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14화 (11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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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1)

Episode 37: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 (1)

“뭐야 이게, 테러리스트 같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영화에 나오는 게 맨날 이 차잖아. 토요타 픽업. 여기에 터번 두른 남자 대여섯 명이 칼라시니코프 들고 두 줄로 앉아서 이동하는 거. 클리셰잖아.”

“그래? 세르게이는 영화를 많이 보는군.”

“영화광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다 알 거다.”

이준기는 바실리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요, 바실리사? 나만 모르는 건가요?”

“아니요. 저도 몰라요.”

이준기가 어깨를 으쓱하며 세르게이를 돌아보았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그래도 난 여전히 반대야. 그냥 세단 타고 이동해도 되잖아. 왜 하필 이거야.”

“우크라이나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잖아. 물건 배달로 위장하는 게 제일 낫다며.”

“앞자리에 세 명 앉아야 하는데? 괜찮아?”

“나야 뭐··· 아무 생각 없는데. 바실리사가 불편하려나.”

바실리사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난 괜찮아요. 입석이 아닌 게 어디야.”

이준기가 말했다.

“바실리사도 괜찮다는데?”

“휴우··· 그럼 뭐 그렇게 하던가. 그런데 짐으로는 뭘 실으려고?”

“그건 보리스가 알아서 해주겠지.”

바실리사가 대답했다.

“그건 보리스가 준비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이준기가 둘을 돌아보며 다시 확인했다.

“그럼, 이걸로 한다. 괜찮겠지?”

“그래.”

“어쩔 수 없잖아. 짐을 싣고 가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이준기가 렌터카 직원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직원은 신분증을 가볍게 훑어보고 이준기에게 말했다.

“좋아요. 스즈키 상? 키예프까지 편도, 일주일 빌리시는 거죠?”

“네.”

“키예프까지 아주 천천히 가시나 보네요. 일주일 뒤면, 그러니까··· 1월 24일 정오까지, 키예프 우리 지점에 반납하시면 됩니다. 동일 장소 반납이 아니라서 비싼 건 아시죠?”

“네.”

“여기, 여기,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

셋의 로드 트립이 시작되었다.

첫날 운전을 맡은 세르게이.

운전대를 잡자마자 떠들기 시작했다.

“일주일이나 빌리다니, 대장, 무슨 생각이야? 계획이 있는 거겠지?”

“계획이라··· 그렇게까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생각 정도는 하고 있지.”

“뭔데?”

“세르게이는 영화를 자주 보는 모양이니까, 퀜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Inglorious Bastards)’ 봤지?”

“어, 물론이지.”

“그럼 알겠군, 뭘 하려는 건지.”

“아··· 잠깐··· 그러니까··· 에? 설마?”

“뭐가 설마야.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그거라고.”

세르게이가 영어로 말했다.

“One thang. One thang only?”

“그렇지.”

“Killing Nazis?”

“그래, 그거.”

“헉··· 가는 길마다 마피아를 잡아 죽이겠다는 거야?”

“보이는 놈들만.”

“화제를 몰고 다니겠군.”

세르게이가 라디오를 틀었다.

“어제 오후, 레닌 기념 도서관 지하철역 벽에 낙서를 한 동양계 남자를 경찰이 찾고 있습니다. 낙서 내용이 심상치 않다고 하는데요. 저명한 기업가, 아브람 쉬넨코에 대한 협박이라고 합니다. 경찰은 아브람 쉬넨코 씨에 대해 신변 보호를 제공하고, 낙서를 한 남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세르게이가 논평했다.

“대장 얘기 나오네.”

“뉴스에서까지 얘기할 줄은 몰랐는데. 저명한 기업가?”

“마피아가 다 그렇지 뭐.”

바실리사가 이준기에게 물었다.

“사진 찍은 거, 다시 보여주실래요?”

이준기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낙서 직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에서 찍은 사진이다.

레닌 기념 도서관 승차장 벽에, 선명한 붉은색으로 쓴 글씨다.

‘아브람 쉬넨코, 키예프에서 보자. – 이반.’

뉴스는 계속되었다.

전문가 의견을 듣는 모양이었다.

“낙서 내용은 정말 간단한데요. 협박으로밖에는 해석될 여지가 없어서, 범죄 조직이 연루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아브람 쉬넨코 회장이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되었다고 볼 정황은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낙서 내용이 아브람 쉬넨코 회장을 협박하는 것이라고밖에는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죠.”

