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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4: 마피아의 생존법 (3)
Episode 34: 마피아의 생존법 (3)
“후아, 잠깐 쉬면 안 될까?”
다시 한 무리의 오크 잡역부들을 처리하고 나서, 로스코비츠가 말했다.
“잠깐이라면 좋아. 하지만 이 던전, 오늘 정리하고 나갈 예정이라는 거, 명심해.”
“뭐? 오늘 중에?”
“너, 31레벨이야. 거기다가 이 포맷은··· 어휴.”
이준기가 한숨을 쉬자 로스코비츠가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왜, 왜 그래?”
“차원문 정보는 봤지?”
“나, 나도 구원자다. 기본적인 것은 이미 체크했어.”
“차원문 소멸 조건이 간단하잖아. 언덕 위에서 봤던 그 수많은 일꾼들을 다 잡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그, 그래? 그런 식으로 해도 괜찮을까?”
“31레벨씩이나 되는 놈이 겁이 많군.”
“그, 그게 아니고, 신중한 거다. 사업가라면 신중해야···”
“뭐, 일단 좀 쉬자. 네 사업 신조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 다음번에 뭘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봐.”
“그래. 고맙다.”
로스코비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오른 손가락으로 왼 팔뚝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이준기의 시선을 문득 눈치채고, 그는 말을 더듬으며 변명했다.
“아, 아파서 그러는 거 아··· 아니다. 가, 가려워서 그러는 거야. 여, 여기··· 문신이 좀 잘못돼서.”
이준기는 그의 팔뚝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팔의 다른 부분에 새겨진 화려한 문양과는 달리, 아주 투박한 하트 표시가 어깨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하트 안쪽에는 키릴 문자가 새겨져 있다.
Дуня.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으, 응?”
부끄러운 것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로스코비츠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두냐···라고 쓰여 있다. 내··· 동생 이름이야.”
“동생?”
“그래. 제1형 당뇨병으로 죽었지.”
“제1형?”
“선천적 당뇨병이다. 죽었을 때 겨우 일곱 살이었어. 생활습관으로 병이 생긴 게 아니라고.”
“아, 그렇구나. 어린 나이에 안 됐군. 가엾게도.”
“변명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두냐의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마피아가 됐다.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 이름을 내 몸에 새겼지.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래···”
“돈이 없어서 직접 했더니, 보기 흉하게 됐지?”
“글쎄. 문신의 모양보다는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닐까?”
“그래. 나한테는 제일 소중한 문신이다.”
이준기는 그의 양팔을 쳐다보았다.
화려한 문양이 양팔을 거의 뒤덮고 있다.
왼쪽 어깨에 새겨진 하트 표시와 동생의 이름만이 투박하게 다른 광채를 내고 있다.
“문신을 새길 때마다, 문신기술자들이 나한테 묻고는 하지. 어깨의 하트 문양, 더 예쁘게 바꾸면 어떻겠냐고. 필요없다고 설명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더 이상 문신할 공간이 남지도 않았으니 그럴 일도 없지만.”
“이런 걸 물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가려웠던 거냐?”
“이 문신 말이야? 글쎄?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아마, 각성한 다음부터인가?”
“마피아가 먼저 되고, 나중에 각성을 했단 말이지?”
“그렇다. 각성을 하고 나니 갑자기 간부가 됐지. 사채나 받으러 다니다가 갑자기 조직 관리를 하게 됐으니, 구원자가 귀족인 것은 마피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야?”
“그··· 글쎄? 각성 전에도 사람들을 위협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힘을 쓴 건 아무래도···”
“각성 후겠지.”
“그··· 그래.”
네 동생 두냐가, 어깨의 문신을 통해서 양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준기는 그러지 않았다.
로스코비츠의 얼굴은 이미 그런 이야기를 들은 표정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이준기가 물었다.
“사람을··· 죽인 적은 있나?”
“당연한 걸 왜 묻지? 마피아에, 구원자다. 어느 쪽이라도 사람은 죽이게 되어 있지. 그건 나보다 그쪽이 더 잘 알지 않나?”
“그래.”
다시 잠깐 침묵.
“가족은 있어?”
“가족은 무슨.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가 있지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깟 놈,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았겠지.”
“아버지 외에는 가족도 없다는 거?”
“뭐, 뭐야? 갑자기 이런 질문은 왜 하는 거냐?”
“던전 공격대 동료니까.”
“도··· 동료는 무슨!”
“가족 될 사람이라든가 하는 건? 여자친구는?”
“그런 건 없어. 여자는 잠깐 함께 즐기면 되는 거지, 무슨···”
“그건, 정말 전형적인 구원자다운 썩어빠진 생각이군.”
