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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17화 (11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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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4)

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4)

심박은 여전히 최대로 뛰고 있었지만, 이준기의 스텝은 가벼웠다.

단 한 방의 역습도 허용하지 않고, 그는 놀 경비병을 쓰러뜨렸다.

쓰러진 경비병, 그리고 그 너머의 석관을 바라보면서, 이준기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160, 150, 140···’

심박이 130 언저리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자, 이준기는 석관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귀찮게 언데드를 상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길드원 훈련도 아닌데.’

세르게이와 바실리사가 무덤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에는 만난 적조차 없는 사람들, 그러나 이번에는 한 팀이다.

세상이 좀 더 시끄러워질 때까지 잠깐 숨어 있으려던 러시아에서, 이미 동료를 둘이나 만들어버렸다.

석관의 덮개에는 여러 개의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다.

돌이 돌을 무는 형태로 된 잠금장치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준기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기술이 아니면 마법이겠지.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이라면 마법과 다를 것도 없다.

석관의 한쪽 면에 포개진 석벽에는 복잡한 기하학적 도형들이 윤무를 펼치고 있었다.

그 복잡한 무늬를 살펴보니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던전 클리어라고 생각하고 석관을 열던 공격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흩어지던 모습.

차원문 폐쇄 조건은 석관을 개봉하는 것이다.

화려한 제복의 경비병까지 쓰러뜨리고 나니, 석관이 보물 상자로 보인 것이다.

보물 상자를 여는 것이 차원문 폐쇄 조건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 혼자 왔다.’

이준기는 석관의 뚜껑 위를 뒤덮은 잠금장치를 한 번 죽 훑어보았다.

제작 원리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잠금장치를 푸는 방법은 대단히 직관적이다.

요철이 맞춰져 있는 부분들을 하나씩 분리하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 빗장을 향해, 이준기는 손을 가져갔다.

빗장을 옆으로 밀자, 석관 뒤쪽 석벽에서 음산한 울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상상하는 귀신의 울음소리인 것이지.’

두 번째 빗장으로 손을 가져갔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는 두 손으로 빗장을 풀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양하고 기괴한 울음소리가 차례차례 그를 향해 다가왔지만, 그는 쳐다보지 않았다.

차분함을 유지하면서, 그의 손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여덟 번째 빗장.

그리고 아홉 개째.

열 개째.

온갖 울음과 비명, 끼긱거리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가득 채웠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시간이었지만 석관 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높고 낮은 형형색색의 기괴한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는 묵묵히 다음 빗장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모두 열여섯 개였군.’

16개의 빗장을 모두 풀고, 이준기는 두 손으로 석관의 뚜껑을 잡아 옆으로 밀었다.

주변의 공기를 빽빽하게 채우던 그 모든 소음이 일순간에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연막탄의 검은 연기가 사라지듯이 어둠도 함께 몰려갔다.

*****

“왜 안 나오나 했어.”

“수고하셨어요.”

세르게이와 바실리사가 이준기를 맞았다.

이준기가 석관 뚜껑을 열어젖히는 순간,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모두에게 출력되었다.

복잡한 복도를 걸어 나와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시간이 걸린 이유는 또 있었다.

황제의 석관 안에서 나온 던전 클리어 보상템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 다이내믹 폴리곤(Dynamic Polygon).

- 목걸이. 에픽 등급.

- 발동 효과: 하루에 한 번, 방어되지 않은 공격을 공격자에게 반사합니다.

이준기는 둘에게 아이템 링크를 공유했다.

“이런 게 나왔는데.”

“오오. 축하해, 대장.”

“준기 씨, 축하해요. 고생했는데 잘됐네요.”

바실리사의 ‘해골 랜턴’, 그리고 세르게이의 ‘마력 저항의 펜던트’.

모두 에픽 등급 목걸이다.

목걸이 부위가 아예 없는 이준기에게 둘은 흔쾌히 양보했다.

바로 지난번 던전, 모스크바 던전에서 바지를 가져간 세르게이는 별 불만이 없을 것이다.

바실리사가 아이템 욕심을 부리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어쨌든, 바실리사는 이미 에픽 등급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이 목걸이는 누구라도 욕심낼 만한 아이템이다.

구원자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자동 방어라니,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좋은 기능이다.

리더가 이렇게 아이템 욕심을 내도 되는 것인가.

