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72화 (7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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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6: 현재의 동료, 미래의 동료 (2)

Episode 26: 현재의 동료, 미래의 동료 (2)

분명히 말해 두지만, D급 던전에서 좀비들처럼 터덜거리며 돌아다니는 고블린이란 몬스터는 C급 던전 이상에서 활약하는 ‘문명화된’ 고블린들과는 다른 존재다.

도톤보리에서 돈을 주고 고용했던 고블린 용병대와는 차원이 다른 잡몹에 불과하다.

그렇기는 해도, 두 시간 만에 200마리를 사냥하고 밖에 나가서 저녁을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구룡회 멤버들의 기대감은 나름대로 부담이 되었다.

사냥 속도를 저해하지 않기 위해, 윤동직은 한 무리를 다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무리를 당겨오고는 했다.

그러다가 조금 과한 숫자의 고블린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준기의 스킬 트리는 적을 하나씩 때려눕히는 스타일이므로, 적이 몰릴 때마다 윤동직은 방패를 들어 자기에게 쏟아지는 고블린들의 무기를 막아야 했다.

버스 탄다는 생각으로 따라다니기만 해서 그런지, 힐러도 힐을 제때 하지 않았다.

한마디 할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 윤동직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인지 최석주 길마나 김창수 탱커가 고블린 몇 마리를 상대하러 앞으로 뛰어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던전은 정리되었다.

-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 1시간 내에 차원문이 소멸합니다.

- 보물 상자가 생성되었습니다.

5시 12분.

두 시간 만에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저녁 먹기 전에 던전을 나갈 수는 있게 되었다.

최석주 길마가 손뼉을 치면서 윤동직과 이준기를 번갈아 보았다.

구룡회의 다른 멤버들도 박수를 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녁은 나가서 먹겠네요.”

“상자에서 뭐가 나올까요?”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윤동직의 얼굴을 보니, ‘뭘 배웠다는 거냐’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보물 상자에서는 한손검이 나왔다.

- 백기사의 장검.

- 롱소드. 레어 등급.

- 8~10의 물리 대미지. 공격속도 3초.

- 착용 효과: 물리 방어 1.

- 발동 효과: 피격 시 일정 확률로 10초 동안 회피 확률이 20% 증가합니다.

“오오!”

분명히 좋은 아이템이지만, 레어 등급 아이템에 힐러를 제외한 다섯 명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분명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만큼 아이템에 목마른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다.

윤동직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탱커님, 축하합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윤동직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탱커인 윤동직은 옵션을 보고 탱커템이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물리 방어를 1 올려주는 착용효과나, 때때로 회피 확률을 올려주는 발동 효과나 모두 탱커에게 좋은 것은 맞다.

하지만 딜러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옵션들이다.

한참 동안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최석주가 말했다.

“템 분배는, 저희끼리 결정해도 되겠죠?”

“네, 물론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윤동직이 대답했다.

시답잖은 템 때문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 때문에 저녁 먹는 시간이 늦어질까 봐, 힐러인 양시원이 말했다.

“배고프네요. 빨리 결정하고 나가죠.”

자리를 좀 비켜달라는 최석주의 말에, 이준기와 윤동직은 구룡회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풀밭에 앉았다.

윤동직이 말했다.

“귀엽지? 저런 템 가지고 눈에 불을 켜고 신경전 벌이는 거.”

“귀엽긴요. 다 큰 어른들인데.”

“나라고 진짜 귀여워서 하는 말이겠냐. 꼴사납다는 말이지.”

“제가 저 입장이었더라도 그랬을 겁니다. 좋은 아이템이잖아요. 지금 장비가 워낙 없기도 하고.”

“내가 탱커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딱 봐도 탱커템이잖아. 당연한 말을 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어서 정말 당황했다.”

“제가 딜러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딜러한테도 좋은 템이죠.”

“그렇긴 하지. 하지만 물리 방어는 많이 맞아야 하는 탱커한테 필요한 것이고, 회피율 올려주는 발동 효과도 피격당해야 발동하는 거잖아. 탱커가 들어야 발동 효과가 팍팍 터질 거 아니냐.”

“맞는 말씀입니다. 똑같은 조건이라면, 탱커가 가지는 것이 파티 전체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죠.”

“하긴. 현재 장비에 비해서 얼마나 업그레이드가 되는지도 봐야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딜러 편을 들었지만, 이준기 역시 그 검은 탱커인 김창수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르헬의 눈’을 통해 확인한 길마 최석주의 무기는 ‘귀족의 롱소드’.

