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12화 (11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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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6: 모스크바의 이방인 (3)

Episode 36: 모스크바의 이방인 (3)

“크헉!”

오크 세 마리 사이에서 검을 휘두르던 이반 클리츠비치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등에 고통을 느끼면서 이반은 뒤를 쳐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그의 오른손을 향해 날카로운 쇠붙이가 날아들었다.

당황스러움과 고통으로, 이반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위기를 알아챈 그의 무의식이 곧바로 반응했다.

이반은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들었다.

그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이 그의 오른손을 걷어찼다.

“으악!”

힐링 포션이 그의 손을 떠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반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습이다! 나를 도와라!”

그렇게 외치며 돌아본 이반의 눈에 오합지졸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보였다.

그를 따라 들어온 아홉 명의 20레벨대 구원자들은 갑자기 벌어진 소동에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몇 명은 쓰러져 있고, 몇 명은 인벤토리에서 잡히는 대로 꺼낸 무기를 허공에 휘두르고 있었다.

자신과 동시에 부하들도 기습을 당한 것이다.

분노로 불타오르는 목소리로 이반은 외쳤다.

“네놈들은 뭐냐? 감히 마피아에게 덤벼들다니!”

“불타는 민심이라고 해두지.”

“외국인이군?”

괴상한 억양의 러시아어를 듣고 이반이 말했다.

이준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반을 향해 하얀색 빛의 줄기가 날아들었다.

이준기는 빛의 줄기가 나오는 쪽을 쳐다보았다.

바실리사와 세르게이의 기습으로 엉망이 된 대열 사이에서, 구원자 한 명이 이반에게 힐을 시전하고 있었다.

“매직 미사일!”

이준기는 힐러를 향해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딱 한 발만.

빛의 쇠뇌가 직격하자, 힐러는 힐 시전을 멈추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를 향해 바실리사의 검이 날아들었다.

힐러가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 이준기는 다시 이반을 향해 섰다.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설 정도는 되었지만, 부상당한 부위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이준기에게 외쳤다.

“외국인인 네가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어쭙잖은 정의감이냐? 어느 나라 출신이냐?”

“어줍잖은 정의감 때문에 꽤 당혹스럽지? 여기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우크라이나? 서유럽에서 넘어온 놈이냐? 독일? 영국?”

이준기는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이반의 양손검이 이준기의 오캄을 받아넘겼다.

방어로 자세가 흐트러진 그를 향해 이준기의 왼손이 날아들었다.

“커헉!”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이반이 한쪽 다리로 무릎을 꿇었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안돼! 살려줘!”

대답은 없었다.

이반의 등을 향해 상대방의 검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마나 폭발의 경쾌한 음이 들렸다.

*****

“운이 좋구나. 이름이 뭐냐?”

바실리사가 상대방의 목을 향해 검을 들이댄 채로 물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올린 상태로 무릎을 꿇으며 마피아는 대답했다.

“코, 콘스탄틴.”

“좋아, 콘스탄틴. 너희가 왜 학살당했는지는 알고 있겠지?”

‘학살’이라는 단어 선택도 그렇지만, 콘스탄틴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게 한 것은 무엇보다 바실리사의 얼음장 같은 어조였다.

콘스탄틴은 여전히 양손을 높이 쳐든 채,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지?”

“뭐, 뭐든지. 전부 다 잘못했습니다.”

“그럼, 죽어라.”

바실리사가 당장이라도 내리킬 기세로 검을 높이 들었다.

이준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바실리사!”

“아··· 나도 모르게···”

바실리사의 눈에서 힘이 풀렸다.

검을 내리며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이준기가 포로를 향해 다가서면서 말했다.

“정보를 캐내야지. 죽이는 것은 나중에.”

콘스탄틴이 울먹이며 말했다.

“사, 살려줘. 뭐든지 다 말할 테니. 나는 그저 조무래기일 뿐이야.”

“23레벨이면 조무래기는 아니지.”

“나, 난 서열 100위권에도 못 들어! 그냥 심부름이나 하는 존재라고! 그, 그런데 어떻게 내 레벨을 아는 거지?”

상대방이 먼저 자신의 레벨을 말한 것에, 콘스탄틴이 놀라면서 머뭇거렸다.

세르게이는 이미 예전에 몇 번이나 목격했던 능력. 여전히 놀랍지만 가만히 있었다.

바실리사의 얼굴에도 놀란 표정이 드러났다.

이준기가 말을 받았다.

“우리 조직의 정보력은 너희가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동안 우릴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군.”

“너··· 너희 조직이라면··· 푸가초프?”

“질문은 내가 한다. 너는 이제부터 대답을 해야 한다. 잘해야 할 거야. 나보다는, 바실리사가 너희 마피아들을 워낙 싫어해서 말야.”

“아, 알겠다.”

“우크라이나 전선에는 몇 명이나 나가 있지?”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이준기는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를 쳐다보았다.

바실리사가 고개를 저었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그런 걸 조무래기가 알 리 없지. 이 녀석은 정말 아는 게 별로 없을 거야, 대장.”

바실리사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현재 조직 분위기가 어떤지 말해라.”