이준기의 얼굴에 개운치 않은 표정이 떠오르자, 팀원들이 앞다투어 말했다.

“대장이 제일 수고 많이 했잖아. 그 아이템 가져가는 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준기 씨 성격, 좀 고리타분한 데도 있네요. 그냥 꿀꺽하세요.”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대장 혼자 처리했잖아.”

“세르게이 말이 맞아요.”

이준기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집어 목에 둘렀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로써, 유일하게 비어 있던 자리에 아이템을 채워 넣게 되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목걸이는 해운대에서 탱커 한상태에게 대여해 주었다가 파괴되었다.

그 이후로 그렇게 많은 던전을 돌았건만, 이상하게 목걸이는 구하지 못했다.

러시아 땅에 와서 겨우 구하게 될 줄이야.

이준기는 상태창을 열어 현재 자신의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 45레벨.

- 전문화: 어둠 8, 바람 15, 마나 22.

- 힘 70. 민첩 140. 체력 75. 정신력 25. 물리 저항 25. 마력 저항 25.

- 성흔: 이르헬의 눈.

- 획득 스킬: 리버설, 블러, 귀검, 텔레키네시스, 마나 드레인, 검은 창.

- 무기: 패시파이어(에픽), 오캄(에픽), 카데쉬(에픽), 흑요석 칼날(에픽).

- 방어구: 자수정 선글래스(레어), 이광의 장갑(에픽), 고스트 폼(에픽), 홍길동의 가죽 바지(에픽), 아킬레우스의 샌들(전설).

- 장신구: 다이내믹 폴리곤(에픽), 카멜레온 디텍터(에픽), 오크 학살자의 반지(레어).

- 인벤토리: 강화 곡궁. 불화살 5개, 독 저항의 영약 1개, 상급 힐링 포션 6개, 중급 힐링 포션 6개, 기본 식량 팩 4개.

*****

“오룔은 스킵하기로 한 거죠?”

“오룔이든 어디든, 원래 계획했던 행선지 중 하나는 제외해야죠.”

“이미 5시가 다 되었으니 오늘은 툴라에서 자고, 내일 쿠르스크까지 가는 게 어때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5시간은 잡아야 할 거예요.”

“다섯 시간이라. 긴 하루가 되겠군요.”

세르게이가 끼어들었다.

“나, 내일도 운전할 수 있어. 맡겨만 줘.”

“너무 부려먹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오늘은 운전 쉬었잖아. 그리고 운전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걱정 말고. 혹시 내가 운전 너무 험하게 하나?”

“아니. 난 괜찮은데, 바실리사는 어때요?”

“저도 괜찮아요.”

그들은 산책하는 속도로 천천히 걸었다.

충분히 뛰어다닌 하루였으니까.

오두막에 도착하자, 이준기는 던전을 나가기 전에 소모품을 보충하자고 제안했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던전 들어올 때 말고, 나갈 때 보급품을 챙긴다는 생각. 훌륭한 것 같아요.”

“다음번 던전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던전 입장 후에 보급품을 챙길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그렇죠. 그게 아니더라도, 던전 입장 직후에는 소란스러우니까요.”

“그렇겠죠. 저는 잘 모르는 얘기지만.”

언제나 소규모 공격대로만 던전에 들어온 바실리사는 과연 모르는 얘기였다.

열 명이 넘는 공격대원이 자판기 앞에 줄 서는 모습을, 바실리사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레지스탕스로 살아온 구원자 바실리사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어요?”

“글쎄요. 뭘 먹으면 좋을까, 세르게이? 좋은 생각 없어?”

“글쎄. 롤란에게 물어볼까?”

“그거 좋은 생각이네. 아무래도 여기 사는 사람이 식당은 잘 알겠지.”

바실리사가 말했다.

“바깥은 잘 지키고 있겠죠?”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어제 조직이 박살 났는데, 그래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으니 괜찮겠지.”

이준기도 동의했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 목숨이 제일 아까울 테니까. 다른 마음을 먹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자판기를 한참 두드리던 바실리사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다 샀어요. 나갈까요?”

*****

차원문 안으로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차원문에서 나올 때도 구원자의 모습은 처음에는 조금 투명하다가 점차 진해진다.

1초 남짓한 그 시간에 구원자는 두 개의 공간에 동시에 존재한다.