많이들 들고 다니는 한손검이다.

- 귀족의 롱소드.

- 롱소드. 레어 등급.

- 4~11의 물리 대미지. 공격속도 2.6초.

- 발동 효과: 유효 타격 시 일정 확률로 15초 동안 회피 확률이 15% 증가합니다.

최석주로서는, 대미지가 조금 더 증가하는 ‘백기사의 장검’을 탐낼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팀 전체의 효율을 따진다면 탱커인 김창수에게 양보하는 것이 백 번 마땅하다.

김창수가 들고 있는 무기는 ‘오크 분쇄자의 검’.

최석주의 무기보다 훨씬 열등한 무기다.

옵션을 따진다면 더더욱 탱커가 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혹시, 구룡회 사람들 장비 좀 보셨어요?”

“응. 대강 보기야 했지. 최석주 길마는 귀족의 롱소드 들고 있던데. 김창수 탱커는 오크 분쇄자의 검이고.”

“팀 전체의 업그레이드를 따진다면, 무기가 더 열악한 김창수가 들어야죠.”

“그게 내 말이야.”

“옵션을 따져봐도 그렇고요. 귀족의 롱소드는 타격을 입혔을 때 회피 확률이 상승하는 옵션이고, 백기사의 장검은 타격을 받았을 때 회피 확률이 상승하는 거니까요.”

“그렇지. 귀족의 롱소드는 딜링용, 백기사의 장검은 탱킹용.”

“탱커도 귀족의 롱소드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지만, 백기사의 장검이 있다면 당연히 그게 더 좋은 거고요.”

“그래, 그래. 결국 준기도 나와 같은 의견이네. 내가 탱커라서 그런지, 김창수 탱커 장비빨을 보니까 너무 안 돼 보여서 말야. 겨우 몇 달 전 내 모습이기도 하고.”

“다른 딜러들도 있잖아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템 배분은 언제나 큰 문제지.”

*****

기분이 째진 모양이었다.

최석주가 사람들의 등을 두드리며 저녁은 자신이 쏘겠다고 큰소리로 거듭 말했다.

“여기 말고 강남역 사거리로 갈까요? 택시 타면 5분입니다.”

힐러 양시원이 어쩐지 시비조가 조금 섞인 투로 물었다.

“밥 먹고 클럽이라도 가시게요?”

최석주는 그런 느낌을 눈치 못 챘는지, 여전히 유쾌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럴까? 못 갈 것도 없지 뭐!”

차원문 앞에서 기다리던 행정 직원에게 간단하게 보고서 내용을 불러준 뒤, 구룡회 여섯 명과 이준기, 윤동직은 강남역 사거리로 갔다.

“던전도 깼는데 고기 먹죠, 길마님?”

“으하하. 당근 그래야지. 오늘은 내가 쏜다고!”

좋은 아이템을 먹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는 법.

일행은 강남역 사거리에서 몇 블록이나 들어가야 하는 정육 식당에 도착했다.

구룡회 멤버 한 명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고기 뷔페가 아닌 게 어디냐. 길마님 기분 좋으신가 보네.”

구룡회 멤버들도 구원자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여유 있게 사는 편이다.

단지, 공적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팍팍 쓸 수 있는 정도가 아닌 것뿐이다.

상당한 양의 고기를 먹고 나서 배가 불러오자, 일행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여섯 명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길드라서 그런지 이런 일을 논의하는 것은 꽤 가족적으로 보였다.

클럽에 가려면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 그럼 술을 마시러 가자, 어디서 마실 거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결국 클럽에 갈 때까지 고깃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것으로, 길마 최석주가 결론을 내렸다.

회의는 다 같이 하고 결론 내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는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저녁 뉴스는 오늘도 구원자들과 관련된 뉴스가 많았다.

구룡회 멤버들은 차원문 정리 후에 잠깐 했던 인터뷰 내용이 나올까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공중파 메인 뉴스에 나올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일 이어지는 카탈루냐 독립에 관한 뉴스가 여러 꼭지로 방송되었다.

스코틀랜드, 바스크족, 칼리스탄, 체첸 등 여러 지역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 내용이었다.

“티베트는 어떻습니까?”

“티베트는 쉽지 않을 겁니다. 중국 공산당이야말로 구원자들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례로 꼽히니까요. 티베트 출신 구원자들도 대부분 공산당 열혈 지지자들입니다.”

