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16화 (11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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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3)

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3)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로, 차원문의 희끄무레한 소용돌이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원문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경찰 한 명이기는 해도, 다른 데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롤란을 보자, 경찰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어이, 롤란. 여기는 웬일이야?”

“차원문 점검차 왔지.”

“그래? 그거 별일이군.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야?”

“본부에서 보낸 사람이다. 모스크바에서 왔어.”

“모스크바에서 올 정도인가, 여기 차원문이?”

“나와바리 점검이라고 생각해.”

경찰이 세르게이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모스크바 나리.”

“그래. 수고한다.”

세르게이는 예전에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하던 대로, 거만하게 대답했다.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귀찮은 듯 한 손만 들었다 내렸다.

그러나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봐도 좀 어색했던 것 같은데··· 의심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세르게이는 차원문을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허공을 클릭했다.

그런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는지, 롤란이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세르게이는 차원문 정보를 체크했다.

무려 B등급이다.

그냥 놔뒀다가는 민간인들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몬스터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며 돌아다닐 것이다.

뒤늦게 출동한 경찰이나 군인이 그들을 막을 때까지.

그러는 과정에서 경찰이나 군인도 죽을 것이다.

도시의 지배자가 되어버린 구원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겠지.

하지만 이제 스토리가 조금 다르게 돌아갈 것이다.

마피아를 증오하는 구원자들이 어제, 이 도시에 도착했으므로.

세르게이가 경찰에게 물었다.

“차원문에서 몬스터가 나온 적이 꽤 있을 텐데. 어땠지?”

“다른 곳이나 마찬가집니다. 재수 없게 현장에 있던 사람은 그냥 죽는 거고, 나중에 경찰이나 기동타격대가 와서 처리하는 식이죠.”

“그런데 겨우 너 혼자 지키고 있는 거야?”

“명령인데 어쩔 수 없잖습니까. 몬스터 나오면··· 그냥 내 운명이 그런가 보다 해야죠.”

“어떤 녀석들이 나왔는지 알고 있나?”

“오크, 고블린··· 그리고 키가 훨씬 큰···”

“놀?”

“그래, 놀. 놀도 나온 적이 있다고 들었습죠.”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언제인지, 기억나나?”

“작년 12월이었죠, 아마? 12월 중순쯤에 오크 두 마리가 나와서 시내를 쓸고 다녔죠. 지키던 경찰 녀석부터 시작해서 스무 명 정도 죽었던 것 같습니다.”

“소탕은 누가 했어?”

“오크가 두 마리나 되니, 기동타격대가 나섰죠. 중무장한 기동타격대 한 소대를 동원했는데, 기동타격대 대원도 한 명 죽었다고요. 심하게 다쳤는데, 병원까지 옮기기는 했지만 결국 사망했습니다.”

“지금 여기 지키고 있는 것도 살 떨리는 일이겠군.”

“만약 뭐라도 나오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오늘 저는 운이 좋은 거군요. 구원자들이 왔으니까요.”

“그래, 그런 거지. 여긴 우리한테 맡기고 본대로 복귀하라고.”

세르게이의 말에 경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롤란, 그래도 돼?”

롤란이 대답했다.

“물론이지. 보스도 다 허락한 일이다.”

“그래? 정말 운수 좋은 날이군! 혼자 서 있느라고 사실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거든. 갑자기 긴장이 풀리니 오줌이 다 마렵네. 감사합니다요, 모스크바 나리!”

경찰은 롤란과 세르게이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하면서 사라졌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세르게이가 롤란에게 말했다.

“잘했어, 롤란. 연기가 나쁘지 않군.”

“그,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일단 여기서 기다려. 대장과 바실리사에게 연락해야지. 그들이 올 때까지는 여기 있어라.”

“그 다음엔요?”

“글쎄··· 그건 대장이 결정하겠지?”

세르게이는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준기, 그리고 바실리사에게 차례로.

타이핑을 마치고 고개를 들자 롤란이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할 말 있나?”

“저··· 혹시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뭔데?”

“모스크바 사건, 당신들인가요? 남자 둘, 여자 하나. 게다가 남자 둘 중 하나는 동양인. 여자는 미인. 전부 다 일치하잖아요.”

“모스크바 사건? 이반 말야?”

“네. 이반 글리츠비치 사건 말예요.”

“훗. 역시 너무 눈에 띄는 조합인가. 동양인 하나에 미인··· 하나.”

