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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5: 푸가초프의 반란 (7)
Episode 35: 푸가초프의 반란 (7)
“으, 으으···”
루드밀라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 소리를 냈다.
“뭐냐?”
“으으··· 다친 것 같아요, 보스.”
“방금 그거에?”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올레그, 살펴봐라.”
올레그가 루드밀라의 상처를 살펴봤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 정강이에 선명하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피멍이 아주 심하게 들었습니다. 뭔가 무겁고 큰 물건에 강하게 부딪힌 모양인데요.”
“방금 지나간 게, 동물이란 말야?”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사람?”
“왜 그러십니까, 보스?”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말고 이 안에 사람이라면, 스즈키와 바실리가 있지. 그 둘 중 하나일 수도 있잖아.”
“구원자가 보통 사람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죠, 보스. 하하.”
올레그가 보스의 표정을 살피며 멋쩍게 웃었다.
잠깐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던 보스의 얼굴도 펴졌다.
“하긴, 그런가. 너무 긴장하고 있나 보군, 내가.”
“어디 바위에라도 부딪힌 거 아닐까요? 루드밀라, 바위에 부딪힌 거 아냐?”
“그, 그런가? 그런데 그렇게 큰 바위가 있었나요?”
“저기, 저거 말야.”
올레그가 수풀 사이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저렇게 큰 바위를 못 보고 부딪힌다는 게 말이 되냐··· 하지만 쉬고 싶은데.’
루드밀라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마 그런가 봐요. 저걸 왜 못 봤지?”
“그럼 그렇지.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놀란 거죠. 그러다가 바위에 정강이를 콱!”
올레그가 과장된 몸짓을 섞어 가며 말했다.
“잠깐 쉬시죠, 보스. 5분 정도 쉰다고 뭐 달라지겠습니까.”
“그럴까? 그런데 루드밀라, 걸을 수 있겠어?”
“아··· 아뇨. 이건 너무 아픈데요.”
“힐링 포션은?”
“아, 힐링 포션.”
루드밀라의 표정이 미묘하게 어두워졌다.
제일 작은 힐링 포션이라도 러시아 노동자 평균 임금 한 달 치를 넘는 가격이다.
괜찮은 신상 백을 하나 살 수 있는 돈인데, 그걸 겨우 멍든 데 먹으라고?
아무리 보스지만 너무하는 거 아닌가?
인벤토리에 힐링 포션은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겨우 멍든 걸 낫게 하려고 먹기는 아깝다.
루드밀라는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블라디미르가 다그쳤다.
“있어, 없어?”
“죄, 죄송합니다. 보스. 급히 들어오느라.”
“에이, 뭐 하는 짓이야. 그런 건 평소에 좀 준비해 놓으라고. 이봐, 누구라도 좋으니 루드밀라에게 힐링 포션 하나 빌려줘라.”
그렇게 말하고 블라디미르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 그게 말이 돼?”
“몇 개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바실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가지고 있어야.”
“지금 힐링 포션 하나 먹는다고 잡을 바실리를 못 잡나?”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보스. 차라리 루드밀라가 오두막으로 돌아가 힐링 포션을 사 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멍이 문제가 아니고 이따가 할 전투를 대비해서 챙겨 놔야죠.”
“루드밀라가 오두막으로 간다고? 다리가 아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누가 한 명 같이 가면 되죠. 라다! 네가 가라. 여자들끼리 가는 게 낫지.”
“저, 저요?”
“아니, 이 자식들이···”
보스의 얼굴에 짜증의 먹구름이 번졌다.
소모품으로 써먹으려 했던 스즈키가 자리를 이탈하는 바람에 데리고 들어온 다섯 명 중 한 명을 오두막에 남겨 두고 온 상황이다.
겨우 네 명을 데리고 움직이는 중인데, 거기에서 또 두 명을 빼서 오두막으로 보내야 한다고?
보스 체면에 호위를 겨우 두 명 데리고 사냥을 가라고?
“얼마나 왔지, 우리?”
“던전에 진입한 것이 11시 30분이었습니다. 현재 시각은 오후 12시 27분입니다.”
“한 시간이나 걸어왔어, 우리가?”
“거의 그렇습니다. 들어와서 스즈키를 잠깐 찾아보기는 했지만, 거의 즉각 움직였으니까요.”
“던전 정찰을 잘하는 놈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우린 아주 꽝이구만, 이런 일에는?”
“신중하게 움직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빨리 뛰어갔다 오면, 오두막까지 얼마나 걸릴까?”
“혼자 다녀오면 30분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그럼. 우린 쉬고 있을 테니 누가 한 명 오두막에 가서 힐링 포션을 좀 넉넉히 사가지고 와라.”
“라다, 아니, 막내 비켄티를 보낼까요?”
“그래. 아, 아냐. 잠깐.”
