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97화 (9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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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4: 마피아의 생존법 (2)

Episode 34: 마피아의 생존법 (2)

외지에서 온 구원자가 차원문을 정리해준다고 한다.

게다가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마르코비츠가 대화 내용을 알리자, 상인들은 기쁜 나머지 흥분해 외쳤다.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마을에 진정한 구원자가 오셨다!”

흥분해서 제멋대로 소리 지르는 상인들에게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마피아는 모두 제압당했다.

로스코비츠는 기절했고, 미샤와 그의 두 똘마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통역에 나섰던 마르코비츠가 동양인에게 말했다.

“러시아어는 제가, 아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저보다 영어를 훨씬 잘 하니까요. 숙소는 정하셨나요?”

“근처 호텔에서 묵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 오세요! 빈방이 있습니다. 맘 편히 묵으면서 러시아어 배우세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요!”

“그렇다면, 신세를 좀 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일을 할 시간이네요.”

동양인은 고개를 돌려 미샤를 불렀다.

“미샤!”

들떠 있는 상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마음을 놓았던 미샤가 흠칫하며 대답했다.

“네, 넷!”

동양인은 손가락으로 쓰러진 로스코비츠를 가리키고, 이어서 자기 등을 가리키며 업는 흉내를 냈다.

이어서 손가락으로 미샤를 가리켰다.

미샤는 자기 손가락으로 로스코비츠를 가리킨 후, 업는 흉내를 내며 동양인을 쳐다보았다.

동양인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오케이!”

마르코비츠와 동양인이 앞장서고, 시장 상인들이 뒤를 따라갔다.

맨 뒤에는, 기절한 로스코비츠를 들쳐 업은 미샤가 터벅터벅 따라 걸었다.

먼 길은 아니었다.

주택가가 늘어선 지역.

넓은 도로 위로 희푸른 빛의 소용돌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동양인은 우선 차원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켰다.

- 차원문 고유번호 09405. 랭크 C. ‘벌목 현장’.

- 차원문 소멸 조건: 현장 감독 사망

- 차원문 소멸 보상: 레어 아이템 1개 이상.

- 퇴각 페널티: 1레벨 강등.

‘겨우 이걸 가지고, 이 동네 갑질을 다 하고 다니셨군.’

“어이, 미샤!”

미샤가 쳐다보자, 동양인은 자기 등 뒤를 가리키고, 이어서 차원문을 가리켰다.

미샤가 따라 했다.

자기 등을 가리키고, 차원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동양인을 쳐다보았다.

‘말로 해야겠지.’

동양인은 마르코비츠에게 부탁했다.

“마르코비츠 씨. 미샤한테 통역 좀 해주세요. 등에 메고 온 저거, 차원문 안으로 던져 넣으라고.”

마르코비츠의 통역에 따라, 미샤가 쭈뼛거리면서 등에 업고 있던 로스코비츠를 차원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동양인과 시장 상인들 모두,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로스코비츠가 차원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보고 난 뒤, 차원문을 향해 걸어가던 동양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 마르코비츠 씨. 미샤한테 한 마디만 더 전해주세요. 저 없는 동안 또다시 사람들을 괴롭히면, 그땐 코피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네? 넷!”

동양인은 미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어 보여주었다.

미샤가 헛딸꾹질을 시작했다.

*****

- 31레벨.

- 전문화: 불 12 흙 19.

- 힘 90. 민첩 60. 체력 75. 정신력 15. 물리 저항 2. 마력 저항 3.

- 성흔: 없음.

- 획득 스킬: 타이탄 테라코타, 도깨비불, 금강불괴.

- 인벤토리: 퍼시벌의 평온, 불화살 3개, 바보 이반의 투구, 대해의 심장, 완력 강화 장갑, 늪지 장화, 마력 저항의 펜던트, 상급 힐링 포션 1개, 중급 힐링 포션 3개, 기본 식량 팩 7개.

세르게이 로스코비츠의 현재 상태가 동양인 구원자의 상태창에 출력되었다.

다른 구원자의 상태창을 들여다보는 능력, ‘이르헬의 눈’.

오직 일부의 구원자들만이 가지는 특수 능력, 소위 ‘성흔’이다.

알료샤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소개했던 한국인, 그의 본명은 이준기다.

러시아로 건너오기 전, 일본에서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스즈키라는 이름을 썼었다.