“아브람 쉬넨코 회장이라면, 석유에서 리테일까지 다각도로 사업을 벌이는 신흥 재벌 아닙니까? 그의 재산을 노리는 범죄 예고 같은 걸까요?”

“재산을 노리는 범죄라면, 예고를 하지는 않았겠죠. 만약 그런 거라면, 아주 특이한 성격의 도둑이라고 봐야겠죠. ‘괴도’ 소리라도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반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겁니까?”

“이반. 런던에 사는 잭이나 파리에 사는 장이나 다름없는 이름이라서요. 아무런 단서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이름이 아니라 그냥 아무개라는 뜻으로 썼을 수도 있고요.”

“뉴스 댓글에는 이반 클리츠비치의 이름도 자주 거론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반 클리츠비치라면, 며칠 전 사망한 구원자 말씀하시는 겁니까? 모스크바 자경단 소속.”

“네. 그분 이름이 뉴스 댓글에 많이 나와서요.”

“글쎄요. 모스크바 자경단과 자수성가한 젊은 사업가가 무슨 관계인지, 전혀 모르겠군요. 자경단이 범죄 조직이라는 이야기입니까? 그건, 무책임한 인터넷 댓글이라고 해도 도를 넘는 것 같은데요.”

“저도 동감입니다.”

“게다가, 이반 클리츠비치 씨는 이미 사망한 걸로 확인됐잖습니까. 낙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어제, 일요일 오후에 동양계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쓴 걸로 알려져 있고요. 이반 클리츠비치 씨는 40대니까, 젊은 남자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반 클리츠비치 씨는 사망한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가 진입했던 차원문이 사라졌고, 그가 차원문에서 나온 흔적은 전혀 없으니까요. 차원문 안에서 구원자가 사망하는 전형적인 경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네. 맞습니다.”

“이반 클리츠비치 씨 살해 용의자 중 한 명이 동양계라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어제 레닌 기념 도서관 역에 낙서를 한 사람이 용의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은요? 그렇게 되면 이반 클리츠비치 씨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만.”

“그건 조금 과도한 해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스크바는 국제도시입니다. 동양계 젊은이들은 얼마든지 있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반이라는 이름도 모스크바에는 넘칠 정도로 많고요.”

“알겠습니다. 결국, 아직까지는 두 사건 모두 오리무중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뉴스 탐색의 니콜라이 일리고비치였습니다.”

집중해서 뉴스를 듣고 나서, 셋은 대화를 나누었다.

“뉴스 진행자가 상당히 용감한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본 거야, 세르게이?”

“그러게. 모스크바 자경단과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인터넷 뉴스 댓글에다 쓰는 건 몰라도, 뉴스 진행자가 말할 줄은···”

바실리사도 대답했다.

“니콜라이 일리고비치. 요새 뉴스 진행자 중에서는 대단히 진보적이고 과감한 사람이죠. 그래서 팬덤도 좀 있고요.”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바실리사, 어떻게 생각해요? 지하철 낙서, 효과가 있겠죠?”

“당연하죠. 아브람 쉬넨코는 보고를 듣자마자 무슨 얘기인지 알았겠죠.”

세르게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당연해, 대장. 나쁜 놈들이야말로 자기 이름이 거론되는 데 대해 민감하다고.”

메시지는 전달되었다.

이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문제다.

우크라이나 키예프까지는 일주일.

이준기는 이제 러시아 마피아 내전의 핵심 인물이 되어버렸다.

*****

툴라(Тула).

모스크바에서 180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인구 48만의 도시.

정오가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 툴라에 도착하니 2시 반.

햄버거 가게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세르게이가 말했다.

“좀 밟았어. 일단 모스크바에서는 멀어져야 할 것 같아서.”

“정말 수고했어, 세르게이. 내일 운전은 내가 할게.”

“운전이라면 자신 있으니까, 언제든지 맡겨 달라구.”

퀜틴 타란티노의 영화에서처럼, 닥치는 대로 마피아를 잡겠다고 선언은 했지만.

마피아라는 간판을 걸고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걸리는 놈은 잡겠다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아.”

“그래. 그렇게 하자고. 키예프에 가는 게 우선이잖아. 마피아를 잡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선택 사항인 거잖아.”

