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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8: 와이번 네스트 (3)
Episode 28: 와이번 네스트 (3)
다음날인 토요일. 2021년 10월 29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난리가 난 것 같았다.
아침 뉴스에 이상덕 본인이 출연해서 앵커와 인터뷰를 했다.
“국가적 재난이라고 생각하고, 저희 구원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인천 공항 차원문을 조속히 폐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덕은 방송에 출연했으니 바쁠 것이고, 협회 사무총장 신학길이라도 전화를 걸어올 것 같았는데, 협회 쪽에서는 접촉이 없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이준기에게 카톡을 해왔다.
우선, 매니저 최정윤.
- 최정윤: 구원자님! 오늘 저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 난리가 났네요.
- 이준기: 괜찮습니다. 협회에서 공격대를 짜겠죠.
- 최정윤: 그런데 어제 거기 들어갔다 나오신 거라면서요? 저한테는 왜 얘기 안 하셨어요? 그리고 거기 차원문이 열린다는 건 어떻게 알고 가신 거예요? 그것 때문에 거기 가신 거죠?
- 이준기: 외국인 구원자 중에 제보해준 사람이 있었어요. 혹시나 해서 갔는데 정말 차원문이 열리더라고요.
- 최정윤: 외국인 구원자 누구요? 헬렌 카자크요?
- 이준기: 그건 저도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쪽에서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요.
- 최정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문아린과 카톡 대화가 이어졌다.
- 문아린: 오빠! 어제 인천 공항 차원문 들어갔다 나왔다는 게 사실이야?
- 이준기: 응.
- 문아린: 정찰만 하고 나온 거야? 정말로?
- 이준기: 응.
- 문아린: 오빠답지 않네. 만만치 않은가 봐. B급이라서 그런가.
- 이준기: 거긴 정말 정예 공격대가 가야 할 것 같아.
- 문아린: 그냥 나왔으면, 퇴각 페널티는?
- 이준기: 2레벨 깎였지. 하하.
- 문아린: 엑, 정말? 그럼 지금 25레벨?
- 이준기: 26레벨. 들어가서 28레벨 만들고 나왔거든.
- 문아린: 쩝. 오빠랑 나랑 레벨이 같네, 그럼.
- 이준기: 그런가. 하하.
- 문아린: 난, 다음 주에 또 공격대 들어가.
- 이준기: 그래? 요즘 열심히 하는구나. 몸조심해서 잘 다녀와
- 문아린: 고마워.
윤동직 역시 카톡을 해왔다.
- 윤동직: 어제 인천 공항 차원문 들어갔다는 거 레알?
- 이준기: 아, 형님. 레알은 무슨 레알이에요. 안 어울려요.
- 윤동직: 미안, 미안. 무튼, 뉴스에 나오는 거 사실이야?
- 이준기: 네.
- 윤동직: 퇴각했다고?
- 이준기: 네.
- 윤동직: 페널티는 어쩌고?
- 이준기: 2레벨 강등됐죠. 하하.
- 윤동직: 뜻밖이네. 들어가 보니까, 혼자 깨기에는 좀 그랬나 봐?
- 이준기: B급이에요. 형님 농담이 심하신 거 아녜요?
- 윤동직: 준기는 그런 던전 깨고 그랬으니까. 퇴각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네.
- 이준기: 만만치 않아요. 맵도 넓고.
- 윤동직: 그래? 겁나네. 점점 던전이 세지고 있으니.
헬렌 카자크에게서도 메신저 연락이 왔다.
- 헬렌: 혹시 나오셨나 해서 연락드려요. 정찰이라고 하셔서.
- 이준기: 나왔습니다. 알려주신 정보는 큰 도움이 되었어요.
- 헬렌: 와이번도 직접 상대하신 거예요?
- 이준기: 와이번은 그냥 멀리서 보기만 했습니다.
- 헬렌: 와이번이 좀 세죠.
- 이준기: 고블린 상단하고 싸우는 걸 봤는데, 고블린 용병 여섯 마리가 고전하더라고요.
- 헬렌: 그래요? 그런 건 본 기억이 없는데. 좋은 구경 하셨네요.
- 이준기: 알려주신 대로, 와이번은 이빨, 날개, 꼬리로 공격을 하더군요.
- 헬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이준기: 여러 가지로 감사해요, 헬렌.