그나마 가장 흔한 이름이니까 둘러대기 좋아서 쓴 이름이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는 드미트리라는 이름을 쓸까, 그는 잠깐 생각했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러시아에서는 오래 있게 될 것이다. 아마도 한 달이나 두 달.

그 정도의 시간 동안 쓸 이름이라면, 나름대로 애착이 가는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알료샤로 정했다.

오두막 바닥에 고꾸라진 채 움직이지도 않는 로스코비츠.

이준기는 책상다리로 앉은 채 그를 쳐다보았다.

‘참 엉망이군. 스킬 트리가 획득 스킬과 잘 맞지도 않고, 아이템은 무슨 넝마주이처럼 나오는 대로 주워 먹은 건가? 이렇게 해도 31레벨씩이나 됐으니,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의외로 실력이 좋은 건가··· 그래도, 무기 하나는 좋군.’

“일어나!”

이준기는 로스코비츠의 뺨을 찰싹 때렸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갑자기 로스코비츠가 벌떡 일어서서 러시아어로 소리쳤다.

“허, 헉! 여··· 여긴 어디야? 너, 넌?”

또 한 번 뺨을 내리치려고 손을 들고 있는 이준기의 얼굴을 알아보고, 로스코비츠는 놀란 눈으로 손바닥을 뻗어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봐, 소악당 씨. 이름이 뭐야?”

“너, 넌 뭐야!”

“나? 아까 통성명 마쳤잖아. 알료샤라고 불러줘.”

“아, 알료샤?”

“네 이름도 말해줘야지.”

“나, 난 극동 마피아의 제2인자, 세르게이 로스코비츠다!”

며칠 동안 나름 정탐을 해서 정보를 모은 이준기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극동 마피아가 아니고, 그 일부에 불과한 이곳 사할린 마피아의 2인자.

아무튼 통성명은 끝냈다.

이준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영어를 좀 하니 다행이다. 내가 러시아어를 전혀 몰라서 말이야.”

“너, 넌 뭐냐!”

“알료샤라니까. 애칭이 정 징그러우면 그냥 알렉세이라고 부르던가.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내가 그걸 좀 많이 좋아해서 말이지.”

“카라마조프? 그게 뭔데?”

“대학교 나왔다며? 모스크바 대학교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그렇다! 아직 졸업은 안 했지만···”

“그렇다면 책 좀 읽어라.”

갑자기 책 얘기가 나와서 벙찐 얼굴을 하던 로스코비츠.

갑자기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외쳤다.

인상을 써서 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인가 본데, 말을 더듬으니 효과가 전혀 없다.

“나, 나한테 이렇게 구, 굴었다간 나중에 후회할 거다!”

“네가 뭔데?”

“나, 난 러시아 마피아다! 러시아 극동 마피아 2인자라고!”

“그래?”

“마피아가 뭔지 모르는 거냐!”

“그러니까 넌··· 너의 아이덴티티는 구원자가 아니라 마피아다? 그걸 주장하는 거야?”

“아이덴티티는 무슨! 너, 너··· 사람 잘못 건드렸다.”

“난 좀 생각이 다른데.”

“나, 난··· 극동 마피아의 2인자다!”

이준기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로스코비츠를 쳐다보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러시아 마피아에 그렇게 인재가 없다고?”

“내··· 내가 어때서!”

“그건 너 자신이 더 잘 알겠지.”

이준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로스코비츠는 흠칫하면서 이준기를 올려다보았다.

“도··· 동양인치고는 키가 크군!”

“편견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놀랄 일이 계속 일어날 테니. 자, 가자!”

“어, 어디를?”

“여기 어딘지 몰라?”

“여기가 어딘데?”

이준기는 아이템 자판기, 그리고 보급 무기가 걸려 있는 선반을 가리켰다.

“더··· 던전? 어디 던전이야, 여기가?”

“유즈노사할린스크 주택가. 거기에 있던 던전이다. 나타샤 아주머니네 강아지를 죽인 그 고블린이 나왔던 던전말야.”

“네··· 네놈이 날 기절시키고, 여기로 끌고 왔다고?”

“그래. 동네 사람들에게 진 빚은 갚아야지. 오늘 이 던전, 너와 나 둘이 깨는 거다.”

“너··· 너도 구원자냐?”

“머리가 나쁘구나, 너?”