로스코비츠가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한 손을 얼굴 위로 들면서 그가 말했다.
“때··· 때리지 않을 거지?”
“헐. 누가 보면 내가 널 엄청 때린 줄 알겠다.”
“아··· 아까···”
“그건 네가 네 주먹으로 자신을 때린 거잖아.”
“아···”
로스코비츠는 아까 두들겨 맞을 때의 고통을 떠올리는 건지 잠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상상력이 풍부한 녀석이라고, 이준기는 생각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시대가 올 때마다, 사람들은 잊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깨닫고 놀라고는 하는 것이다.
로스코비츠가 물었다.
“아까 그건 어떻게 한 건지, 물어봐도 되나?”
“아··· 그거? 그냥 구원자 스킬이지 뭐. 네 특성 트리에서는 배울 수 없는 거니까 신경 꺼라.”
“내··· 스킬 트리도 안다는 거냐?”
“물론이다. 그러니까, 날 적으로 돌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냐?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너처럼 센 구원자는 본 적이 없다.”
“그건 다행이구만. 블라디보스토크도 쓸어버려야 할 테니.”
“너··· 넌 정말 뭐냐? 설마 무슨 국제 경찰이라도 되는 건 아니겠지?”
“나중에 내 편이 되면, 알려주마.”
“네 부하가 되라고?”
“부하라는 말은 좀 거시기하지만, 결국 같은 얘기겠지.”
“지, 진심이야? 진지하게 제안하는 거냐?”
“그래. 마피아가 돈은 많이 벌겠지만, 범죄자잖아. 떳떳한 쪽으로 직업을 바꾸는 건 어때?”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로스코비츠는 분명히 이준기의 제안을 곱씹고 있었다.
*****
자정이 넘도록 몬스터를 잡았지만, 자기 전에 던전을 클리어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준기는 로스코비츠와 함께 던전 입구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자는 도중에 날 기습한다든가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랬다가는··· 하하.”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어찌 됐든 지금 우리는 도, 동료니까.”
“좋은 자세다. 도망가는 일도 없을 거라고 믿는다. 만약 그랬다가는 평생 도망만 다니며 살아야 할 테니까.”
“무··· 물론.”
이준기의 허세에 예상대로 로스코비츠는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스킬을 구사하고, 레벨도 아이템도 자신보다 월등한 상대다.
자신의 상태창을 훔쳐보기까지 하는 상대에게 기습을 방어하는 기술이나 도망자의 위치를 추적하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로스코비츠의 표정을 보고, 이준기는 협박이 먹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정말 기습을 한다고 해도, 이준기가 한 방에 죽을 것도 아니고, 반격하면 그만이다.
덕분에 꿀잠을 잤다.
역시 구원자에게 홈그라운드는 던전이다.
아침이 되자 이준기는 반짝 눈을 떴다.
로스코비츠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괴로운 꿈이라도 꾸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거리는 잠꼬대를 했다.
‘동생이라도 보는 것인가. 꿈꾸고 회개라도 한다면 재미있겠군.’
로스코비츠를 던전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우선 바깥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깨야 할 던전, 다른 이의 손을 빌려서 손쉽게 하려던 생각도 있었고.
‘던전 클리어 후에는 죽여야 하나 생각했는데, 어쩌면 안 그래도 될지도.’
아침이 되었다.
잠을 깬 로스코비츠가 오두막을 나가려는 이준기에게 물었다.
“바··· 밥은 안 먹냐?”
“아··· 밥. 그래, 먹어라.”
“너··· 너는? 설마 식량 패키지가 없는 거야?”
“그럴 리가 있냐. 너보다는 적게 가지고 있지만, 며칠 분은 된다. 난 그냥 아침을 안 먹는 주의라서.”
“식량 패키지를 내가 몇 개 가지고 있는지, 그것도 보이냐?”
“일곱 개잖아. 이제 하나 먹으면 여섯 개 되겠네.”
“미··· 믿을 수 없어. 너 같은 구원자는 본 적이 없다.”
“당연하지. 나도 본 적이 없는걸. 나 같은 녀석은.”
로스코비츠가 식량 패키지의 포장을 풀고 빵 덩어리를 꺼내 덥석 물었다.
밤 열 시가 다 돼서 던전에 들어와서, 혼자 그렇게 사냥을 했으니 배고플 만도 하다.
게다가 일하는 걸 누가 뒤에서 빤히 쳐다보는 상황이었으니.
최악의 근무 환경 아닌가.
에너지 고갈도 있겠지만, 스트레스만으로도 식욕이 당길 만한 상황이다.
“그, 그런데 대장!”
대장?
이준기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아이들끼리 누가 골목대장인지 정하는 싸움이라도 한 것인가.