“쿠르드족은요?”

“그곳은 차원문 사태 이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구원자들도 총 맞으면 죽는다는 걸 최초로 몸소 입증한 사건이 일어난 곳도 북부 이라크고요. 시리아나 터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보십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자가 팔레스타인 정부에 의해 활용되는 걸 막겠다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구원자들을 색출해서 총살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입니다.”

“카탈루냐 독립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겠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렇습니다. 일반화시키기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구원자가 일반인에 비해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고, 초능력 같은 스킬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현대 화기에 대항할 수단이 되지는 못하니까요.”

뉴스에 집중하는 이준기를 보고 구룡회의 힐러 양시원이 물었다.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네. 원래 좀 역덕이라.”

“아, 그러세요? 저도 역덕인데. 게다가 정외과 출신이기도 하고요.”

“그러시군요.”

“카탈루냐 독립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하. 제가 사건에 논평을 할 정도는 아니죠.”

“저는 바르사 서포터라서요. FC 바르셀로나. 바르사 팬이라면 당근 카탈루냐 독립도 지지해야죠.”

뉴스의 초반부를 장식하던 카탈루냐 독립 소식에 이어 국내 정치 뉴스, 그리고 각종 사건, 사고 보도가 이어졌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방으로 들어오는데, 텔레비전 화면에 친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제도 레벨업을 하셨다고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문아린 구원자님이 아주 핫하신 거, 알고 계십니까? 팬카페 수도 많이 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하하.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정리하신 던전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주 완산구에 위치한 던전이었습니다. 저희 길드와 6PM 길드가 연합으로 공격대를 구성해서 정리했습니다.”

“6PM 길드라면, 이상덕 협회장 소속 길드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질문···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문아린 구원자님 소속 길드인 신선자 길드는 협회장과는 노선이 좀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죄송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은 제가 잘 모릅니다.”

“어떻게 6PM 길드와 연결이 되셨는지···”

“제가 레벨업 욕심이 있어서요. 전주 던전이 C급이라 우리 길드 단독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6PM이 손을 내밀었다는 거군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6PM 소속 구원자들 몇 분이 의욕을 보여주셨습니다. 길수연 구원자님을 비롯해서 세 분이 와주셨고요.”

“아! 길수연 구원자님.”

앵커와 대담을 하는 문아린을 보여주던 화면에 길수연의 사진이 투영되었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길수연이란 말을 듣고 화면을 보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오, 길수연 나왔네.”

“눈이 정화되는군.”

“실력이나 미모나 마음씨로 봐도 길수연이 최고지.”

“문아린도 예쁘구만.”

“그래도 길수연에는 못 미치지.”

앵커와 문아린의 대화가 이어졌다.

“지금 기세라면, 10위권 진입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던전 클리어, 그리고 레벨업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제가 존경하는 구원자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께 부끄럽지 않게,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해내는 구원자가 되도록 쉬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합니다만, 정해진 시간이 다 된 관계로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야 할 것 같군요. 오늘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10월 26일 수요일.

이준기는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협회 사무소에 도착했다.

한 달에 수백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는 협회 사무실은 생각보다 사치스럽지 않았다.

직원도 열 명이 채 안 되어 보인다.

구원자들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이상덕 협회장이 길마로 있는 6PM의 사무실은 여기에 없는 모양이다.

비싸 보이는 정장을 갖춰 입었지만, 왠지 촐싹거리는 느낌의 남자가 이준기를 맞아 회의실로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신학길 사무총장입니다. 협회장님이 지금 전화 중이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5분 정도 일찍 도착했으니, 이상덕 협회장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기분 나쁠 건 아니다.

이준기는 신학길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면서 회의실에서 대기했다.

이번에는 얼마짜리 커피 머신인지 몰라도, 맛이 나쁘지 않았다.

두 시가 되자, 신학길은 이준기를 협회장실로 안내했다.

회의실로 이준기를 안내했다는 말을 듣고 이상덕 협회장이 신학길에게 역정을 내는 것이, 열리고 닫히는 문틈으로 들렸다.

신학길은 협회장실을 나와 문을 닫더니, 다시 그 문에 노크를 했다.

어이없는 격식 차리기에 혀가 내둘러졌다.

“들어오세요.”

기자회견이라도 하는 듯이 내리깐 목소리로 이상덕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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