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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2)
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2)
노동자 차림의 남자가 벽에 부딪혔다.
거구의 남자가 벽을 향해, 그를 집어던지듯 밀쳐버렸다.
벽에 어깨를 부딪치고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노동자 차림의 남자가 애원했다.
“제, 제발··· 다음번에 채워 넣겠습니다. 쿠리쇼프 씨.”
“다음번?”
“으으으··· 제발···”
노동자 차림의 남자의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벽에 밀친 것만으로 어깨가 파열되게 하다니. 구원자가 확실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준기는 거구의 남자 앞에 섰다.
‘이르헬의 눈’을 발동하니, 과연 구원자가 맞다.
거구의 남자가 돌아서서 이준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넌 뭐냐? 일본놈이냐? 중국놈? 감히 날 막아서?”
이준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과연 힘이 장사시군요.”
“뭐가 어째? 죽고 싶나?”
이준기를 향해 내려칠 기세로, 남자는 손을 들어 올렸다.
이준기는 재빨리 팔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23레벨 구원자. 이 레벨에 힘 스탯을 50이나 찍었으니 자신만만하겠지. 하지만···’
“끄으으···”
거구의 남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돌발 상황.
노동자 차림의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저 둘을 쳐다볼 뿐이었다.
‘민첩으로 몰빵하다시피 한 나지만, 나도 힘 스탯이 70은 되거든.’
이준기는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거구의 남자가 결국 입을 벌리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끄아아악!”
이준기는 여전히 웃음을 유지하며 거구의 남자에게 말했다.
“하늘의 선택을 받아서 구원자가 됐는데, 그걸로 약한 사람이나 괴롭히고 있군요?”
“으아아악!”
“어디 조용한 데라도 가서, 얘기 좀 할까요?”
“아··· 알았다. 그, 그렇게 하자. 으으··· 으아악··· 너, 너무 아프다.”
이준기가 손을 놓자, 남자는 괴물이라도 봤다는 듯,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어깨를 손으로 쥐고 벽에 기대어 있던 노동자 차림의 남자가 비켜섰다.
이준기가 그에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아···! 네. 괘··· 괜찮습니다.”
“가 보세요. 어서, 치료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
노동자 차림의 남자가 거구의 남자를 향해 곁눈질을 했다.
거구의 남자는 잔뜩 멍이 든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싼 채 우거지상을 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노동자 차림의 남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강약약강. 싸움에 진 깡패의 전형적인 모습.
그를 바라보며 이준기가 말했다.
“너!”
“네, 넷!”
“이 사람,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네놈 눈치를 본다.”
“벼··· 병원! 나도 병원에 가야 해!”
“그래? 저 사람처럼 만들어 줄까?”
“뭐··· 뭣?”
“병원에 가고 싶다면서? 너도 저 사람처럼 어깨를 파열 시켜 주마.”
“아··· 아니다! 난 괜찮다!”
“저 사람은?”
거구의 남자가 노동자 차림의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빠··· 빨리 가라! 병원이든 어디든!”
“가, 감사합니다. 쿠리쇼프 씨. 감사합니다, 젊은 양반.”
노동자 차림의 남자는 쿠리쇼프와 이준기를 번갈아 보다가 황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준기의 뒤에, 바실리사와 세르게이가 나타났다.
이준기가 쿠리쇼프에게 말했다.
“나도 나지만, 이 친구는 성질이 좀 더 급해서 말야. 나한테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말이 맞지, 세르게이?”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약한 놈을 괴롭히는 건 내 전공 분야지. 맡겨만 줘, 대장.”
대장이라는 말에 쿠리쇼프가 움찔했다.
“그, 그래! 원하는 게 뭐야?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말만 해.”
이준기는 썩소를 지어 보였다.
“아지트로 가자. 네놈 보스를 좀 만나보고 싶네.”
*****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을 보고, 의자에 기대 있던 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가 쿠리쇼프를 향해 소리쳤다.
“이, 이놈은 뭐냐, 나자리(Nazariy)? 여기에 아무나 데려오다니!”
“죄··· 죄송합니다. 보스.”
보스는 책상 서랍을 열어젖히고, 권총을 꺼내 들었다.
권총을 손에 들고 안전장치를 풀려고 하는 찰나, 권총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와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뭐, 뭐야?”
권총은 천장 높이까지 올라갔다.
권총의 안전장치가 저절로 풀리는 게 보였다.
총구가 그를 향한 채로, 방아쇠가 당겨지려고 끼긱거렸다.
“아, 안돼!”
총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보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다급하게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미하일! 롤란! 어서 나를 지켜라! 이 쓸모없는 놈들!”