“그, 그래. 다 말할게.”

“말해봐.”

“부, 분위기가 안 좋아. 예상하겠지만, 우크라이나 때문이고. 오늘 공격대도 원래는 취소될 거라는 말이 많았어. 이반이 고집해서 그냥 예정대로 강행한 거라고. 서열 10위권 내의 조직원들은 비상 대기 중이라는 말을 들었거든.”

“이반은 서열 5위씩이나 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한 거라는 얘기야?”

“그, 그렇지. 나도 그냥 들은 얘기이기는 한데··· 언론에 나는 걸 좋아하는 이반이 이미 방송국에 연락을 해놨다면서 오늘 공격대를 강행했다고 들었어. 이미 언론사에 통보해서 기자들도 올 텐데 어떻게 취소하냐고, 그렇게 보스에게 말했다고 말야.”

“꽤 민주적이잖아.”

바실리사가 조소하며 말했다.

분명히 입꼬리를 올렸지만, 선한 인상 때문에 오히려 상냥한 미소로 보일 지경이다.

콘스탄틴도 바실리사의 조소를 미소로 받아들였는지, 용기를 얻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래. 사실이야.”

“비꼬는 거였다. 설마 칭찬으로 들은 거야?”

바실리사의 목소리 끝이 올라가자, 콘스탄틴이 눈을 감으며 흠칫했다.

“아··· 아냐! 미안해! 내가 잘못 생각했어! 사··· 살려줘!”

“너는 보스를, 그러니까 아브람 쉬넨코를 본 적이나 있냐?”

“아, 아니. 어, 없어. 나 같은 조무래기가 보스를 직접 볼 일이 어디 있겠어··· 나, 난 정말 시, 심부름이나 하는··· 하··· 하찮은 존재일 뿐이야!”

“우크라이나 쪽은 현재 누가 지휘 중이지? 우크라이나 전선에 파견된 고위 간부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있나?”

“보, 보스가··· 맨 위 다섯 명만 놔두고 전부 세바스토폴로 보낸다는 얘기를 했다고···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 정말인지는 모르겠어. 나도 그냥 들은 얘기라서···”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전선 총책이 겨우 서열 6위라는 얘기잖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크라이나가 너희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나··· 나는 몰라! 서··· 서열 6위인 니키타도 41레벨이나 되는 간부잖아···”

“우리 조직에서 파악한 바로는, 서열 3위, 그러니까 드미트리 요코비치가 우크라이나 총책이다. 서열 2위를 내보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우크라이나는 그만한 가치가 있지.”

“그··· 그래?”

“서열 2위, 너희들이 ‘헤라클레스’라고 부르는 그 녀석이 우크라이나 총책이 아닌 이유는 그놈이 탱커이기 때문이야. 모스크바 마피아 메인 탱커가 본거지를 비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렇군. 그, 그렇게 생각하니 앞뒤가 맞는 것 같아.”

“무슨 말이냐? 뭐가 앞뒤가 맞는다는 거야?”

“이··· 이반이 드미트리와 콜랴를 제치고 서열 3위를 노린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것도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니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이반이 오늘 공격대를 강행한 것은 레··· 레벨업을 해서 드미트리와 콜랴를 제치려고 한 거···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잖아.”

“그래? 그러니까 모스크바 마피아 최상위 간부들 사이에 알력이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나?”

“그··· 그런 거 아닐까?”

세르게이가 끼어들었다.

“마피아 간부들 사이에 알력이 있는 건 당연하잖아. 극동 마피아에서도 서열 3, 4위가 맨날 서로 자기가 위라고 아웅다웅했다고. 지들은 예브게니 영감보다 자기들이 서열이 높다고, 서로 자기가 넘버 투라고 말하고는 했지.”

바실리사가 이준기에게 말했다.

“더 나올 정보가 없을 것 같네요.”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이반을 죽였군. 정보를 캐내고 죽여야 하는 건데.”

“글쎄, 이반이 이것저것 떠벌렸을 것 같지는 않아요. 3대10의 전투였고, 가장 위험한 이반을 살려두는 방식으로 전투를 하는 건 신중하지 못한 생각이죠.”

세르게이도 말했다.

“나도 바실리사와 생각이 같아. 전투에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잖아. 정보는 나중에라도 캐낼 수 있어. 그리고 이반 정도 되는 녀석이 순순히 불었을지도 의문이고.”

세르게이가 콘스탄틴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더 얻어낼 정보는 없어 보이는데··· 이놈은 어떻게 할 거야? 죽일까?”

콘스탄틴이 울부짖었다.

“사, 살려줘! 난 별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어! 정말이야!”

세르게이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말이 돼?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23레벨씩이나 되었다고?”

“그··· 그건···”

“원래 마피아였는데 구원자가 된 거라면, 원래 나쁜 놈인 것이고. 원래는 그냥 구원자였는데, 마피아가 된 거라면, 변절자인가? 아니면 타락자?”

“나··· 나쁜 짓을 한 건 맞지만, 죽어야 할 정도로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어. 정말이야!”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콘스탄틴은 대답 대신 이준기를 바라보며 외쳤다.