겹쳐진 두 개의 시공간은 지각과 인식을 엉망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대개의 구원자들은 차원문 출입 시에 눈도 감고 귀도 닫는다.

숨조차 참는다는 구원자들도 있다.

어떻게든 혼란을 줄여보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겹쳐진 두 개의 시공간을 동시에 지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 짧은 시간에도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완성시키고 만다.

동시에 두 개의 시공간을 감각하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그 경지를.

차원문을 드나들 때마다 눈 감고 귀를 막으며 심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차원문에 진입하자마자 공격받는 경우가 절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적어도 탱커라면, 공격대장이라면, 이 기술은 익혀야 합니다.”

‘날개’ 길드의 메인 탱커가 된 이후 이준기는 늘 그렇게 주장했다.

물론, 들으려는 귀는 거의 없었다.

차원문 안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차원문 밖에서까지 전쟁을 하던 세상이다.

지쳐가던 사람들은 더 이상의 짐을 지려 하지 않았다.

차원문을 빠져나오면서, 두 개의 시공간이 겹치는 순간··· 이준기는 느꼈다.

바깥쪽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묵직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긴장감이 주변의 공간을 가득 채운 느낌.

한두 번 느껴본 것이 아니어서, 꽤 익숙하다.

이준기가 선두에 서서 나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동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목청으로 외쳤다.

“엎드려! 공격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몸도 바닥을 향해 낮게 내리깔았다.

그리고, 곧바로 스킬 ‘귀검’을 발동했다.

압축된 시간 속을 빠르게 달리면서, 그는 적의 숫자를 확인했다.

셋, 일곱, 열, 열둘.

이렇게 많을 수가.

툴라에 마피아가 이렇게 많다고?

롤란이 배신한 것이 틀림없다.

침착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배신자 롤란부터 죽이려고 찾을 것이다.

감정이 다스리는 대로 행동할 것이므로.

이준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관총을 들고 코트 자락을 펄럭이는, 키 큰 남자에게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

인벤토리가 아닌 주머니에서, 이준기는 사할린 시장표 발리송을 꺼내 들었다.

“끄으···”

다리에 칼을 맞자, 키 큰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이준기는 그가 들고 있던 AK-74M을 낚아채 침착하게 조정간 상태를 체크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피아 보스의 저택을 기습할 때 썼던 총이다.

세르게이가 상세하게 가르쳐주었던 바로 그 총.

따라서 조정간의 위치를 알고 있다.

조정간은 이미 자동 모드로 되어 있었다.

점사 모드도 아니고 완전 연사 모드.

방아쇠 한 번에, 탄창에 든 총알 전부를 한꺼번에 퍼붓겠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왼손으로 옮겨 간 발리송을 바로 옆에 선 마피아의 다리에 쑤셔 넣으면서,

이준기는 오른손에 든 칼라시니코프의 방아쇠를 당겼다.

수박씨를 뱉는 것처럼, 총탄이 무더기로 검은 재킷의 무리에게 날아갔다.

“크악!”

“으어!”

“아아악!”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차원문 쪽을 향해 총구와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그들은 당황했다.

포위망을 만들고 나란히 서 있던 동료의 방향에서 총탄이 날아들었으니 당황할 만했다.

‘귀검’의 2초가 끝났다.

열두 명이나 되던 그들 중 반수가 바닥에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었다.

바실리사는 이미 차원문 밖으로 이동해 있었다.

성흔 ‘포켓 유니버스’가 발동한 덕분에 그녀는 무사했다.

날아드는 총탄을 자동으로 방어한 것이다.

보호막에 부딪혀 사라지는 총탄을 보면서, 그녀도 이미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골목 쪽으로 달려 우선 자기 자신을 엄폐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자신이 걸어 나온 차원문 쪽을 바라보았다.

세르게이가 탄막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바실리사의 눈앞에 재생되고 있었다.

편대를 이루고 비행하는 전투기 소대처럼, 한 무더기의 총탄이 하늘을 날고 있다.

그 사이를 움직이는 거대한 괴수의 역할은, 세르게이.

빗나가는 총알의 숫자가 늘어난다.

하나, 둘, 셋···

그러나 모두 다 피하는 데는 실패했다.

총탄 하나가 세르게이의 허벅지에 와서 박혔다.

그리고 또 하나가 그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하나 더.

“커헉!”

세르게이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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