미하일과 롤란이 양손을 머리 뒤에 포갠 채로 나타났다.
각각의 뒤에 세르게이와 바실리사가 권총을 들이대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보스!”
보스가 소리쳤다.
“자, 잠깐! 원하는 게 뭐냐? 날 죽이면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한다!”
이준기가 고개를 뒤로 돌려 세르게이를 보며 말했다.
“난 저런 말을 들으면 꼭 한마디 해주고 싶더라.”
세르게이가 웃으며 물었다.
“뭐라고 해주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건 네놈 목숨인데? 이렇게 말야.”
“하하하!”
세르게이의 웃음이 좁은 사무실 안을 채웠다.
보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사··· 살려줘!”
이준기는 공중에 떠 있던 권총을 자신의 손안으로 가지고 와서 쥐었다.
권총을 쥔 손을 한쪽으로 휘두르면서, 그는 보스에게 명령했다.
“일단 저쪽 구석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아라.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는, 나자리한테 물어보고.”
나자리 쿠리쇼프도 보스를 따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가 보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말했다.
“보··· 보스! 정말 무시무시한 놈입니다. 제가 힘으로 당할 수 없었어요.”
“닥쳐라, 나자리. 너 따위보다 힘이 센 놈이야 얼마든지 있겠지. 아까, 총을 공중에서 조작하는 거··· 그게 훨씬 더 무섭다.”
미하일과 롤란도 두 사람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준기가 물었다.
“보스 양반? 이름이 뭐지?”
“스투코프다. 율리안 스투코프.”
“레벨은 34. 당신은 민첩 스탯도 꽤 찍었구만? 나자리는 별로던데.”
“그··· 그건 어떻게 아는 거냐?”
“세상에는 너보다 강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나도 그중 하나고.”
“그··· 그야 그렇겠지만.”
“하지만 너희들은 너희들의 좁은 세상밖에 보지 않지. 그래서 그렇게 까불고 돌아다니는 것이고.”
“너··· 너희들은 누구냐? 푸가초프냐? 푸가초프가 왜 여기에···”
“푸가초프라··· 내 러시아어, 좀 이상하지 않아?”
“그··· 그러고 보니··· 서, 설마··· 외국인이냐? 우크라이나로도 모자라, 서유럽 놈들이 이제 우리 조국··· 러시아 본토까지 침략하는 거냐?”
“재미있는 시나리오군.”
이준기와 일행은 마피아들을 앞에 두고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다.
이준기가 손에 쥔 권총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무기고는 어디야? 성능이 좋은 총이 필요한데.”
“저··· 저쪽 캐비닛에 소총과 기관단총이 몇 개 있다.”
“그게 다야? 너희 조직원 수는 얼마나 되나?”
“구원자는··· 우리가 다다.”
이준기는 부하 중 한 사람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 이름이 뭐냐?”
“로··· 롤란입니다!”
“롤란은 구원자가 아닌데?”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이준기가 천리안이라도 가졌다고 생각하고 단념한 듯.
“미··· 미하일까지 셋뿐이다.”
“부하들은 더 있겠지?”
“미하일과 롤란이 각각 점조직으로 관리 중이다. 전부 해서, 스무 명 정도 되던가?”
미하일과 롤란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보스!”
이준기가 다시 물었다.
“부하들도 전부 총을 가지고 다니나?”
“대부분은··· 그렇다.”
“큰 총?”
“아, 아니. 권총 정도···”
“별로 총 쓸 일이 없나 보군?”
“여긴··· 항쟁 지역이 아니니까. 시 전체가 내 밑으로 정리된 지도 꽤 됐다. 평화로운 곳이지.”
“너한테나 평화롭겠지.”
“그··· 그래.”
이준기는 빼앗은 권총에 적힌 글을 보고 읽었다.
“베레타. 유명한 총이군. 나도 이름을 들어본 것 같으니.”
“베레타 92다.”
보스가 대답하자, 세르게이가 끼어들어 해설을 했다.
“베레타 92. 총이 이쁘지 않아? 글록이라든가 요즘 총들에 비하면 성능은 조금 떨어지지만, 역시 클래식한 외관이 정말 뛰어나지. 권총이 무슨 핵무기 같은 결전 병기도 아니고, 역시 뽀대가 중요하지 않겠어? 러시아 마피아 놈들은 자기 나라 권총도 많은데 꼭 다른 나라 권총을 가지고 다니려고 하더라고. 글록은 성능이 좋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베레타나 발터까지도 인정한다. 하지만 스미스 앤 웨슨 리볼버를 들고 다니는 놈은 좀 너무하지 않아?”
장광설이 끝났다.
