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82화 (8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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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0: 인천 공항 (1)

Episode 30: 인천 공항 (1)

11월 5일 금요일.

우회로를 구분하기 위한 구조물로 북새통이 된 인천 공항 출국장 근처에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취재진, 협회 사람들, 구경꾼들··· 그리고 던전 ‘와이번 네스트’에 진입하기 위해 모인 정찰조 구원자들.

얼떨결에 정찰대장이 된 문아린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준기 오빠는 이런 귀찮은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피하고 다니는 거지. 정말 힘드네.’

“최근 한국 구원자 계의 신성이라면 역시 이준기와 문아린! 이준기 구원자는 잠시 후에 브릴리언트 길드 관할 차원문에 입장한다고 합니다만, 문아린 구원자는 B급 차원문 정찰대에 지원하셨네요. 별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희 신선자 길드는 인천 공항이라는 국가 기간 시설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이번 차원문 정리를 우선 과제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정찰대에 지원했습니다.”

“전용택 마스터는요?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전용택 마스터는 정찰조는 물론, 공격대에도 지원을 안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공격대가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정찰 결과가 나오고, 공격대 본대가 구성되면 참가할 예정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랭킹 1, 2위가 모두 이번 차원문 정리에 나서겠군요. 퇴마문 길드 마스터 한상태는 공격대 본대에 이미 지원했으니까요.”

“그렇게 되겠네요. 이번 던전이 사상 최강인 만큼, 공격대도 최고 정예로 구성되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찰대장이 되신 소감을 한 말씀 해주신다면?”

“조금 얼떨떨합니다. 아직 부족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아린은 이준기가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그냥 일벌과 여왕벌은 완전히 다른 존재잖아? 그러니까 와이번과 와이번 모나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거야?”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정찰대로 들어가서 와이번 모나크에 도전할 생각은 하지 말아줘.”

“오빠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네요. 오빠나 정찰 들어가서 던전을 밀어버리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런 생각은 안 해.”

길지 않은 전화 통화였지만, 문아린은 반가웠다.

이준기와 문아린 모두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상황.

둘이 밀회라도 하다가 걸리면 가십의 산사태에 둘 다 파묻혀 버릴 것이다.

자신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문아린이었지만, 이준기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연락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준기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 기뻤다.

던전 공략에 관한 몇 가지 의견만 전해준 것뿐이었지만.

어느새 기자들은 메인 힐러 길수연에게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길수연은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기계적일 정도로 짧고 분명한 대답들만 쏟아냈다.

“정찰대에 지원하신 이유는요?”

“공격대, 정찰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공격대가 성사되지 않아서 정찰대 쪽으로 편성되신 거군요?”

“네.”

“오늘 정찰에 임하시는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공격대장인 문아린 구원자와는 잘 아는 사이이신가요?”

“전에 한 번 호흡을 맞춘 적이 있습니다.”

“해운대 던전 말씀하시는 거죠?”

“네.”

이어서 메인 탱커로 참가하는 선우결의 질의답변이 이어졌다.

메인탱커이기는 하지만, 힐러 길수연이나 정찰대장 문아린보다 랭킹이 낮아서 뒤로 밀렸다.

“문경새재 메인 탱커이신데, 요즘 활동이 조금 뜸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집안일이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버님 검찰 수사 말씀하시는 거죠? 난송그룹 선우철 회장님 갑질 사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인데, 한 말씀 해주시죠.”

“어머님 건강 때문에, 곁을 지켜드리느라 제가 요즘 활동이 뜸했던 겁니다. 그룹 일은 제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다들 아시잖아요? 그룹 후계자는 제가 아니라 선우현 형님이니까요.”

“아버님 검찰 수사로 어머님이 몸져누우신 거군요?”

“섣부른 추측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원래 심장이 조금 안 좋으셨습니다.”

“어머님 건강은 이제 회복하셨나요?”

“차원문 진입 전 기자회견인데, 저에 대한 질문만 해주셨으면 합니다.”

양산 지역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난송그룹.

탱커 선우결의 아버지이기도 한 난송그룹 회장 선우철은 최근 여러 가지 갑질 사례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집중포화를 받고 있었다.

결국 검찰도 여론에 떠밀려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아니나 다를까 선우철 회장은 갑자기 지병이 도졌다.