“마··· 맞군요!”

“맞으면 어쩔 건데?”

“아··· 아닙니다.”

“어제 봤겠지만, 대장도 나도 나쁜 놈 죽이는 일에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아. 바실리사 그 여자는 나보다 더 독하면 독했지, 덜하지 않을 거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무··· 물론입니다.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조직이 그대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잘 포장하는 게 네가 할 일이다. 잘 알겠지만.”

“네, 네.”

“나중에 발각이 되면, 마피아가 너에게 보복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단 지금 살고 보는 게 우선이잖아?”

“무, 물론이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스코비츠 씨.”

“아, 저기 오는군.”

바실리사가 골목 사이를 빠르게 걸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바실리사가 물었다.

“준기 씨는?”

“아직인데.”

“잘 찾아오려나.”

“뛰어와도 될 거리다. 걱정할 필요 없어.”

“경찰은 보냈고? 경찰이 있기는 했어?”

“롤란 말대로, 한 명이 지키고 있더군.”

“뜻밖이라서 말야. 차원문을 누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하긴,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 봤다. 마피아도 아니고 경찰이 지키고 있다니.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문제? 뭐가 문젠데?”

“던전이 B등급이다.”

“B등급? 꽤 세군.”

“대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받아들이겠지만. 바실리사, 아직 40레벨도 안 됐으면서 B등급 던전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네?”

“준기 씨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대장이 세기는 하지만, B등급인데, 우리 셋이 전부 들어간다 하더라도··· 가망이 있기는 한 거야?”

“준기 씨 의견을 들어보자.”

바실리사는 차원문 정보를 체크했다.

- 차원문 고유번호 12977. 랭크 B. ‘황제의 무덤’.

- 차원문 소멸 조건: 황제의 석관 개봉.

- 차원문 입장 조건: 최대 5인 입장 가능.

- 차원문 소멸 보상: 에픽 등급 아이템 1개 이상.

- 퇴각 페널티: 2레벨 강등.

*****

“쉬운 포맷은 아닌데.”

“그래? 어떻게 하지?”

“혼자 한다면 쉽지 않을 텐데, 우린 셋이나 되잖아.”

“뭐야, 그런 싱거운 농담은.”

이준기는 상태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반. 시간이 많지 않아요. 설명 생략하고 달리겠습니다.”

“좋아요.”

“알았어, 대장.”

셋은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설원에서 펼쳐지는 전투.

이준기에게는 오래간만의 경험이지만 세르게이와 바실리사에게는 익숙한 것.

눈보라 사이로 지나가던 그림자들이 하나둘 그들을 덮쳐왔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직진해요?”

“네, 바실리사.”

“이 길이 맞는지는 어떻게 알죠?”

“맞는지는 모릅니다. 일단 최단 거리로 맵 끝까지 가보는 거예요.”

북쪽으로 직선 루트를 택한 이유는 물론 이준기의 과거 경험 때문이다.

황제의 무덤 포맷은 두 번 경험한 것이 전부이고, 모두 북서쪽 코너에 무덤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은 그 지점을 목표로 달렸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자, 갑자기 나타난 그들을 향해 놀 사냥꾼 셋이 달려들었다.

사냥개 세 마리가 먼저 도착해서 그들을 향해 점프했다.

이준기는 옆으로 비키면서 오캄으로 내리쳤고, 바실리사는 방패로 막고 검을 찔렀다.

세르게이만이 사냥개와 함께 뒤로 쓰러졌다.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무기를 휘두를 타이밍을 못 잡은 것이다.

바실리사가 방패를 집어던져 사냥개를 세르게이로부터 떼어놓았다.

방패에 맞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냥개가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이준기의 단검을 등에 맞고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공중을 날아 손으로 돌아오는 방패를 잡으며, 바실리사가 말했다.

“발목 잡지 마.”

바실리사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세르게이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서서 앞으로 달렸다.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핀잔을 듣고 나서 오히려 힘이 솟았는지, 세르게이는 사냥꾼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었다.

맨 처음 도착한 사냥꾼의 다리를 둔기로 내리찍어 쓰러뜨리고, 곧바로 투포환 선수처럼 스핀을 돌았다.

한 바퀴 반을 회전한 ‘퍼시벌의 평온’이 두 번째 사냥꾼의 복부에 강력하게 내려앉았다.

“크어!”

