”

세르게이가 오두막 천장을 쳐다보며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아···!”

“던전 안이 반가운 건 뜻밖이지?”

“그때··· 생각나네.”

“그때? 아··· 그때.”

“그래, 그때.”

바실리사가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깨보니까 던전 안이었지. 사할린에서.”

“그렇네. 너한테는 이게 벌써 두 번째구나.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던전 안에 진입한 것이.”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또 그렇게 됐네.”

바실리사가 물었다.

“어디까지 기억나? 총 맞았던 건 기억해?”

“아··· 그랬었지.”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야. 구원자라서 체력이 워낙 좋아서 그런 거겠지만.”

“아··· 체력. 체력 많이 찍은 게 다행이었네.”

이준기는 ‘이르헬의 눈’으로 세르게이를 보았다.

체력이 90. 이준기보다도 높다.

힘과 체력 스탯을 주로 찍어서 그런 것이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준기 씨 덕분에 새로운 것도 많이 배우네요. 사라지는 차원문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군요.”

“네. 소멸까지 대기 시간이 줄지는 않지만, 소멸되기 전에 들어오기만 하면, 소멸할 때까지는 이용할 수 있죠.”

조슈아를 상대로, 전 세계 차원문을 돌아다니며 피의 전쟁을 벌이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된 것이다.

이준기는 오두막 벽에 등을 기대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뜻밖의 도시에서 총격적을 벌이는 바람에 피로가 몰려왔다.

이대로 던전 안 오두막에서 쉬는 것도 좋을 텐데.

던전 소멸은 이제 7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준기와 눈이 마주친 세르게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살려줘서 고마워, 대장.”

“우린 한 팀이잖아.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잖아.”

*****

셋은 우선 롤란의 집으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세르게이가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중간에 잠깐 걸리던 문손잡이가 우드득 소리를 내면서 돌아갔다.

문손잡이가 부서진 문을 밀었지만, 열리던 문은 체인에 걸려 막혔다.

세르게이가 문을 좀 세게 밀자, 체인도 떨어져 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집은 비어 있었다.

화장실과 옷장을 잠깐 뒤져보았지만, 롤란은 여기 없는 것이 확실했다.

“아지트로 가죠. 거기에도 없겠지만.”

“확인은 해야 하니까요.”

셋은 롤란의 아파트 밖에 주차되어 있던 토요타 픽업을 몰고 아지트로 향했다.

아지트 문 역시 닫혀 있었다.

아파트보다는 훨씬 튼튼한 자물쇠였지만, 세르게이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진지하게 힘을 주고 몇 차례 밀자, 쇠막대가 묻혀 있던 콘크리트가 통채로 떨어져 나갔다.

아지트는 엉망이 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제 문까지 부서졌으니 툴라 마피아에 문제가 생긴 것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롤란이 어디로 도망갔는지가 문제겠군요. 아무래도 모스크바로 간 것 같습니다만.”

“내 생각도 같아, 대장. 우릴 배신할 생각을 감히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일단 도망간다면 모스크바 본부로 갔겠지.”

“이반 클리츠비치 살해범이 누군지 알았으니, 모스크바 본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겠지. 당장 쫓아가는 수밖에 없군.”

셋은 차에 탔다.

세르게이가 운전석으로 앉으려고 하자, 이준기가 물었다.

“괜찮겠어?”

“대장 덕분에 멀쩡하다고. 운전은 내게 맡겨.”

“그래, 그럼. 고마워.”

이준기와 바실리사가 보조석으로 타고, 차가 출발했다.

이준기가 바실리사에게 물었다.

“모스크바 마피아의 본거지··· 어딘지 알아요?”

“프런트 오피스는 알죠. 자경단 말예요.”

“일단 거기로 가죠.”

“지하철역에 쓴 낙서는 어떻게 하죠? 키예프에서 보자고 했잖아요.”

“모스크바를 치고 곧바로 키예프로 갑니다.”

“두 번이나 공격을 받은 셈이 되니, 눈에 불을 켜고 당장 쫓아오겠군요.”

“무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던전 바깥에서 싸우게 될 테니까요.”

“보리스에게 연락해 볼게요.”