입에는 마스크를 두르고 휠체어에 앉은 모습으로, 그는 아침저녁으로 뉴스에 출연했다.

인벤토리를 점검하는 문아린에게 길수연이 다가왔다.

길수연이 문아린에게 손을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몇몇 기자가 플래시를 터뜨렸다.

비슷한 나이대의 두 미녀가 손을 맞잡은 모습, 클릭 수를 충분히 확보할 만하지 않은가.

플래시 세례를 아랑곳하지 않고, 길수연이 말했다.

“잘 부탁해요, 문아린 님.”

문아린은 길수연의 손을 맞잡고 대답했다.

“잘 부탁합니다, 길수연 힐러님.”

길수연의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문아린은 자신도 그런 눈빛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

정찰대라는 이름을 달고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미 이 차원문에는 개방 첫날부터 사람이 다녀갔다.

이준기에게 관련 정보를 들은 문아린은 신중하게 정찰대를 리드했다.

겨우 열 명에 불과한 정찰대로는 제대로 싸워볼 수도 없다.

진행에 방해가 되는 로밍몹 무리에 대해서만, 그것도 정찰대 전원의 의견을 수렴한 후에 사냥을 개시했다.

오크 사냥꾼, 오크 정찰대, 고블린 상단··· 10명 공격대라도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문제는 와이번.

와이번은 그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크기, 게다가 날개를 펄럭이는 짐승이다.

기다란 꼬리는 마치 철퇴라도 되는 듯이 촘촘하게 가시가 박혀있다.

박물관이나 영화에서나 본 익룡의 모습은 찬탄을 자아냈다.

단지, 그 멋진 괴물이 우리 편이 아니라 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와, 와이번이닷!”

“저, 저건 패스하는 거죠?”

“이준기는 혼자도 잡았다는데 우리가 왜 패스를 해요?”

“안전제일로 갑시다. 패스해요, 패스!”

멀리서 땅바닥을 기듯이 유영하는 와이번을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길수연, 그리고 탱커 선우결이 문아린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비선공 몹입니다. 굳이 잡을 필요가 없어요. 우린 정찰대잖아요. 정찰에 충실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우결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탱킹해야 한다면, 저놈의 이빨이고 독침이고 내가 다 맞아야 한다는 건데. 싫다 싫어. 정말 싫다고.’

길수연은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정찰대이기 때문에, 한 마리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문아린은 잠깐 생각했다.

간결한 문장이지만,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정찰대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문제겠지만.

“정찰대가 제일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죠.”

정찰대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55세의 설국헌이 의견을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방송에도 많이 나오던 사람이다.

구원자로 각성하자마자 직장을 때려치우고 강원도 자기 집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고 한다.

“어휴, 과 내 정치싸움. 생각만 해도 짜증 나요. 지긋지긋하던 걸 이제야 때려치우네요.”

그렇게 인터뷰하던 것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났다.

문아린이 말했다.

“설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설국헌이 길수연과 문아린 사이로 걸어 나오면서 대답했다.

“정찰대의 취지는 정보 수집 아닙니까? 그렇지만 정보를 취합한 후에 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그래서 정찰대라 하더라도 최고 우선순위는 당연히 생존입니다.”

문아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길수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설국헌이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정보를 가지고 나가지 못한다면, 정찰대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결국 양쪽 가치를 형량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그렇겠지만···”

길수연이 말했다.

“그런 양비론은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

말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는지, 설국헌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길수연과 문아린을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논의해 보자는 거죠. 문아린 공격대장님, 이준기 구원자에게 정보를 좀 들으셨다면서요? 와이번은 잡을 만하다고 합니까?”

“이준기 구원자가 단신으로 정찰을 들어와서 와이번을 한 마리 잡은 것은 맞습니다만.”

공격대원들 사이에서 몇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문아린은 말을 이었다.

“그건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했어요. 고블린 상단과 싸움이 붙은 와이번을 잡은 거죠.”

“지금 우리는 열 명이나 됩니다. 탱딜힐을 제대로 갖추고 있고요.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공격대원 전체가 무사히 빠져나가는 겁니다. 우리들은 2레벨 강등을 각오하고 들어온 정찰대니까요.”

문아린의 말에 공격대원들이 숙연해졌다.