- 헬렌: 뭘요. 구원자들끼리 돕는 건 당연하잖아요?
한바탕 몰아닥친 카톡을 끝내고 커피를 내리는데, 다시 전화가 진동했다.
“이번엔 누구지?”
*****
강남구 도곡동 브릴리언트 길드 사무소.
11층짜리 빌딩 전체가 길드 사무소다.
1층에 매점, 2층에 피트니스 센터, 3층에 커피숍과 식당··· 없는 게 없다.
사우나에 게스트 하우스까지 갖춰져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
차원문을 들락거릴 때를 제외한다면, 언론의 접근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
3층 커피숍에는 김나리와 이준기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길드 소유의 건물이라서 비밀회의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김나리와는 오사카 도톤보리 던전 이후 3주 만에 만나는 셈이다.
“갑자기 뵙자고 해서 당황하셨죠? 아무튼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토요일인데.”
토요일 오후 두 시.
응급의학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휴일이 따로 없는 구원자라는 직업이지만, 어제 하루 종일 던전을 뛰었다면 하루 정도는 쉬어주는 게 인지상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이준기는 프리랜서.
일자리가 있다면 어디에라도 달려가야 하는 게 당연하다.
“아닙니다. 불러 주셔서 감사하죠.”
“아시겠지만, 아침부터 아주 난리가 났어요. 협회 긴급 공문이 왔거든요. 아침부터 길드원들 전부 소집해서 회의를 했답니다.”
“인천 공항 차원문 때문에요?”
“네. 이준기 구원자님이 협회에 보내신 자료가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분명 도움이 됐겠지만, 직접 감사의 말을 들으니 느낌이 묘했다.
길드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같은 업계 종사자라는 동족 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샘솟는 느낌이랄까.
“다행입니다. 회의 결론은 어떻게 됐나요? 제가 물어도 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협회 쪽에서는, 이르면 이번 주에 공격대를 들여보내려는 계획이에요. 정규 공격대가 편성되지 않는다면 정찰조라도 좋다고 공문에 써서 보냈더라고요. 이준기 구원자가 퇴각한 것을 보니, 정찰조로 들어가더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면서.”
“하하. 제가 살아서 돌아오기는 했죠.”
“협회에서 내일까지 지원자 명단을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길드에서는, 예상대로 별 지원자가 없네요. 저희 길드에 대해서는 조금 들으신 것이 있나요?”
“아뇨. 별로 아는 게 없네요. 유망주는 길드에서 적극 지원해 준다는 얘기만 들은 것 같습니다.”
“아하. 그것도 사실이긴 하죠. 저도 예전에 도움 많이 받았고요.”
김나리는 한숨을 쉬더니,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길드 이름도 웃기고 그렇잖아요. 구원자들이 욕먹는 이유의 태반은 우리 길드가 제공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구원자라는 직업의 본질은 군인이잖아요. 목숨을 거는 직업이죠. 그런데 우리 길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없어요. 사람들이 구원자에 대해서 생각하는 나쁜 이미지는 전부 우리 길드랑 딱 맞아요. 구원자로 각성했으니 정부 지원금 받으면서 귀족 행세는 하고 싶고, 그런데 목숨 걸기는 싫고, 그렇지만 랭킹 낮은 것은 또 싫고···”
“하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이준기는 멋쩍게 웃었다.
“다른 길드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한다고 들었지만, 닫을 수 있는 차원문 그냥 방치하는 것도 우리 길드가 제일 심한 것 같고요. 차원문이 열려 있어야 구원자 고마운 줄 안다는 거죠.”
“이번에 제가 들어갈 차원문도 그런 경우인가요?”
“딱히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길마님이 들어간다고 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링크를 드릴게요. 한 번 봐주세요.”
김나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상태창을 열어 던전 정보를 이준기에게 전송했다.
전송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것이, 이렇게 근거리에서만 작동하는 기능이다.
상태창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원거리에서도 가능했다면, 던전 공략 방식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 차원문 고유번호 08154. 랭크 C. 1층 구성. ‘원형경기장’.
- 차원문 소멸 조건: 경기장 마스터가 제시하는 조건 달성.
- 차원문 소멸 보상: 에픽 등급 이상 아이템 1개.
- 퇴각 페널티: 1레벨 강등.
