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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1: 와이번 모나크 (3)
Episode 31: 와이번 모나크 (3)
이준기는 알고 있다.
와이번 모나크를 잡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본체에 공격을 집중하는 것이다.
네 개의 촉수는 탱커들에게 맡기거나, 누군가의 희생에 기대면 된다.
100킬로그램 이상의 무게를 매달 수 있다면, 촉수는 무력화된다.
더는 다른 사람을 공격할 힘이 없는 것이다.
지금 임한별을 매단 채 공중에서 가볍게 춤이나 추고 있는 저 촉수처럼.
임한별이 촉수 하나를 무력화시키는 바람에, 오히려 탱커가 하나 남는 상황이다.
한 사람만 희생한다면, 대단히 효율적으로 모나크의 본체를 공략할 수 있다.
와이번 모나크에 대한 사냥 경험이 축적되면 다들 알게 되는 당연한 사실.
그걸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닫는 자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김범규가 외쳤다.
“임한별은 포기한다. 본체를 공격해야 해!”
언덕 꼭대기에는, 마치 게 껍질 위로 게 눈이 보이듯이 괴수의 본체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정두리, 그리고 하성도가 본체에 공격을 넣고 있었다.
게 눈이 끔뻑거릴 때마다 짙은 녹색의 독액이 발사된다.
그것만 피하면서 타격을 가하면 된다.
김범규가 다시 외쳤다.
“촉수 네 개가 다 묶여 있잖아! 본체를 공격해!”
촉수에 꿰뚤려 공중에 떠 있는 임한별을 바라보며 주변의 공격대원들이 머뭇거렸다.
임한별과 같은 길드인 홍세희가 항의했다.
“한별이를 죽게 놔두라는 거예요? 미쳤어요?”
김범규가 곧바로 응수했다.
“임한별뿐만 아니라 전부 다 죽는 수가 있어! 본체를 공격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어!”
한상태 옆에서 촉수를 공격하던 박충기가 언덕 위쪽으로 뛰어 올라가면서 외쳤다.
“김범규 말이 맞아! 한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본체를 친다!”
임한별과 홍세희가 소속된 길드, 문경새재의 마스터, 박충기의 말이다.
홍세희가 울먹이며 외쳤다.
“그런 게 어딨어요! 한별이가 여기 들어오겠다고 자원한 것도 아닌데!”
박충기 대신, 한상태가 대답하는 것이 멀리에서 들렸다.
“그게 구원자라는 직업이다!”
*****
살짝 들려 있던 언덕 꼭대기가 주저앉으면서, 녹색 가스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전투 도중 이준기가 여러 차례 설명을 했기 때문에, 공격대원들은 즉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피했다.
언덕 아래쪽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던 네 개의 촉수도 모두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시체가 된 지 오래인 임한별 역시 촉수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머지 세 개의 촉수를 탱킹하던 탱커들도 하나둘 바닥에 주저앉았다.
땅바닥에 붉은 줄이 그어지면서 촉수가 날아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벌써 30분이 넘게 지났다.
다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느라, 말을 할 여력이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김범규가 말을 꺼냈다.
모두가 하고 싶어 하던 그 말을.
“오대영! 이상덕!”
오대영도 이상덕도, 와이번 모나크라는 전대미문의 크기를 가진 괴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라졌다.
이상덕은 나중에 슬며시 돌아와 모나크 본체에 대한 공격에 가세했지만, 오대영은 아직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상덕이 필요 이상으로 숨을 몰아쉬는 척을 끝내고 대답했다.
“김범규 회장··· 말이 짧군요. 화내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하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구원자도 사람이잖소. 겁이 날 수도 있는 거지.”
“탈영병은 총살이다. 군대는 다녀왔겠지?”
“나도 병장 제대한 몸이요. 하지만 여기가 군대는 아니잖소?”
“너 따위가 협회장이라니. 당장 사퇴해라.”
“나는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이 직을 맡고 있소. 내가 왜 사퇴해야 한단 말이오?”
이상덕이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불편한 심기를 표현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마디씩 더하는 소리에 그의 목소리는 묻혔다.
“사퇴해라, 이상덕!”