“왜 그러십니까, 보스?”
“우리가 아무리 정찰을 하면서 걸었지만, 1시간 걸려서 온 거리다. 그게 왕복 30분으로 주파 가능하다는 거야?”
“아, 그게 말입니다. 편도 30분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야, 이 자식아. 그럼 여기서 1시간 동안 쉬자고?”
“죄, 죄송합니다, 보스.”
인상을 한층 더 찌푸리며 보스는 생각에 잠겼다.
부하들은 불안하게 눈빛을 교환하며 기다렸다.
루드밀라는 다리가 아픈 걸 참느라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루드밀라, 네가 빠져라.”
“네?”
“여기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웃기고, 그렇다고 둘을 보낼 수도 없고. 그냥 너 혼자 여기에서 쉬다가, 오두막으로 돌아가라. 힐링 포션도 챙겨 먹고, 아드리안과 함께 입구를 지켜.”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리를 다치기는 했지만, 골치 아픈 일에서 빠지게 되어 루드밀라는 속으로 기뻤다.
“어때, 올레그? 네 생각은? 우린 그래도 네 명이나 되는데, 바실리를 못 당하지는 않겠지?”
“무, 물론입니다, 보스! 보스는 바실리보다도 훨씬 레벨이 높으시니까요.”
“너희 세 명으로도 충분하지, 안 그래?”
“아, 아마 그렇겠죠.”
“극동 마피아 보스가, 게릴라 조무래기 따위를 잡는 데 직접 손을 대야겠냐?”
“바실리가 조, 조무래기는 아니죠···”
“그래, 그래, 알았다. 암튼, 루드밀라를 오두막으로 보내는 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인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그렇게 한다. 루드밀라, 여기에서 쉬다가 오두막으로 돌아가. 나머지는 나와 함께 첨탑으로 간다. 올레그, 앞장서.”
*****
첨탑에 도착한 극동 마피아 일행.
보스, 블라디미르 아쉬코프가 말했다.
“조금 급하게 걸었으니, 잠깐 숨을 돌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보스.”
“첨탑에 들어간 것이 맞겠지?”
“아직까지 던전 안에 있다면, 당연히 그럴 겁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해 봐.”
“이 던전은 저도 두 번이나 들어와서 정찰해 놓은 던전입니다. 첨탑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바실리 그 녀석이, 던전 안에서 숲 구경을 하려고 6일 동안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그래. 내 생각도 너와 같다. 이번에 왜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타고 왔는지는 몰라도,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서 왔는데, 첨탑을 들여다보지 않고 나가지는 않을 거다.”
“이번에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이게 무슨 망신이냐. 바실리 녀석이 그 기차를 탄다는 정보를 입수한 게 벌써 2주 전인데, 아직까지 그 녀석을 잡지 못하고 있다니 한심하지. 6일 동안 기차를 샅샅이 뒤졌다는데, 도대체 왜 못 찾은 거야?”
“뭐 변장이나 그런 걸 하고 있었겠죠.”
“하! 바실리를 잡으면 변장술은 배우고 죽여야겠군.”
“하하하. 보스님 유머는 역시 재미있습니다.”
“유머가 아니고 블랙 유머다, 이 자식아. 다들 준비됐나? 이제 들어간다.”
라다가 말했다.
“잠깐만요, 보스. 저 화장실에 좀···”
“화장실? 던전 안에 그런 것도 있냐? 지금까지 뭐 했어?”
“작전이라도 말씀하실까 봐, 말씀 끝날 때까지 기다렸죠. 지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 데서나 해결하면 좀 안 되나?”
“다녀오겠습니다.”
라다가 총총히 나무 사이로 걸어갔다.
남은 일행에게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리더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여자들은 역시 불편해.”
“그래도 지킬 건 지켜줘야죠.”
“뭐야? 넌 하나도 안 불편하다, 이거야?”
“아닙니다, 보스. 저도 불편합니다. 보스 말씀이 맞습니다.”
일행은 한참을 기다렸다.
짜증을 견디다 못해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왜 안 와? 배탈이라도 난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15분도 넘은 것 같은데, 맞나?”
“20분은 지났습니다.”
“여기 전부 남자들인데, 가서 살펴볼 수도 없고.”
“큰 소리로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그래라.”
올레그가 라다의 이름을 큰 소리로 여러 차례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블라디미르가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고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하하하!”
“왜 그러십니까, 보스!”
“이, 이거, 아주 익숙한 그림인데. 안 그래?”
“네?”
“우린 처음에 여섯 명이었어. 그런데 지금 우린 겨우 셋이야, 셋. 알겠어?”
“아···!”
*****
첫 번째 목표는 문지기.
그게 누가 됐든 상관없었지만, 무려 33레벨이나 되는 아드리안으로 결정되자, 바실리사도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34레벨. 아드리안이 33레벨. 호각이네요.”