“사, 살려줘!”

그를 향해 이준기가 말했다.

“세르게이의 질문에 대답해. 나도 궁금하군. 살인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인가?”

우물쭈물하다가, 콘스탄틴이 대답했다.

“사, 살인은 하지 않았어!”

바실리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목걸이 줄을 잡아당겨 옷 속에서 펜던트를 끄집어냈다.

그걸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콘스탄틴을 향해 내밀었다.

그녀가 말했다.

“살인을 한 적이 없다고?”

질문을 하며 펜던트를 내미는 바실리사.

콘스탄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과 펜던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펜던트를 왜 들이미는지 이상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냉큼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

그는 울부짖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 한 적 없어! 살인은 한 적 없어!”

해골 모양의 펜던트가 붉게 빛났다.

콘스탄틴이 겁에 질려 외쳤다.

“뭐, 뭐야?”

바실리사가 증오에 찬 목소리로, 속삭였다.

“거짓말.”

펜던트 해골의 양쪽 눈에서 붉은색 줄이 나와 콘스탄틴을 향해 다가갔다.

마치 뱀의 혀처럼.

가늘고 붉은 실이 콘스탄틴의 몸에 닿자, 즉각 거대한 불꽃이 그를 삼켜버렸다.

놀라 뒷걸음질 치며 세르게이가 물었다.

“그, 그게 뭐야?”

바실리사가 대답했다.

“해골 랜턴.”

이준기는 ‘이르헬의 눈’으로 바실리사의 장신구를 다시금 쳐다보았다.

- 아름다운 바실리사의 해골 랜턴.

- 목걸이. 에픽 등급.

- 착용 효과: 화염 저항 +30.

- 발동 효과: 화염 속성 공격을 받을 경우, 30% 확률로 상대의 공격을 반사합니다.

- 사용 효과: 거짓말을 간파합니다. 거짓말을 한 상대에게 화염 공격을 가합니다. 화염 공격의 정도는 거짓말의 경중에 좌우됩니다.

*****

거짓말의 대가로, 아니 살인과 악행의 대가로 콘스탄틴은 불에 탔다.

‘아름다운 바실리사’ 이야기에 나오는 계모와 언니처럼.

해골은 악행의 흔적을 불로 태워 없애버렸다.

욕설과 비명을 지르며 발광하던 콘스탄틴이 쓰러졌다.

불꽃이 꺼지자, 바실리사가 말했다.

“이 아이템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런 사용 효과, 한 번도 쓸 일 없을 줄 알았어요.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그랬겠죠.”

정상적인 세상이란 무엇일까?

이준기는 잠자코 있었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구별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면 정말 행운인 것이다.

악의에 찬 거짓은 도처에 있다.

차원문이 있든 없든, 구원자나 마피아가 있든 없든 말이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저··· 정말 놀라운 아이템이야! 그걸 보리스나 이리나에게 써본 적이 있어?”

바로 옆의 동료를 믿어야 하는, 바로 그 사람만을 믿어야 하는 점조직.

바실리사의 목걸이야말로 그런 점조직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세르게이는 바로 그 점을 간파하고 그렇게 물었다.

바실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 알겠지만 아이템이라는 건 던전 안에서나 쓸 수 있는 물건이니까. 보리스나 이리나와 함께 던전에 들어온 적이 없거든.”

“그럼 레벨업은 어떻게 해? 공격대로 던전에 들어와야 레벨업을 할 거 아냐?”

“블라인드 매칭 시스템이야. 동료에게 매칭 사실을 통보받은 다음, 얼굴에 가면이나 메이크업을 하고 들어오지. 보리스나 이리나라면, 변장 좀 했다고 해서 내가 못 알아보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서로 아는 조직원들은 절대 같은 공격대로 매칭하지 않는 시스템을 운영 중인 거지.”

“그, 그게 가능한가? 점조직이라면서, 블라인드 매칭 같은 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말이야.”

“그래. 맞는 말이야. 아마 푸가초프 전체는 점조직이 아닐 거야. 적어도 한 명은, 전체 조직을 파악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점조직을 유지하는 이유가 뭐야? 그 사람이 잡히기라도 하면 조직은 그냥 끝나는 거잖아? 두목이 잡히지 않기 위해, 두목이 잡히더라도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게 점조직 아냐?”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푸가초프는 점조직이 아닌 거겠지. 하지만 리더는 필요한 거 아닐까. 게다가, 두목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잡힐 경우에는 여전히 이점이 있고 말야.”

“바실리사는, 다른 조직원들을 알고 싶다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

“왜 없겠어. 하지만 나는 이 조직이 유지되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러시아 전체가 마피아 세상이었을 거고, 억울한 죽음을 달래줄 방법도 없었겠지. 구원자라고 해도 말야.”

“아···”

세르게이는 입을 닫았다.

아픈 기억이라서 그런지, 바실리사는 자신의 과거나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그것도 페르보레첸스키 구의 차원문에 왜 그렇게 집착한 것인지도, 바실리사는 말하지 않았다.

바실리사가 애써 기운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던전 정리해야죠. 아직도 92마리나 잡아야 하네요, 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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