아니, 자신들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길수연이나 문아린은 자원해서 정찰대에 들어온 것이지만, 탱커 선우결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찰대원들은 자의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려 이곳에 온 것이다.

설국헌은 제비뽑기에서 졌고, 선우결은 길드 내 기여 포인트가 최저라서 차출되었다.

“이준기 한 사람이 한 일을 우리 열 명이 못 할 리가 없잖아요!”

“도전해 봅시다!”

“와이번 한 마리는 잡아야 정찰을 했다고 할 수 있죠!”

자신들이 잉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듯, 사람들이 갑자기 용감해졌다.

문아린은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의 말이 목표했던 것의 정반대되는 효과를 가져와 버렸다.

*****

“휴우··· 정말 쉽지는 않네요.”

“헉헉··· 죽을 뻔했습니다.”

길수연의 의례적인 말에, 탱커 선우결은 과장법을 잔뜩 사용해서 반응했다.

홀로 배회하던 와이번을 한 마리 풀링해서 잡았다.

풀링 전에 공격대원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위치를 배정하고 시작했지만, 실전은 너무나 다르게 진행되었다.

와이번 날개 끝쪽에 달린 발톱에 찔린 공격대원은 독침에 당했다면서 바닥을 굴렀다.

독침은 꼬리에만 있다고 그렇게 브리핑을 했건만, 발톱에 찔린 당사자는 자신의 고통을 남들이 몰라준다면서, 대성통곡을 하며 대열을 이탈했다.

오랜만에 탱킹을 하는 선우결도 삐끗했다.

와이번의 날갯짓에 날아가지 않도록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제때 발동하지 못해 잠깐 동안 대열이 완전히 무너졌다.

길수연이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더라면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간신히 다시 대열을 잡고 와이번을 어찌어찌 쓰러뜨리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정찰대라고 무시하지 말란 말야!”

“우리가 해냈다!”

“힐러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대열 무너질 뻔했는데.”

“대한민국 대표 힐러, 길수연 님!”

“괜히 최고 힐러라고 불리는 게 아니네요!”

길수연을 향해 덕담 릴레이를 하던 공격대원들이 하나둘 문아린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쉬면서 발을 주무르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도 칭찬의 말을 쏟아냈다.

“공격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공격대장님 작전으로 와이번을 잡았네요.”

“리딩이 정말 훌륭하십니다!”

문아린의 얼굴이 빨개졌다.

설국헌이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우리 공격대장님, 얼굴 빨개지니까 귀여우시네. 하하.”

길수연도 한마디를 보탰다.

“문아린 공격대장님. 수고하셨어요. 정말 잘하시네요.”

왠지 길수연의 모습에 이준기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

정찰대를 여러 명으로 꾸리는 이유는 물론 안전 때문이다.

그 반대급부는 느려지는 정찰 속도.

단독 정찰에 비해, 여러 명이 움직이려면 아무래도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준기가 건네준 맵을 보고 정찰을 했건만, 오후 여섯 시가 되어도 전체 맵의 반 정도밖에 돌지 못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공격대원들은 입구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넓게 흩어져 앉아 물과 빵을 먹는 공격대원들.

길수연과 문아린은 조금 떨어져 앉은 채로 조용히 식사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 탱커 선우결이 길수연의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앉아도 되죠?”

“그러세요.”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길수연 씨.”

“네. 탱커님도요.”

길수연의 단답에 머쓱해졌지만, 선우결은 다시 말을 이었다.

“길수연 씨는 세상이 잠잠해지면 뭘 할 거예요?”

“글쎄요. 이 세상이 언제 잠잠해질까요.”

“언젠가는 끝나겠죠. 이 전쟁도. 그때 되면, 뭐 할 건지 생각 안 해봤어요?”

“다시 학교 가야겠죠? 취직 준비도 해야겠고.”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웃기기는 하지만, 난송그룹 어때요? 취직자리로?”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우리 형이 후계자기는 하지만, 저도 아마 상무이사 정도는 하게 될 거예요. 저랑 같이 일해봐요.”

“난송그룹이라면, 간장 만드는 회사던가요?”

“네. 잘 아시네요. 난송 간장 좋아하세요?”

“글쎄요. 집에서 먹는 간장이 어디 건지 잘 몰라서요.”

이쯤 되니,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듣고 있던 문아린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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