“그따위 실력으로 길드협회장이라니!”
“도망친 데 대해 책임을 져라!”
정치인의 기본 소양을 두루 갖춘, 그래서 철면피는 기본으로 깔고 있는 이상덕이지만, 면전에 대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니 그도 얼굴색이 붉어졌다.
“여, 여러분···”
김범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뭐, 뭐요? 김 회장?”
“당신 정치 생명도 여기에서 끝나는군. 매번 쉬운 던전만 찾아다니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잖아.”
“말이 심하잖소, 김 회장!”
“지금 그 레벨 유지하는 것도 사실 대단하기는 하지. 협회장이 너무 레벨이 낮아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런데 정치질도 하고, 던전에 들어와 싸움도 하기에 당신은 재능이 모자라. 이제 둘 중 하나는 그만두라고.”
“오늘 일은 내가 잘못했소. 하지만 그동안 내 공적도 생각해 주시오.”
“무슨 공적?”
“던전 클리어 단가라든가, 구원자 기본급이 이 정도 되는 나라가 흔한 것 같소? 우리나라 구원자들 처우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오. 그게 다 협회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란 말이오.”
“흥.”
김범규는 콧방귀를 뀌었으나, 다른 사람들 중 일부는 수긍하는 것 같았다.
이상덕은 협회 운영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 길드도 잘 챙기기로 소문이 났다.
이상덕과 언제나 협회장 선거에서 맞붙었던 박충기는 자기 길드를 못 챙기기로 유명하다.
적어도 행정력에서만큼은, 이상덕이 박충기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것, 다들 알고 있었다.
“오대영은 어디 있어?”
김범규가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대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
오대영의 등장에 다시 한 차례 분노의 폭풍이 몰아쳤다.
한상태가 중재를 했다.
오대영과 이상덕은 보상 아이템의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상덕 협회장의 거취 문제는 구원자들 전체가 참여하는 협회 총회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한상태 회장이 협회장을 하면 좋을 텐데 말야.”
“난 그런 자리에 관심이 없어요. 아니, 싫어요.”
언덕, 아니 와이번 모나크의 머리 위에 보상 상자가 나타났다.
보통은 공격대장이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실격 처리된 오대영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탱커가 상자를 열었다.
“헉!”
세 명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뭔데요?”
“빨리 링크해 봐요.”
김범규가 상자에 나온 아이템 링크를 전 공격대원에게 보냈다.
- 가시나무.
- 흉갑. 에픽 등급.
- 착용 효과: 물리 방어 2. 마력 저항 20.
- 발동 효과: 물리 공격을 받는 경우, 받은 피해의 50%를 적에게 반사합니다. 반사 피해는 적에게 피해량의 2배에 해당하는 어그로를 생성합니다.
탱커에게 대단히 좋은 아이템에는 틀림없으나, 놀라서 소리를 지를 정도의 아이템이라고는 할 수 없다.
던전 클리어 보상 아이템은 두 개였다.
곧바로, 두 번째 아이템에 대한 링크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모두들, 왜 그들이 소리를 내질렀는지 이해했다.
- 사자의 서.
- 소모품. 전설 등급.
- 발동 효과: 몬스터의 공격에 의해 소지자가 사망할 경우, 소지자를 완전히 치유하고 던전 바깥으로 이동시킵니다. 퇴각 페널티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한 번 발동하면, 이 아이템은 사라집니다.
“대, 대박!”
“헉!”
“이, 이건···”
“생명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거잖아!”
사자의 서. 이런 아이템이 존재할 줄이야.
단순무식한 설명 그대로, 죽음에 직면한 소지자를 살려주는 아이템.
게다가 전설템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이야기.
“워, 워어··· 진정들 하세요.”
“소, 손대지 마시고요!”
아이템을 집고, 인벤토리에 넣겠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글쎄, 2초 정도 될까?
이런 아이템이라면, 성인군자라도 닌자 할 생각이 날 것이다.
상자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세 명 중 누군가가 그런 짓을 벌인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건 미친 짓이다.
‘사자의 서’를 닌자 하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머지 18명에게 두들겨 맞고 바로 사망할 것이다.