“하··· 하긴, 구원자겠군. 던전 안에 들어왔으니.”

“따라와.”

“내, 내가 왜? 그리고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으냐?”

“참고로 말해 둘게. 난 39레벨이고, 전설템을 어디 보자, 하나, 둘··· 세 개 가지고 있다. 던전 안에서 장례 치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날 공격할 생각은 애초부터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말을 하고 나서 이준기는 생각했다.

전설템이 세 개라··· 그랬으면 좋겠군.

이놈을 겁주는 게 중요하니까, 이 정도 선의의 거짓말은 괜찮겠지.

*****

숲이 나타났다.

괜히 벌목 현장이 아니다.

여느 던전보다 훨씬 더 울창한 숲.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각종 벌목 장비를 갖춘 오크와 고블린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어두운 밤이지만, 곳곳에 횃불이 밝혀져 있어서 일 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은 이쪽 세계에서도 노동법보다 더 우월한 가치인 모양이다.

이준기는 언덕 아래쪽의 작업 현장을 한번 둘러보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일을 하는 곳도 있지만, 대개 혼자 아니면 둘이다.

큰 위험 없이 실력을 키우기 딱 좋은 유형의 던전이다.

“여기 들어와 보기는 했냐, 세르게이?”

“직접 들어와 본 적은 없고, 부하를 시켜서 정찰은 해봤지.”

“오호, 그래? 구원자 부하가 있다고?”

“당연하지. 난 극동 마피아 2인자라니까!”

“그 2인자 타령은 좀 그만하고. 대답해봐. 이 간단한 던전을 왜 지금까지 방치한 거지? 너 정도 레벨이면 혼자라도 깰 수 있는 던전 아닌가?”

“차원문은 열려 있어야 돈이 되는 거다. 그런 것도 모르나?”

“난, 마피아가 아니라서.”

“내가 힘 좀 쓴다고 우리 동네 불량배들을 다 잡아 버리면, 누가 나한테 돈을 가져다주겠나? 보호비를 받으려면, 보호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지.”

“깡패가 논리 이야기를 하니 그것도 나름 흥미롭군.”

“깡패라니!”

로스코비츠가 목소리를 높이며 이준기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맞받아 쏘아보는 이준기의 눈빛에 곧바로 고개를 내렸다.

이준기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게 깡패라는 거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지.”

“···”

“재미있지 않냐? 이런 날이 올 줄 정말 몰랐던 거야?”

“네··· 네가 센 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전부를 이길 수는 없다.”

“글쎄 그럴까?”

이준기가 손을 들어 열심히 작업 중인 오크 두 마리를 가리켰다.

“우선, 저놈들부터 잡자.”

“뭐라고?”

“아니, 이 녀석이 귀가 먹었나··· 너만 그런 게 아니고 나도 말을 두 번씩 하는 거, 매우 싫어. 말 대신 주먹으로 지시를 내려줄까?”

“아··· 아니다. 그, 그런데 뭣 좀 물어보자.”

“말해봐.”

“정말로 이 던전을 깰 생각인 거야?”

“당연하지.”

“우리, 둘뿐인데도?”

“너, 보기와는 다르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구나? 31레벨 정말 맞아?”

“무시하지 마라! 나, 31레벨 맞다! 그, 그런데··· 어떻게 내 레벨을 아는 거지?”

“자, 빨리. 퍼시벌의 평온인가 그걸 들고 저기 오크 녀석들의 머리통을 부순다. 오케이?”

“내··· 내 무기까지 알고 있어? 그런 기술이 있는 거냐? 남을 정탐하는···”

“궁금한 게 많은 녀석이구나? 하지만 지금은 질답시간이 아니고 일할 시간이야. 자, 이제, 공격!”

“아, 알았다··· 그런데 나 혼자 하라고?”

“왜, 싫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익숙한 포맷 아닌가? 난 명령하고, 넌 지시받은 대로 한다. 알겠냐?”

“나 혼자 저 둘을 잡을 수 있을까?”

“31레벨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저놈들과 싸우다가 죽을래, 아님 지금 나한테 죽을래?”

“아, 알았다. 지금 간다.”

로스코비츠가 주춤거리며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대한 양손둔기가 그의 손아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퍼시벌의 평온’. 에픽 등급 무기다.

“자, 어서!”

이준기의 채근에 로스코비츠가 종종걸음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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