세르게이는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하느냐는 듯한 바실리사와 이준기의 표정을 만났다.
이준기가 물었다.
“별로 좋은 총은 아니라는 거군?”
“성능만 따지자면, 난 글록 19을 추천하겠어.”
“이 총도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뽀대는 그게 훨씬 낫지. 글록 19은 장난감 같이 생겼으니까. 보면 실망할 거야.”
이준기가 보스에게 물었다.
“총기 캐비닛 안에 글록도 있나?”
“이··· 있을 거다.”
“보고 나서 결정하지.”
“그, 그래.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좋다. 사··· 살려만 다오.”
“난, 내가 뭘 원하는지 아직 말 안 했는데?”
“뭐, 뭘 원하나?”
이준기는 다시 세르게이를 돌아보았다.
“아까 했던 그 대사, 할 때가 된 것 같군.”
보스, 율리안 스투코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준기가 말했다.
“이 양반, 얼굴이 하얘지는 걸 보니,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군.”
율리안 스투코프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제, 제발··· 사··· 살려줘!”
*****
롤란의 집에 도착했다.
마피아 간부씩이나 되는 롤란이지만, 집은 크지 않았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라서 깔끔하기는 했지만, 방이 하나뿐이었고 거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바실리사는 시내의 호텔에서 묵고, 아침에 합류하기로 했다.
롤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가 소파에서 잘게.”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넌 방에서 잔다.”
“내··· 내가?”
“침대를 누가 쓸 건지는 너희들끼리 결정해. 나는 소파에서 잔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대장이 침대에서 자야지.”
“아냐, 난 흙바닥에서도 잘 자는 체질이라서. 소파면 감지덕지라고.”
“그래도···”
“한 명은 방안에서 롤란과 함께 자면서 감시하고, 한 명은 바깥에서 퇴로를 막아야지.”
“내가 소파에서 잘게.”
“아무래도, 너보다는 레벨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내가 길막을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세르게이는 수긍하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욕실이 하나뿐이어서 순서대로 사용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롤란과 세르게이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자, 이준기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체크했다.
‘벌써 1월 중순이다. 언제쯤 귀국하는 게 좋을까? 아니, 귀국을 하기는 해야 하나?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미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나 다름없는데. 거기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있어야 하는 곳 아닐까?’
국제뉴스부터 체크했다.
- 세계 각국,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우려 표명. ‘러시아가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야.’
- 러시아 정부, 우크라이나 내전에 서유럽 출신 구원자들 개입 증거 확보했다고 밝혀.
- 바스크 지방 대규모 시위 행렬. 구원자들도 대거 참여. 카탈루냐에 이어 바스크 독립하나?
- 쿠르디스탄 독립 선언. 수도는 아르빌. 터키계 쿠르드족 반발.
- 수단군, 남수단 국경 넘어. 남수단 정부, UN 개입 요청.
내전 내지 내전에 가까운 국경분쟁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워낙 굵직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은 잘 보도되지도 못하는 상황.
하지만 잘 살펴보면 내전의 징후를 보이는 사건은 훨씬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 북아일랜드에서 구원자 사망 사건 발생. 사인은 총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테러 관련 의혹.
- 캄보디아 병영 내 총격 사건. 구원자 개입 의혹.
- 칠레에서 연쇄 살인 사건 발생. 피해자 3명 모두 구원자.
이미 내전에 돌입했던 나라들에서는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 서부 전선, 승리 선언 또 일주일 연기. 내쉬빌, 뉴올리언즈에서 대규모 총격전.
- 퀘벡 분리주의자 잔당, 퀘벡시 포기하고 북쪽으로 도주.
- 만다린 연합, 홍콩 점령. 상하이-홍콩 연합, 상하이와 선전에서 결사 항전.
- 티벳 반군, 상하이-홍콩 연합 지지 철회 성명. 사실상 정부군에 진압된 듯.
마지막으로, 국내 뉴스를 훑어보았다.
예상대로, 광화문 차원문 관련 뉴스가 크게 다루어지고 있었다.
- 광화문 차원문 관련 정부 부처 종합대책회의 열려. 이상덕 협회장 참석.
- 이상덕 협회장, 광화문 차원문 정리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 한국 길드협회, 협회장 선거 연기 결정. 반대표를 던진 구원자 수십 명, 이상덕 협회장 규탄 성명 발표.
- [사설] 끊임없는 협회 분란. 지금 이 시점에 협회장 선거가 중요한가?
‘광화문 차원문이라면, 인천 공항 때와 마찬가지로 탑랭커 전원이 참여해야 클리어할 수 있을 거다. 아니면··· 이상덕이 일본 세력을 끌어들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