원형경기장 포맷이라면, 별다른 위험부담은 없다.
경기장 마스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항복하면 되는 포맷이다.
“설명만 봐서는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이 던전 공격대에 저를 쓰시려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희 길마님, 그러니까 현재 전국 랭킹 5위인 김범규 탱커가 들어가기 때문이겠죠. 위험 요인을 최소화한다는 차원에서, 던전에 대해서 잘 아시는 이준기 구원자님을 섭외하려는 겁니다.”
“공격대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아직 정해진 건 아니에요. 길마님과 저는 들어갈 것이고, 길드 내 랭킹 3위인 최현 딜러도 들어갈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요. 우리 길드에서 5명 들어가고, 이준기 구원자님을 객원으로 모시려고요.”
“저는 좋습니다. 이번 금요일이라고 하셨죠?”
“네.”
“공격대 멤버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일정은 확실히 픽스된 건가요?”
“네. 십중팔구, 인천 공항 차원문 때문일 거예요. 이번 주 중에 거길 들어가겠다고 했으니, 다른 쪽에 선약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죠.”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생각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까, 김범규 길마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인천 공항 공격대에 브릴리언트 길드 소속 상위 랭커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겠군요?”
“제가 우려하는 점이 바로 그거예요.”
*****
협회 사무실 행정 직원 중에 최정윤 매니저의 대학 후배가 있었다.
일요일 정오까지 인천 공항 던전에 대한 공격대 지원자를 받기로 한 협회.
이준기는 공격대 지원자 현황을 보고 브릴리언트 길드의 용병 계약 건을 진행하기로 했다.
“일요일인데 쉬지도 못하시고··· 죄송하네요.”
“매니저 일이 원래 그런 거죠. 신경 쓰지 마세요. 대체 휴일은 제가 알아서 챙길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원자 현황을 정말로 넘겨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후배의 말에, 최정윤은 이준기 역시 구원자임을 상기시켰다.
협회 소속은 아니지만 협회와 용병 계약을 한 이준기.
자신이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던전 공격대 관련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는 최정윤의 말에 대학 후배는 수긍했다.
“어떤가요?”
“전체 지원자는 40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 정찰대 지원이네요. 정규 공격대 지원은 전부 해서 아홉 명인데요.”
“예상은 했지만, 좀 심한데요.”
“20명 꽉 차야 가능할 거라고 말씀하셨죠?”
“네. 이번 던전이 제일 어려울 겁니다.”
인천 공항 차원문.
광저우 공항 차원문의 선례도 있고 해서, 한국 정부는 차원문의 조기 정리를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그런데도 협회는 지원자 부족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았다.
국회는 이상덕 협회장을 소환, 청문회를 개최해서 압박했고, 결과적으로는 급조한 공격대가 던전 안에서 사달을 일으켰다.
공격대가 두 편으로 나뉘어 싸움을 벌인 것이다.
역사는 12월에 미국에서 벌어진 내분을 길드 전쟁의 시작으로 기록하지만, 이준기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보다 먼저, 11월 20일 인천 공항 차원문 안에서 벌어진 패싸움이야말로 길드 전쟁의 시작이라고.
사망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고, 일단 갈등이 봉합된 일회성 사건이기 때문에 전쟁이라고 불리기에는 뭔가 모자란다는 것이 학자들의 입장이다.
‘거기서 끝났어야 일회성 사건이지.’
최정윤이 물었다.
“이준기 구원자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소속 길드가 없어서, 지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잖아요?”
“저야 협회 용병으로 매여 있는 몸이니까요. 협회에서 들어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들어가야 하는 거죠.”
“단서 조항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인천 공항 차원문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시면, 미리 다른 약속을 잡아 놓으시면 되니까요.”
“협회에서 인천 공항 공격대를 언제로 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원하신다면, 제가 일정을 촘촘히 잡아볼게요.”
“아뇨.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이번 주 금요일에는 브릴리언트 길드 공격대에 참가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결정하신 거예요?”
“네. 이번 주에 정규 공격대는 성사 가능성이 없네요. 정찰대라면, 굳이 제가 다시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준기는 김나리에게 받았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송부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협회 사무총장 신학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약 때문에 안 되겠다는 말을 전하자, 신학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이구, 이준기 구원자님. 첫 의뢰부터 파투를 내시면 어떡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