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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85화 (8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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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1: 와이번 모나크 (2)

Episode 31: 와이번 모나크 (2)

“강명성 구원자도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잖아. 하지만 이준기 씨도 그래. 좀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야 공격대원들이 납들할 거 아냐.”

이상덕이 신사 코스프레를 하며 둘 사이를 중재하듯 말했다.

이준기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좋습니다. 아까 보셨지만, 와이번의 주식은 선인장 수액입니다. 벌이나 개미 같은 존재죠. 지금 들판에 돌아다니는 놈들은 말하자면 일개미, 일벌 같은 존재입니다.”

“근거는? 그것도 그냥 이준기 씨 생각 아냐?”

“네. 제 생각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릴 테니, 납득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나중에 판단해 주세요.”

“좋아, 좋다고. 계속 말해 봐.”

“와이번의 생태를 관찰해 본 결과, 그리고 외국 구원자들에게 얻은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제 결론은 그겁니다. 와이번은 군집 생물이다. 그렇다면 와이번 모나크는 여왕벌이나 여왕개미 같은 존재겠죠.”

“외국, 외국··· 계속 외국 타령이네. 헬렌 카자크랑 연락하고 지낸다는 게 사실인가 봐? 좋겠구만.”

강명성의 딴지에, 이상덕이 말을 막았다.

“일단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자구. 그런 농담은 나중에 해.”

“아··· 네. 회장님.”

이준기가 말을 이었다.

“와이번 모나크는 여왕벌이나 여왕개미일 거라고 추측한다. 거기까지 얘기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여왕벌이나 여왕개미는, 기본적으로 일벌이나 일개미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생식 기능에 완전히 전문화된 개체죠.”

“그럼 뭐가 문제야? 더 쉽겠네? 전투력이 없을 거 아냐?”

“하하. 동물의 왕국 좀 보셔야겠네요. 그렇게 중요한 개체를 보호할 수단이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까?”

“엥?”

“가이아 이론이라고, 지구 전체를 하나의 개체로 파악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군집 생활을 하는 동물은 군집 자체를 하나의 개체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죠. 고환에는 생식 기능만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고환을 가진 동물에게 손톱, 발톱이나 이빨이 없나요? 공격 수단은 군집 자체에서 마련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야, 젠장?”

어리둥절해 하는 강명성에게 이상덕이 고함을 쳤다.

“강명성, 조용히 해! 이준기 씨, 얘기 계속해 봐요.”

“정찰 중에 관찰한 바로는, 돌아다니는 와이번 중에 다른 종류의 개체는 없었습니다. 병정개미 같은 거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공격적인 개체는 와이번 모나크 주변에 있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뒤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길수연이었다.

그녀가 입을 뗐다.

“이준기 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에게는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박수 치는 것을 계속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와이번 모나크가 남동쪽에 있다는 추측은요?”

길수연이 대답했다.

“남동쪽이 언덕이니까, 그렇게 추측하시는 거, 맞죠? 여왕벌이나 여왕개미라면, 몸집이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여왕개미는 땅을 파고 들어가서 자기 집을 마련하죠. 애초에 평평한 땅을 파고 들어갔다고 해도, 그 거대한 몸집에 밀려 지형이 바뀌었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거대한 땅덩어리지만, 와이번에게는 그렇지 않죠. 사과껍질을 파고드는 벌레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남동쪽에 있을 모나크를 사냥하려면, 그 일대를 정리해야 한다는 말씀이고요.”

“네. 병정개미 상대하는 것만도 힘겨울 겁니다. 일개미까지 한꺼번에 상대할 필요는 없죠.”

기시감이 느껴졌다.

지금의 이준기는 물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논리 전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예전에도 이런 식의 브리핑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추측에 기반한 이야기였지만.

*****

다음 날 아침.

해가 지평선에 걸리자마자 사람들은 하나둘 저절로 깨어났다.

실내에서 생활할 때는 해가 그렇게 일찍 떠오른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야외에서 하루라도 지내보면, 인간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의 지배를 받는 피조물임을 깨닫는다.

오두막 바깥에서 자던 사람들부터 일어나서 아침 인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중으로 끝낼 수 있겠죠?”

“그렇겠죠? 내일까지 간다면 남동쪽이 아니라, 지도 전체를 다 사냥할 거 같은데요.”