이준기는 쿨하게 대답했다.
“응.”
“오늘은 보스와 전투를 하게 되겠지?”
“당연하지. 보스까지 가는 길을 정리하는 데 한 시간도 안 걸릴 거다.”
“서, 설마··· 보스전도 나 혼자?”
“휴우··· 너 31레벨이잖아. 보스랑 싸우기 전에 32레벨 달겠구만. 경험치 바도 거의 다 찼네.”
자신의 경험치 바까지도 들여다보는 이준기.
또 놀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더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동안 벙쪄 있던 표정을 풀고, 로스코비츠가 말했다.
“그··· 그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만약, 내가 위험해지면 도와는 줄 거지?”
“에에? 왜 그렇게 생각하냐?”
거의 비열하다시피 한 표정을 짓는 이준기를 보고, 로스코비츠의 얼굴이 다시 멍해졌다.
“왜··· 왜라니··· 우린 한 팀이라며.”
“내가 그렇게 제안하기는 했지만, 난 아직 답을 듣지 못했는데?”
“네, 네 부하가 되라는 제안 말이야?”
“부하든 동료든. 그래, 그 제안.”
“그걸 받아들여야, 한 팀이 되는 거였냐?”
“그렇지.”
“그래, 그럼. 네 부하가 되겠다.”
“하! 그게 그렇게 쉬운 거야? 너, 마피아라며?”
“그, 그렇지.”
“마피아 그만둔다고 하면, 그놈들··· 총 들고 쫓아올 텐데. 괜찮겠어?”
“러, 러시아에서는 숨기 힘들긴 할 거다. 다른 나라로 가야겠지.”
“그게 쉬울까? 하긴, 그런 분야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우크라이나 쪽으로는 도망갈 수 있을 거다. 거리상으로는 여기서 밀항해서 일본으로 들어가는 게 더 쉽겠지만.”
“당장 도망가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일단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어? 우크라이나 쪽이 더 나아 보이는데.”
“비행기를 타지 않고 우크라이나까지 가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다. 그동안 날 보호해 줄 수 있나?”
“너, 진지하구나?”
“지금 너한테 죽지 않으려면 네 부하가 되는 수밖에 없잖아?”
과연 마피아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준기는 대답했다.
“논리가 단순해서 좋구나.”
“내, 내 말이 틀렸나?”
“딱히 틀렸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사실, 던전 클리어한 다음에 널 어떻게 죽여야 하나 생각 중이었거든.”
“네··· 네 부하가 되겠다. 살려줘.”
*****
-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 1시간 내에 차원문이 소멸합니다.
- 보물 상자가 생성되었습니다.
- 최소 레어 등급 아이템 1개가 보장됩니다.
1월 4일 아침 9시 20분,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성취감에 뿌듯함을 느껴서 그런 건지, 로스코비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리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통나무로 대충 지어진 현장 감독의 오두막을 나오면서, 로스코비츠는 연신 포효를 해댔다.
“으하하! 해냈어! 으하하하!”
소리를 너무 질러대서 그런지, 담장 안쪽에 서 있던 경비 두 마리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로스코비츠가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허··· 헉! 던전 클리어됐다면서? 클리어 후에도 몬스터가 덤비는 건가?”
이준기가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건 내가 처리해 주마.”
이준기의 모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뭔가가 눈에 밟히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달려왔던 두 마리의 경비병 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2초 후, 이준기가 다시 시야에 나타났다.
다른 경비병의 등을 향해 쌍 단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면서, 경비병이 등을 돌리고 도끼를 휘둘렀다.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난 이준기.
휘두른 도끼의 무게에 등이 돌아간 경비병을 향해 다시 치고 나오면서 가볍게 타격.
경비병이 쓰러졌다.
로스코비츠는 그 모습을 넋이 나간 상태로 보고 있었다.
“뭐해? 가자. 보물 상자가 오두막 근처에 생성된 모양이네.”
“어··· 그, 그래!”
로스코비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그거··· 무슨 스킬인지 물어봐도 되나?”
“아, 이거. 이 스킬 익히느라 고생 좀 했지. 사막에서 바람 정령 찾아다니느라···”
“투··· 투명 인간이라도 되는 거야?”
“스킬 이름은 귀검(ghost sword)이다.”
“그런 스킬은 처음 봤어.”
“흔한 스킬은 아니지.”
“대, 대장은 너무 센 거 같은데. 러시아인이 맞기는 한 거야? 극동에 사는 거라면, 그 정도의 실력자에 대한 정보를 내가 전혀 몰랐다는 게···”
“러시아 사람은 아니다. 너도 눈치챘겠지만.”
“그렇다면 왜 러시아에?”
“누구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