“1, 2레벨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죠. 매번 목숨 걸고 던전에 들어온 바실리사가 마피아 따위에게 지겠습니까?”
“용기를 주시려는 거죠?”
바실리사가 이준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긴장한 목소리였지만, 초록빛 눈동자를 감싸고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눈꼬리는 바실리사의 속깊은 선량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아뇨. 그냥 냉정한 상황 분석이죠.”
“공격 시점은 언제로 하죠?”
“심리전을 조금만 하죠. 양치기 소년처럼 김을 좀 빼놓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오두막 문이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처음 냈을 때, 아드리안은 문 바깥까지 나와 주위를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같은 일이 반복되자, 그는 문밖을 나와 보지도 않았다.
여섯 번째로 오두막 문소리가 그의 아이 쇼핑을 방해했을 때, 아드리안은 드디어 문을 닫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어섰다.
너무 늦은 게 문제였지만.
“아···”
무기를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얼어버린 아드리안.
양손에 날붙이를 하나씩 든 이준기가 먼저, 그다음에는 검과 방패를 든 바실리사가 그의 옆구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커헉··· 사, 살려줘.”
아드리안은 인벤토리에 손을 뻗어 무기가 아닌 힐링 포션을 손아귀에 쥐었다.
그의 손안에 형체를 드러낸 힐링 포션은 그러나 곧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준기가 발로 차버린 것이다.
“스, 스즈키 상!”
“일본 이름으로 부르지 마. 역겹다.”
“무, 무슨?”
“사형이다.”
“뭐?”
*****
“준기 씨는 언제나 이렇게 저울질을 하시나요?”
“네?”
“죽일 놈인지 아닌지, 저한테 계속 물어보시잖아요.”
“아주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나 막 죽일 수는 없잖아요?”
“그런가요? 적의 편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죽일 이유는 충분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말씀도 맞군요. 전쟁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요.”
확실히 그랬다.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 이준기로서도 죽일 때마다 적의 죽음을 판단할 겨를은 없다.
그렇게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이라면, 아직 전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때라면, 죽일 사람과 죽일 필요까지는 없는 사람 사이에 구별을 하려고 했다.
명확한 규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도,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틀렸다.
여기는 러시아. 이미 몇 년째 진짜 전쟁을 하고 있는 곳이다.
범죄 조직을 상대로 싸우는 푸가초프 멤버들은 경찰이 아니라 군인인 셈이다.
전선에 판사는 필요 없다.
집행자만이 필요할 뿐.
“그래도 이 말씀은 드려야겠네요. 루드밀라 프룬젠스키. 사형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네?”
“여자치고는 특별한 경력의 소유자죠. 구원자 각성 전부터 마피아였으니까요. 남자들은 그런 경우도 많지만, 여자들은 흔치 않은 케이스. 원래는 포주였고요.”
“아···”
“이런 세상이 오기 전에, 그러니까 차원문 사태 이전에 이미 러시아 경찰에서 여러 건의 살인 혐의로 수배 중이던 여자입니다. 죽여도 돼요. 아니, 죽여야 해요.”
“충분한 설명이군요. 알겠습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블라디미르 일행을 미행하는 둘.
줄이 길어지고, 일행 사이의 간격이 충분히 벌어지자, 이준기는 땅바닥을 강하게 밀치며 뛰어나갔다.
‘귀검!’
민첩 스탯 130의 이준기.
평소에도 100미터는 5초대에 끊을 수 있다.
스킬 ‘귀검’을 발동한 상태라면··· 1초 남짓.
퍽!
루드밀라가 정강이를 맞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검 카데쉬의 손잡이로 그녀의 정강이를 강타했다.
칼에 베인 상처가 나면 의심할 것이므로, 최대한 신중하게, 달리는 속도까지 늦춰 가면서 정강이 한복판에 멋진 피멍을 만들었다.
그러는 바람에 100미터를 달리는 데 1.3초나 걸렸다.
그냥 뛰기만 했다면 아마도 1.1초 안쪽이었을 것이다.
마치 바람이 가르듯이 수풀이 갈라지는 것을, 바실리사는 나무와 바위 사이에 몸을 숨기고 지켜만 보았다.
블라디미르 일행은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잠깐이지만 소동을 피웠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준기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그는 50미터도 넘게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더 멀리 갈 수도 있었지만 그냥 거기에서 멈춘 것.
다시 돌아와야 할 길이니까.
루드밀라 프룬젠스키를 처형하기 위해서.
다친 동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을 논쟁하던 그들은 루드밀라를 두고 가던 길을 이어 갔다.
귀찮은 임무에서 빠지게 된 것을 반기는 표정이 루드밀라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 표정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긴 시간이 들지 않았다.
힐링 포션 값을 아꼈지만, 그녀는 신상 백을 다시는 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