점호를 끝내고, 아침 식사를 했다.

이준기 외에도 여성 구원자들 중에는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 안 드세요?”

“원래 요거트 정도 먹거든요. 여긴 그런 게 없잖아요. 이준기 님은요?”

“전 그냥 원래 아침은 안 먹습니다.”

“이게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잖아요.”

“마지막 식사가 던전 식량 패키지라면, 저승에서 더 원통할 것 같아서요.”

“아아. 정말 그렇네요.”

둘째 날 사냥이 시작되었다.

첫날 충분히 경험치를 쌓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사람들의 사냥 속도가 빨라졌다.

랭킹 순서대로 탱킹을 하는 탱커들도 거침이 없었다.

아직 한 마리가 쓰러지기도 전에 다음번 타깃을 찾아 헤매는 게 보였다.

“이번엔 제 꺼죠?”

김범규가 레벨러(Reveller)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었다.

5일 전에 이준기와 함께했던 던전, ‘원형경기장’에서 얻은 에픽급 방패다.

- 레벨러(Reveller).

- 방패. 에픽 등급.

- 상대방의 공격을 일부 흡수하여 사용자의 체력을 보충합니다. 상대방은 부상을 입은 상태여야 하며, 중독된 상태가 아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피를 마신다는 의미에서 레벨러, 즉 술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에픽테투스의 원형경기장에서 목표 점수를 초과달성한 그들에게는 에픽 등급 아이템 두 개가 떨어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레벨러.

탱커는 둘이었지만, 메인 탱커이자 길드 마스터인 김범규가 가져가는 데 이의는 없었다.

대신, 김범규는 자신이 쓰던 방패를 신다은에게 헐값에 양도했다.

버스를 탄 것이나 다름없는 신다은은 아이템 횡재까지 누렸다.

너무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신다은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꼭 훌륭한 구원자가 되겠습니다.”

다른 구원자들에게 이준기가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 것.

쿠데타를 일으키는 조슈아 테일러에게 맞서는, 군인으로서 상식을 보여주는 것.

그날이 올 때까지, 살아있어야 하는 게 전제조건이기는 하지만.

변희영의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공격대원들이 와이번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제에 비해 반 박자 이상 빠른 템포.

보통 수준의 실력을 갖춘 탱커라면 어그로를 충분히 가져가는 것이 힘들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최상위 랭커 네 명이 모인 이 공격대에는 해당되는 않는 이야기다.

와이번이 꼬리를 휘둘렀지만 김범규는 여유롭게 방패로 막아냈다.

날개에서 피를 흘리는 와이번.

방패 레벨러가 와이번의 날개에서 피를 빨아들이자, 와이번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방패 색깔이 선홍색으로 바뀌며 빛을 뿜었다.

피를 빨린 와이번은 탱커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며 더욱 사납게 꼬리를 세워 달려들었다.

*****

“와이번 모나크는 어디 있습니까?”

잠깐 쉬는 사이에, 스나이퍼 변희영이 물었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언제나 단호하시네요. 자신감이 넘치세요.”

“정보에 기반한 추측일 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정보의 흐름이 있을 겁니다. 매개체가 호르몬 같은 화학물질일지, 전기 신호나 초음파 같은 형태일지는 모르지만요. 와이번 군락은 하나의 시스템일 겁니다. 거의 확실해요.”

“와이번 군락 전체가 사람 한 명 같은, 그런 한 덩어리라는 말씀이죠?”

“네. 사람 몸에 신경 체계가 있는 것처럼, 와이번 군락에도 그런 정보 체계가 있다는 거죠. 일꾼 와이번이 전멸하는 초유의 사태를 와이번 모나크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통증이나 다른 이상한 감각으로 아프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과 마찬가지죠.”

“과연.”

문제는 어느 시점에 모나크가 움직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제 지표면에 와이번 개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언덕에 가려 있는 남동쪽 끝부분에 남아 있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걸 모두 죽이면 와이번 모나크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일행은 언덕을 넘어갔다.

나지막한 언덕을 지나자, 지평선 쪽으로 와이번들이 보였다.

선인장을 돌아다니며 수액을 채취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니 마치 꿀벌이나 벌새라도 되는 듯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렸다.