“이리나···라고 했죠? 또다른 접촉 포인트.”

“네, 이리나. 제가 아는 조직원은 보리스와 이리나뿐이에요.”

“이리나에게 연락하면 어때요? 이리나에게는 무기 보급을 받을 수 없나요?”

“이리나에게서 무기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이리나가 바실리사에게 무기를 달라고 한 적도 없죠?”

“네. 없어요.”

“그렇다면 이리나는 바실리사가 아닌 다른 접촉 포인트에게서 무기를 보급받는 구조겠군요. 바실리사에게 보리스 같은 존재, 그 사람한테서.”

“그렇겠죠.”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보리스에게 의지할 수밖에.”

바실리사가 그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냈다.

이준기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잠깐만요, 바실리사. 보리스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죠?”

“어제죠. 여기 툴라 마피아 사무실 정리한 다음에요.”

“그렇다면, 보리스는 오늘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겠군요?”

“그렇겠죠.”

“보리스에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마피아 쪽 총격을 받고, 바실리사만 살아남았다고.”

바실리사가 고개를 돌리고 놀란 눈으로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네? 왜요? 설마, 보리스를 의심하는 거예요?”

“롤란이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거, 당연하긴 하죠. 하지만 증거는 없어요. 정황 증거뿐이죠.”

“보리스가 왜요? 보리스가 왜 배신을 하죠? 무슨 이득이 있다고···”

“보리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죠, 바실리사는?”

“그, 글쎄요. 그렇게 얘기하시면···”

“그렇죠?”

“동료! 동료잖아요! 마피아에 맞서 싸우느라고 죽음을 무릅쓰는 사람이에요. 러시아 땅에서 레지스탕스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인류 역사에 스파이는 언제나 있어왔죠. 왜겠어요?”

“그건···”

“인간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존재예요, 바실리사.”

“설마, 보리스가···”

“어제, 어디까지 얘기했어요, 바실리사? 툴라 마피아를 정리한 것까지, 아니면, 오늘 던전에 들어가는 것까지 얘기한 건가요?”

“오늘··· 던전에 들어간다고까지 얘기했어요.”

“보리스가 먼저 물었나요, 오늘 계획이 뭔지?”

“그··· 그래요. 오늘 툴라를 뜰 것인지 물었어요. 그래서 아마 차원문 정리를 할 것 같다고 얘기했죠.”

“그 말을 듣고 뭐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하세요?”

“고··· 고생스럽겠지만 부탁한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일반인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마피아 처단보다 차원문 정리가 더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잘 부탁한다고.”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귀가 맞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까, 바실리사는 오늘 ‘어쩌면’ 차원문 정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보리스는 ‘꼭 좀’ 정리해 달라고 얘기한 거잖아요?”

“네··· 네, 맞아요. 나는 분명히, 차원문 정리를 할 수도 있다고만 말했어요. 그럴 예정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보리스가 그걸 주문했죠.”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어요. 보리스가 한 말,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피아 처단보다 차원문 정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맞는 말이니까요.”

“네··· 저도 그 말을 들으면서 보리스답다고, 믿음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점검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나요?”

“알겠어요, 준기 씨. 그렇게 하죠.”

“오늘 차원문을 정리하고 나오다가 마피아의 기습을 받았다, 그런데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일행들은 죽고 혼자서만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그렇게 얘기해보죠. 우리 이름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일행이 있다는 것은 보리스도 알고 있겠죠?”

“네. 동료 둘이 있다고만 얘기했어요.”

“네, 좋아요. 그렇게 말해보죠. 동료들은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목소리 톤을 잘 들어야겠네요.”

“다 같이 들어요. 스피커폰으로 해요.”

“의심하지 않을까요?”

“운전 중이라고 말하세요. 운전 중이라 스피커폰으로 통화한다고.”

“하긴 그렇네요. 그게 더 말이 되네요.”

바실리사가 휴대폰을 들고 보리스의 번호를 눌렀다.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화번호는 저장하지 않는다.

통화 후에는 반드시 통화기록을 삭제한다.

전부, 보리스가 가르쳐준 것이다.

스피커로 송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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