‘사자의 서’는 던전 내 몬스터에 의한 죽음만을 막아줄 뿐이다.
한상태가 소리쳤다.
“자, 자, 여러분. 평소와 다를 게 없습니다. 공정하게 아이템에 대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아이템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이게 평소와 다를 게 없다고요? 목숨을 돈으로 살 수 있는데?”
“길드 단위로 경매를 합시다!”
“이런 아이템을 골드로 사게 할 수는 없어요. 차라리 투표를 하죠!”
“그래요. 투표를 합시다. 이번 던전에서 제일 공로가 많은 사람이 아이템을 가져야 해요.”
“아니, 갑자기 왜 다른 규칙을 들먹입니까? 아이템은 언제나 경매로 배분하는 게 원칙이잖아요!”
“시간은 충분합니다. 어떻게 아이템을 배분할지, 얘기를 해보죠.”
“아뇨. 시간이 어떻게 충분합니까? 시간이 없어요!”
그때, 마치 사람들의 의견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상태창에 메시지가 떴다.
-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만,
- 아이템이 배분될 때까지 차원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아이템을 배분해 주세요.
“뭐야? 말투가 왜 이래?”
“그러니까 말야! 이거 장난 아니야? 아니, 해킹인가?”
“시스템 메시지가 이상해요.”
장난스러운 말투의 상태창 메시지를 처음 본 사람들이 동요했다.
FFA 포맷의 던전을 뛰어본 사람이라면, 이보다 훨씬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지겹도록 보았다.
FFA 포맷의 종각 던전을 클리어하고 살아나온 것은 이준기와 문아린, 둘뿐.
이 자리에는 이준기뿐이다.
이준기가 나서서 말했다.
“상태창 메시지 맞습니다. 종각 던전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장난스러운 메시지였어요.”
상태창의 장난스러운 메시지에 동요했던 사람들이 잠잠해졌다.
한상태가 말했다.
“아이템 배분을 해야겠는데요. 일단, ‘가시나무’라는 이름의 대미지 반사 흉갑은, 탱커템이라는 데 다들 동의하시나요?”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아니, 그게 왜 탱커템이에요?”
“탱커에게 조금 유용한 옵션이 붙기는 했지만, 탱커템은 아니죠!”
“탱커들만 목숨 걸고 들어왔습니까?”
“장난해요? 탱커가 벼슬이라는 거요?”
한상태가 상자에서 뒷걸음질을 치면서 말했다.
“이것 참, 곤란하군요.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아이템 배분을 맡아주세요.”
이번에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누가 하라는 겁니까? 공격대장이란 작자는 도중에 도망이나 쳤는데.”
“이준기 구원자가 하죠. 사실상 공격대장 노릇을 했으니.”
“에··· 그런가?”
“이준기 구원자가 무소속이니 적당한 것 같기도···”
상황이 묘해졌다.
기껏 힘든 싸움을 끝내고 던전을 클리어했건만, 아이템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게 생겼다.
이상덕과 오대영의 행동 때문에라도 싸움이 날 만한 상황이었는데, 그걸 비교적 현명하게 해결한 공격대.
그러나 아이템 상자가 다시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렸다.
“이상덕과 오대영, 저 자들은 일단 던전 바깥으로 쫓아내죠.”
“이상덕, 오대영이 문제가 아닙니다. 길드 차원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맞는 말이오. 이상덕, 오대영과 같은 길드 소속인 사람들은 아이템 입찰 자격이 없소!”
“뭐가 어째요?”
“같은 길드인 게 무슨 상관이란 말예요?”
“같은 길드라면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럴 게 아니라면 길드가 왜 있어야 해요?”
“아니, 당신 길드 사람들 많이 있다 이거야?”
이준기는 길수연을 살짝 바라보았다.
평소의 길수연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저는 관심 없으니까 먼저 나가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차원문을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동요하고 있다.
목숨을 하나 더 주겠다는 아이템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그걸 뿌리친단 말인가.
필멸자에게 이보다 더한 유혹이 어디 있을까.
전용택과 김범규, 둘이 지키고 있는 상자 옆으로 갑자기 박충기가 움직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표정을 짓고 서 있던 이상덕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