“와이번은 동물이라서 그런지 룻도 없고··· 황폐하네요, 마음이.”

“정부에서 쪼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거 아닙니까.”

“청와대 회의 분위기 아주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군인들도 죽을 수 있는 거지. 구원자만 죽으라는 법 있어요?”

“그러게 말예요. 사람들도 좀 죽고 그래야 구원자 귀한 줄 알지···”

변희영이 다가와 이준기에게 물었다.

“결계 끝까지 전부 정리해야 하는 거죠?”

“네.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할 겁니다.”

“열두 마리인가요?”

“시력이 좋으시네요.”

“구원자들 시력이야 다 좋죠.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다른 거니까요.”

*****

신중함을 그토록 주문했건만,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와이번을 한 마리씩 잡으면서 자신감을 너무 많이 가진 모양이다.

땅바닥을 타고 붉은 선이 사람들을 향해 쫓아왔다.

땅 그 자체에서 핏줄이 드러나는 느낌.

대개는 겁을 집어먹고 쫓아오는 붉은 선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바닥에 선명하게 붉은색이 그어지는 것을 보고도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니.

바로 앞까지 그어진 붉은색 끝에서 둔탁한 금속 색깔의 가시 같은 것이 튀어 올랐다.

“끄아악!”

임한별의 몸이 가시 꼬챙이에 꿰인 채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은 넘는 임한별.

그러나 그 육중한 몸은 가시 꼬챙이와 한 덩어리가 되어 마치 모빌이라도 되는 듯이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 괴물 놈!”

임한별을 꿰뚫은 가시를 향해, 강명성이 창을 집어던졌다.

창이 날아가 가시에 부딪치자 금속성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창은 강명성의 손으로 돌아왔지만, 가시는 그대로 임한별을 꿴 채 공중에 떠 있었다.

김나리가 임한별에게 힐을 넣으며 외쳤다.

“조금만 버텨요!”

김나리의 손에서 하얀빛이 퍼져 나와 임한별에게 이어졌다.

“사, 살려주세요!”

임한별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목소리.

그 거대한 몸뚱이를 꼬챙이에 꿴 채로 뱀처럼 움직이는 촉수를 보고 모두들 겁에 질렸다.

뻗어 나온 촉수는 모두 네 개.

한상태, 전용택, 김범규가 하나씩 맡아 탱킹을 하고 있고, 탱커가 달라붙지 않은 촉수 하나가 임한별을 쫓아가 그를 꿰뚫은 것이니까.

오대영은 아마 언덕 반대편에서 탱킹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촉수가 네 개가 넘는 와이번 모나크를 본 적이 없다.’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준기는 마음속에서 오대영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도망쳐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임한별을 공중에 띄우고 있는 촉수를 향해 이준기는 공격을 퍼부었다.

알고 있다. 소용없다는 것을.

티타늄으로 코팅이라도 된 것 같은 괴수의 힘줄은 이준기의 검날을 튕겨 냈다.

와이번 모나크의 몸체는 이 땅에서 나는 가장 단단한 물질로 덮여 있다.

선인장 수액에 섞여 있는 그 단단한 물질은 일꾼 와이번들에 의해 모나크에게 전달된다.

수액에 극히 미량이 섞여 있는 그 물질을 모아, 모나크는 자신 몸을 두를 경갑을 만든다.

사금을 채취해서 금덩어리를 만드는 것처럼.

지구의 물질 티타늄에 빗대어, 사람들은 그걸 차원-티타늄(Dimensional Titanium)이라 불렀다.

에픽 등급 이상의 무기는 바로 이 물질, 즉 차원-티타늄을 소재로 하는 것이 많다.

이준기가 지금 휘두르는 ‘오캄’도 바로 그런 무기다.

그러나 오캄으로 와이번 모나크의 촉수를 베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쯤 되면, 오캄의 검날도, 모나크의 촉수도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손상을 입은 무기는 사용하지 않은 채로 7일이 지나면 복구된다.

그러니까 촉수 하나를 없애려고 에픽급 무기를 날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오캄과 모나크의 촉수가 둘 다 그로기 상태가 되려면, 30분? 아니, 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날 때까지 촉수에 몸이 꿰뚫린 임한별이 살아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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