다리를 맞고 쓰러진 첫 번째 사냥꾼에게 바실리사가 검을 날리는 사이,

이준기는 세 번째 사냥꾼을 향해 하늘 높이 점프했다.

‘이건 기대 이상이군. 급조된 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냥꾼 셋이 차례로 고꾸라진 다음, 세르게이가 둔기를 거둬들이며 외쳤다.

“우리 팀은 최강이라고!”

바실리사가 가볍게 미소지으며 세르게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세르게이.”

이준기를 따라 뛰면서, 세르게이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우리 팀은 최강이야!”

*****

“감이 좋은 건가요?”

바실리사가 이준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묘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맵의 북서쪽 코너.

황제의 무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그 위치에 있었다.

로마의 만신전과 비슷한 모양으로, 수많은 기둥이 세워진 웅장한 건물이다.

황제의 무덤이란 말을 듣고 피라미드를 상상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모습.

중무장을 한 놀 병사가 그들을 제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뭐라고 외쳤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웬 놈이냐··· 라고 말하는 거겠지?”

“아마 그렇겠지?”

“도굴꾼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인가?”

“저들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질문을 던졌던 놀 병사는 거대한 함성을 내질렀다.

건물 앞에 서 있던 네 개의 석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관절을 펴기라도 하는 듯이, 온몸의 관절을 삐걱거리면서 그들은 첫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더.

그리고 또 한 걸음 더.

“대, 대장! 이건 어떻게?”

“네가 활약할 타이밍이다, 세르게이.”

“내··· 내가?”

“퍼시벌의 평온으로 두들겨 줘.”

“아! 그렇구나!”

세르게이가 퍼시벌의 평온을 들고 반원을 그렸다.

맨 앞에서 걷던 석상의 허벅지에 거대한 양손 둔기가 적중했다.

석상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든 둔기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없는 눈이 자신을 쏘아보자, 세르게이는 갑자기 겨드랑이에 한기를 느꼈다.

“대, 대장!”

“잘했어, 세르게이. 다른 녀석들도 그렇게 한 대씩만 쳐줘.”

“허, 허벅지를?”

“아무 데나 때리기 쉬운 곳을 때려. 면적이 넓은 곳을 겨냥해.”

“알았어!”

세르게이가 두 번째 석상을 향해 둔기를 휘둘렀다.

이준기는 바실리사를 향해 외쳤다.

“바실리사, 나와 함께 저 녀석을 두들기죠.”

“네, 알겠어요!”

기술적으로 얘기하자면, 석상에게 부여되어 있던 보호 마법, ‘스톤 워드(Stone Ward)’가 와해된 것이다.

석상이나 골렘과 같은, ‘단단한’ 몬스터에 대해 파괴적인 위력을 보이는 무기, ‘퍼시벌의 평온’.

세르게이는 신이 나서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석상들은 허벅지나 정강이를 맞고 차례로 멈춰 섰다.

그리고 보호막을 무너뜨린 상대의 무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쫄지 않는다고!”

세르게이는 계속해서 투포환을 돌리듯이 ‘퍼시벌의 평온’을 휘둘렀다.

스톤 워드가 제거된 석상은 일반 몬스터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피 통이 무식하게 커서 쓰러뜨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네 개의 석상이 모두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는 5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최대 심박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석상이 모두 쓰러지는 것을 보고 놀란 놀 경비병이 건물 안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큰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이준기가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대, 대장!”

“나 혼자로도 충분해. 다녀올게.”

세르게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이준기와 바실리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기다리죠. 준기 씨 말대로 해서 지금까지 뭐 잘못된 게 있었나요?”

멀어져가는 이준기를 바라보며 세르게이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곧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망치는 경비병을 따라 이준기는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준기는 경비병을 따라 달렸다.

경비병이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면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뛰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이준기도 마찬가지.

‘아직 5분은 더 달릴 수 있다.’

경비병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방향을 바꿔가면서 달렸다.

이준기를 떼어내려고 한 행동이지만, 이준기는 경비병이 거리를 넓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양한 도형 모양이 들어찬 건물 내부는 어지러웠다.

이준기는 침착하게 경비병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를 쫓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을 써야 하는 퍼즐.

마침내 경비병이 뒤로 돌았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준기를 향해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경비병이 새된 위협음을 냈다.

번쩍거리는 갑주를 입고 있기는 하지만, 그냥 보통의 놀 경비병일 뿐이다.

‘놈은 아무것도 아니다. 놈을 쓰러뜨린 다음이 문제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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