“네 말이 맞아, 세르게이.”

주문을 끝내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서, 바실리사가 말했다.

“툴라. 모스크바 마피아의 세력권이죠. 인구도 산업도 대단치는 않아서, 아마 세력은 미약할 거예요. 툴라까지 파악하기에는, 우리 조직이 작아서 말이죠. 별 정보가 없어요. 보리스, 이리나한테 물어봐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다음은 세르게이.

“미안하지만 나도 마찬가지 상황인데. 아무리 연합이라고는 해도, 극동 마피아가 모스크바 마피아의 마이너한 나와바리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예브게니 영감한테 캐물으면 뭐라도 나오긴 할 텐데. 물어볼까?”

이준기는 잠깐 생각했다.

모스크바에서 키예프까지는 열 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일주일이나 차를 빌린 이유는,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가면서 체력도 비축하고, 가는 도중에 눈에 띄는 마피아도 사냥할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브람 쉬넨코와 모스크바 마피아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충분히 준비하고, 우크라이나로, 키예프로 와라.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그런 뜻이다.

간단한 낙서지만, 의미는 분명하다.

차원문 안에서 죽은 부하, 이반 클리츠비치의 이름을 빌려, 보스에게 도전장을 보낸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보자고.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약관화.

푸가초프가 아니라고 생각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모스크바 마피아의 일에 사사건건 저항하던 레지스탕스, 푸가초프.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벌이는 일에까지 참견하겠다고 도전장을 보내온 것이다.

그것도 서열 5위씩이나 되는 부하의 목을 곁들여서 말이다.

이준기는 휴대폰에 지도 앱을 열고 세르게이와 바실리사에게 보였다.

“계획한 경로를 우선 확인해 보자고. 툴라, 오룔, 쿠르스크, 하리코프, 그리고 키예프잖아?”

“응. 그렇지.”

“모두가 두세 시간 거리고 말야.”

“그렇지. 마지막 날이 제일 길어. 하리코프에서 키예프까지는 여섯 시간이나 달려야 한다고. 50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란 말야.”

“하리코프는 우크라이나의 제2의 도시라면서?”

“그래, 맞아.”

“그래서 거기에 가려는 거지. 우리는 키예프에 간다기보다는, 우크라이나에 가는 거니까.”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아브람에게 보낸 도전장에는 분명히 키예프라고 썼지. 그건 잊지 마.”

“물론이지. 그래서 하리코프에서 키예프까지는 천천히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 하루 만에 가자는 얘기가 아냐. 내전 중인데, 도로를 제대로 달릴 수 있는지, 그것도 걱정이고 말야.”

“도중에 하루씩 자고 가는 거면 그나마 괜찮은데. 대장 말대로 나치, 아니 마피아라도 나타나면? 그게 문제야 사실은.”

“그래서 두세 시간 거리로 잡은 거야, 중간 거점들을.”

“하루에 거점 두 개도 돌파 가능하다는 얘기?”

“응. 그러니까 만약 오늘 여기서 마피아라도 만나서 한탕 해야 한다면 말이지, 내일까지 그 일을 마치고, 모레에는 오룔 스킵하고 쿠르스크에 도착한다는 말이지.”

“좋아. 그 정도라면 여유 있는 계획이군.”

주문한 음식을 받으러 갔던 바실리사가 돌아왔다.

플라스틱 쟁반을 내려놓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오룔은 스킵이군.”

이준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바실리사가 손가락으로 건너편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들과 카운터 사이에 위치한 테이블.

정장을 갖춰 입은 거구의 남자가 노동자 차림의 날씬한 남자에게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다.

“모스크바에서 온 손님한테 그게 할 소린가? 뭐가 어째?”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무슨 상관이야?”

“원료 수급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생산량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럼 좋은 일 아닌가? 가격을 올려! 그렇게 하면 너희도 좋고, 우리도 좋잖아.”

“경쟁사가 있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우리 물건을 아무도 사지 않겠죠.”

“하하하! 재미있는 친구군. 내가 너무 신사적으로 대하고 있는 건가?”

“이번 한 번만 봐주십시오.”

“좋아, 봐주지. 대신, 날 좀 따라오라구.”

거구의 남자가 노동자 차림의 남자의 옷자락을 거머쥐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표정으로, 노동자 차림의 남자가 거구의 남자를 따라 식당에서 나갔다.

이준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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